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카인을 찾아서 (1)
크라켄을 쓰러뜨리고 위풍당당하게 다시 텐츠 항구로 돌아오는 우리들.
웨일과 상단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을 격하게 반겨 주었다.
“고생 많았네, 참으로 고생이 많았어! 역시 자네들에게 이번 토벌 의뢰를 맡긴 게 정답이었군! 하하하!”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웃음소리로 표현하는 웨일.
내가 여태껏 본 웨일의 미소 중에서 가장 해맑고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하기야 이제부터 웨일은 신대륙 항로 개척을 통해 많은 돈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다.
“웨일 님. 저와 했던 이야기는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나, 대상인 웨일이야! 장사도 정정당당하게 하는 남자라고.”
알지요. 잘 압니다.
웨일은 어디 가서 뒤통수 때릴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웨일 상단을 키울 때에도 그는 야비한 태도로 상단을 운영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우직하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왔다.
그 신념이 웨일에게 대상인이라는 명예와 많은 돈을 가져다줬다.
웨일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두는 편이 훗날을 위해 좋다.
배에 끌고 온 크라켄의 사체는 항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세상에…… 저게 그 유명한 크라켄이야?”
“게다가 에픽이라던데?”
“와, 대박! 저거 팔면 어마어마할 텐데.”
그러고 보니 크라켄 사체의 소유권을 정하지 못했다.
쓰러뜨린 건 라스다.
웨일은 크라켄의 사체까지 탐을 낼 생각은 없다고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라스 것으로 정해지는 건가?’
……라고 생각했으나.
“저건 로인 씨 겁니다.”
의외였다.
라스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뒤에서 라스의 일행인 카이딘이 ‘너, 미쳤냐? 저걸 우리가 왜 포기해!’라고 꽥꽥 소리 질렀지만, 라스는 아주 깔끔하게 무시했다.
“로인 씨가 없었더라면 크라켄은 잡지도 못했을 겁니다. 크라켄을 유인하는 작전도, 그리고 크라켄을 잡기 쉽게 만들어 준 것도 전부 다 로인 씨의 덕택입니다. 그러나 로인 씨가 소유권을 가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래도 됩니까?
나는 라스에게 다시 한번 의사를 물었다.
라스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리고 이것도 가지시길.”
봉투 하나를 건네는 라스. 말캉한 무언가가 안에 들어 있었다.
“크라켄의 마나 심장입니다. 이것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카이딘이 뒷목 잡고 쓰러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긴, 아이템 헌터로 활동하는 카이딘의 입장에선 라스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잘 알 거다.
크라켄의 사체는 값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가를 자랑한다.
마나 심장은 크라켄의 부산물을 합친 것보다 더 비싸다.
아마 내가 크라켄의 마나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마법사 길드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부르는 대로 줄 테니 제발 팔아 달라고 사정을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굉장히 희귀한 아이템이다.
-너무 아무것도 안 가지시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라스가 없었더라면 크라켄을 잡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라스가 크라켄의 사체든 아니면 마나 심장이든 둘 중에 하나라도 가져가기를 원했다.
하나 로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는 칠흑을 쓰러뜨릴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좋은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 저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나 심장을 넘긴 뒤, 라스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라스가 왜 칠흑에게 이토록 깊은 증오를 품고 있는지 나는 잘 안다.
주인공, 라스의 숨겨진 과거.
아무도 모르는 그의 슬픔.
칠흑이 최초로 잠식했던 숙주.
그는 바로…….
‘테이른, 라스의 아버지였지.’
라스, 그는 지금…….
복수의 길을 걷고 있다.
* * *
크라켄 토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덕분에 라그너의 입꼬리는 거의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라그너는 지금 눈이 뒤집혀 있는 상태였다.
그럴 만도 했다.
크라켄의 부산물에 신항로 개척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까지 얻게 되었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부풀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정말로,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로인 님! 진짜 로인 님 없었으면 제 인생은 그날, 그 술집에서 끝났을 겁니다. 로인 님 덕분에 요즘 살 맛 납니다! 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가만히 있어도 라그너가 알아서 돈을 벌어다 주니 나도 기쁘다.
“크라켄의 마나 심장은 내가 가질게.”
“물론이죠! 로인 님, 고생 많이 하셨는데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땡큐! 크라켄 사체는 네가 알아서 잘 처분해 줘.”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상담 드릴 게 있습니다만…….”
“뭔데?”
“상담이라고 해야 좋을지…….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인재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쓸 만한 인재가 있으면 언제든 내게 보고하라고 말을 전해 뒀었다.
상단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여기에 걸 맞는 인재 영입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돈도 중요하지만, 인재가 있어야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법이다.
“누군데? 말해 봐.”
“로인 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알이라고 하는데. 기억나십니까?”
“알다마다.”
라켈 광산을 우리에게 헐값에 넘겼던 그 녀석이잖아? 모를 리가 있나?
“예전부터 그자를 눈독들이고 있었는데, 이번에 신대륙 건은 나알에게 맡겨 볼까 합니다.”
“괜찮겠어? 그 사람, 사업 여러 번 말아먹었잖아.”
“사업이라는 게 원래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횟수가 더 많은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랬고요. 능력 하나는 출중한 자입니다.”
“그래? 알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감사합니다, 로인 님.”
상단 쪽은 라그너에게 전적으로 맡겨도 문제없이 잘 굴러간다.
웨일의 뒤를 이어 제2의 대상인이라 불릴 남자가 바로 라그너다.
나는 그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 꾸준히 제공해 주면 된다.
나머지는 라그너가 알아서 잘해 줄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고.
볼일을 마친 모양인지 라그너는 내게 인사를 하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잠깐만.”
“예, 로인 님. 볼일이 또 있으신지요?”
“너, 베르투 이용해 본 적 있다고 했지?”
“네, 회원이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베르투는 내게 있어서 베일에 싸인 존재와 같았다.
아는 게 없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도 언급조차 안 됐던 조직이다.
그래서 베르투에 관해 가급적 많은 걸 알아 두고 싶었다.
“베르투는 어떤 곳이야?”
“원하는 정보를 정보로 교환해 주는 조직입니다.”
“믿을 만한 녀석들인가? 정보의 신뢰도라든지. 그런 거 중요하잖아.”
“로인 님께서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베르투의 정보는 정확합니다. 이건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직접 베르투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라그너가 하는 말이니 믿음이 갔다.
그렇다면 베르투에게 의뢰 한번 넣어 볼까?
* * *
베르투를 호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반지와 같은 문양이 새겨진 표식을 찾으면 된다.
찾아서 문양 위에 반지를 올려놓으면, 순간 이동 마법진이 활성화되면서 회원의 담당 현자가 저절로 호출된다고 들었다.
반지가 표식을 찾아 준다고 했다.
‘모든 것은 반지의 뜻대로…… 인가.’
무슨 반지 원정대도 아니고.
책상 서랍에 넣어 뒀던 반지를 찾아 손가락에 착용했다.
그러자 반지 위에 새겨진 문양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움직이던 선들은 이윽고 화살표로 모습을 바꿨다.
‘이런 뜻이었군.’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마일이 뭔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이제 와서 얼추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화살표를 따라 이동을 개시했다.
베르투의 표식은 델리피나 대륙 모든 마을과 도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울도 마찬가지일 터.
분수대를 지나 골목 쪽으로 향했다.
코너를 돌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벽의 한쪽 면에 반지와 같은 문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저 표식에 반지를 가져다 대면 된다고 했지?
표식 위에 반지를 올려놓자, 벽에 새겨진 문양의 크기가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순간 이동 마법진이 절로 그려졌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강한 빛이 발현되면서 한 남자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입니다, 로인 님.”
“그러게. 만나서 반가워.”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그럼에도 마일은 불쾌하다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원하는 정보가 있어.”
“오호, 첫 거래군요.”
현자 마일은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뜻이었다.
실제로는 가면을 쓰고 있는 터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념비적인 첫 거래의 순간인데 이런 허름한 공터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기에는 좀 그런 거 같군요. 장소를 옮길까요?”
“그러는 게 좋겠어. 근처에 조용한 카페가 하나 있으니, 그곳으로 옮기지.”
“아니요, 듣는 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괜찮은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장소를 가지고 있다?
표현 방법이 조금 이상했다.
마일은 순간 이동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간 이동 마법진은 다시 한번 빛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마일의 팔이 벽을 통과했다.
팔을 시작으로 몸통, 그리고 다리까지.
마일은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뭐냐, 이건.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마일을 따라 나도 순간 이동 마법진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오…….”
낡은 서재였다.
특징이 있다면 책이 책장과 의자, 그리고 책밖에 없다는 점이랄까?
창문조차 없어서 바깥이 어떤 풍경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문도 없다.
마일은 먼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곳은 순간 이동 마법진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의 장소. 속칭 ‘현자의 방’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대화를 나누면 정보가 누설될 걱정은 없지요.”
“그렇게 보이긴 하네.”
창문도 없고, 출입문도 없고. 심지어 벽에 소음 방지 마법진들까지 이 중, 삼 중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서 주고받는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걸 원천봉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보통 현자들과 베르투의 회원들은 이곳에서 정보 거래를 합니다. 앞으로 로인 님과 저도 이곳에서 서로의 정보를 사고 팔 예정이니 금방 익숙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해 볼게.”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일단 앉으세요. 아, 계속 서서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그럴 리가?”
누가 서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나?
나는 곧장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마일은 턱을 괴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내가 베르투를 찾은 이유.
그리고 어쩌면 델리피나 대륙의 운명을 크게 뒤흔드는 존재일지도 모르는 남자.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카인이라는 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줘. 그게 내가 원하는 정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