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대예언가의 흔적 (2)
마일이 나에게 한 말이 있었다.
라바인 근처에서 카인이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있다고.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접하게 될 줄이야.
“카인이라는 자, 지금 어디 있습니까?”
“지금이야 모르지. 엊그제 만났으니까.”
“어떻게 생긴 자인지 아십니까?”
하다 못해 외형 정보라도 알아내야 한다.
하이웨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잘 몰라. 목소리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고. 중성적인 목소리더군. 게다가 얼굴까지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어. 뭐라고 해야 좋을까……. 마치 자신의 정체를 일부러 감추기 위한 복장이었지.”
“엊그제 만났다고 했죠?”
“그렇지.”
떠났다면 한참 전에 떠나고도 남았을 시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정보 고마워요!”
“자, 잠깐만! 어디 가려고?”
“일대를 한번 수색해 보려고요. 나증에 또 인연 있으면 봐요!”
나는 그렇게 하이웨이와 급하게 인사를 나눴다.
걸음을 재촉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라바인 지역은 굉장히 넓다.
그러나 벨라시오닉이 마지막으로 토해낸 화염 폭풍 때문에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광활한 평야가 되었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여 수색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
‘보이지가 않네.’
사람이라고는 일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그 하이웨이라는 사람 빼고 여태껏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하이웨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틀렸나?’
뒷북 제대로 쳤다.
젠장, 조금만 더 일찍 올걸!
‘아니지, 설령 일찍 왔다 해도 카인, 그 작자가 나와 만나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만약 날 만날 생각이 있었더라면 여기서 이틀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냥 홀연히 떠났다.
‘어쩌면 떠나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나를 피하려는 건지 아닌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겠다.
카인이란 존재 자체가 수수께끼 덩어리다.
가급적이면 카인을 빨리 만나고 싶다.
왜냐하면.
‘슬슬 2권이 거의 끝나 가고 있으니까.’
이제부터 소설 속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영역에 들어설 것이다.
* * *
라바인을 떠나 근처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 거대하게 서 있는 이터블을 발견했다.
나는 파란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이터블의 앞에 내려놓았다.
라바인과 가까이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이터블이 서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잃은 라바인 전투.
그들의 희생을 기린 후 나는 베르투의 반지와 수첩을 꺼내 들었다.
반지의 모양이 화살표로 변했다.
‘이곳에도 있구나.’
말로는 들었지만, 이런 시골 마을에도 베르투의 표식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표식을 찾아 마일을 소환했다.
현자의 방으로 이동한 나는 마일에게 하이웨이로부터 얻은 정보를 들려줬다.
“이번에는 네 정보가 맞았어. 하지만 타이밍이 약간 아쉽더라.”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로인 님.”
“됐어. 그래도 얻은 수확이 크니까.”
카인이 소설 속에서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라바인 지역으로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을 정도의 예언력이면, 그자가 틀림없이 카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다음이 중요하다.
“라바인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근처를 중심으로 수색하다 보면 카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뒷일을 잘 부탁할게.”
“맡겨 주십시오, 로인 님.”
“나는 데우소로 향할 테니까 들어오는 정보 있으면 바로바로 수첩으로 알려 주고.”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그럴 생각인데?”
마일은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베라 양을 데려가는 게 좋을 겁니다.”
“베라는 왜?”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서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저를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엘라시아 양이 데우소로 향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테니, 안심하고 베라 양을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엘라시아와 마주칠 일이 없다는 걸 알면 굳이 베라를 대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로인 님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된 김에 베라에게 인간계 구경도 시켜 줘야겠어.
* * *
베라에게 데우소라는 도시로 오라고 파랑새를 통해 전해 뒀다.
3일 후 베라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네 도움을 받을까 하는데.”
“저번에는 절 데려가라고 해도 안 들리는 척하셨잖아요.”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마.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어때?”
“말은 참 번지르르하게 잘하시네요.”
그래도 베라는 내심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했다.
혼자서 인간계를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베라의 습성이 그대로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베라와 단 둘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심부름을 끝내고 돌아온 가르시아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저 왔습니다, 대장님…… 응? 베라 양도 있군요.”
“내가 불렀어.”
원래는 베라와 나, 이렇게 둘만 의뢰를 수행하려 했다.
가르시아는 계산에 없었다.
그가 나와 합류하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마침 데우소에서 의뢰를 마치고 다시 나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가르시아.
그는 용케도 나를 발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대장을 돕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댄 탓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가르시아의 합류를 허락했다.
연구소 사건 때 대장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게 ‘한’이라나 어떻다나.
‘충성심이 너무 높아도 탈이야.’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이렇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기분이 나쁠 리 있겠나.
이렇게 해서 나와 가르시아, 그리고 베라.
임시 3인 파티가 완성되었다.
베라가 짐을 쌀 때까지 잠시 기다린 뒤. 우리는 바로 버닝 소드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버닝 소드는 체릴이라는 여성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서 딜을 할 예정이다.
이미 가르시아를 통해 약속까지 잡아 두게끔 했다.
깔끔하게 옷차림을 차려입었다.
체릴은 상류층 사람이다.
부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여성을 만나는데 후줄근한 옷차림을 해선 안 되겠지.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장소를 이동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화려한 드레스 차림을 한 체릴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누가 로인 씨죠?”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그녀의 정보를 확인했다.
-체릴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SS
-의류 사업에서 굉장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업가.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델리피나 10대 갑부 순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뛰어난 수완과 사업적 능력을 가진 젊은 여성이다.
엑스트라 등급이라면 바로 말을 붙일 수 있겠군.
“접니다.”
나는 손을 들어 내가 로인임을 알렸다.
그러자 체릴은 사과를 했다.
“어머, 미안해요. 저는 옆에 계신 근육질 남성분이 로인 씨인 줄 알았어요. 생각보다 굉장히 젊으신 분이네요. 들리는 명성이 너무나도 커서 그래도 나이가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오해하곤 합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오해였다.
가르시아랑 같이 다니면, 가르시아에게 로인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군.’
복장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수집품, 심지어 조명까지. 수수해 보이는 게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허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본인이 돈 벌고 본인이 돈 쓰겠다는데 딱히 태클을 걸고 싶진 않았다.
여성은 우리를 핑크색과 다이아몬드 해골로 치장되어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베라는 소파를 보면서 ‘특이한 가구네요.’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이 존재하고, 수많은 인간 속에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인간이 늘 존재하는 법이다.
취향 존중.
줄여서 ‘취존’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요구했다.
“체릴 양을 찾아온 건 다음이 아니라…….”
“저에게 버닝 소드를 팔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죠?”
뭐야, 어떻게 알았지?
말을 아끼는 사이에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여성이 체릴의 뒤에 섰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체릴이 내 목적을 알고 있는 원인이 뭔지 깨달았다.
“베르투의 회원이셨군요.”
“잘 아시네요. 참고로 여기에 있는 아이는 제 담당 현자에요. 이름은 미쉘. 서로 인사 나누세요.”
“베르투의 현자, 미쉘입니다. 마일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일이 좋은 말만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네요. 로인이라고 합니다.”
베르투의 회원이라면 나에 대한 정보는 웬만하면 다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체릴은 내가 아직 밝히지 않은 것들까지 속속들이 이야기를 했다.
“블루로즈단 용병으로 활동하시면서 동시에 로그 상단의 공동 대표라고 하던데, 이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죠?”
“예, 로그 상단 대표라고 하면 보통은 라그너를 생각하곤 하니까요. 제가 공동 대표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놀라곤 합니다.”
“능력이 좋으시네요. 사실 제가 능력 좋은 남자가 이상형이긴 하거든요.”
어이, 어이, 어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소개팅 하자고 이곳에 온 거 아니라고.
물론 체릴 정도면 굉장히 좋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돈 많고, 사업적인 능력 좋고.
그리고 자기 관리를 잘한 덕분에 미모나 몸매 수준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확보하는 게 먼저야.’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바꿨다.
“여하튼 현자를 통해 다 알고 계시니 바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버닝 소드를 저한테 파시겠습니까?”
솔직히 쉽게 팔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그마치 벨라시오닉의 보물이니까.
너무 비싸서 못 구하는 물건이 아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자체가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다.
그만큼 소장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수집 욕심이 강한 체릴이 그걸 쉽게 넘긴다?
천만에.
그래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체릴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네, 팔게요.”
“예?”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파신다’고 말씀하신 거, 맞습니까?”
“네, 그러기 위해 절 만나러 온 거 아니었나요?”
맞긴 한데…… 너무 그렇게 쉽게 넘긴다고 말해 버리니까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 없어지는데.
사업가라 그런지 체릴은 내 표정을 보고 단번에 나의 생각을 읽었다.
“제가 버닝 소드를 쉽게 안 넘겨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정답이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네.
“팔 수는 있어요. 아니, 무상으로 넘겨드릴 의향도 있고요. 단, 조건이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하물며 체릴이 자신이 아끼는 소장품을 무상으로 줄 리가 없다.
“여러분들에게 정식으로 의뢰를 하고 싶어요. 의뢰 내용은 제 고양이, ‘카틀리나’를 찾아줄 것. 그러면 버닝 소드를 드릴게요.”
고양이 찾기라니?
어려운 일일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쉬운데?’
너무 쉬워서 의심이 갈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