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아돈 전투 (2)
평상시의 나라면 만약을 대비해 R팀 인원들 몇몇을 본부에 남겨 두곤 한다.
그러나 이번 의뢰는 좀 특별하다.
아돈 전투.
라스 일행과 라크스 공작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전투다.
소설 속에선 누구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변수가 많다.
가장 큰 변수는 우선 라크스 공작의 부상이다.
파리마 사건으로 인해 라크스 공작은 적지 않은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도 사경을 해매이다가 내가 준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론 아직 그 상처가 완전하게 치유된 건 아니라고 기억하는데.’
라크스 공작은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장으로 향하고 있다.
라스 일행과 협력해 칠흑의 추종자들을 없애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이들은 데르킨 백작이라는 까다로운 적을 만나게 된다.
데르킨 백작은 라크스 공작급으로 강하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칠흑의 조각의 힘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줄 아는 등장인물은 현재 데르킨 백작이 유일무이하다.
게다가 이번에 동원되는 추종자들의 숫자도 많은 편이다.
추종자들 사이에선 칠흑의 조각도 섞여 있다.
라스 일행과 라크스 공작이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이른 아침. 나는 본부 앞으로 모여든 병력들을 체크했다.
“좋은 아침이다. 준비는 다 끝났겠지?”
“예! 대장님!”
“너희들이 상대할 적은 추종자들이다. 알고 있겠지? 칠흑을 숭배하는 정신 나간 놈들 말이야. 그중에는 검은 괴물도 섞여 있다. 어쩌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너희를 죽게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다. 우리는 무조건 살아서 돌아온다. 대신, 너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나는 용병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았다.
그런 뒤, 나를 가리켰다.
“내 말만 잘 따르면 된다. 그러면 녀희는 살 수 있다.”
나는 내 양어깨에 이들의 목숨의 무게를 짊어지기로 했다.
데르킨 백작의 계획을 방해야 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우리들이 하는 거다.
라스 일행과 라크스 공작을 이대로 데르킨 백작에게 죽게 놔두면 안 된다.
이건…… 세계를 구하는 일이다.
“자, 가자!”
아돈으로 향하는 길.
드디어 우리는 출정길에 올랐다.
* * *
아돈까지 가는 데에 이틀이 소요된다.
쉰여 명에 가까운 용병들이 단체로 이동을 하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한편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드레인은 투 머치 토커답게 바로 입을 열었다.
“R팀을 전부 대동하는 의뢰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아?”
“그렇죠.”
“아돈에 가면 저번에 봤던 그 라스라는 사람이 있는 거지?”
“예, 그리고 데르킨 백작도 있을 겁니다.”
“데르킨 백작이랑 싸우는 거야?”
“구체적으로는 그렇죠. 혹시 알고 있습니까? 데르킨 백작이 추종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소문이 돌긴 하더라. 들은 건 파랑새한테서였고. 그런데 물증이 나온 건 아니라며?”
“네, 심증만 있는 상태죠.”
데르킨 백작은 강하면서 동시에 영악한 사람이다.
자신이 추종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감추고 있다.
‘1, 2권 내내 데르킨 백작은 자신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겼지.’
데르킨 백작이 3권 이후부터도 계속 등장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3권을 읽지 못했으니까.
하나 적어도 1, 2권 내에서는 죽지 않는다.
계속 라스 일행을 괴롭히는 중간 보스 역할로 나온다.
아돈 전투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회에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주인공 라스와 라크스 공작, 그리고 내가 힘을 합치면 어찌어찌 쓰러뜨릴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뭐, 이건 나중에 상황 봐서 결정할 일이고.’
일단은 라크스 공작 일행을 덮치려는 추종자들의 세력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향할 곳은 이어크 협곡이다.
이곳에서 라크스 공작은 추종자들에게 기습을 당한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제부터 찾아야 한다.
“가르시아.”
“예.”
“만약에 우리가 이어크 협곡을 통과한다고 쳐. 너는 적이라고 가장한다면, 우리를 기습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디일 거 같아?”
가르시아는 뛰어난 장수다.
전투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이 몸에 배어 있는 인물이다.
가르시아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
가르시아는 손으로 이어크 협곡의 3분의 1 지점 되는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가 매복하기 딱 좋은 지형입니다. 근처에 수풀도 많이 우거져 있고, 통과하는 길이 매우 좁죠. 만약 제가 적이라면, 저곳에 병사들을 배치할 거 같습니다.”
“그래?”
나는 곧장 반드를 불렀다.
“반드, 저기 가서 추종자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좀 하고 올래?”
“존명.”
그 단어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무협지라도 읽은 건가?
반드는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정찰병으로 활용하기에는 반드가 최적이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반드는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암흑에 물든 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근처에만 가도 어두운 기운이 내 몸을 옭아내는 것 같더군.”
“아무튼 많이 있다 이거지?”
빠르네.
나는 추종자들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할 줄 알았다.
오기 전에 라크스 공작 일행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이어크 협곡에 도착하려면 하루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딱 좋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다들 알고 있겠지?”
용병들은 내가 특별히 어떤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내가 이들에게 들려줄 말은 이것뿐이다.
“출격이다!”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 * *
매복해 있는 적들의 위치를 확인한 우리들.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위치를 저들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놈들을 암살한다.
이게 우리의 작전이다.
어느 정도 전력을 줄인 뒤, 그때 전면전을 벌인다.
나는 암살조로 대장 직속 소대 하나만을 운영하기로 했다.
에나와 파이스는 제외시켰다.
마법사인데다가 움직임이 빠른 타입이 아니었기에 1, 2소대 본대에 임시로 포함시켰다.
1소대와 2소대는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병력들을 이끌고 추종자들과 전투를 벌이기로 말을 맞춰 뒀다.
나와 반드, 그리고 베라는 각각 다른 방향에서 매복지로 서서히 접근했다.
추종자들은 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어크 협곡을 통과하는 길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매복하고 있는 자기들을 누가 몰래 기습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겠지.’
방심은 곧 목숨과 직결된다.
그것이 전장이라는 곳이다.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조용히 추종자의 뒤로 접근했다.
뒤늦게 내 기척을 알아차린 추종자,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푸욱!
정확히 놈의 심장을 찔렀다.
다른 곳을 놔두고 일부러 심장을 찌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급소라는 점도 있지만, 검은 괴물 때문이기도 했다.
용병 무투 대회 당시 검은 괴물은 추종자들의 심장을 빨아들여 새로운 심장을 만들 양분으로 사용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심장을 노렸다.
반드와 베라에게도 암살할 때 심장을 노리라고 미리 말을 전해 뒀다.
‘그나저나 추종자들이 많긴 하네.’
벌써 여섯 명째다.
나 혼자 여섯 명의 추종자들을 없앴으나, 숫자가 줄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
레이샤르가 알려 준 마나 탐지 스킬을 사용했다.
마나를 엷게 퍼트려 주변에 누가 있는지 감지할 수 있는 스킬이다.
한 백 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도중에 유독 강한 기운을 가진 자가 있었다.
‘설마.’
불현 듯 안 좋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여기에 일반 추종자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추종자가 분명 섞여 있을 거다.
하필이면 감지된 추종자가 있는 방향은 반드가 있는 곳과 동일했다.
그쪽으로 이동하려던 찰나였다.
우지끈!
갑자기 나무들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늦었네.’
안 봐도 뻔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반드.
그러자 검은 촉수들이 반드를 노리듯 수십 갈래가 날아들었다.
반드는 단검을 흩뿌리면서 촉수들을 쳐 냈다.
그러나 숫자가 너무 많은 터라 다 쳐 내진 못했다.
나는 한 손에 돌맹이들을 가득 움켜쥐었다.
“읏차!”
있는 힘을 다해 돌맹이들을 투척했다.
돌맹이들은 촉수에 정확히 적중했다.
만약 내가 이 힘을 가지고 프로야구에 데뷔했더라면 크나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의 기습이 들통 났다.
이제부터는 전면전의 시작이다.
나는 작은 포션병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였더라?’
그냥 공중으로 던지면 되나?
휘익!
머리 위로 높이 던졌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맞다, 이거였지.”
충격을 줘야 발동한다고 했다.
남은 돌맹이를 이용해 아직도 공중에 떠 있는 포션병을 가격했다.
퍼어어어엉!
녹색 구름이 형성되었다.
저것이 내가 보내기로 한 신호였다.
녹색 구름이 형성됨과 동시에 가르시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돌격하라! 가서 놈들을 쓸어버려!”
“로인 대장님을 위하여!”
“대장님을 위하여!”
그렇게 낯뜨거운 외침은 안 해도 되는데.
충성심이 너무 높아도 탈이다.
* * *
기습을 당한 추종자들은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전투에 돌입했다.
추종자들 개개인을 놓고 보면 전투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전문으로 군사 훈련을 받은 자들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숫적 열세에 있긴 하지만, 전투력은 우리가 한 수 위다.
하지만 이건 검은 괴물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기 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반드를 쫓던 검은 괴물 말고 몇 마리가 더 있었다.
다 합해서 총 3마리.
“많기도 하네!”
한꺼번에 다수의 검은 괴물들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다.
렉스 연구소 사건 때 2마리의 검은 괴물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2대 1로 싸운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3마리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스페셜리스트들을 양성해 왔다.
“1, 2소대 용병들은 검은 괴물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부대장급, 혹은 대장 직속 소대원만 검은 괴물을 상대해!”
이들은 내 밑에서 용병 활동을 하면서 검은 괴물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눈으로 익혀 왔다.
반드를 노리던 검은 괴물은 저들에게 맡겨 두기로 했다.
나머지 2마리는 내가 상대하기로 했다.
어차피 칠흑의 추종자들과 계속 싸워 나가다 보면 나 혼자서 다수의 검은 괴물들을 맡아야 할 때가 올 거다.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하지, 뭐!’
나는 검은 괴물 중 1마리에게 먼저 접근했다.
녀석의 머리를 잡고 이어크 협곡 밑으로 냅다 던졌다.
이후에 다른 1마리의 다리를 잡고 협곡 밑을 향해 뛰어내렸다.
나는 일부러 검은 괴물 2마리를 따로 격리시켰다.
2마리의 검은 괴물들은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린 채 짐승 같은 이빨을 드러냈다.
2마리 다 잠식 2단계로 보였다.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스트레칭을 꼭 해 두라는 것이 휴즈의 가르침 중 하나였다.
“좋았어.”
스트레칭 끝!
몸도 다 풀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