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99화 (99/240)

# 99

야밤의 추격전 (1)

단원들에게는 대충 이렇게 설명을 해 뒀다.

렉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 중 한 명이 칠흑의 조각에 잠식된 상태라고.

그 연구원이 누군지 아직 전해 듣지 못했다는 것까지 말했다.

이번에는 반드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어둠의 기운에 현혹된 어리석은 자가 연구소에 있다고 미리 말하고 협조를 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반드답지 않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연구원 중 한 명이 잠식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나는 편집자가 아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거짓말을 진짜인 것처럼 잘 각색해서 이들을 속여야 한다.

“그런 말을 미리 해 두면, 잠식당한 연구원이 눈치채고 도망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쉽게 못 건드리는 거야.”

“듣고 보니 그렇군.”

“너희도 수상쩍은 행동은 하지 마. 이상한 말도 흘리지 말고. 이건 일급비밀이니까.”

일부러 기밀임을 강조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연구소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를 거야. 사건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니까 연구소를 몰래 감시해야 해. 감시조를 따로 편성할 테니까 그리 알아 두도록 해. 그리고 선배는 제가 한 말들 1소대에게 알아서 잘 전달해 주세요.”

“알았어.”

“조 편성은 제가 짜겠습니다. 명단 완성되면 돌릴 테니 그때까지 당분간 대기하세요.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해산하겠습니다.”

단원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와 조 편성을 서둘렀다.

3인 1개조로 짤 예정이다.

각 조마다 대장 직속 소대원들을 1명씩 배치할 예정이다.

물론 드레인과 나도 포함이다.

사건은 언제 발발할지 모른다. 그래서 24시간 연구소를 감시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레이샤르에게 아직 말을 안 했지.’

테일에게는 칠흑의 조각에 대한 위험성을 알렸지만 먹히지 않았다.

레이샤르에게는 먹힐지도 모른다.

생각이 깊은 인간…… 아니, 드래곤이니까.

* * *

나는 테일과 레이샤르가 머물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냈다.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특히 테일이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조심스럽게 레이샤르가 머무는 방을 찾아갔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위험도가 매우 높다.

‘창문으로 갈까?’

벽 타기를 시도했다.

발을 딛고 올라가기 꽤 힘든 구조였다.

그래도 완력으로 버티면서 어렵사리 5층 창문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갑자기 창문이 벌컥 열렸다.

레이샤르가 나를 내려다봤다.

“아까부터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 자네였군.”

“……안녕하세요, 레이샤르 님.”

나는 스×이더 맨처럼 벽에 딱 달라붙은 상태에서 레이샤르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들어오도록.”

“감사합니다. 하하!”

괜히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알고 있었으면 차라리 내 쪽으로 먼저 접근을 해 오지, 쳇.

“자네가 이곳에 용병대를 이끌고 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건지 모르겠군. 의뢰 때문인가?”

“아니요. 렉스 연구소에 있는 칠흑의 조각 때문입니다.”

“칠흑의 조각에 문제라도 있나?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던데.”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 감시 차원에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겁니다.”

용병단원들에게는 어설픈 나의 거짓말이 잘 먹혀들어 갔다.

그러나 레이샤르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레이샤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당분간 저와 제 용병단이 연구소를 감시할 겁니다. 레이샤르 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도와 달라? 어떤 식으로?”

“간단합니다. 못 본 척 넘어가 주시면 됩니다.”

레이샤르에게 크나큰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모른 척만 해 주면 된다.

레이샤르는 눈을 흘겼다.

“렉스 연구소에 칠흑의 조각을 맡긴 게 그렇게 불안한가?”

“예.”

“그 불안감 때문에 용병단까지 대동할 줄이야…….”

“오늘을 기점으로 딱 1주일만 감시하겠습니다. 만약 그 안에 별다른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 싶으면 알아서 물러서겠습니다.”

반드시 렉스 연구소 사건이 발생하리란 법은 없다.

왜냐하면 소설 속 이야기와 이곳의 이야기가 완전히 똑같이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건이 발생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을 기준으로 최대 3일 후까지 연구소를 감시하기로 했다.

만약 그 안에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용병단과 함께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

레이샤르는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후후, 칠흑에 그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인간은 아마 자네, 그리고 라스밖에 없을 거야.”

그럴 수밖에.

라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칠흑으로 인해 이 세계가 멸망해 버리면 내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칠흑을 쓰러뜨리는 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레이샤르는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려줬다.

“좋아. 모른 척해 주도록 하지. 사고가 발생할지 말지 나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근처에 자네의 용병단들이 대기하고 있으면 든든하기도 하고……. 손해 볼 일은 없겠지.”

“감사합니다, 레이샤르 님.”

“대신 테일이나 다른 마법사들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레이샤르에게 양해도 구했으니 이제 마음 놓고 연구소를 감시해 보도록 할까?

* *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 때까지 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의미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오히려 내게는 호재였다.

‘이런 경우는 정말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차라리 아무런 일 없이 그냥 계속 시간만 축내는 꼴이 되는 게 다행이다.

달력을 확인했다.

내가 소설 속에서 봤던 사고 예정일은 이미 넘긴지 오래다.

벌써 이틀째.

‘내일까지만 딱 보고 난 다음에 빠지면 되겠어.’

3일 정도 지났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판단해도 무리는 없을 터.

나는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수천 명을 학살한 검은 괴물은 뒤늦게 등장한 레이샤르에게 소멸당한다.

그때 당시 레이샤르는 잠시 연구소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만약 레이샤르가 지금처럼 바야나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수천 명이나 희생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레이샤르가 계속 바야나에 남아 있는 상태고, 거기에 더해 우리 블루로즈 R팀까지 대기 중이다.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곧장 검은 괴물은 제압당할 것이다.

오늘이 바야나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되기를 희망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 후회했다.

꼭 이렇게 생각하면 플래그가 되어서 안 좋은 일이 발생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쿵쿵쿵!

꼭두새벽에 누군가가 거칠게 내 방문을 노크했다.

“대장님!”

“무슨 일이야?”

오늘 정찰조로 편성되었던 용병이 급하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연구소에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파악은 못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나는 곧장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단원들 다 깨워, 당장!”

“예!”

오늘 밤은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연구소는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보이는 난동의 흔적들.

내가 도착했을 때 정찰조로 투입되었던 블루로즈단 용병이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대장님!”

“상황 보고부터 먼저 해. 어떻게 된 거야? 베라는 또 어디로 갔고?”

“갑자기 연구소에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베라 씨는 폭발음을 듣고 저희에게 대장님을 불러오라고 말한 뒤에 바로 연구소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거, 위험한데?

아무리 베라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검은 괴물을 혼자서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곧 이곳에 다른 용병들이 도착할 거다. 이곳으로 오면 부상자들부터 먼저 챙기라고 해.”

“예!”

나도 지체 없이 바로 연구소 안으로 향했다.

도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테일.

그가 쓰러져 있었다.

한쪽 다리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다.

못 본 척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대로 건물 잔해를 들어 올렸다.

다른 한 손으로 테일을 부축하며 그를 꺼냈다.

“괜찮습니까? 정신이 좀 드세요?”

“로……인? 네가 여긴 어떻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테일은 침음을 흘렸다.

“……연구원 중 한 명이 갑자기 칠흑의 조각이 보관되어 있는 시험관을 깨뜨려 버렸어. 그런 뒤에 녀석에게 잠식되어 버리더니, 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지.”

“칠흑의 조각에게 홀렸군요.”

“실험관에 가둬 두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내 불찰이야. 로인, 네 말을 좀 더 귀담아들을 걸 그랬어. 미안하다.”

“사과는 일이 해결되고 난 다음에 하셔도 됩니다. 우선은 놈을 제압하는 게 먼저예요.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요?”

“연구소 최상층으로 갔을 거야. 저번에 봤던 그 하이 엘프 아가씨도 같이 있을 확률이 커.”

베라가 검은 괴물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가?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게 좋아 보였다.

마침 드레인이 용병들을 이끌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선배, 수사관님 좀 부탁드릴게요. 부상이 심합니다.”

“어? 아, 알았어!”

“그리고 에나는 여기 남아서 화재를 제압해. 네 빙결 마법이라면 화재를 제압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야. 파이스는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고. 반드, 너는 나와 함께 최상층으로 간다.”

용병들은 내 말에 따라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나는 반드와 함께 위층으로 향했다.

위로 향할 때마다 폭음이 커졌다.

최상층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괴물이 우리를 노렸다.

뒤에서 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하세요, 대장!”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검은 괴물을 한두 번 상대해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팔을 휘두르는 검은 괴물.

이까짓 공격은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그 틈을 노려 반드가 단검으로 검은 괴물의 등을 수차례 난도질했다.

검은 괴물의 타깃이 나에서 반드로 변경되었다.

하나 내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네 상대는 나다! 검댕이 녀석아!”

나는 놈의 팔을 낚아챘다.

그 자세에서 바로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콰당! 소리를 내며 검은 괴물은 벽에 처박혔다.

-크르릉!

검은 괴물은 짐승의 것과 같은 소리를 냈다.

외형은 변했으나 움직임도, 반응도 느리다.

‘잠식 2단계 정도 되겠군.’

빠른 시간 내에 벌써부터 잠식 3단계에 돌입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놈이 아직 2단계에 불과할 때…….

‘이때 빠르게 제압해야 해!’

잠식 3단계에 접어들었던 검은 괴물들과도 수차례 싸워서 이겼던 나다.

2단계는 우습게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도중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우지끈!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 잔해들과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나와 검은 괴물 사이에 툭 떨어졌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건 또 뭐냐?”

하나인 줄 알았던 검은 괴물이…….

하나 더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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