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19화 (119/240)

# 119

읽어라! (5)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점점 상승했다.

무시하기 힘든 단어가 들린 거 같은데.

“차원 이동 마법이라고 했는데요.”

세상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진짜요? 차원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거짓말 아니죠?”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장담 못해요. 그러니까 계속 실험을 해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보다 어깨 좀 놔 주실래요? 어깨 아프거든요?”

“아, 이런.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세올라의 어깨를 콱 움켜잡고 있었다.

나는 마법사들과 만날 때마다 혹은 마법사 길드와 접선을 가질 때마다 차원 이동 마법에 대한 질문을 했다.

혹시 마법으로 차원 이동이 가능하냐고.

그러나 마법사들이 들려준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현대 마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대답만 수십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심지어 레이샤르한테서도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드래곤은 마법을 통달한 종족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차원 이동 마법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는데.

레이샤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원 이동 마법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불완전한 마법이라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할 수가 없네. 그건 드래곤도 힘들어 하는 마법이야.

간접적으로 안 된다는 소리를 빙빙 돌려서 말한 거였다.

갑자기 세올라의 발명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상승했다.

“어떻게 차원 이동 마법을 구사할 수 있습니까?”

“궁금해요?”

“물론이죠. 일단 봐서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정말로 세올라 씨에게 투자하겠습니다.”

“좋아요. 절 따라오세요.”

이번에는 2층이 아닌 지하로 향했다.

지하는 2층보다 더 넓었다.

‘보니까 2층에 침대도 있고, 주방도 있고. 별게 다 있네.’

2층은 창고로, 지하는 생활 겸 연구실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1층은?

‘그냥 버린 건가?’

집 공간이 아까워 죽겠다.

서울에 이런 2층집 하나 가지고 있으면 나 같으면 정말 예쁘게 잘 꾸며 놓고 살 자신 있는데.

차원 이동 때문인지 서울 생각이 오랜만에 났다.

세올라를 따라 이동한 곳의 끝에 두 개의 거대한 돌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내가 2차로 용병들을 모집할 때 사용했던 마력 측정기와 비슷한 것들이었다.

“이거, 마력 측정기 아닙니까?”

“맞아요. 근데 제가 좀 개조했어요. 차원 이동에는 방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하거든요. 여기 있는 건 마력 측정기라기보다는 마나 증폭기라고 보시면 돼요. 이걸로 차원 이동을 하는 데 부족한 마나를 대신 채우는 거죠. 참고로 이 마나 증폭기도 제가 만들었어요. 세올라 특제죠.”

“아, 그렇군요.”

그런 건 관심 없고, 나의 관심은 오로지 차원 이동뿐이다.

세올라는 가상의 투자자인 나를 모시고 임시 세미나를 열었다.

“여기 두 마력 증폭기에 손을 올려놓고 마나를 계속 흘리면 돼요. 그러면 두 개의 마나 증폭기가 공명을 시작하면서 마나와 마나 사이에 강한 충돌을 일으키죠. 마나의 충돌로 인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틈’이라는 것이 형성돼요. 저는 그걸 ‘게이트’라 부르고 있죠.”

“게이트……!”

“게이트의 공간은 굉장히 작아요. 그래서 사람 한 명이 통과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작은 동물들로 실험을 해 봤는데 자그마치 10번 중 8번이나…….”

“성공했습니까?”

“아니요, 실패했어요.”

그러면 그런 표현 방식을 사용하면 안 되잖아.

괜히 기대했네.

“그래도 20퍼센트의 확률도 대단한 거예요. 로인 씨는 용병이라고 하셨죠? 마법과 무관하니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마법사 길드 측에서 저의 이런 연구 성과를 알게 된다면 아마 놀라 까무러칠 걸요?”

그건 인정한다.

레이샤르가 내게 말했던 확률이 있었다.

드래곤인 자신이 차원 이동 마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무사히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채 5퍼센트가 안 된다고 했다.

세올라의 성공 확률은 그것의 4배다.

놀라운 성과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20퍼센트에 내 목숨을 걸기에는 좀 그렇지 않은가?

‘아니, 20퍼센트면 할 만하지.’

나는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지금은 어때요?”

“뭐가요?”

“게이트 상태요. 인간도 통과 가능합니까?”

“넓히긴 했는데…… 딱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공간밖에 안 돼요. 근데 오늘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오늘이 게이트가 가장 넓어지는 때입니까?”

“일단은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측정했던 게이트 크기 중에서 오늘이 가장 크긴 해요. 근데 뭘 하시려고요?”

나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거, 지금 가동시킬 수 있죠?”

“설마…… 하시게요?”

“네, 오늘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왠지 감이 온다.

성공할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니 뭐니 그런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감이다.

하지만 난 지금의 이 느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회가 언제 나를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마력 증폭기 위에 손을 올렸다.

좋아, 이 느낌 그대로 가자!

천천히 마력을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올라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차원으로 가고 싶은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완전 꿀팁이다.

내가 가고 싶은 차원이 있다.

대한민국, 서울!

파지지지직!

마력 증폭기 주변에 강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내 앞에 게이트가 열렸다.

차원의 틈은 나를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제 마력 증폭기에서 손을 떼면 된다.

그때 세올라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 그리고 차원 이동을 하면 1시간 뒤에 다시 강제로 돌아오게 되니까 그거 알아 두세요!”

“뭐라고?”

아니, 그 중요한 걸 이제 말하면 어쩌자는 거야!

태클을 걸기도 전에 이미 나는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몸이 붕 뜨는 이 감각.

마치 물속에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숨은 쉴 수 있나?

……못 쉰다.

점점 숨이 막혀 온다.

안 돼,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다!

손을 허우적거렸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동시에 통각이 나를 엄습했다.

“아얏!”

눈을 떴다.

풍경이 달라져 있다.

익숙한 방 안.

여기는…….

“내 방이잖아?”

보증금 500에 월 42만 원의 나만의 작은 원룸!

“정말로…… 돌아왔어!”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봤다.

로인이 아닌 강서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8시 반……!”

세올라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차원 이동은 1시간만 가능하다고.

1시간이 지나면 좋든 싫든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고 했다.

“에이, 꿈이겠지.”

나는 기나긴 꿈을 꾼 거다.

로인이지 칠흑이니 라스니 그런 건 다 꿈속에서 나오는 내용들이다.

“8시 반이었지? 출근 준비나 하자. 어휴, 근데 뭔 책들이 이렇게 바닥에 널려 있어?”

나는 책을 치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두꺼운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하나…….

소설 책 이름을 보는 순간,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델리피나 전기.

“이런, 망할!”

역시! 꿈이 아니었어!

* * *

내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지 얼마나 지났나?

잘 모르겠다.

잠들었다가 막 깼으니 정확하게 몇 시부터 타임 어택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젠장, 고민하지 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델리피나 전기! 3권 어디 있어, 3권!”

1, 2권은 필요없다.

3권부터 4, 5권까지 단숨에 독파해야 한다.

책을 들어 올렸다.

3권부터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소설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내용과 실제로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 흐름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나 완전히 다르진 않았다.

내가 싸웠던 루크, 그리고 음유시인 세이라에 관한 내용도 3권부터 다 나오기 시작한다.

‘진즉에 읽어 둘걸!’

그랬더라면 소설 속에서 덜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3권 중반을 읽어 내려갈 때쯤이었다.

9시 10분이 되었을 때, 갑자기 내 스마트폰이 맹렬하게 울렸다.

부장님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그냥 받아 버렸다.

“여보세…….”

-야, 강시언! 너, 지금 어디 있어? 출근 안 해?

“죄송합니다, 부장님. 콜록! 지금 제가…… 독감이 걸린 거 같아서…… 콜록, 콜록!”

-뭐? 독감?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한 녀석이 뜬금없이 웬 독감이야! 출근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건 아니겠지?

감 좋은 건 여전하시네요, 부장님.

정답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장님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

“엇, 갑자기 열이…… 그럼 끊습니다, 부장님!”

-자, 잠깐! 강시언, 너…….

뚝!

미련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해해 주세요, 부장님.

만약 부장님이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분명 저랑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9시 25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케이, 3권 독파!”

이 두꺼운 책을 1시간도 다 안 돼서 읽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읽은 셈이다.

하나 대충 읽어선 안 된다.

문구 하나하나까지 전부 다 기억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델리피나 전기를 읽은 의미가 없다.

‘다음, 4권!’

읽어라!

내일 세계가 멸망한다 해도 무조건 읽어라!

이런 심정으로 델리피나 전기 4권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파지지지직!

내 주변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다시 소설 속 세계로 끌려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4권을 읽을 시간이 없어!’

나는 4권을 내팽개쳤다.

완결권인 5권을 집어 들었다.

하다못해 결말이라도 알고 가야겠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 순간, 나는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누구도 칠흑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칠흑은 모든 생명체를 집어 삼켰다.

이것이 델리피나 대륙의 마지막 모습이다.

‘설마했던 배드 엔딩이었어?’

왜? 어째서 배드 엔딩이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내 몸은 점점 투명해졌다.

이윽고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허억! ……헉!”

거칠게 호흡을 내쉬었다.

옆에서 세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괴짜 마법사?”

“세올라에요, 세올라!”

“아, 그랬죠. 미안해요.”

아직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날에 주량을 훨씬 넘게 술을 마신 뒤에 아침에 막 일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별로 좋지 않은 컨디션이란 뜻이다.

“물 마셔요. 목이 많이 마를 거예요.”

세올라가 건넨 물을 세 컵 연달아 마셨다.

그제야 갈증이 해소되었다.

머리가 슬슬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3권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천만다행이다.

내심 차원 이동 때문에 머릿속이 리셋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세올라는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차원 이동은 어때요? 무엇을 보고 오셨나요?”

“…….”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숨을 푹 내쉰 뒤에 세올라에게 이렇게 대답해 줬다.

“세계의 끝을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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