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15화 (115/240)

# 115

읽어라! (1)

본부로 돌아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들은 정보들이 너무 많다.

그래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글레드라…….’

생명의 불씨라 불리는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좋을지 감이 안 잡힌다.

이럴 때마다 드는 후회가 있다.

‘5권까지 읽었어야지. 멍청한 녀석아!’

오늘도 편집자 시절의 나를 탓하면서 침대에서 벗어났다.

이래서 필사적으로 카인을 찾아 해매는 것이다.

카인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 거다, 델리피나 대륙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가 소설을 쓴 저자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겠나?

문제는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못 찾겠다는 거다.

베르투에게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협조성이 참 부족하네.’

나보고 올바르게 이야기를 정립시켜 달라느니 어쨌느니 하는 부탁을 한 주제에, 정작 본인은 협력해 주지 않는다.

아니, 부탁한 당사자가 나 몰라라 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완결권까지 책을 읽지 않은 내 자신을 탓하기 시작해서 카인에 대한 불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감정이 드는 걸 보아하니, 오늘 하루도 참 잘 풀릴 거 같네.

본부로 향하기 전에 오늘은 궤도를 틀어 로그 상단 본사부터 먼저 들르기로 했다.

내가 용병단 쪽 일에 집중하는 사이에 라그너는 로그 상단의 규모를 배로 불렸다.

본사 건물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직원의 숫자도 늘었다.

신입이 들어오면 항상 시키는 일이 있다.

바로 내가 공동 대표임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본사에서 나를 모르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직원들은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로인 님!”

“라그너는 어디 있어?”

“사무실에 있습니다. 불러올까요?”

“아니, 됐어. 내가 직접 갈 거야.”

마침 할 이야기도 있다.

사무실 문의 문고리를 잡으려 했다.

그전에 문이 먼저 열렸다.

“로인 님! 오랜만에 방문하셨군요.”

“그동안 잘 지냈어?”

“정신없이 지냈죠. 하하! 그보다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 그리고 심각하게 다친 것도 아니야. 찰과상 정도인데 애들이 너무 호들갑떨어서 그런 소문이 퍼진 것뿐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아, 저한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 일단 앉을까?”

“네. 여기 앉으시죠. 마실 건 뭐로 드릴까요?”

“커피. 네가 타 준 걸로.”

“알겠습니다.”

라그너는 커피를 잘 탄다.

다른 사람들이 타 준 커피를 여러 차례 마셔 봤지만, 라그너가 탄 커피가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

자판기 커피 맛이라고 해야 하나?

편집자 노릇을 할 때 매번 마셨던 그 커피 맛과 거의 흡사했다.

후릅.

커피 한 모금을 음미했다.

“그래, 이 맛이지.”

“입맛에 맞으시니 다행이군요.”

“너,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카페 하나 차려 보는 게 어때? 대박 칠 거 같은데.”

“하하하! 로인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로 도전해 보고 싶네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한 말이다.

아무튼 커피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도록 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체릴이라는 여자, 알고 있지?”

“예, 유명하지 않습니까? 의류계에서 독보적인 1인자 위치를 굳힌 젊은 사업가. 상인 중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죠. 그런데 그 여자는 갑자기 왜…….”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카틀리나 사건 이후, 체릴은 나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해 왔다.

다수의 편지…… 아니, 팬레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편지들이 내 사무실에 가득 쌓여 있다.

처음에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읽긴 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지겨워서 관둬 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업무에 관한 내용이 담긴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로그 상단이 옷감을 유통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던데.”

“체릴, 그 여자가요? 이상하군요.”

라그너는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체릴은 굉장히 깐깐한 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통사를 골라도 수십 번은 넘게 상단을 감찰하고, 조사하고 난 뒤에 안전한 곳이라고 확신이 들면 그때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저희 상단과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니. 이해가 잘 안 가네요.”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체릴이 나에게 크나큰 빚을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의뢰를 받았고, 그걸 해결했을 뿐이다.

하나 체릴은 마치 나를 생명의 은인처럼 모시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이 제안 역시 그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로그 상단은 다양한 옷감도 유통하고 있다.

계약을 못 맺을 건 없다.

오히려 로그 상단에겐 큰 기회다.

하나 라그너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의심이 드는 모양인지 이 제안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수상합니다. 로인 님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지. 이상해.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런 의심이 금방 없어질 거야.

하나 말해 주고 싶진 않다.

왜냐?

‘쪽팔리잖아.’

참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제대로 된 연애라는 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여자에 대한 면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러브 라인이 형성될 때마다 참 곤란하다.

대표적으로 리오나의 경우가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사이에 러브 라인이 형성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한데.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뭘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고…….

“이번 건은 그냥 하자.”

“예? 정말입니까?”

“나 믿어. 그리고 체릴은 나를 상대로 뒤통수 때리거나 할 그런 여자가 아니야.”

나는 필살기를 썼다.

나를 믿어라.

이렇게 말하면 라그너는 아무리 합리적 의심이 들어도 내 말을 곧잘 따르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로인 님의 ‘믿어라.’라는 말을 믿고 실패했던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까요. 이번에도 로인 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고마워.”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런 큰 계약 건을 매번 툭툭 던져 주시니, 저야말로 행복합니다.”

라그너 입장에선 내가 복덩어리 그 자체일 것이다.

공동 대표로서 상단에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미안한데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을 줘야지.

하나 이것도 슬슬 한계다.

델리피나 이야기는 이제 3권에 접어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과거의 정보는 이제 쓸모가 없다.

3권 이후부터의 지식이 필요하다.

‘델리피나 전기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아니 카인을 만날 수민 있다면 좋을 텐데…….’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둘 중에 하나를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앞길이 수월해질 테니까.

* * *

상단 쪽 일을 마치고 R팀 본부로 향했다.

나를 보자마자 라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대장님.”

“왜 그렇게 웃어? 사람 불안하게.”

“오늘도 왔어요. 러브 레터.”

“…….”

1일 1편지인가?

그래도 많이 줄었네. 처음에는 1일 5편지였는데.

“대장님, 여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어필하고 있는데. 답을 해 주시는 게 어때요?”

“사귀기라도 하라고?”

“그게 아니라요, 적어도 답장 정도는 보내 주라는 뜻이에요.”

“뭐라고 보내야 되는데? 그리고 내가 답장을 보내면 오해가 더 깊어지잖아.”

“오해를 안 사게끔 문장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절제해서 보내면 되잖아요.”

“그럴 자신 없어.”

내가 편집자 출신이긴 하지만, 글을 잘 쓰진 못한다.

난 편집자 이전에 작가 지망생이었다.

몇 차례 도전을 했지만, 결국 작가로 데뷔하진 못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글 쓰는 것에 대한 재능은 없다고.

그래도 글에 관련된 일은 계속 하고 싶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내가 글을 꽤 잘 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새로운 재능을 깨닫고 편집자를 지원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소설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결론은 간단하다.

난 글은 못 쓴다.

아니, 자신이 없다.

“라비, 네가 대신 써 줄래?”

“싫어요.”

“싫으면 답장 보내라는 말 같은 건 하지 마. 아, 정정할게. 답장을 보내긴 해야 하는구나.”

“어머, 드디어 결심이 서신 건가요?”

“그런 결심 아니야.”

체릴이 제안한 옷감 유통에 관련된 대답이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대답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가서 편지나 써야겠네.’

오늘 할 일이 정해졌다.

라비는 체릴이 보내온 러브 레터 한 통을 내게 건넸다.

그러나 받은 편지는 하나가 아닌 두 개였다.

“이건 뭔데?”

“첸버 씨가 보낸 거예요.”

“파랑새가 직접 안 오고?”

“아침에 왔는데 대장님이 여기 안 계시다고 말씀드리니까 대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하긴, 파랑새도 바쁜 사람일 텐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나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체릴한테 받은 편지 한 통과 첸버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아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체릴의 편지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좋아한다. 나와 사귀어 달라. 아이 러브 유. 츄츄츄.

이런 내용들로 가득했다.

‘마지막의 ’츄츄츄‘ 표현은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네.’

이제 두 번째 편지를 뜯어볼 차례다.

첸버가 보내온 편지다.

‘의뢰서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냥 일반 편지였다.

내용을 쭉 훑었다.

‘가하’라는 국가가 있는데, 그곳에서 왕위 즉위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즉위식에 참석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가하라고 하면…….’

기억을 더듬었다.

라그너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무역로를 물색하다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소국 중에서도 소국인 나라다.

그런 나라의 왕위 즉위식을 우리 블루로즈단이 굳이 보러 가야 할 필요가 있나?

처음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당분간 할 일이 없긴 한데.’

3권의 내용을 모르니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고 해도 내가 사전에 알아챌 수 없어서 미리 조치를 취하기도 힘들다.

라스 일행을 도와주는 것도 어찌 보면 아돈 전투가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앞날을 모르니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당분간은 본부에 죽치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이런 제안이 올 줄은 몰랐다.

‘인맥이나 넓힌다고 생각하고 갈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국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왕과 친분을 다져 놓으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좋아, 가자.’

답장을 보내야 할 곳이 두 곳으로 늘었다.

* * *

첸버는 나를 두리아라는 작은 도시로 불렀다.

도착해 보니 나뿐만 아니라 리오나까지 있었다.

“레임스는? 맨날 같이 따라다녔잖아.”

“초대받은 사람은 대장급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두고 왔어.”

하긴. 우리 쪽도 왕위 즉위식에 초대받은 나밖에 없었다.

나와 리오나는 첸버를 기다렸다.

숙소 밖을 나오는 첸버.

그러나 첸버 혼자만 나온 건 아니었다.

첸버의 뒤를 따라 나란히 숙소를 나서는 한 남자.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젊은 남자의 모습은 낯이 익었다.

‘단장께서 납시었군.’

블루로즈단의 간판이자 우두머리.

단장 제나드가 오랜만에 내 앞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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