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12화 (112/240)

# 112

아돈 전투 (3)

검은 괴물을 동시에 2마리를 상대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진 않아.’

오히려 한번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내 힘이 과연 어느 정도 상승했을까?

최근에 얻은 벨라시오닉의 보물 두 개를 흡수한 덕분에 용신단의 레벨은 15까지 올랐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강해진 건 맞다.

“자, 덤벼 봐.”

나는 여유를 부렸다.

이성이 남아 있지 않은 검은 괴물 2마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나에게 덤벼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나왔다.

가장 먼저 내가 팔을 휘두른 검은 괴물의 공격은 그냥 흘려버렸다.

대꾸할 가치가 없었다.

나는 두 번째 녀석을 노렸다.

발을 들어 올려 놈의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빠각!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괴물의 턱이 날아가 버렸다.

‘조금만 더 힘을 줬으면 머리까지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두 번째 검은 괴물이 내 강한 공격으로 인해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바로 몸을 돌려 첫 번째 녀석을 노렸다.

‘드래곤 클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오른손에 깃든 드래곤 클로의 힘은 검은 괴물의 두 다리를 잘라 내 버렸다.

무게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는 첫 번째 놈.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시 턱을 재생시킨 두 번째 놈이 이번에는 다른 공격 패턴을 보여 줬다.

쩌적!

검은 괴물의 옆구리와 어깨가 갈라졌다.

그러더니 팔이 형성되었다.

정확히 6개의 팔이 완성되었다.

‘무슨 스×이더 맨도 아니고.’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만화의 주인공이 절로 떠올랐다.

팔을 휘두르며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별로 큰 위기감은 들지 않았다.

“팔이 너무 많은 거 같지 않아?”

나는 드래곤 클로를 다시 발동시켰다.

“내가 정리 좀 해 줄게.”

스윽!

오른쪽 팔들을 전부 절단시켰다.

검은 괴물은 괴성을 질러 댔다.

고통에서 오는 신음인지, 아니면 넘을 수 없는 힘의 차이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토해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검은 괴물들을 처리한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다.

드래곤 클로를 이용해 두 번째 놈의 심장을 노렸다.

푸욱!

칼로 두부를 찌르듯 아주 부드럽게 꽂혔다.

나는 드래곤 클로를 그대로 위로 추켜올렸다.

두 번째 놈의 상반신이 좌우측으로 갈라졌다.

검은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한 놈 처리했고.”

다른 한 녀석은 어디 있으려나?

주변을 살폈다.

내가 두 번째 놈을 없애는 동안, 첫 번째 놈은 금세 다리를 재생시킨 모양인지 모습을 감췄다.

놓칠 생각은 없다.

‘멀리 가진 못했을 터.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Kusan(복종하라)!”

용언 마법을 사용했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범위 안에 있을 거다.

“내 앞으로 튀어나와. 지금 당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 번째 놈이 수풀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녀석은 겁에 질려 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까 얌전히 굴었어야지.”

드래곤 클로를 크게 휘둘렀다.

검은 심장과 함께 첫 번째 놈의 상채가 그대로 잘려 나갔다.

순식간에 검은 괴물 2마리를 모두 처치했다.

“어렵진 않네.”

이젠 검은 괴물이 잔챙이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2마리 다 2단계에 불과하던 녀석들이라는 점이다.

‘진짜배기는 3단계부터인데.’

뭐, 나중에 또 싸울 기회가 있겠지.

* * *

이어크 협곡 밑에서 2마리의 검은 괴물을 처리한 나는 다시 위로 향했다.

용병단과 추종자들의 전투는 슬슬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용병단 쪽으로 승기가 많이 기울었다.

반면 검은 괴물 쪽은 아직 힘의 균형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반드와 에나, 베라가 나름 활약을 하고 있었지만, 검은 괴물은 촉수를 뿜어내며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꽤 강한 녀석인가 본데?’

내가 나설까 하려다가 도중에 관뒀다.

왜냐하면 중간에 낀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레인 씨! 그거 주세요!”

가르시아가 드레인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요구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드레인.

“정말로? 대장도 없는데?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결의가 느껴지는 가르시아의 말이었다.

결국 드레인은 마지못해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내 가르시아에게 던졌다.

큐빅이다.

색깔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큐빅을 보자마자 가르시아의 정리 욕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정리, 정리, 정리이이이이이이!”

레바티움의 능력을 각성시켰다.

다 좋은데 말이야, 좀 더 멋있게 변할 순 없냐?

저러니까 격이 떨어져 보이잖아.

어쨌든 광기의 정령으로 인해 초인으로 변한 가르시아는 검은 괴물과 정면에서 힘 대결을 펼쳤다.

쿠우웅!

두 덩치가 서로 맞부딪쳤다.

검은 괴물과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다.

‘대단하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 말고 검은 괴물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우리 용병단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놀란 것이다.

가르시아는 검은 괴물에게 박치기를 시도했다.

빠각!

검은 괴물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렸다.

그때를 노려 베라가 정령술로 검은 괴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속박을 걸었다.

에나가 빙결 마법으로 검은 괴물의 상반신을 얼렸다.

빙결 마법을 걸면 재생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그걸 노린 듯했다.

반드가 가슴팍을 도려냈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검은 심장.

마무리는 파이스의 몫이었다.

“내가 친절히 신의 곁으로 보내 주마. 이 빌어먹을 자식아! 지옥에 떨어지거든 날 원망하며 비명을 질러대라. 그걸 들으면서 꿀잠 잘 테니까!”

전(前) 성직자라고 보기 힘든 언어 표현력을 선보였다.

파이스의 스태프가 얼어붙은 검은 심장을 관통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검은 심장.

마찬가지로 칠흑의 조각에 잠식되어 있던 괴물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훌륭한 팀플레이였다.

“다들 고생했어.”

나는 용병들을 칭찬했다.

이제 내가 없어도 이들끼리 검은 괴물을 처치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한 것 같다.

대장으로서 참으로 자랑스럽다.

물론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보였지만,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아닌가?

사소한 건 넘어가기로 했다.

* * *

부대장들을 시켜 부상자들의 여부를 확인하게끔 했다.

“1소대 부상자는 두 명 있어. 가벼운 찰과상 정도라서 크게 신경 쓸 단계는 아닌 거 같아.”

“2소대 부상자는 없습니다.”

완승이었다.

예상한 대로다.

사실 추종자들은 별 볼일 없다.

무서운 건 칠흑의 조각에 잠식된 자들이지, 추종자들이 무서운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 부대 정도 되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면, 어딜 가도 꿀리진 않는다.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뽑았으니 말이다.

일단 용병들을 쉬게 하기로 했다.

단, 이어크 협곡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쉬게끔 만들었다.

굳이 내 용병단의 모습을 라크스 공작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도 끝났으니 용병단을 데리고 다시 나울로 돌아가면 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데르킨 백작이 병력을 또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라크스 공작 일행이 이어크 협곡을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라크스 공작 일행은 이른 아침에 이어크 협곡을 통과했다.

나는 자세를 바짝 낮춘 채 멀리서 라크스 공작 일행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음?”

갑자기 라크스 공작은 자리에 멈춰 섰다.

이어크 협곡 안을 가득 채우는 피 냄새 때문이었다.

“이건……?”

말에서 내린 라크스 공작은 추종자들의 시체를 확인했다.

레미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라크스 공작에게 다가갔다.

“저희가 이곳 이어크 협곡을 통과할 때 기습을 감행하기 위해 매복해 있던 자들로 보이네요.”

“누가 이들을 처리한 거지?”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상하군.”

라스크 공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뒤에 병사들에게 외쳤다.

“혹시 근처에 남은 적들이 있을지 모른다. 경계를 늦추지 말도록.”

“예, 공작님!”

협곡에 시체가 가득한데 경계심이 안 드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잔당이 없음을 확인한 라크스 공작 일행은 무사히 이어크 협곡을 빠져나갔다.

이어크 협곡을 나서면 아돈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가 더 이상 라크스 일행에게 신경 써야 할 일은 없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아돈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나 보고 갈까?’

만약에 라스나 라크스 공작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내가 짜잔! 하고 나타나서 도와주면 된다.

두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하니까.

나는 용병단이 쉬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레인을 불렀다.

“고생했어요. 이제 다시 나울로 돌아가도 됩니다.”

“너는? 같이 안 가게?”

“저는 잠깐 상황을 보려고요.”

“그래, 알았어. 혼자서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바로 돌아와.”

“알겠습니다.”

내가 없을 때에는 드레인이 임시로 대장 역할을 맡는다.

드레인에게 맡기면 안심이 된다.

그리고 어차피 강한 녀석들이 즐비하니까 설령 문제가 터져도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다.

나는 가볍게 발목을 풀었다.

“좋았어.”

역시 혼자 행동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라크스 공작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속도를 조절하며 아돈을 향해 나아갔다.

* * *

멀리서 느껴지는 소음들.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게 펼쳐지는지 알 수 있었다.

상황은 라스 일행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라크스 공작이 무사히 합류했기 때문이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데르킨 백작은 혀를 찼다.

그래도 지금 당장 후퇴할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전투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의지가 있네.’

데르킨 백작은 자신만의 명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고집이 세다는 뜻이지.’

그런 사람이 쉽게 꽁무니를 빼진 않을 거다.

‘라크스 공작 일행을 도와준 보람이 있네.’

이것으로 라스가 데르킨 백작에게 죽임을 당할 걱정은 없어졌다.

어차피 주인공 보정 때문에 쉽게 죽진 않겠지만 말이다.

좋아,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된 거 같으니…….

‘슬슬 물러서 볼까?’

굳이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만 왔었으니, 미련 없이 떠나도 될 것 같다.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거기, 너.”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한 손에 잘려 나간 사람의 머리를,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나를 응시했다.

“너도 저기 불 쓰는 용병의 일행이냐?”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단역인가? 아니면 조연?’

인물 정보창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남자는 내게 틈을 주려 하지 않았다.

“얌전히 돌려보낼 순 없지.”

남자는 사람의 머리를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피투성이가 된 사이드를 내게 겨눴다.

그의 얼굴을 보니 오른쪽 입꼬리가 위로 상승했다.

광기에 어려 있는 그런 미소였다.

본능이 내게 외쳤다.

이 녀석.

‘위험한 놈이다.’

얌전히 염탐만 하다가 몰래 사라지려고 했는데…….

귀찮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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