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악령 퇴치 (2)
카틀리나로 인해 벌어진 소란은 사람들을 크나큰 혼란에 빠뜨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붕 위에서 혈전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밑에서 이런 사달이 발생했으면 벌써 사상자가 수십 명은 나왔을지도 모른다.
건물 몇 채의 지붕이 뜯겨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뭐, 이건 체릴이 알아서 다 보상해 주겠지.’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여자니까.
베라가 소환한 정령들이 카틀리나를 옭아맸다.
그러나 광기의 정령은 고함을 내지르며 정령들을 내쫓았다.
상급 정령조차도 레바티움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저 레바티움이라는 녀석, 정령들 중에서도 서열이 꽤 높은 축에 속하는가 보네?”
“맞아요. 그리고 가장 성격이 더러운 녀석이죠.”
베라의 고운 입에서 ‘더럽다.’라는 표현이 튀어나올 줄이야.
하긴. 그만큼 레바티움이 상대하기 어려운 정령이라는 뜻이겠지.
그 와중에 가르시아가 씩씩거리면서 지붕으로 다시 올라왔다.
“대장님! 방금 그 빌어먹을 고양이 녀석이 저를 떨어뜨린 거 같습니다만!”
“어, 맞아. 그리고 또 너 노리고 있으니까 조심해.”
“네?”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가르시아는 다시 ‘냥냥 펀치’에 의해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불쌍한 녀석,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낙하인가?
운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가르시아가 유독 고양이들에게 미움 받는 스타일인지 잘 모르겠다.
한편 마구잡이로 공격을 하던 카틀리나는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베라. 쟤, 왜 저래?”
“레바티움 때문에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계속 끌어올리고 있어서 그래요. 동물은 인간과 달리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요. 레바티움 역시 통제하지 못하는 거겠죠.”
“인간이라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마도요. 하지만 정신력이 굉장히 강해야 해요.”
마침 내가 한 정신력 하는데.
편집자로 생활하면서 온갖 부당한 일들을 다 당해 봐서 멘털이 단단하게 단련되었다.
그렇다면 어디.
‘시험해 볼까?’
갑자기 도전 의욕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라는 내게 충고했다.
“대장,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그러지 마세요. 저건 보통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정령이 아니에요. 하이 엘프들조차도 레바티움을 쉽게 다루지 못하는데, 인간의 정신력으로 레바티움을 어떻게 버텨 낼 수 있나요? 대장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이건 육체적인 강함과는 동떨어진 문제니까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역시 베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생각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너는 그냥 저 고양이한테서 광기의 정령만 떼어 내 주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어떻게 되든 전 몰라요.”
결국 베라는 마지못해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고양이를 못 움직이게 잡아 주세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할게요.”
“오케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 스킬도 있었다.
용언 마법.
그중에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명령어를 골랐다.
카틀리나가 내게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용언 마법을 터트렸다.
“Kusan(복종하라)!”
일정 범위 이내의 타깃 하나를 내 말에 굴복시키는 효과를 지닌 용언이다.
카틀리나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앉아!”
방금 전까지 미친 고양이마냥 날뛰던 카틀리나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앉았다.
효과 좋네.
역시 용언이야.
그러는 와중에 베라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용언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죠?”
“예전에 옆집에 살던 친한 드래곤 형이 있었거든. 그 형한테 배웠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고요!”
어떻게 알았지?
어물쩍 넘기려고 했는데 깐깐하구먼.
“지금은 내 용언 마법 출처를 묻고 따질 때가 아니잖아.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일단 광기의 정령부터 빼네. 이거, 지속 시간 30초밖에 안 된다고.”
“알았어요. 대신, 꼭 말해 주기에요. 꼭!”
말머리를 돌리는 데에 성공했다.
베라는 카틀리나 쪽으로 양손을 뻗었다.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카틀리나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지않아 카틀리나에게 빙의되어 있던 레바티움이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자, 와라! 와서 나를 삼켜!’
나는 양팔을 쫙 벌렸다.
레바티움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도중에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이 망할 고양이 녀석! 나를 두 번이나 떨어뜨리다니!”
안 좋은 타이밍에 가르시아가 지붕으로 다시 올라온 것이다.
레바티움은 나를 바라보다가 도중에 궤도를 틀었다.
가르시아로 빙의 대상을 바꾼 것이다.
“이런!”
나는 가르시아에게 외쳤다.
“가르시아! 몸 숙여! 녀석이 너를 노리고 있어!”
“녀석이라니요? 그게 무슨…….”
가르시아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레바티움은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가르시아를 삼켰다.
가르시아의 몸속으로 녹아 들어간 레바티움은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가르시아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머리를 움켜쥐고서 괴로워했다.
‘망할! 작전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어!’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베라! 다시 한번 레바티움을 떼어 내!”
“한번 떼어 낸 다음에 바로 레바티움을 떼어 내는 건 무리에요. 그리고 레바티움이 가르시아 씨와 동화되려는 와중에 떼어 내려고 하면, 가르시아 씨의 정신이 붕괴될 수도 있어요!”
“빌어먹을…….”
계산 착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르시아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솔직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대장인 내 책임이다.
원래 대장은 위에서 왈가왈부 지시만 내리는 그런 직책이 아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직책이여야 한다.
‘가르시아가 잘못되면 큰일인데.’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도박을 걸어 보기로 했다.
“가르시아!”
나는 목청껏 가르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고통에 겨운 신음을 내던 가르시아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잘 들어라, 가르시아! 너는 내 자랑스러운 부하다! 그까짓 정령 따위에게 질 녀석이 아니야! 이겨 내라! 네 특기인 기합으로 이겨 내! 내 부하라면, 적어도 이 정도 난관은 우습다는 듯이 극복해 보이라고!”
“로인…… 대…… 장님……!”
가르시아라면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네 종합 능력치가 괜히 S등급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라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가르시아의 사자후(獅子吼)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가르시아는 갑자기 지면으로 머리를 박아 댔다.
쾅! 쾅!
“네놈이 누군진 모르지만, 난 절대로 안 진다! 나는…… 나는 로인 대장님의 부하, 블루로즈단 R팀의 부대장, 가르시아다아아아아아!”
쾅! 쾅! 쾅!
가르시아의 이마는 피로 얼룩졌다.
박력이 장난이 아니다.
내 부하지만, 조금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이후, 가르시아는 대(大) 자로 털썩 쓰러졌다.
어떻게 된 거지?
“야, 가르시아. 괜찮아?”
조심스럽게 가르시아에게 다가갔다.
내가 불러도 깨어나질 않았다.
혹시 죽은 건가?
아니, 그렇진 않았다.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었다.
모르면 어떻게 한다?
물어보면 된다.
“베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글쎄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일단 죽은 건 아닌 거 같네요.”
“혹시 레바티움이 가르시아한테서 떠난 거 아니야?”
“그건 아니에요. 안에서 확실히 광기의 기운이 느껴져요. 레바티움은 분명 가르시아 씨 안에 있어요. 일단 데려가서 상태를 확인해 봐야…….”
라고 말을 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가르시아가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냈다.
마치 오랫동안 잠수했다가 수면 위로 나온 그런 현상과 같았다.
“가르시아. 괜찮아?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만약 가르시아가 레바티움에게 정신 지배를 당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가르시아를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가르시아는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대장님 아닙니까?”
“그래도 나는 알아보네.”
“제가 대장님을 못 알아볼 리 없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말이지…….”
나 대신 베라에게 손짓해서 설명 좀 해 달라고 전달을 했다.
귀찮아서 베라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다.
정령에 대해 잘 아는 베라가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줬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가르시아.
“그러니까…… 제가 레바티움과 동화되었다는 겁니까?”
“네, 그래 보이네요. 그나저나 믿을 수가 없어요. 인간 중에 이런 강한 정신력을 지닌 자가 존재하다니. 고대 문헌에 보면 광기의 정령, 레바티움을 일부러 빙의시키고 컨트롤할 수 있는 병사들을 양성해 만든 특수부대가 존재한다고 해요. 그들은 다른 병사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죠. 아마 가르시아 씨도 그들과 비슷한 상황일 거예요.”
“그래요? 근데 특별히 세진 것 같진 않은데…….”
“평상시는 그렇죠. 하지만 각성한 상태로 접어들게 되면, 힘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거예요. 나중에 한번 해 보세요. 연습도 할 겸.”
베라가 설명을 마쳤을 때였다
-가르시아의 인물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가르시아의 종합 능력이 SS 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랭크 업 소식이었다.
레바티움 덕분인가?
내 부하의 능력치가 올랐다는 건 기뻐할 만한 사실이지만 아직 온전히 그 힘을 컨트롤할 단계는 아니다.
나는 가르시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당분간은 그 힘…… 쓰지 마. 익숙해질 때까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자, 이제 의뢰를 완료하러 가 볼까?
그러나…….
“대장. 상황이 좋지 않아요.”
“또 뭔데 그래?”
괜히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베라의 말.
그녀는 카틀리나를 품에 안았다.
“고양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아마 오랫동안 레바티움을 품고 있느라 육체도 정신도 많이 상한 거 같아요.”
“그래 보이긴 했지.”
아까 싸우던 도중에 카틀리나는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딱 봐도 몸 상태가 안 좋음을 알 수 있었다.
가르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저도 이 고양이처럼 된다는 겁니까? 고양이한테 들러붙었던 광기의 정령인지 뭐시긴지가 지금 저에게 빙의되었다면서요?”
“인간의 경우는 많이 달라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지금은 여기서 한가로이 설명 놀이나 할 때가 아니다.
“일단 고양이부터 먼저 치료해. 카틀리나가 죽으면 큰일이니까.”
“네, 알았어요.”
베라는 정령을 소환해 카틀리나에게 힐링 마법으로 응급조치를 시도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가르시아, 우리는 체릴의 저택으로 향할 테니까 근처에 수의사 있으면 그쪽으로 오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불쑥 튀어나온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