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도플갱어의 숲 (1)
의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상당히 고난이도의 의뢰가 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도플갱어의 숲으로 들어간다고?”
드레인은 기가 차는 모양인가 보다.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장,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네.”
“도플갱어의 숲이 뭔지 알고 있어?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벨레너의 13난제 중 9번째였죠?”
“……잘 아네.”
“알고서도 받아들인 겁니다. 그만큼 알파가 중요한 샘플이거든요.”
알파의 중요성은 이미 용병들에게 전부 알려줬다.
칠흑의 조각이 도플갱어의 숲으로 들어간 이상,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도플갱어의 숲.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로 말 그대로 도플갱어들이 서식하고 있는 숲이다.
저번에 내가 클리어 했던 칼바의 용암 동굴과는 다른 의미로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여태껏 많은 모험가들이 도플갱어의 숲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일행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도플갱어에게 속아 넘어가 전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드레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칼바의 용암 동굴 때가 절로 생각나네.”
“좋은 추억이었죠.”
“아니, 내게는 식은땀이 절로 나게 만드는 악몽 같은 기억이야.”
벨레너의 13난제는 용병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째 도전에 임하겠다는 내 말을 드레인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선배, 어차피 의뢰는 받아들였어요.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굳히세요. 어차피 가기 싫다고 혼자서 도망치거나 그러실 거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의외로 드레인은 전우애가 넘친다.
아무리 힘든 의뢰라 하더라도 그 혼자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드레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도플갱어의 숲을 보다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정보 같은 거 아시나요?”
“알 리가 있나? 만약 그걸 안다면 진즉에 내가 클리어를 해 버렸겠지.”
일리 있는 말이군.
다른 용병들에게도 물었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에나가 역으로 나한테 물었다.
“대장은 이번엔 아이디어 없나요? 저번에 칼바의 용암 동굴에 도전할 때에는 공략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나만 따라와!’라는 식으로 말했잖아요.”
“그땐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서 도플갱어의 숲이 언급된 적은 없었으니까.
그냥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이것이 나의 전략이다.
드레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생도 여기서 끝나는구나.”
* * *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순 없었다.
언제까지 칠흑의 조각이 도플갱어의 숲에 머무를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놈에게 시간을 주면 잠식 3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그러면 더 상대하기 껄끄러워진다.
초기에 제압한다.
이것이 핵심 포인트다.
그러나 출전 멤버를 고르는데 많은 고민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용병들을 다 데리고 가 봤자 의미가 없어.’
도플갱어들의 숫자가 꽤 많다고 들었다.
괜히 용병들을 데리고 가면 아군으로 둔갑한 도플갱어들의 숫자만 늘어날 것이다.
인원수를 가급적이면 줄이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었다.
‘아군인지 도플갱어인지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뭔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녀석으로 골라야 해.’
즉, 도플갱어조차 따라하기 쉽지 않은 강한 캐릭터성을 지닌 용병들로 파티를 꾸려야 한다.
일단 반드하고 에나, 파이스는 특급이다.
베라는…… 애매하긴 하지만, 하이 엘프는 데려가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레이샤르에게 좋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들은 엘프족은 복사를 못하더군. 물론 나 같은 드래곤도 마찬가지고. 명단 짤 때 참고하라고 일부러 알려 주는 거야.’
땡큐, 레이샤르 님.
이런 이유에서 베라는 포함시키기로 했다.
드레인은…… 애매하긴 하지만 일단 합격이다.
투 머치 토커와 꼰대 기질은 우리 용병단 중에서 단연 최고다.
그러니까 명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왜 선별했는지 물어 오면, 대답은 못해 주겠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나머지 용병들은 아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캐릭터성이 부족하다.
엑스트라 중에서도 엑스트라급들밖에 없으니 바야나에 남겨 두기로 했다.
“이렇게 짜면 되겠지.”
드디어 명단을 완성했다.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모습을 드러낸 이는 페나트로 둔갑한 레이샤르였다.
“명단은 다 짰나?”
“예. 보시겠습니까?”
“내가 본다고 한들 의미가 있겠나.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그 명단에 내 이름도 같이 올려 줬으면 해서 찾아온 것이라네.”
뭐지? 이 전개는?
전혀 예상 못 했다.
“합류하신다고요? 도플갱어의 숲에 같이 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왜, 내가 같이 가면 안 되나?”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하하하!”
대환영이지요!
천하의 드래곤이 같이 가 준다는데 왜 말리겠어요.
레이샤르가 같이 가 준다면 벨레너의 13난제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을 가져봤지만.
“내가 간다고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거나 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어. 그러니까 기대치를 낮추는 게 좋을 거야.”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겸손? 아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드래곤과 겸손은 정말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 않은가?
레이샤르가 왜 이런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이는지 머지않아 스스로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도플갱어가 마음먹고 너희들 중 누구 하나로 둔갑하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찾기가 쉽지가 않아. 애초에 나는 자네 말고 다른 용병단원들과 친하지도 않으니까.”
드래곤이라고 만능은 아니었다.
그래도 레이샤르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그의 진가는 검은 괴물과의 전투에서 발휘될 거다.
* * *
레이샤르까지 합해서 총 일곱 명의 파티가 완성되었다.
일곱 명.
나쁘지 않다.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딱 적당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체할 시간 없이 바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면서 페나트를 연기하는 레이샤르로부터 도플갱어의 숲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도플갱어의 숲이 되어 버린 이유에 대해 조사했어요. 예전에 그곳은 마법사들이 주둔하던 거대 연구소였다고 하더라고요.”
또 연구소냐?
벌써 세 번째다.
요즘 연구소라는 단어를 들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도플갱어 몬스터 대한 연구를 하는 곳이었는데, 특이한 실험체가 하나 탄생하게 되었어요. 자가 번식을 하는 도플갱어라고 하던데. 당시에 붙은 별칭은 ‘Z209’라고 해요.”
“설마 그 Z209라는 어미 도플갱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드레인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말이 정답이었다.
“관리자가 제대로 신경을 못 쓴 틈에 Z209는 마법사들 모두를 속이고 연구소 시설을 탈출했어요. 그리고 번식을 통해 수많은 도플갱어들을 무리를 이끌어 역으로 연구소를 습격한 거죠.”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 해도 몬스터들이 떼로 덤비는데 쉽게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도플갱어의 숲이 탄생되었다고 해요.”
여기까지가 페나트의 간단한 설명이었다.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
도플갱어의 숲은 수많은 모험가들이 도전을 했지만 도리어 도플갱어들에게 잡아먹혔다.
도플갱어의 숲을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Z209를 없애 버리면 되는 거죠?”
베라의 말대로다.
자가 번식이라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Z209.
그러나 도플갱어들의 숫자를 무한히 늘릴 수는 없다.
또 커다란 단점이 있다.
모체인 Z209가 사라지면 놈이 낳은 나머지 도플갱어들 역시 사라진다.
해결 방법은 베라가 말한 것처럼 간단하다.
Z209만 없애면 된다.
문제는…….
“어느 도플갱어가 모체인지 모른다는 점이죠.”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페나트인 척 연기하는 레이샤르는 그밖에 도플갱어의 숲에 들어가면 주의해야 할 점 같은 것들을 일러 줬다.
도중에 나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지금 도플갱어의 숲에 살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있을 리 없죠. 단, 그곳에 도전하는 모험가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모험 정신으로 가득한 자들에게는 도전 정신을 자극할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다름이 아닌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니까.
* * *
도플갱어의 숲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착했다.
사일런트 포레스트 급으로 주의 문구가 적힌 판자들이 도배되어 있다시피 박혀 있었다.
요약하면 간단하다.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오!
‘난 이런 거 보면 막 들어가고 싶어지더라.’
내가 청개구리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뒤에서 드레인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 설마 용병 생활 하면서 벨레너의 13난제에 두 번이나 도전하게 될 줄이야……. 내가 미쳤지, 미쳤어!”
“선배. 저희는 이미 한 배를 타지 않았습니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그런 게 의리 아닙니까?”
“의리가 밥 먹여 주냐? 나에게는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제발 죽느니 뭐니 하는 그런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응?”
“하하, 네, 알았어요.”
겁에 질린 드레인을 한번 놀려 본 것뿐.
우리가 여기서 죽을 일은 없다.
내가 절대로 죽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레이샤르는 우리에게 충고했다.
“타고 온 말은 근처에 묶어 두도록 하죠.”
“왜요?”
에나가 레이샤르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말을 두고 가자는 이유가 있었다.
“도플갱어가 말로 둔갑해서 저희의 뒤를 칠 수가 있으니까요.”
도플갱어는 생물로 둔갑한다.
가급적이면 위험 요소들은 최대한 많이 제거하는 편이 좋다.
이것이 레이샤르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숲이 막상 크진 않아요. 아까 말했죠? 연구 시설이었다고. 연구 시설 부지에 수풀이 우거지면서 만들어진 게 도플갱어의 숲이에요. 길을 잃을 정도로 큰 숲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에나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 더운 날씨에 걸어다니기까지 해야 하다니…….’라면서 말이다.
참고로 더운 날씨는 아니다.
딱 선선한 가을 날씨다.
그러나 에나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더운 축에 속하는가 보다.
도플갱어의 숲 안쪽으로 들어섰다.
선두에는 내가, 그 뒤로 파이스와 반드, 에나, 드레인, 베라가, 마지막은 레이샤르가 맡았다.
도중에 내 귀에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다수의 존재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였다.
“…….”
나는 주먹을 쥔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왜 그래요?”
“뭐하는 겁니까? 대장.”
내 용병들은 수신호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좀. 우리도 B팀처럼 멋있게 척 하면 척! 탁 하면 탁! 하고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나는 육성으로 지시했다.
“근처에 누가 있어.”
일행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뒤 나는 나무기둥에 몸을 기댔다.
이윽고 빠르게 수풀 너머로 이동했다.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뽑아 들어 한 남자의 목에 겨눴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데르킨 백작……!’
뭐 이딴 우연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