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악령 퇴치 (1)
우선은 카틀리나가 어떻게 생긴 고양인지 알고 싶어졌다.
“고양이의 생김새를 좀 알 수 있나요?”
체릴은 뒤를 돌아봤다.
“미쉘.”
“네, 체릴 님, 여기 있습니다.”
미쉘은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원판을 건넸다.
건네받은 원판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체릴.
그러자 원판 위에 3D 화면처럼 고양이 한 마리의 외형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바로 카틀리나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와 쭉 함께 지내온 소중한 고양이죠.”
흰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 있는 고양이였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이런 비슷한 종이 있었다.
노르웨이 숲 고양이었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때요, 예쁘죠?”
“예쁘네요. 잠시만 자세히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고양이의 전신을 이리저리 돌려 봤다.
도중에 가르시아가 질문을 던졌다.
“이 사이즈가 실물 크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카틀리나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거라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상당히 크네.
사람 몸통만 한 크기다.
사이즈 말고 또 다른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눈 색깔이 서로 다르군요.”
베라가 카틀리나의 눈동자 색에 대해 언급했다.
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이 엘프네요. 맞아요. 카틀리나는 오드아이랍니다.”
오드아이에 사람 몸통 정도 되는 크기를 지닌 흰색 털의 고양이라…….
오케이.
특징은 전부 파악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질문이 있습니다만.”
“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몰라도 미쉘이 답해 줄 거니까요.”
“안 그래도 미쉘 때문에 이런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베르투의 회원 아닙니까? 가족처럼 커온 고양이의 위치 정보 같은 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굳이 저희에게 이런 의뢰를 맡기는 이유가 뭡니까?”
하필이면 용병에게 말이다.
차라리 동물 전문가에게 맡기면 될 것을, 구태여 우리 같은 용병에게 고양이 찾기 같은 의뢰를 맡길 이유가 있나?
갑자기 체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뭐 이상한 질문이라도 한 건가?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미쉘은 낮아진 목소리 톤으로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카틀리나의 위치 정보는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카틀리나에게 빙의한 ‘무언가’입니다.”
“네?”
“빙의요?”
벙찐 표정으로 되묻는 나와 가르시아.
그제야 왜 용병인 우리들에게 고양이 찾기 의뢰를 맡기는 건지 알게 되었다.
미쉘은 슬퍼하는 체릴을 대신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예, 카틀리나는 평소에 체릴 님의 말을 굉장히 잘 따르는 얌전한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갑자기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죠. 체릴 님의 수집품들을 마구 박살 내질 않나, 식사를 거부하고 저택 바깥을 시도 때도 없이 나가질 않나……. 몇 번은 카틀리나를 잡기 위해 동물 전문가를 보냈지만, 포획은커녕 오히려 카틀리나에게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들이 말했던 것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악마를 보았다…….’였죠.”
“…….”
무슨 호러 영화도 아니고, 동물한테서 악마를 보았다고 말하다니.
“그 이후에도 카틀리나를 잡기 위한 시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여러분들 같은 용병들에게도 의뢰를 몇 차례 했죠.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카틀리나에게 당했을 뿐이죠. 결국 이번 의뢰는 못하겠다고 스스로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용병으로 활동하는 자들이 고양이 하나 못 잡겠다고 의뢰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면 엄청난 창피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감하게 의뢰를 포기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했다.
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체릴.
그녀는 나를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블루로즈단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로인 씨, 당신의 활약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어요. 칠흑의 조각과 수차례 싸워서 이긴 경험도 있다고 하니, 카틀리나에게 들러붙은 귀신도 퇴치해 주실 수 있겠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이제 믿을 건 로인 씨밖에 없어요.”
그냥 버닝 소드 하나 얻으려고 왔는데.
졸지에 악령 퇴치 일까지 하게 생겼다.
세상사라는 게 참 쉬운 게 아니라니까. 어휴.
* * *
미쉘로부터 카틀리나가 어디 있는지 위치 정보를 받기로 했다.
“카틀리나의 행동 패턴은 단순합니다. 딱 세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오전에는 성당 지붕에서 낮잠을 자고,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로앙이라는 생선 가게 앞에서 누워 있다가 저녁부터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폐건물 안에서 다시 잠을 잡니다. 이것만 알아 두시면 됩니다.”
“죄다 쉬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군요.”
“네, 비교적 얌전합니다. 건드리지만 않는다면요.”
그게 문제군.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반이다.
그렇다면…….
‘생선 가게 앞에 있을 시간인가?’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생선 좋아하는 건 정체모를 무언가에 빙의되어도 똑같은가 보다.
나는 가르시아, 베라와 함께 생선 가게로 향했다.
‘가게 이름이 로앙이라고 했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도시 내에서 꽤 유명한 생선 가게라고 한다.
규모를 보니 그 유명세가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상가 건물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다.
이 건물 맞은편 거리에 자리 잡은 고양이가 있었다.
베라가 고양이를 가리켰다.
“저 고양이인가 보군요.”
“그러게.”
눈에 띌 만한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가르시아는 우선 내게 의사를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장님?”
“일단 얼마나 상대하기 힘든 녀석일지 실력 한번 가늠해 볼까?”
나는 바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조용히 카틀리나에게 접근했다.
가르시아와 베라, 그리고 나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포위진을 만들어 천천히 카틀리나에게 접근했다.
그때 가만히 누워만 있던 카틀리나가 일어섰다.
‘눈치챘나?’
카틀리나는 갑자기 벽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점프로 빠르게 카틀리나를 뒤쫓았다.
베라도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서 지붕 위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문제는 가르시아였다.
“대장님!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사다리를 타고 어영부영 올라오는 가르시아.
쟤 기다리다가 카틀리나 놓치겠네.
카틀리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르다!
거의 검은 괴물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드를 데려올 걸 그랬나!’
갑자기 깊은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베라가 반드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줬다.
“바람이여!”
정령을 소환한 베라는 반드 못지않은 속도로 카틀리나를 뒤쫓았다.
역시, 하이 엘프는 만능이라니까.
고집불통인 것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점만 빼면 참 좋은데.
베라의 활약 덕분에 카틀리나를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지붕 위라 그런지 도망칠 곳이 별로 없을 터.
“얌전히 항복하시지.”
일단 항복을 권유하긴 했는데 고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들으려나 모르겠네…….
카틀리나의 표정이 달라졌다.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더니 카틀리나의 한쪽 눈 색깔이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카틀리나의 몸에 어떤 형상이 하나 펼쳐졌다.
거대한 양 갈래의 뿔과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 형태의 무언가.
악마의 외형과 흡사했다.
그것을 본 베라는 침음을 흘렸다.
“대장, 큰일이에요! 일단 물러나야 할 거 같아요!”
“왜, 뭔데 그래?”
“고양이 안에 빙의되어 있는 게 뭔지 알았어요!”
오, 듣던 중 희소식이다.
“그래? 잘됐네.”
“잘된 게 아니에요!”
베라답지 않게 버럭 소리쳤다.
“저건 광기의 정령, 레바티움이에요! 정령 중에서도 가장 포악하기로 알려진 최악의 정령이에요!”
잘된 게 아니구나.
진작 말하지.
* * *
광기의 정령, 레바티움.
어디였나?
소설 속 1권 중반부였나, 후반부였나…….
라스 일행과 엮여서 한 번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레바티움에게 빙의된 용병 하나가 주제를 모르고 라스에게 덤벼들었다가 제대로 강냉이 털린 짧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때 레바티움이라는 정령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사람을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정령.
대신에 능력치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
단,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된다.
이게 가장 큰 단점이다.
아무리 고양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레바티움이라면 웬만한 용병들은 손도 대지 못했을 거다.
갑자기 마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베라를 데려가라.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생각해 보니 우리에겐 정령 전문가가 있잖아!
“베라! 저 녀석, 카틀리나한테서 떼어 낼 방법 같은 거 없어?”
“있긴 해요. 하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왜 망설이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방법이 존재하는데, 우물쭈물할 이유가 있나?
“빨리 말해 봐!”
“두 가지에요. 빙의된 대상을 죽이든가, 아니면 다른 빙의 대상으로 옮겨 붙게 하든가.”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드는 방법뿐이었다.
애초에 그것들은 해결책이 아니잖아.
레바티움에게 빙의당한 카틀리나는 가장 먼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앞발을 휘둘렀다.
고양이에게 이런 일격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일단 피하고 보자!’
이런 생각으로 뒤로 수십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자.
쩌저저저적!
카틀리나의 발톱 공격으로 인해 지붕이 반 가까이 뜯겨 나갔다.
“저거, 고양이 맞아?”
지상 최강의 고양이 앞발 공격이 아닐까 싶었다.
“광기의 정령에게 빙의되면 설령 애완용 고양이라 하더라도 생체 병기가 돼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대장.”
그런 건 진즉에 말을 해 줬어야지!
공격을 당할 뻔하고 나서 말해 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좋은 정보를 들었다.
‘근데 어쩐다.’
빙의 대상을 죽일 수는 없다.
카틀리나를 무사히 데려가는 것이 1차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빙의 대상을 찾아도 문제다.
또 그 녀석이 난동을 부리면 어찌 하겠나?
‘머리를 굴려 보자. 괜찮은 아이디어가 분명 있을 거야.’
카틀리나가 날뛰는 동안, 나는 레바티움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방법을 강구했다.
그때 사다리를 타고 겨우 올라오는 데에 성공한 가르시아가 목청껏 소리쳤다.
“대장님! 저 왔습니…….”
“조심해, 가르시아! 그쪽으로 고양이 간다!”
“예?”
카틀리나는 가르시아를 발견하자마자 ‘냥냥 펀치’를 날렸다.
그러나 고양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자그마치 레바티움에게 빙의된 고양이다.
가르시아는 카틀리나의 일격을 맞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기껏 올라왔더니, 다시 아래로 낙하하고 말았다.
불쌍한 녀석.
베라는 가르시아가 떨어진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설마 죽진 않겠죠?”
“안 죽어. 맷집 하나는 쓸 만한 녀석이거든. 그보다 레바티움을 어떻게 진압할지나 생각해 보자.”
“알았어요.”
고양이 포획 의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산 넘어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