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선수 입장 (1)
용병 무투 대회.
애초에 그런 대회가 왜 있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파랑새는 이렇게 설명해 줬다.
“우리 용병 조직이 이만큼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자랑하는 거지. 근데 단순히 기만하기 위한 자랑이 아니야. 무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만큼 그 용병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의 전력이 뛰어나다는 걸 뜻하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뢰가 많이 늘어나겠군요.”
“그렇지! 더불어 몸값도 늘고. 그런 의미에서 무투 대회를 여는 거야. 단순히 우리들끼리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군. 이런 거라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리오나가 추가로 부연 설명을 들려줬다.
“참고로 우리가 엘리트 용병 집단이라는 말을 자주 듣잖아? 그것도 무투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해서 그래.”
“우승 경력이 있었구나.”
“15회, 16회. 이렇게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인 만큼 한번 우승을 해 두면 적어도 1년은 우승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어. 15, 16회 때 나가서 우승했던 사람이 단장이야.”
제나드. 그 남자가……?
하긴, 실력은 좋아 보였다.
기습이라 하더라도 잠식 3단계에 도달한 검은 괴물을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두 동강을 내 버렸으니 말이다.
“근데 단장은 대인기피증이 있다며? 그런데 대회에는 어떻게 나갔대?”
“대인기피증 걸리기 전이었거든.”
“뭐야, 그럼 처음부터 대인기피증이 아니었어?”
“응, 도중에 얻게 된 거야.”
나 참, 까다로운 남자고만.
제나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제나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파랑새는 이때다 싶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단장이 대인기피증에 걸린 탓에 17회 때에는 아예 불참을 해 버렸잖아. 리오나가 대표로 나가서 8강 안에 든 덕분에 체면치레는 간신히 할 수 있었지만……. 첸버가 말하기로는 이번에는 우승을 노리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보고 리오나 대장하고 로인 대장, 자네들에게 출전을 부탁해 보라고 했어.”
“한 조직 당 두 명씩 참가하는 건가요?”
“어, 최대 두 명. 어때, 나갈 건가?”
리오나는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빠르기도 하셔라.
“로인 대장은?”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안 나갑니다.”
“응?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설마 안 나가겠다고 한 거야?”
“정확히 들으셨네요.”
“왜?”
“나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나가 봤자 득을 볼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블루로즈단의 명성에 크나큰 금이 간다 하더라도 내 명성에 금이 가는 건 아니다.
나는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를 클리어한 남자다.
이미 용병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감은 폭발한지 오래다.
‘이런 와중에 굳이 내가 위험부담을 등에 짊어지고 무투 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있나?’
나가서 괜히 예선이라도 탈락해 봐라.
‘저 로인 대장이라는 사람, 순 거품이었네!’ 하고 야유를 받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예선에서 탈락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파랑새는 내심 아쉬워했지만, 더 이상 내게 출전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수밖에. 로인 대장, 혹시 괜찮다면 R팀 단원들한테 물어볼 수 있어? 무투 대회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 정도는 충분히 해 드릴 수 있죠. 그런데 S팀은요? 전력으로 따진다면 S팀이 가장 강한 거 아닙니까?”
“S팀은 중요한 임무가 한꺼번에 몰린 탓에 지금 사람을 뺄 수가 없거든.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를 무투 대회에 내보낼 순 없으니까 엄격히 선별해야지.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S팀보다 오히려 R팀이 더 괜찮은 용병들이 많은 거 같아. 로인 대장 팀은 인재가 많잖아. 저번에 그 하이 엘프 아가씨도 그렇고. 대단한 팀이야.”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베라는 내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면 라스 일행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라스 일행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날부로 베라는 블루로즈단을 나가겠다고 말해 올 것이다.
그보다 더 큰일은 엘라시아가 다시 하이 엘프의 마을로 돌아가는 거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곧 002가 라스 일행으로 합류할 것이다.
라스, 카이딘, 엘라시아, 엔드라, 그리고 002까지.
이렇게 5인팟을 어렵게 완성시켜 줬는데 중간에 엘라시아가 빠져나가기라도 해 봐라.
얼마나 허무하겠나?
‘절대로 안 되지. 그랬다간 세계가 멸망하는데.’
그렇다고 베라에게 무투 대회에 관해서 철저하게 숨길 수도 없다.
‘이미 소문이 다 났을 텐데…….’
무투 대회 때문에 괜히 걱정거리 하나 추가됐네.
* * *
본부로 돌아왔을 때 내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병단원들은 이미 무투 대회에 관해 다 알고 있었다.
드레인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인지 나를 추궁했다.
“무투 대회에는 왜 안 나가려고 하는데? 네가 나가면 무조건 우승 아니야?”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은 법이에요. 제가 나간다고 우승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굳이 나갈 필요성이 안 느껴져서 저는 그냥 안 나가기로 했어요.”
“그래? 나는 네가 분명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야 무투 대회에 우승하면…….”
도중에 드레인의 말을 멈추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라비였다.
“대장님, 무투 대회 다다음 주에 있는 거 아시죠? 내일 모레까지 출전 멤버 확정해서 주최 측에 알려 달라고 하는데 B팀에는 리오나 대장이 나가기로 했고……. 우리 팀은 누굴 내보낼 거예요? 대장님은 안 나가시니까 다른 사람으로 대신 내보내야 하잖아요.”
“그러게.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 있어?”
“그게 말이죠…….”
말끝을 흐리는 라비의 반응.
“아무도 안 나가겠다고 하는 거야?”
“네, 지원자가 없어요.”
가르시아나 에나, 반드, 그리고 파이스는 이해한다.
그런데 베라는?
“베라 어디 있어?”
“잠깐 바깥에 나갔어요. 곧 올 거예요. 아, 마침 저기 오네요.”
창밖에 베라의 모습이 비췄다.
나는 창문을 열고 베라를 불렀다.
“베라! 너, 무투 대회 안 나갈 거야?”
“안 나가요.”
별일이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왜 본인한테는 의뢰 안 주냐며 투덜거렸던 녀석이.
“그곳에 가면 엘라시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엘라시아 아가씨가 무투 대회에 나올 거라곤 생각 안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무투 대회 자체가 별로예요. 상대에게 상처 입힌 걸로 칭찬을 받는데, 그게 뭐가 좋은가요?”
평화주의자네.
베라가 안 나가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하면 나야 좋다.
가급적이면 인파가 많이 몰리는 쪽으로 최대한 베라를 내보내지 않는 게 나의 목표니까.
하지만 한 명도 안 나가겠다고 하는 건 의외다.
‘어쩔 수 없지. 가르시아보고 나가라고 할까?’
가르시아는 나를 향한 충성심이 매우 높다.
싫다 해도 내가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나갈 녀석이다.
라비에게 가르시아를 불러 달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드레인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지 말고 대장이 직접 나가는 게 어때? 아까 나갈 이유가 없다고 했지?”
“네, 그랬죠.”
“내가 보기에는 대장이 모르는 거 같은데……. 일단 말은 해 줄게. 거기 무투 대회에 나가면 우승자에게 특별한 상품이 주어지거든. 상품은 무투 대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공개돼. 엊그제 상품이 뭐가 걸려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대장이 좋아할 만한 물건이 우승 상품으로 나왔어.”
내가 좋아할 만한 물건?
‘그게 뭔데. 돈?’
설마.
“벨라시오닉의 보물입니까?”
“잘 알아맞히네.”
이러면 이야기가 많이, 아주 많이 달라진다.
안 그래도 나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필요하다.
용신단의 성장이 너무 더디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상품으로 걸면 냄새를 맡은 추종자들이 올지도 모르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라도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라비!”
나는 다시 급하게 라비를 찾았다.
“네, 대장님, 오늘따라 저를 굉장히 많이 찾으시네요.”
“그러려고 너를 고용한 거니까. 내일모레까지 참가자 받아서 보내야 한다고 그랬지?”
“그랬죠.”
“내 이름 적어 둬.”
“대장님 이름을요? 안 나가신다면서요?”
“원래 남자의 마음은 갈대 같아서 언제든 변하는 법이야. 잘 기억해 둬.”
“……별로 귀담아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요. 아무튼 알았어요. 대장님 이름으로 올릴게요.”
“부탁할게.”
용병 무투 대회라…….
소설 속에서는 용병들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도 없고 자주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투 대회라는 것도 나에겐 생소하게 느껴졌다.
‘뭐, 몰라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알게 되겠지.’
백 번 말해 봤자 이해 못한다.
한 번의 실행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는 법이니까.
* * *
용병 무투 대회는 네플릿이라는 도시에서 개최된다.
대회까지 앞으로 D-2.
그전에 나와 리오나는 미리 네플릿에 도착해 숙소를 잡아 뒀다.
현지 적응을 겸해서 미리 온 것이다.
우리만 온 건 아니었다.
S팀에서 첸버가 합류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임스를 비롯해 B팀 용병들도 얼굴을 비췄다.
우리 팀도 마찬가지였다.
가르시아와 드레인, 그리고 파이스. 이렇게 세 명이 나와 함께 네플릿을 찾았다.
용병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구경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델리피나 대륙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용병 조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탓에 잦은 교류의 장이 열렸다.
첸버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영업의 목적이 강했다.
나머지는 그냥 순수하게 놀러 온 거다.
우리가 있는 술집 가게 안에도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가나 용병밖에 안 보이네.’
이렇다 보니 트러블이 꽤 자주 발생했다.
“어쭈? 고작 하급 용병 주제에 감히 우리와 말을 섞겠다고?”
“얼씨구! 네가 무슨 귀족이냐? 같은 용병끼리 왜 이러셔!”
“너랑 내가 왜 처지가 같아? 오늘 내가 네놈을 확실하게 교육시켜 주마! 애들아! 무기 들어!”
우리가 여기 가게에 들어온 후로 벌써 세 번째 패싸움이 벌어지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가게 주인은 ‘나가서 싸워, 버러지 녀석들아!’라고 크게 호통을 쳤다.
이제는 용병들의 이런 충돌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가 보다.
거친 용병들이 세계는 언제 봐도 흥미진진하다.
‘지루할 틈이 없네.’
세상에서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 그리고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싸움 구경을 안주삼아 술을 기울였다.
반면 리오나는 미간을 팍 찡그렸다.
“……조용히 좀 마시고 싶은데.”
“포기하는 게 좋아. 여기서 조용히 술 마실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어휴, 정말…….”
한숨을 푹푹 쉬는 리오나였다.
그렇게 우리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찰나였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뭐지, 설마 나한테 시비를 걸어오는 배짱 좋은 용병이라도 있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는 얼굴이 보였다.
“저번에 그 무식남이잖아?”
“무식남이 아니라 얀이라고, 얀! 이름 정도는 기억해 줘라.”
수수께끼 던전에서 트롤짓 제대로 했던 그 녀석이다.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거야말로 악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