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아돈 전투 (1)
이른 아침.
나는 체릴이 준 버닝 소드를 챙기고 빠르게 나울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베라는 이런 나의 부지런함에 의문을 표했다.
“왜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나요?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네요.”
정확한 말이다.
쫓기고 있는 거 맞다.
체릴이라는 여자한테 도망치기 위해서 일부러 빨리 준비를 마친 거다.
아직도 잠이 덜 깬 가르시아를 억지로 데리고 데우소를 빠져나갔다.
만약 좀 더 시간을 지체했더라면, 분명 체릴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을 거다.
체릴.
매력적인 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나는 태평하게 연애나 하고 있을 시기가 아니다.
‘조만간 큰 사건이 발생할 거야.’
그것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칠흑과 연관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나의 소설 속 지식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2권 내용이 끝날 테니까.’
기어코 이런 날이 오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델리피나 전기는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분량은 기껏해야 2권까지.
‘과거의 내가 참 바보 같은 행동을 했지.’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오고 나서 가장 후회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좋든 싫든 곧 벌어질 ‘아돈 전투’를 끝으로 2권이 마무리된다.
아돈 전투.
라스 일행과 데르킨 백작이 전면전을 펼칠 전투의 이름이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주지만, 소설 속 이야기의 흐름과 달리 흘러가고 있기에 언제 발생할지 정확히 모른다.
확실한 건 아직 아돈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아돈 전투가 내가 라스 일행을 미리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전투일지도 모르겠어.’
이제부터 3권이라는 미지의 영역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까?
불안감만 가득하다.
* * *
나울로 돌아온 나는 가르시아를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조만간 우리는 라스 일행을 돕기 위해 출정의 길에 올라야 한다.
거기서 가르시아는 맹활약을 해 줘야 한다.
그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레바티움을 깨워 봐.”
“예? 하지만 그랬다간 대장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그리고 나 아니면 네 힘을 감당할 사람은 여기에 없을 거야. 내가 있을 때 마음 놓고 힘을 개방시켜.”
“……알겠습니다.”
가르시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훈련장에는 나와 가르시아뿐만 아니라 R팀 용병 몇몇도 같이 따라왔다.
가르시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반드는 음흉한 웃음소리를 냈다.
“나와 대장 말고 어둠에 사로잡힌 자가 또 존재할 줄이야……. 후후, 동료가 늘어나니 간만에 나의 아드레날린이 날뛰는 거 같군.”
날뛰지 말라고 태클을 걸고 싶어졌다.
정작 날뛰어야 할 가르시아는 가만히 있다.
레바티움의 힘을 얻고 난 이후 가르시아는 마음껏 힘을 개방했던 적이 없다.
새로 얻은 힘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돈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가르시아를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생각이다.
“흐읍!”
기합을 내지르는 라그시아.
그러나…….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데?”
드레인의 말대로였다.
이대로 10분째 시간만 계속 축내고 있다.
가르시아는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어떻게 레바티움을 깨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에는 정령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하다.
나는 베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해야 레바티움의 힘을 깨울 수 있는지 알고 있어?”
“광기의 정령은 빙의된 대상의 감정에 따라 깨어나거나 잠들곤 해요. 레바티움을 깨우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은 ‘화’를 내면 돼요.”
“그래? 간단하네.”
나는 가르시아의 약점을 알고 있다.
약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울릴 만한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가르시아가 싫어할 만한 일이 뭔지 안다.
“가르시아, 지금부터 나를 잘 봐라.”
“예, 대장님.”
나는 훈련장 한쪽에 가지런히 잘 정리된 모조 무기들을 향해 걸어갔다.
각각 검, 창, 도끼 등 종류별로 무기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 검을 하나 빼들었다.
그리고 손도끼를 하나 꺼낸 뒤에…….
“얍.”
손도끼를 검이 꽂혀 있던 자리에 옮겨 놨다.
반대로 검은 손도끼가 꽂혀 있던 장소에 꽂아 뒀다.
“대, 대장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군.
가르시아는 사실 지독할 정도의 ‘정리충’이다.
사물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체질을 지닌 남자다.
나도 이건 최근에 알게 되었다.
“어디 보자……. 이건 어디다가 꽂아 둘까?”
가르시아가 기껏 잘 정리해 둔 무기들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섞어 뒀다.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하는 가르시아.
“아, 안 됩니다…… 대장님! 정리! 정리를 해야 합니다! 정리가 생명이란 말입니다!”
저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싶을 정도다.
아무튼 효율이 있으니까 다행이네.
이제 피니시를 가할 차례다.
“가르시아, 이걸 잘 봐라.”
나는 주머니 속에서 색깔별로 잘 진열되어 있는 큐브를 꺼냈다.
어린 아이도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 큐브.
물론 현실 세계에 있던 그 큐브와 동일한 물건은 아니다.
나무로 만든 페인트로 색깔을 입힌 델리피나 버전 큐브이다.
“에잇.”
큐브의 색깔을 마구 섞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가르시아의 비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잠시 후…….
“으그그그그그극!”
가르시아는 이를 악 물었다. 점점 그의 눈동자 색깔이 변했다.
피보다도 진한 붉은 눈빛.
그 뒤에는 악마의 형상을 한 레바티움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췄다.
“정리! 정리를 해야 해! 정리이이이!”
가르시아는 완전히 눈이 돌아간 채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평상시의 가르시아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하지만 내게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
‘느려. 그래도 많이 빨라지긴 했네.’
이번에는 파워를 테스트해 볼 차례다.
일부러 빈틈을 보였다.
광기에 휩싸인 가르시아는 그 틈을 노려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빠아악!
나는 손을 펼쳐 가르시아의 펀치를 막아 냈다.
묵직한 느낌이 손바닥과 팔을 통해 전해졌다.
‘힘은 쓸 만하네. 역시 가르시아야.’
반드가 스피드 타입이라고 한다면, 가르시아는 전형적인 파워 타입이다.
힘으로는 어딜 가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이 와중에 가르시아는 계속해서 ‘정리, 정리!’라고 외쳐 댔다.
‘시끄러워 죽겠네.’
이쯤하면 됐다.
슬슬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줘야겠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기절시키면 된다.
가르시아의 뒤로 돌아 들어가 뒷목을 가격했다.
하나 가르시아는 고개만 살짝 까딱일 뿐. 대미지를 입은 티를 내지 않았다.
베라가 내게 외쳤다.
“레바티움 때문에 감각이 둔해진 거예요. 웬만한 걸론 쉽게 기절시킬 수 없을 거예요.”
“통증을 느끼긴 느끼지?”
“네, 그럴 거예요.”
그거면 된다.
나는 힘 있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간단하네.
“그럼 기절할 때까지 패 버리면 되잖아?”
* * *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얼굴이 퉁퉁 부운 가르시아는 뒤늦게 눈을 떴다.
“여긴……?”
“살아 있어?”
나는 누워 있는 가르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가르시아는 주변을 살폈다.
훈련장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제 탓이군요.”
아니, 내 탓인데.
그러나 나는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레바티움을 각성시켰을 때는 어떤 느낌이야?”
“마치 제가 아닌 느낌입니다. 분명 제 몸인데, 타인의 의지가 제 몸이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제가 강해졌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별로 좋은 감각은 아니더군요.”
“네 힘을 네가 스스로 컨트롤할 때까지 연습해. 만약 연습을 게을리 하면 레바티움이 너를 좀먹을 테니까.”
광기의 정령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놈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단련을 시켜야 한다.
마치 데르킨 백작처럼.
그자는 광기의 정령보다 더 고난이도의 상대를 길들였다.
칠흑의 조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가르시아에게 그 정도까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레바티움 정도는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게끔 강해졌으면 좋겠다.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연습 상대가 되어줄 테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힘을 개방해 봐. 그리고 그 감각에 익숙해져. 그러면 언젠가는 그 힘이 곧 네 힘이 될 거야.”
“예, 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 부하가 강해진다는데 나야 좋지. 자, 오늘은 이것으로 해산. 아, 맞다. 조만간 아돈으로 출정할지도 모르니까 각 부대 용병들한테 전해. 다음 주, 다다음 주 일정 싹 비우라고.”
“네, 알겠습니다!”
아돈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당분간은 무한 대기다.
* * *
나는 마일을 따로 호출했다.
그에게 듣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아돈의 상황은 어때?”
며칠 전부터 나는 마일에게 아돈에서 벌어지는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전달해 달라고 요청을 넣어 뒀다.
마일은 가면을 벗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서요. 잠시 이것 좀 벗겠습니다.”
“상관없어.”
“아돈에는 현재 라스라는 자와 그의 동료들이 데르킨 백작의 세력들과 소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시작되었죠. 그런데 도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데르킨 백작이 알고 보니 칠흑의 추종자들과 내통을 하고 있었더군요.”
“그건 알고 있었어.”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제가 미리 알려 드린 적 있나요?”
“오며가며 들은 정보가 있었거든.”
이름하야 생생 소설 정보통이다.
나는 진작 데르킨 백작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라스 일행, 라스크 공작과 충돌할 거라는 사실 역시 잘 알았다.
마일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하나 나는 보고를 계속 이어 가라고 그에게 지시했다.
“조만간 라크스 공작도 이 전투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군대를 이끌고 아돈으로 향하고 있죠.”
“라크스 공작 혼자?”
“아니요. 사병들을 포함해 레미라는 둘째 아가씨와 함께 이동 중입니다.”
군대와 군대의 충돌이다 보니 책략가로 활약할 인물이 필요했나 보다.
레미가 있으면 분명 도움이 많이 될 거다.
지략 하나만으로 종합 능력 S랭크를 달성한 등장인물이니까.
하지만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늘었네.’
데르킨 백작은 지원을 나선 라크스 공작을 덮치기 위해 칠흑의 조각과 추종자들을 보낼 것이다.
거기서 라크스 공작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내가 아돈 전투에 출격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라크스 공작 일행을 기습하려는 추종자 세력들을 사전에 차단한다.
“아돈의 추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집중해서 봐 줘.”
“알겠습니다.”
나는 마일을 돌려보냈다.
라크스 공작 일행이 움직임을 개시했으니…….
‘슬슬 우리도 움직일 차례인가?’
나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라비.”
“네, 대장님, 무슨 일인가요?”
“의뢰 하나만 접수해 줘.”
“의뢰요?”
“어, 아돈 근처에 서성이는 추종자들을 때려잡는 의뢰야.”
“대장님이 그 의뢰를 받아 오신 건가요?”
“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우리 R팀에게 의뢰를 하는 거야.”
이번 의뢰인은 바로…….
나야 나!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