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악령 퇴치 (3)
카틀리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을 때에는 이미 체릴과 미쉘이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상태였다.
아마도 미쉘이 실시간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 주고 있었나 보다.
체릴은 맨발로 뛰어나와 카틀리나를 건네받았다.
“카틀리나는 어떻게 된 건가요!”
“몸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당장 수의사들이 여기로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나는 베라에게 계속 카틀리나에게 치유 마법을 걸게끔 했다.
잠시 후 수의사가 다가와 카틀리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으나 아직 위기는 계속되었다.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군요. 약을 통해서 치료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강력한 힐링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 치유사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했다.
근처에 그런 자가 어디 없을까?
미쉘이 제안을 했다.
“도시 안에 네른 교단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부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체릴을 대신해 내가 직접 카틀리나를 안아 들었다.
카틀리나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체릴에게 카틀리나를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체릴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카틀리나가 다치지 않게, 상냥하게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애완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체릴은 카틀리나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지금은 그걸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무작정 네른 교단으로 향했다.
가르시아가 네른 교단의 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 보시오! 여기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성당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의복을 차려 입은 남자 몇몇이 나왔다.
“환자가 누구요?”
나는 카틀리나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고양이가 환자입니다. 전문 치유사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좀 봐 주실 수 있습니까?”
“고작 고양이 따위를 치료해 달라고 우리를 부른 게요? 허허, 어이가 없군.”
“…….”
갑자기 화가 나려고 하는데?
아니지, 참자, 참아.
괜히 여기서 난동을 부렸다간 큰일이다.
결국 체릴이 직접 나섰다.
“사례가 필요하다면, 달라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카틀리나를 살려 주세요. 제발……!”
“돈이라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있소. 그리고 신께서 주신 신성한 능력을 고작 고양이 같은 하등 생물을 치료하는 데에 낭비할 순 없으니 썩 가시오. 사람들이 볼까 봐 부끄럽군.”
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봐.”
나는 고양이를 베라에게 잠시 맡겨 뒀다.
성큼성큼 걸어간 뒤에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이, 이게 무슨 짓……!”
“인간이고 동물이고. 똑같이 소중한 생명 아니야? 하등 생물이니 뭐니 그런 걸 네놈들이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엉? 너희가 신이라도 돼? 그리고 내가 보기엔 하등 생물은 카틀리나가 아니라 네놈들 같은데?”
“뭐, 뭐라고?”
“이 자가 미쳤나!”
“감히 무례하게……!”
남자를 거칠게 놓아줬다.
뒤에서 대기하던 남자들이 그를 받아 냈다.
“고귀하고 잘나서 좋겠수다! 근데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신의 존재를 등에 업고 있다고 당신들이 곧 신과 동급이 되는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신의 대리인, 그리고 신을 모시는 자들에 불과하지. 자신의 위치에 맞게 행동해. 그리고 신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고. 연설비는 필요 없으니까 내 말, 머릿속에 잘 새겨 둬.”
나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체면치레 때문에 소중한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는 것을 무시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미쉘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카틀리나를 살리려면 저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굳이 그렇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까?”
“괜찮아. 마침 내 부하 중에 굉장히 유능한 치유사가 있으니까. 그런데 좀 멀리 떨어져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어떤 식으로 도와 드리면 됩니까?”
“순간 이동 마법진 있지? 그거 좀 빌려줘.”
다 필요 없고 그것만 있으면 된다.
* * *
나는 가르시아와 함께 나울로 이동했다.
본부로 걸음을 옮겨 라비를 찾았다.
“라비! 지금 파이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본부에서 R팀 용병들의 소재지가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늘 체크하게 해 뒀다.
그것이 사무원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라비는 갑자기 등장한 나와 가르시아의 모습에 놀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바, 바로 확인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그제야 바삐 움직였다.
“데닝에 있네요.”
“또 거기야?”
나울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다.
아직 해가 저문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술이라니, 파이스답다.
“가르시아, 가자.”
“예, 대장님!”
우리는 바로 데닝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파이스가 보였다.
“……내가 한 때는 말이야! 꽃 한 송이만 들고 있어도 여자들이 막 줄을 서고 그랬다니까? 이 파이스 님의 인기가 절정일 때가 있었지. 푸하하!”
“잘됐네. 안 그래도 파이스,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레이디가 있는데.”
“헉, 대장님?”
파이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지금 나는 저 먼 곳, 데우소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나울까지 왔으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나는 가르시아에게 눈짓을 했다.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가르시아는 곧바로 파이스를 들쳐 맸다.
“잠시만요! 대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까 말했지? 너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아리따운 레이디가 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가 보면 알아.”
파이스를 데리고 미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자의 방을 거친 뒤에 우리는 다시 데우소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파이스는 생난리를 피웠다.
“방금 저희, 순간 이동 한 거 아닙니까? 대장님, 언제 순간 이동도 익히셨습니까?”
“넌 몰라도 돼.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파이스, 너 말이야.”
가르시아에게 매달린 파이스에게 물었다.
“고양이도 치료할 수 있냐?”
* * *
파이스는 멍한 표정으로 카틀리나를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를 치료하면 된다 이거죠?”
“어.”
“죄송하지만 혹시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그 고양이를 치료하고 난 다음에 알려 줄게.”
“하하,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습니다.”
파이스는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자 술 냄새가 사방에 가득 찼다.
의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체릴.
“이 사람, 정말로 믿어도 되나요?”
“네, 이렇게 보여도 실력이 매우 뛰어난 치유사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내가 체릴을 안심시키는 와중에 파이스는 카틀리나의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파이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레바티움에게 빙의되었던 고양이군요.”
역시 파이스다.
전후사정을 설명해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의 손끝에서 따스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온기는 카틀리나의 통증을 완화시켜줬다.
그러기를 30분이 지난 뒤, 파이스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끝났습니다.”
“벌써요?”
말을 듣자마자 체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의심을 보였다.
그녀는 수의사가 카틀리나의 상태를 확인한 뒤에야 파이스의 말을 믿게 되었다.
“놀랍군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식사만 잘 챙겨 먹어도 1주일이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올 겁니다.”
파이스의 활약으로 인해 카틀리나는 죽다가 다시 살아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체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미쉘과 베라가 체리를 부축해 주는 동안 나는 파이스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잘했어! 특별히 보너스 두둑하게 챙겨 줄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그것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있긴 합니다만.”
볼을 긁적이던 파이스는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까 술자리 분위기가 정말 괜찮았거든요. 저를 기다리는 술친구들이 많은데. 나울로 다시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이 녀석은 자나 깨나 술 생각뿐인가?
뭐, 좋다.
오늘은 대활약을 해 줬으니까 얌전히 보내 주지.
* * *
카틀리나가 회복됨으로 인해 고양이 포획 의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레바티움 때문인지 가르시아는 피곤함을 느끼며 바로 숙소로 향했다.
베라는 혹시 가르시아가 폭주할지 모르니 숙소에 돌아가서 그를 감시하겠다고 말을 남겼다.
나는 카틀리나의 상태를 체크할 겸, 체릴의 저택에 잠시 머무르는 중이다.
잠시 저택에서 나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이했다.
“이제야 숨통이 탁 트이는 거 같네.”
위급한 상황은 다 넘겼다.
이제 카틀리나가 다시 원기를 회복하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
버닝 소드는 내일 받기로 했으니, 물건만 챙기면 다시 나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때마침 체릴이 밖으로 나왔다.
“어머, 로인 씨, 여기 계셨군요. 마침 찾고 있었는데 잘 됐어요.”
“저를요?”
“네, 생각해 보니 오늘 고맙다는 말도 못 드린 거 같아서요.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상황이 워낙 급했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다.
“카틀리나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는 거 같던데, 굉장히 귀한 고양이인가 보군요.”
“귀하다기보다는, 저에게 있어선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니까요.”
숨겨진 사정이 있는 건가?
잠시 체릴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로인 씨도 아실 거예요. 제가 의류 사업으로 젊은 나이에 부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는 걸. 하지만 제 유년 시절은 굉장히 가난했어요. 제가 12살 때였을 거예요. 그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거든요.”
무거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사 줬던 애완동물이 바로 카틀리나에요. 카틀리나는 부모님이 저에게 남겨 주신 유산이자 동시에 하나밖에 안 남은 가족이죠. 그래서 카틀리나를 신경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어려운 유년 시절을 함께 해온 카틀리나.
남들에게는 고양이로 보일지 모르지만, 체릴에게는 가족이다.
그녀는 갑자기 수줍은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아까 로인 씨가 성직자들에게 일침을 가할 때…… 솔직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요?”
“네, 카틀리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사람은 저 이후로 처음이었거든요.”
카틀리나를 위해서 한 건 맞지만 성직자들의 태도가 열 받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체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로인 씨는 사귀는 사람 있나요?”
“없습니다만.”
“어머, 그래요?”
“…….”
나, 왠지 이 흐름이 뭔지 알 것 같다.
플래그다.
-체릴과의 친밀도가 초대량 상승합니다.
-체릴과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은 짝사랑?’ 칭호를 얻습니다.
-칭호의 효과로 체릴이 당신의 말에 복종합니다.
거 봐라.
그보다 복종이라니, 오해받기 딱 좋은 단어 선택이다.
“혹시 여자 친구로 저는 어떠…….”
“체릴 님, 카틀리나가 눈을 떴습니다!”
때마침 저택에서 일하던 하녀가 체릴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저, 정말인가요? 바로 갈게요!”
빠르게 저택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체릴이었다.
나이스 타이밍!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