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94화 (94/240)

# 94

선수 입장 (5)

짜증 유발자, 얀이 설마 벨라시오닉의 보물 소유주일 줄이야!

이건 미처 예상 못했다.

‘아니, 그보다 왜 첫 만남 때 저런 정보를 안 줬던 거야?’

친밀도가 부족해서 그랬나?

그나마 그게 가장 확률이 높았다.

친밀도가 높아지면 순차적으로 정보가 갱신되거나 공개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으니까.

한편. 얀의 능력을 본 터드는 얀이 벨라시오닉의 보물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좋군.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것일지도.”

“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얀은 터드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를 거다.

칠흑의 조각은 본능적으로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을 감지할 수 있다.

지금쯤 또 다른 먹잇감의 등장에 흥분 상태에 돌입했을지도 모른다.

점점 더 이 경기를 방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얀이 죽기 전에 경기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그러나 갑자기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도련님!”

맞은 편 관객석에서 갑자기 남자 여럿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이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행요원들이 긴급 투입되었다.

밑에 있던 진행요원이 내게 버럭 소리쳤다.

“야! 너 뭐하고 있어! 와서 도와야지!”

“아, 알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현장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남자들의 등장에 얀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헤일! 네가 어떻게 여기에…….”

“역시 도련님이었군요! 지금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얼마나 부모님들의 속을 썩여야 정신을 차릴 생각이십니까!”

“누가 속을 썩인다고 그래! 이런. 망했네, 망했어!”

얀은 갑자기 경기장을 내려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거기 진행요원 양반! 나, 경기 포기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경기를 포기한다고? 자, 잠깐만!”

얀은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바로 사라졌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아무튼 얀이 경기를 포기한 덕분에 승자는 터드로 결정되었다.

터드는 얀의 뒤를 쫓을까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로써 얀의 경기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 * *

얀의 도주 사건은 경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계속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왜 그는 도망쳤을까?

그 사정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용병계를 잘 아는 첸버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애초에 스트레이트라는 조직 자체가 상당히 최근에 생긴 용병 집단이라서 나도 가진 정보가 얼마 없어.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아닙니다. 괜찮아요.”

괜히 궁금증만 더 깊어졌다.

얀 소동도 있었지만 경기는 계속 속행되었다.

8강 첫 번째 경기.

이미 추종자가 나온 마당이라서 굳이 볼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몰래 경기를 염탐했다.

‘역시. 저 두 사람은 정상이네.’

검증 완료.

곧바로 나는 대기실로 다시 돌아갔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8강 1경기는 벌써 끝이 났다.

경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다음은…….

대망의 내 차례다.

트윈소드에서 온 용병, 아이톤이 무대로 올라섰다.

그러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아이톤 선배! 파이팅입니다!”

게럴이었다.

저 녀석, 나한테는 친구라고 하고서 막 달라붙더니 이럴 때는 자기 팀 응원하는 건가?

이번에도 나는 맨손으로 경기에 임했다.

아이톤은 매우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맨손 격투라……. 여태껏 수차례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자네 같은 타입의 용병은 거의 못 봤어. 이번이 딱 두 번째군.”

거 참 영광이네.

그나저나 이 대회에 꽤 오랫동안 참가를 한 용병인가 보다. 딱 봐도 나이가 있어 보인다.

얼추 40대 초반으로 보인다.

경험은 저 사람이 많겠군.

주의해야겠어.

나는 경험의 차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라크스 공작과의 대련을 통해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휴즈 역시 경험의 중요성을 나에게 수차례 강요했다.

경험의 차이는 힘으로 눌러 버리기로 했다.

경기 시작 알림과 함께 나는 무차별 공격 모드를 발동했다.

오른 주먹, 왼 주먹을 번갈아 날렸다.

그럴 때마다 아이톤은 굳은 표정으로 내 공격을 피했다.

꽤 잘 피하네?

‘그렇다면 속도 좀 올려 볼까?’

……라고 생각했건만.

“스톱.”

아이톤은 갑자기 무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항복하겠다.”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싸우지도 않고서 왜 갑자기 항복 선언을 하느냐.

이런 뜻이 담긴 야유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현명한 남자네.’

나와 상대했던 용병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지를 고른 셈이었다.

아이톤은 알 거다.

경험으로 극복하기에는 실력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이톤은 깔끔하게 경기를 포기했다.

대신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강해지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휴즈 님의 밑에서 수행을 받았습니다.”

“권왕 휴즈의 제자라……. 역시 강함에는 이유가 있었어.”

휴즈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실 용신단의 힘이 크다.

굳이 용신단에 관한 내용을 아이톤에게 들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휴즈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어쨌든 이로써 나는 무난하게 4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아까 8강 1경기를 보니까 4강에서 맞붙을 상대방은 내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무난히 결승까지는 가겠어.’

문제는 다른 조다.

리오나 VS 터드.

‘좋지 않은데…….’

얀에 이어 이번에는 리오나가 위험해졌다.

살인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니 터드는 리오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을 거다.

그러나 대회 규정의 커트라인은 살인이지, 목숨만 붙어 있다면 사지를 절단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리오나가 스스로 항복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자칫 잘못할 경우 큰 부상을 당할지 모른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리오나를 찾아갔다.

때마침 리오나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리오나!”

“왜, 갑자기.”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나는 리오나의 팔목을 붙잡고 강제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누가 보면 매우 수상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로 리오나를 끌고 가는 게 아니다.

리오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번 경기, 그냥 기권해.”

이게 내가 리오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충고였다.

* * *

리오나가 내 말을 받아들일까?

솔직히 안 될 것 같다.

리오나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니까.

싸워 보지도 않았는데 기권하라고 하면 하겠나?

천만에.

내가 아는 리오나의 성격상,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진 않을 거다.

하나 리오나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엉? 진짜로?”

“네가 먼저 말 꺼냈으면서 왜 놀라는데?”

“아니, 정말로 기권할 줄은 몰랐거든. 분명 너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고 틱틱거리면서 그대로 경기장에 나갈 줄 알았는데.”

“사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거든.”

이후에 리오나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터드라는 남자, 뭔가 많이 이상해 보였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나가다가 본 건데, 갑자기 대기실에서 혼자 소리를 치질 않나, 자학을 하질 않나……. 하여간 정신 상태가 많이 불안해 보이는 거 같던데.”

말을 도중에 끊은 리오나는 대뜸 나에게 물었다.

“그 남자,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거, 맞지?”

“…….”

정답이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대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그래도 리오나는 크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어.”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너는 어떻게 하려고? 너도 기권할 거야?”

“아니, 나는 결승에서 놈을 쓰러뜨릴 거야. 사람들에게 터드가 검은 괴물이라는 정체를 드러내게끔 만들고, 거기서 녀석을 제거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니까.”

칠흑의 조각은 없앨 수 있으면 미리 없애 두는 게 좋다.

훗날 라스 일행과 내게 크나큰 방해 요소가 될 테니 말이다.

리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녀석이 검은 괴물로 변하면 그때 나도 같이 도울게.”

“아니, 너는 대신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 터드 말고 다른 추종자들이 몰래 잠입해 있을 거야. 그 녀석들이 멋대로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미리 움직여 줘. R팀 멤버들도 너한테 힘을 빌려줄 거야. 도움이 많이 될 테니 잘 써먹도록 해.”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나.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입도 덜 아프고. 한결 편하다.

* * *

리오나는 약속대로 8강전을 치르기 전에 기권 의사를 드러냈다.

진행요원들은 의아해했다.

리오나는 과거에도 8강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갔던 실력자다.

게다가 승부욕도 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허무하게 경기를 포기하는 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출전하기 싫다는데 어쩌겠나?

이로써 터드는 무사히 4강에 안착했다.

오늘은 4강 경기까지 펼쳐진다.

나는 4강 경기를 치르기 위해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섰다.

이제 블루로즈단에 남은 인물은 나 한 명뿐이다.

‘가볍게 이기고 결승까지 진출해 볼까?’

상대는 4강까지 올라온 실력자답게 제법 화려한 검술을 뽐냈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내 주먹질을 꽤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래 봤자 30~40초 차이뿐이다.

털썩.

상대방은 기절한 채 쓰러졌다.

심판은 내 승리를 선언했다.

이로써 무난하게 결승 진출 확정.

이다음 경기가 문제다.

나는 오늘로써 세 번째 이미테이션 스킬을 시전하면서 몰래 관객석에 잠입을 했다.

진행요원으로 변신할 때마다 다른 얼굴, 다른 성별로 내 외형을 바꿨다.

너무 똑같은 모습만 계속 유지하면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터드와 4강 경기를 펼치게 될 용병에게 미리 가서 기권하라고 권유를 했다.

그러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권? 네깟 놈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나보고 이래라저래라야! 썩 꺼지지 못할까!’

뭐, 이게 당연한 반응이다.

리오나가 너무 순순히 내 말을 잘 들어줬을 뿐.

남자는 기세등등하게 터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터드는 상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남자는 거의 초주검에 이르렀다.

이미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적셔졌다.

그 순간 나는 16강 경기를 위해 무대에 올랐을 당시가 떠올랐다.

‘터드 녀석이 그런 건가?’

아닐 수도 있다.

무투 대회에는 터드 이상의 잔혹함을 가진 놈들이 많았으니까.

터드는 상대방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상대방이 항복 선언을 하려고 할 때마다 터드는 교묘하게 그것을 방해했다.

심지어 입까지 틀어막았다.

본인이 항복 의사를 보이지 않으면 경기는 계속 속행된다.

터드는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상대방이 피 칠갑으로 만들고 나서야 터드는 손을 놓았다.

객석은 터드의 잔혹함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하튼 이것으로 결승 대진이 확정되었다.

나 VS 검은 괴물.

‘쉽진 않겠어.’

……그래도 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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