# 121
페르칸 기사 양성소 (1)
기사.
델리피나 대륙에서는 기사가 나름 꽤 대접을 받는 직종 중 하나다.
돈도 많이 받고, 동시에 명예 또한 거머쥘 수 있는 직업이다.
이 때문에 기사로 진로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이들을 노리듯 사설 기사 양성소가 군데군데 많이 자리를 잡았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 역시 사설 기관이다.
그러나 기사 지망생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곳이다.
기사와 용병, 과연 인연을 만들 수 있을까?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나울까지 직접 찾아온 첸버는 내게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받게.”
“이게 뭡니까?”
“추천서. 자네가 페르칸 기사 양성소와 연결시켜 달라고 했지?”
“네, 그랬죠.”
“마침 페르칸에서 특별 강사를 초빙하고 싶어 하더군. 그래서 내가 힘을 좀 썼어. 앞으로 2주 동안, 자네는 페르칸으로 가서 특별 강사로 활약하게 되었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역시 첸버다.
인맥이 넓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페르칸과도 연이 닿아 있을 줄은 몰랐다.
“감사합니다. 첸버 씨에게 물어보길 잘했네요.”
“응? 자네, 내가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이라는 걸 알고 나에게 부탁한 거 아니었나?”
“예?”
전혀 모르는 일인뎁쇼?
처음 듣는 말에 나도 모르게 어리둥절히는 반응을 보였다.
첸버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몰랐나 보군. 나, 이래 봬도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이야.”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자네한테 거짓말해서 얻는 게 뭐가 있나?”
하긴, 그렇지.
페르칸은 기사를 노리는 자들에겐 꿈의 양성소 같은 존재다.
귀족 집안의 자제들도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못 들어가는 곳이 바로 페르칸 기사 양성소다.
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그곳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모든 과정을 수료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만큼 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하다.
하나 고생한 만큼 그에 대한 보장은 확실하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이라고 하면, 웬만한 곳은 거의 다 뚫을 수 있다.
심지어 왕궁 친위대조차 바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곳이다.
그런 대단한 곳에서 교육을 수료했다니.
첸버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길 나오셨는데 왜 용병을 하고 계신 겁니까? 기사가 대우도 좋고 안정적이고 여러모로 모든 조건이 용병보다 나을 텐데요.”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 참고로 단장도 페르칸 출신이야. 내가 단장과 만난 곳이 바로 그곳이니까.”
오늘 내가 몰랐던 블루로즈단의 속사정이 유감없이 펼쳐졌다.
그 대인기피증에 말수 적고, 사교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남자가 페르칸 출신이라니.
첸버보다 더 놀랍다.
‘궁금하네, 어쩌다가 이들이 용병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소설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는데.
내가 독자였다면, 분명 댓글로 남겼을 거다, 첸버와 제나드의 과거 이야기 좀 다뤄 달라고.
* * *
페르칸 기사 양성소로 2주간의 출장이 정해졌다.
나는 짐을 챙긴 다음 드레인을 찾았다.
“선배, 제가 이제부터 2주 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그동안 선배가 애들 좀 관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저번에 그거지?”
“네, 그거에요.”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 관한 건은 이미 드레인에게 다 이야기를 해 둔 상태다.
그러나 내가 드레인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내가 뒤에서 수작을 부려 특별 강사로 가게 되었다는 말은 쏙 빼놨다.
페르칸에서 먼저 나를 초빙했다는 설정으로 가기로 했다.
“근데 그런 유명한 곳에서 왜 너를 초빙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네.”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래 봬도 제가 벨레너의 13난제 두 개를 클리어한 사나이에요. 이런 제안이 들어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하긴 그 업적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근데 그거와 기사 교육과는 전혀 상관없잖아.”
“넓게 보면 상관이 있죠. 아주 넓게요.”
“그렇게 따지면 안 걸리는 게 뭐가 있겠냐? 뭐…… 아무튼 잘하고 와. 올 때 선물 사 오고.”
선물이 목적이었나?
사 올 거라는 보장은 없다.
놀러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다.
드레인에게 용병단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후 나는 바로 길을 떠났다.
* * *
말을 타고 3일을 달렸다.
이제는 혼자서 야영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는 레턴이라는 도시에 있다.
대도시라 불리는 레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하고 큰 도시다.
‘나울도 언젠가는 레턴과 비슷하게 성장할 수 있겠지.’
예전에 비하면 지금의 나울은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나울은 더 발전해야 한다. 로그 상단과 R팀 본부가 있는 도시가 작아서야 쓰겠나.
‘가만 있어 보자, 이쪽으로 쭉 가면 나온다고 했는데……. 저기인가?’
엄청나게 큰 건물 몇 채가 보인다.
건물들은 같은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페르칸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엄청나네. 웬만한 대학교보다도 더 큰 거 같아.’
페르칸은 기숙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기사 양성소보다 많은 시설들이 필요했다.
입구로 향했다.
당연히 나는 제지를 받고 말았다.
“신분증, 혹은 출입증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각이 잡혀 있는 젊은 남자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내게 요구했다.
자세히 보니 병사는 아니었다.
‘여기 학생인가?’
페르칸 기사 양성소는 3년제로 운영된다.
3년차에 접어든 3학년들은 교육보다 주로 실전에 많이 투입된다고 들었다.
경계 근무 투입도 실전 과목 중 하나다.
나는 내 신분을 증명시켜 줄 수 있는 두 가지 물건을 학생에게 보여 줬다.
하나는 블루로즈단 R팀 대장직을 상징하는 문양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 팔목 보호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첸버에게 받은 추천서였다.
학생은 내게 바로 경례했다.
“실례했습니다.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학생이라 해도 나는 보자마자 이들에게 반말을 툭툭 내뱉고 싶진 않다.
학생이라 해도 이들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된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는 엘리트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어느 귀족 집안의 자제분일지를 모르니까 일단 상호간에 예를 갖추는 편이 좋다.
부지 안으로 들어오니 양성소는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탁 트인 훈련장.
그곳에서 기사 지망생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실기 교육에 매진하고 있었다.
교육 과정은 굉장히 살벌했다.
‘갑자기 군대 시절이 떠오르네.’
훈련병 신분을 달고 연병장에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굴렀던 기억이 불현듯 스쳤다.
그땐 그랬지.
지금은 뭐…… 추억으로 가끔 떠올리곤 하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그 체험을 똑같이 하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을 꺼낸 사람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릴 것이다.
아무튼 군대의 기억을 불쑥 꺼내게 만드는 훈련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향했다.
강의실, 그리고 강사들의 개인 사무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내가 찾아야 할 인물은 페르칸 기사 양성소의 원장인 ‘와반’이다.
와반의 개인 사무실은 최상층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였다.
‘저건 뭐지?’
계단 옆에 이상한 게 있었다.
엘리베이터와 비슷해 보였다.
‘판타지 세계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일단 타 보기로 했다.
문은 없었다. 그냥 타면 된다.
캡슐 같은 것에 들어가니, 층수 버튼이 있었다.
‘진짜 엘리베이터랑 똑같이 생겼네.’
버튼을 눌렀다.
가야 하는 곳은 7층.
그러자 캡슐이 위로 붕 올라섰다.
‘오, 신기하네.’
엘리베이터(가칭)의 벽에 작동법과 간단한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부유석에 마력을 부여해 만든 승강기라고 한다.
원하는 층을 누르면, 부유석이 중력을 조절해 원하는 층수까지 도달하게 만들어 준다.
‘설마 여기서 과학의 산물을 접하게 될 줄이야.’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잖아? 마력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하니까 마법 맞겠지.
아무튼 부유석 승강기를 타고 손쉽게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장실은 찾기 쉬웠다.
똑똑똑.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먼저 했다.
안에서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40대 남성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누구요?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첸버 씨에게 소개받고 2주간 특별 강사로 일하게 된 로인이라고 합니다.”
“아! 로인 씨군요! 이거 참……. 미안합니다. 바로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초면인데 바로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하죠.”
와반은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원장이라고 들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젊었다.
“여기에 앉으시죠.”
“예.”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와반은 곧장 입을 열었다.
“첸버에게 들었습니다. 우리 양성소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시던데…….”
“예, 이곳의 기사 양성 시스템을 배워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첸버 씨에게 부탁해서 어떻게 연결 좀 시켜 달라고 했는데. 설마 제가 강사로 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용병인 제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허허, 용병이니, 기사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건 실전 경험입니다. 어찌 보면 용병이 기사보다 더 많은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죠. 그중에서 특히 로인 씨의 경험과 지식은 굉장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벨레너의 13난제를 두 번이나 클리어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 경험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딜 가든 벨레너의 13난제 클리어 이력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디 그 경험, 우리 학생들에게 유감없이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와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이곳에 강사로 일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칠흑의 조각을 사냥하러 온 거다.
3권 초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서 발생한 칠흑의 조각 사건은 수많은 젊은 기사 지망생들의 생명을 앗아 갔다.
유능했던 젊은 인재들을 잃은 날.
이날은 델리피나 대륙 전체에 크나큰 슬픔을 안긴 날로 기억될 것이다.
어찌 보면 미래의 영웅들이 다수 탄생할 수 있는 이곳, 페르칸 기사 양성소.
그러나 ‘칠흑의 조각’ 사건 때문에 미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인재들이 다수 목숨을 잃게 된다.
칠흑과 싸우기 위해선 많은 영웅들이 필요하다.
전장에서 활약할 미래의 영웅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이곳에 왔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원장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는 학생들의 숫자는 총 몇 명입니까?”
“천오백 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천오백 명 중 한 명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자라는 건가?
‘근데 어떻게 찾아야 되나?’
이건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기 아닌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내가 안 하면 누가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