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도플갱어의 숲 (4)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발생했다.
나 이외의 사람들이 도플갱어에게 복사당해도 나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표식도 표식이지만, 나는 인물 정보창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도플갱어인지, 아니면 내 동료인지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큰일이네. 대장이 일곱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구분 짓죠?”
에나가 드레인에게 물었다.
파이스의 표식으로 구분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의 외형을 복사한 도플갱어들은 파이스의 표식을 동시에 들이밀었다.
“내가 진짜라니까!”
“난 표식까지 가지고 있어!”
“나도!”
이것들이……. 작정하고 나를 복사했네.
여태껏 파이스의 표식은 복사 안 하더니만.
하지만 나에게는 증인들이 있다.
나와 여태껏 함께 해온 레이샤르와 반드가 있다.
레이샤르는 나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진짜예요. 왜냐하면 저희와 같이 쭉 있었거든요.”
“근데 너희도 진짜라는 보장은 없잖아?”
드레인의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사실 레이샤르가 복사를 당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드래곤이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레이샤르 본인과 나를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레이샤르와 반드까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드레인은 나중에 합류한 우리 셋과 다수의 도플갱어들을 제외하고 용병들을 모았다.
“자, 다들 이쪽으로 모여 봐. 우리, 회의 좀 하자.”
넷이서 뭔가를 쑥덕거리더니, 나와 나머지 도플갱어들을 일렬로 정렬시켰다.
“퀴즈를 낼 테니까 맞춰 봐.”
나와 도플갱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예전에 견습 시절 때, 나울이라는 도시로 몬스터를 퇴치하러 간 적 있어. 그 몬스터의 이름은?”
간단하다.
정답은 바로 레플러다.
드레인은 퀴즈를 낸 다음에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한 명씩 대답을 몰래 들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레플러라고 정답을 말했다.
내가 가장 마지막 순번이었다.
모든 대답을 들은 드레인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 정답을 말하는데?”
말도 안 돼!
레이샤르가 내게 몰래 귓속말로 전했다.
“Z209가 낳은 도플갱어들은 타깃의 기억까지 어느 정도 복사가 가능하다고 들었네.”
이런 망할……. 일이 점점 더 귀찮아지네.
그밖에 다음 퀴즈를 냈다.
“대장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여인의 이름은?”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태클을 걸어 버렸다.
그러자 드레인은 내 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오, 방금 그 반응! 대장 같았어, 나이스!”
나이스는 개뿔.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그밖에 다른 퀴즈들도 냈지만, 틀리는 이는 하나 없었다.
용병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어쩌지?”
“가릴 방법이 없는데…….”
없긴 왜 없어.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배, 마침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뭔데?”
“이겁니다.”
나는 주먹을 휘둘러 바로 옆에 있는 도플갱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방금 전까지 나로 변장했던 도플갱어는 슬라임 같은 형태로 돌아갔다.
사정없이 놈을 발로 밟아 버렸다.
나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도플갱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한 자가 블루로즈단 R팀의 대장, 로인이다. 자, 덤벼 봐라.”
나는 봤다.
나로 변장한 도플갱어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을.
니들은 다 뒈졌어.
* * *
나로 변장했던 도플갱어들을 죄다 때려눕혔다.
도중에 한두 놈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레이샤르와 반드의 활약으로 인해 남김없이 말끔히 소멸시켰다.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드레인은 고개를 새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너, 대장이구나. 인정한다!”
“제가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진작 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리 도플갱어라 하더라도 용신단의 능력을 복사하진 못한다.
도플갱어의 숲에 있는 몬스터들 전부 다 덤벼도 나 하나 쓰러뜨리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고작 내 복제품 따위에게 질 리가 있겠나.
다 묵사발을 내주고 난 뒤에야 속이 풀리는 듯했다.
“알파도 확보했고,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숲에서 나가죠.”
그때, 파이스가 물었다.
“벨레너의 13난제는 클리어 안 할 생각입니까?”
“해 봤자 떨어지는 보상도 없잖아. 그리고 모체를 무슨 수로 찾게? 모체를 쓰러뜨려야 클리어가 가능하다며. 찾는 동안 해 떨어지겠다.”
오늘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아니 한 달이 걸려도 못 찾을 것이다.
나는 용병들을 이끌고 숲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하나 도중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아니, 남자들이었다.
게다가 전부 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라는 남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봤다.
“아까 만난 그 데르킨이라는 자 아닌가요?”
“그러게. 본인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데르킨 백작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한 명도 아니고 다수가 있다.
동족을 죽였다고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귀찮게 되었다.
쓰러뜨릴 수는 있는데,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데르킨 백작에게 알파의 존재를 들키고 싶지 않고.
도플갱어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레이샤르 님, 아까 마나로 도플갱어의 숲을 다 탐지했다고 하셨죠?”
“그랬지.”
“근처에 저희와 데르킨 백작 말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까 확인했을 때에는 없었네만.”
“그런가요? 잘됐네요.”
나는 반드에게 알파를 넘겨줬다.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까 먼저 가.”
“혼자 남겠다고?”
“어.”
당연히 일행들은 나 혼자만 두고 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작전을 그들에게 들려줬다.
그제야 내 지시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일행들을 먼저 보낸 뒤.
나는 가방 안에서 파이어 스톤을 잔뜩 꺼냈다.
파이어 스톤에 마력을 살짝 불어넣었다.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수풀 안에 휙 던졌다.
그러자…….
화르륵!
금세 불이 붙었다.
‘도플갱어의 숲을 클리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잖아!’
그 방법은 간단하다.
‘숲을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훌륭한 작전인 것 같다. 음. 훌륭해.
* * *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도플갱어의 숲.
다른 숲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다른 숲으로 불길이 옮겨 붙을 걱정은 없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레이샤르와 에나에게 숲을 빠져나가면 불이 옮겨붙는지 감시를 해 달라고 했다.
옮겨붙을 것 같으면 마법을 사용해서 불씨를 진압하면 된다.
활활 타오르는 도플갱어의 숲.
데르킨 백작으로 변한 도플갱어들은 불 때문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불이 좀 더 잘 옮겨붙게 하기 위해 나는 이곳저곳에 파이어 스톤을 추가로 투척했다.
도중에 도플갱어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쭈구리?”
가소로워 보였다.
자세를 취하고 놈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도플갱어들은 나에게 닿기도 전에 한 자루의 검에 꿰뚫렸다.
검을 다시 뽑아든 남자, 데르킨 백작이 나를 발견했다.
“오, 살아 있었군.”
데르킨 백작의 몸에는 도플갱어들의 체액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플갱어들에게 전부 당한 건가?
“그러고 보니 자네는 말을 할 수 없는 몸이었지?”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르킨 백작은 태연하게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도플갱어들을 베어 넘기며 말했다.
“별거 아니라네. 놈들이 나로 변장하고서 내 병사들을 다 죽여 버렸더군. 졸지에 나 혼자 살아남게 되었지. 나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지. 살아남는 자가 진짜가 되는 세상 아닌가?”
어쩜 나와 이리도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
살아남으면 그게 진짜다.
설령 가짜라고 해도 그 가짜가 진짜를 쓰러뜨리면, 가짜는 진짜가 될 자격을 거머쥐게 된다.
그게 바로 약육강식이라는 거다.
그러나 도플갱어들은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리기엔 터무니없이 약했다.
“숲에 불을 지른 건 자네로군. 뭐, 숲 전체를 없애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나를 탓하려고 하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플갱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그때, 갑자기 도플갱어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더니 알아서 픽픽 쓰러졌다.
‘Z209가 죽은 건가?’
이로서 방해꾼들은 전부 사라졌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린다?’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데르킨 백작을 죽여도 도플갱어의 숲에서 발생한 화재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대충 꾸며서 진술해 버리면 된다.
놈은 굉장히 위험한 악당이다.
살아 있다면 라스를 죽을 때까지 괴롭힐 녀석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연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얼마나 강할지 잘 가늠이 안 된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겨뤄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데르킨 백작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으러 왔더니 그것도 안 보이더군. 불에 타 죽는 건 싫으니까 난 이만 사라지도록 하지. 자네도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서 데르킨 백작은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검은 연기들이 그를 감싸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칠흑의 조각이 지닌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라…….
‘끔찍하군.’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면 좋겠다.
* * *
포획한 알파의 신변을 무사히 연구소에 넘겼다.
테일은 내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드러냈다.
“네 덕분에 살았어. 정말 고마워. 사례는 네가 원하는 만큼 다 맞춰 줄게.”
“괜찮습니다. 인류를 위한 일인데요, 뭘.”
돈 때문에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게 아니다.
잠식된 숙주로부터 칠흑의 조각을 떼어 낼 수 있는 방법.
즉, 칠흑의 조각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앞으로 칠흑과의 싸움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은 건 테일과 마법사들, 그리고 레이샤르가 연구를 통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드냐…… 여기에 달렸다.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 봐. 아, 그리고 벨레너의 13난제도 겸사겸사 클리어했다며? 하여튼 넌 진짜 대단한 녀석이야.”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Z209가 죽음으로 인해서 그곳에 있던 도플갱어들은 전부 사라졌다.
아니, 숲 전체가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으로 나는 벨레너의 13난제 중 두 개를 클리어하게 된 유일무이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용병들이 나를 알아볼 것이다.
‘유명해진다고 딱히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닌데.’
인기도라는 것을 돈으로 바꿀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아, 이건 너무 속물 같았나?
생각을 바꾸기로 하자,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