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05화 (105/240)

# 105

대예언가의 흔적 (1)

라크스 공작의 의뢰로 시작해서 도플갱어의 숲, 그리고 알파의 회수까지.

크나큰 일들을 연달아 소화한 우리 R팀 용병단들.

덕분에 보수 금액이 꽤 쌓였다.

고생도 많이 했으니 나는 2소대를 제외한 멤버들에게 임시로 휴가를 부여했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들은 쉴 자격이 있다.

이번 일에 가담하지 않았던 2소대를 빼고 말이다.

덕분에 본부는 텅 비었다.

이른 아침, 본부로 출근을 한 나는 라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어머, 대장님은 왜 오셨어요?”

“왜긴? 출근한 거지.”

“휴가 가신 거 아니었어요?”

“잠깐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보다…….”

내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할 일 없는 용병들이 임시로 대기할 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층에 휴게실을 마련되어 있다.

휴게실에 내가 마침 아는 얼굴이 있었다.

베라.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서적을 보는 중이었다.

나는 베라가 일부러 눈치를 채게끔 열린 문에 노크 소리를 냈다.

똑똑.

베라는 소리를 듣고 내쪽을 돌아봤다.

“쉬는 거 아니었나요?”

“남은 일이 있어서 잠깐 처리하려고 왔지. 근데 넌 휴가 안 가? 굳이 본부에 올 필요는 없는데.”

“휴가라고 해 봤자 딱히 놀러갈 만한 곳도 없고. 그래서 여기에 남아 있기로 한 거예요.”

“그래?”

“그러는 대장이야말로 놀러갈 계획이라도 있나요?”

“놀러갈 건 아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은 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으러 돌아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

권왕 휴즈 밑에서 수행을 하는 것도 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 강해지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수단이 존재한다.

용신단의 레벨을 높이면 된다.

수행보다 그게 더 효율이 좋긴 하다.

그리고 휴즈는 나에게 기본적인 것들은 다 알려 줬다.

나머지는 심화 학습인데, 그건 단기간에 배우기 힘든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휴가 기간을 ‘용신단 레벨업 시즌’으로 정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최대한 찾으러 다니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예정이다.

“보물 찾으러 잠깐 이곳저곳을 다녀볼까 생각 중이야.”

“보물이요?”

“벨라시오닉이 남긴 유산 있잖아? 그걸 모으려고.”

“대장은 용병 이전에 아이템 헌터였나요?”

“뭐, 비슷하지.”

이미 몇 개 가진 것도 있고.

베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나는 미리 선수를 쳤다.

“너는 안 데려갈 거야. 부탁해도 소용없어.”

“마법이라도 썼나요?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 거예요?”

“딱 보면 아니까.”

나는 예전부터 베라가 왜 혼자서 잘 돌아다니지 않는지가 궁금했었다.

혼자서 돌아다닐 수 있다면 굳이 블루로즈단에 안 들어와도 되지 않은가.

그러면 행동에 제약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엘라시아를 찾아다닐 수 있을 텐데.

이 의문은 최근에 라비를 통해 해결했다.

그녀는 인간을 무서워한다.

아니,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간계를 혼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녀는 혼자서 돌아다니질 못한다.

이런대도 내가 말을 자주 붙이는 걸 보면, 나는 꽤 믿는 편인가 보다.

“보물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거라면 제가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텐데요. 이번에 벌어졌던 렉스 연구소 사건하고 도플갱어의 숲에서 제 활약을 보셔서 알잖아요?”

알다마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하지만 베라를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니면 곤란하다.

엘라시아와 만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마일에게 물어보면 되긴 하지만,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귀찮고.’

그리고 정보를 공짜로 얻는 게 아니다.

그에 상응할 만한 정보를 나도 마일에게 제공해 줘야 한다.

“알았어. 일단 생각은 해 볼게.”

나는 여지를 남겨 두겠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자리를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간 나는 베르투의 반지와 수첩을 챙겼다.

그런 뒤 베르투의 표식이 새겨진 곳을 찾아 이동했다.

소환에 응한 마일은 나를 현자의 방으로 인도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저와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일단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카인 찾기 진행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벨라시오닉의 보물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두 가지가 듣고 싶어.”

“두 번째부터 말씀드려도 될까요?”

첫 번째를 놔두고 두 번째부터?

순번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현재 저희 베르투에서 확인한 결과.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된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버닝 소드와 엘라트의 허리띠, 이렇게 두 개입니다. 버닝 소드의 경우에는 데우소라는 도시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엘라트의 허리띠는…….”

마일은 잠시 뜸을 들였다.

왜 시간을 끄나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왜 뜸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라바인에 있습니다.”

칠흑에게 잠식된 벨라시오닉과 인류가 델리피나의 운명을 걸고 격돌했던 바로 그 장소.

라바인.

그곳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이미 보물에 눈독 들인 사람들이 다 가져간 거 아니었어?”

“하나가 남아 있더군요. 이건 100퍼센트 확실한 정보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라바인 지역에 연관된 또 다른 정보가 있습니다.”

추가 정보를 들려주는 마일.

“그곳에서 카인으로 추정되는 자를 목격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정보부터 먼저 알려 주겠다고 한 건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목격된 곳에서 카인을 봤다는 정보까지 입수되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라바인이고.

“설마 이번에도 가짜 카인은 아니겠지?”

“솔직히 말해서 카인의 목격 정보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카인의 정보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누차 말씀드렸듯이, 그나마 신빙성 있는 정보들만을 제공해 드리고 있는 겁니다. 혹시 또 모르죠. 이번에는 진짜일지도.”

설령 카인의 목격 정보가 거짓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벨라시오닉의 보물 때문에 라바인에 가긴 가야 한다.

“정보 고마워.”

“아닙니다. 이번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러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미 너무 많은 실망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기대 안 하고 가기로 했다.

* * *

라바인은 나울에서 꽤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육로로 가든, 해로로 가든, 어딜 가든 간에 한참을 달려야 한다.

이동하는 건 로그 상단의 선박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원래 뱃삯을 내야 하지만, 내가 로그 상단의 대표인데 누가 나에게 돈을 내라고 하겠나.

오히려 선원들은 대표인 나와 같이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있지 마. 너희가 일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려고 같은 배 탄 거 아니니까.”

이렇게 말을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태도는 여전했다.

배를 타고 꼬박 4일을 이동했다.

항구에 내린 다음에 말을 타고 또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말을 탄 다음에도 3일을 달렸다.

혼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 보니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베라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아니면 드레인이라든지.

하지만 드레인은 너무 수다쟁이라서 문제다.

투 머치 토커와 1주일 가까이 단 둘이 지내면 오히려 내가 지칠 것 같다.

여하튼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라바인에 거의 도착했다.

라바인 전투의 치열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대지는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칼바의 용암 동굴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꺼지지 않은 불씨가 보였다.

덕분에 라바인 일대는 폭염의 온도를 자랑했다.

‘에디를 데려왔다면 큰일 날 뻔했군.’

애초에 데려올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진땀을 흘리면서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눈에 익은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 속에 처음으로 소환되었을 당시가 이쯤이었나?’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었다.

확신은 못한다.

벨라시오닉의 화염 폭풍으로 인해 지형이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눈짐작으로 대충 여기가 맞겠거니 했다.

옛 추억을 만끽하고자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엘라트의 허리띠가 있는 위치는 벨라시오닉의 사체가 있던 곳이다.

‘저기군.’

황량한 공터.

저 한가운데에 본래 벨라시오닉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라바인 지역 전체를 집어삼켰던 화염이 벨라시오닉의 사체도 같이 삼켰으리라.

‘이쯤일 텐데……?’

바닥을 샅샅이 찾아 헤맸다.

지면이 굉장히 뜨겁다.

에나에게서 받아온 장갑을 꺼내 들었다.

-프리징 글로브

-등급 : 레어

-화염 저항력 : +20

-빙결 저항력 : +35

이걸 끼고 작업하면 좀 더 편해질 거 같다.

군대 전역한 이후로 땅 파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몰두해서 한 적은 처음이다.

까고, 또 까고…….

미친 듯이 땅을 파던 도중이었다.

삽 끝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이건가?”

손을 땅속으로 집어넣었다.

만약 프리징 글로브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내 손은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글로브에 들려나오는 아이템 하나.

“겨우 찾았네.”

-엘라트의 허리띠

-등급 : 레전드

-방어력 : +250

-벨라시오닉이 삼켰다고 알려져 있는 전설의 아이템. 착용자의 방어력을 대량으로 상승시켜 준다.

아이템 창을 통해 정보를 확인했다.

틀림없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다.

“베르투의 정보가 정확했네.”

이번에는 확실했다.

오랜만에 베르투가 한 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인 찾기에는 그토록 삽질만 하더니만.

‘그런데 이 근처에서 카인이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있지 않았나?’

엘라트의 허리띠를 환약 형태로 만들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이후에 혹시 몰라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어쩌면 카인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카인 대신 수상쩍은 아저씨와 만나게 되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나를 보더니 의아함을 드러냈다.

“별일이군. 이곳에 모험가가 웬일로 왔나?”

“잠시 찾을 물건이 있어서요. 그러는 아저씨께선 어쩐 일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나? 이래 봬도 아이템 헌터라서 말이야. 혹시 남아 있는 괜찮은 아이템이 있나 싶어서 며칠 전부터 여기를 얼쩡거리고 있었거든. 설마 동업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조금만 늦었어도 저 아저씨한테 엘라트의 허리띠를 빼앗길 뻔했다.

타이밍이 좋았네.

예전에 난 이런 쪽으론 운이 정말 없었는데.

아저씨는 스스로 이름을 밝혀왔다.

“하이웨이라고 하네. 반갑구먼.”

“로인입니다.”

용병대장이라는 말은 생략했다.

지금은 개인 용무로 온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이웨이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인……이라고?”

“예, 그렇습니다만.”

내가 뭐 잘못 말한 거라도 있나?

나는 그냥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하이웨이는 못 볼 걸 봤다는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정말 네가 로인이라고?”

“저를 압니까?”

“정확히 아는 건 아니고……. 신기하네, 신기해. 그게 진짜일 줄이야!”

왜 혼자만 알려고 하나.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저도 좀 알려 주세요. 뭔데요?”

“실은 말이지…….”

남자는 지난 일을 회상하듯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에 여기에 들렀던 사람이 하나 있었거든. 그 사람이 나한테 ‘조만간 로인이라는 사람이 올 테니, 만나면 안부나 전해 달라.’고 했거든.”

안 좋은 예감이 든다.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뭐였더라? 아, 맞다!”

하이웨이가 들려준 이름은 내가 모를 리 없는 이름이었다.

“카인……이라고 했어.”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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