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84화 (84/240)

# 84

카인을 찾아서 (2)

카인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마일의 한쪽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혹시 제가 아는 그 대예언가 카인이 맞습니까?”

“잘 아네. 그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

“흐음.”

뭐지? 반응이 굉장히 미적지근하다.

“찾아봐 드릴 수는 있습니다. 단.”

“단?”

“베르투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아닙니다. 저번에 로인 님께서 말씀하셨던 라켈 광산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 정보를 몰랐던 것처럼 제아무리 베르투의 현자들이라 하더라도 모르는 정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걸로 봐선 이런 말을 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모르니까 못 찾겠다고?”

“어흠!”

괜히 헛기침을 하는 걸로 보아선 내가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나 보다.

뭐, 모를 수도 있지.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니까.

“일단 의뢰를 하셨으니, 제가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카인의 소재지를 알게 된다면, 로인 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연락은 어떻게? 또 표식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해?”

“제가 건네준 물건 중에 수첩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십니까?”

“어, 물론. 이거 아니야?”

나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보여 줬다.

혹시 몰라서 가지고 나왔다.

“수첩 중에 파란색 종이 재질로 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수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수첩과 같은 수첩을 꺼냈다.

이후, 파란색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자.

“엇?”

내가 들고 있던 수첩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가 이 종이에 대고 글자를 쓰면, 로인 님이 가지고 있는 수첩에도 동일한 문자가 쓰입니다. 원거리 연락에 딱 최적화된 수단이라 할 수 있죠. 단, 어디까지나 글씨만 볼 수 있을 뿐, 목소리는 전달 못합니다.”

“반대로 내가 여기 종이에 글자를 적는 건?”

“그것도 가능합니다.”

“왜 나한테 설명 안 해 준 거야?”

“수첩 사용 설명서에 분명 적혀 있었을 겁니다.”

“…….”

미안. 사실 그것까진 귀찮아서 확인 안 했어.

가전제품 주의사항을 누가 일일이 다 읽어 보나.

그냥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사용하는 거지.

“들어오는 정보가 있으면 수첩으로 바로 적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수첩에 새로운 문구가 적히면 반지에 불빛이 들어올 겁니다. 그걸 보고 확인하시면 됩니다.”

“알았어. 언제까지 알아봐 줄 수 있어?”

“예상 소요 기간은……. 글쎄요, 솔직히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지라……. 일단 일주일 정도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찾든 못 찾든 일주일째가 되면 현재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

현자라 불리는 양반이 설마 사람 하나 못 찾을까.

게다가 타깃은 델리피나 대륙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자, 대예언가 카인이다.

베르투의 저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 * *

그러나 내 믿음과 달리 일주일이 다 되어 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설마 베르투조차 못 찾는 건가?’

이러면 곤란하다.

델리피나 대륙 최고의 정보 조직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선언해 버리면, 나는 카인의 발톱조차 찾을 수 없다는 뜻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내 계산이 크게 틀어지는 결과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반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반지가 빛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드디어 반지에서 불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왔구나, 왔어!’

바로 수첩을 펼쳤다.

파란색 종이 부분에 글자가 메모되어 있었다.

-자신을 카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를 찾긴 찾았습니다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셔서 저와 같이 확인해 보시죠.

찾긴 찾았는데 이자가 진짜 카인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모른다……는 뜻인가?

뭐 이런 무책임한 대답이 다 있나 싶었다.

그래도 비슷한 사람이라도 찾은 게 어디인가?

그 날고 기는 파랑새는 비슷한 사람조차 찾지 못했는데.

마침 거리도 멀지 않았다.

나는 마일이 보내온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말을 타고 반나절을 달린 끝에 도착한 어느 작은 마을.

마침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일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 왔다.

“여기입니다, 로인 님.”

마을 주민들은 가면을 쓴 마일을 상당히 수상쩍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가면 쓰고 다니면 오히려 주목도가 더 올라간다고 그랬잖아.’

말에서 내린 나는 마일에게 다가갔다.

“카인은 어디 있어?”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설마 또 현자의 방이니 뭐니 하는 곳으로 이동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하, 그곳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웬만하면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자의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베르투의 대현자, 현자, 그리고 회원으로 인정받은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카인이라 하더라도 베르투의 회원이 아니라면 현자의 방에 들어올 수 없지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는 제법 웅장해 보이는 저택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곳에 카인이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카인이라 주장하는 자’입니다. 아직 카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확인하면 될 일이니까.

마일이 먼저 문을 노크했다.

똑똑.

“예, 누구세요?”

하녀 한 명이 등장했다.

델리피나 전기에서 카인이 부잣집 설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묘사된 적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통틀어 봐도 그런 건 없는데.

하녀는 마일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저번에 찾아오셨던 그 현자님 맞으시죠?”

“예,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안 그래도 카인 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참 나, 그토록 찾아 헤맸을 때에는 없더니만 이제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안으로 따라 들어간 우리들.

머지않아 한 남자와 조우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게! 방랑자들이여. 나, 카인을 찾아온 게 자네들이라 들었네.”

“…….”

남자를 보자마자 할 말을 잃었다.

서울역이었나, 신도림역이었나?

미팅 때문에 잠깐 그 근처에서 작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딱 눈앞에 있는 남자처럼 싸구려 점술가 콘셉트로 코스프레 하고선 ‘당신의 미래가 보인다, 보여!’라고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절로 떠올랐다.

앞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 한 거대한 수정구가 있었다.

남자는 양손으로 수정구를 어루만지면서 ‘크크큭’ 하는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저 웃음소리는 반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인가 보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자기소개라도 하는 게 도리 아니겠나.

“안녕하세요. 저는…….”

“쉿! 나는 자네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네. 블루로즈단 R팀의 대장, 로인 아닌가?”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마일이 내게 속삭였다.

‘이미 제가 다 알려 준 정보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

아는 정보 가지고 자신의 점술 능력으로 밝혀냈다는 것처럼 꾸며 내고 있으니 점점 더 신빙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 아깝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당신이 정말로 대예언가 카인입니까?”

“그렇다네! 나의 예언은 델리피나 대륙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뛰어나고 정확한 편이지. 참고로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바라인 전투를 예견한 것도 나라네.”

대예언가 카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

벨라시오닉의 타락을 예고하고 바라인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언했던 것.

그 덕분에 인류는 칠흑에게 잠식당한 벨라시오닉에게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카인의 덕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카인을 본 적은 없다.

세간에는 ‘카인이 실존 인물인가?’ 하는 의심의 여론도 적지 않았다.

최고의 정보 집단이라는 베르투조차 카인과 접점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일은 내게 이 의뢰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눈앞의 남자가 진짜 카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지녔다.

‘만약 이 남자가 정말로 카인이라면, 델리피나 전기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겠지.’

현재를 기점으로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일을 하나 언급한다.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된다.

“당신에게 여쭤볼 게 있습니다.”

“어허! 복채는 주고 물어봐야지.”

“…….”

돈을 밝히는 대예언가 카인이라…… 이 말이지.

어쩐지 이 남자가 으리으리한 저택에 떵떵거리며 사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나는 군말 없이 1만 제피를 내밀었다.

남자는 빠르게 돈을 챙겼다.

“이제 물어보도록.”

“2주 뒤에 센트럼이라는 요새에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을 겁니다. 혹시 알고 있습니까?”

“모, 몬스터의 습격? 센트럼……?”

“질문을 바꿔 보죠. 센트럼이 어디에 있는 요새인지는 아십니까?”

“아, 알다마다! 그, 그곳에 몬스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거라는 것도 잘 알지! 암!”

‘뻥 치시네.’

반응만 봐도 안다.

“그럼 어떤 몬스터가 센트럼을 습격할지도 아십니까?”

“크흠…….”

만약에 정말로 이 남자가 대예언가 카인이라면, 여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오, 오크! 오크들이 습격해 올 게야! 위험하다, 위험해! 부정한 기운이 몰려오는구나!”

틀렸다.

정답은 ‘그런 습격은 애초에 없음.’이다.

센트럼이라는 요새는 실존한다.

그러나 센트럼은 여태껏, 그리고 앞으로도 몬스터의 습격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2주 뒤에 내부 반란으로 인해 알아서 자멸할 테니까.

나는 말없이 마일을 바라봤다.

분위기만 봐도 어떤지 마일은 바로 알아차렸다.

“죄송합니다. 꽝이군요.”

* * *

그밖에 자신을 대예언가 카인이라 주장하는 자들을 몇몇 더 만나 봤다.

그러나 하나같이 전부 다 카인의 명성을 등에 업고 돈벌이나 하려는 잔당들뿐이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오늘까지 총 일곱 명의 카인 후보자를 만나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땡이다.

마일은 나를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 사과의 말을 전달해 왔다.

“로인 님께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분명 유력한 후보들로만 골라서 소개시켜 드리는 건데……. 로인 님과 대면하게 되면 밑천이 금방 드러나게 되는군요.”

당연하다.

왜냐하면 나는 카인이 적은 소설의 내용을 일부 알고 있으니까.

그중 하나만 골라잡아 물어봐도 이자가 정말로 카인이 맞는지 아닌지 금방 구분이 가능하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카인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델리피나 전기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가인데. 그럼에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확실한 후보로 골라서 알려 줘.”

“예, 로인 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일을 떠나보낸 뒤 나는 사무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생각이 많아지려고 한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던 찰나에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안에 계세요?”

사무원 라비의 목소리였다.

“있어. 무슨 일이야?”

“첸버 씨한테서 급한 의뢰서가 도착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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