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82화 (82/240)

# 82

크라켄 토벌 (3)

늦은 밤, 나는 사람들을 다시 소집시켰다.

자다가 도중에 불려 온 선장 카를은 노골적으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회의는 내일 하자고 했을 터인데…… 왜 부른 거요?”

“찾았습니다.”

“찾다니, 뭐를?”

“크라켄이 우리를 습격해 오지 않았던 이유를요.”

순간 사람들의 눈이 번뜩였다.

나는 이들에게 정답을 알려 줬다.

“바로 메리안입니다. 메리안을 안 싣고 있어서 크라켄이 우리가 탔던 배를 무시했던 거예요.”

“…….”

사람들의 눈빛은 기대감에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어렵게 찾은 정답을 알려 줬구먼.

카를은 헛웃음을 지었다.

“혹시 꿈꾸다가 온 거요? 내가 보니까 당신, 잠이 덜 깬 거 같은데.”

“잠이 덜 깬 쪽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죠.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탄 배에는 없고 다른 배에는 다 있는 것. 메리안밖에 없잖아요?”

“신대륙에서 가져온 무역품도 있을 수 있잖소?”

“모두가 다 똑같은 품목을 싣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혹시 몰라서 여태껏 신대륙을 오고갔던 배들이 싣고 온 품목들을 다 조사해 봤습니다. 하나같이 다 달랐어요. 대신 유일하게 메리안은 모든 배에 다 실려 있었죠.”

“으음……!”

카를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의심을 받을까 봐 나는 확실한 증거를 가져왔다.

이 자료들을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 탓에 새벽 2시에 이들을 소집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정보이니만큼 최대한 빨리 알려 주고 싶었다.

잠자코 있던 웨일이 내 편을 들어 줬다.

“설득력이 있군. 그럼 다음 출항에는 자네 의견대로 메리안을 가득 실어 보도록 합세.”

여기서 웨일의 말은 곧 법이다.

왜냐?

그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니까.

카를은 군말 없이 웨일의 명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로써 우리의 두 번째 출항이 결정되었다.

* * *

배 안에 가득 풍겨 오는 메리안 냄새.

카를과 선원들은 워낙 많이 맡아 본 냄새여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들이었다.

“어휴, 냄새……. 너무 지독한 거 아니에요?”

마스크를 뚫고 오는 냄새 때문에 에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여담이지만 마스크조차 흰색이다.

역시 화이트를 사랑하는 여자다웠다.

에나만 냄새로 고통받는 게 아니었다.

카를과 선원 이외의 사람들 모두가 고통받고 있었다.

특히 가르시아가 가장 문제였다.

뱃멀미에 메리안의 냄새까지 이중고를 겪는 가르시아.

갑판에서 열심히 속을 비워 내고 있는 가르시아의 등을 토닥여 줬다.

“그러니까 뭐 하러 따라온다고 했어? 그냥 육지에서 얌전히 쉬고 있을 것이지.”

“그, 그래도 대장님을 버리고 저 혼자 쉴 수는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막상 전투에 들어가면 이까짓 뱃멀미는…… 우웩!”

내가 못 산다, 정말…….

믿음직한 카드였다고 생각한 가르시아가 뱃멀미로 고생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메리안을 가득 싣고 다시 크라켄 포인트에 도착한 우리들.

여기서 나는 또 하나의 비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메리안을 매단 낚싯대였다.

냄새를 좀 더 널리 퍼트리기 위해 그리고 크라켄을 이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나는 낚시라는 수단까지 고안했다.

상대가 크라켄인 만큼 일반 낚싯대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특수 제작을 의뢰했다.

이름하야 대 크라켄 전용 낚싯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메리안을 매단 낚싯대를 던졌다.

갑판으로 나온 카를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선장 노릇만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지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보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고 이런 게 익숙한 줄 아나.

낚시는 많이 해 봤지만, 과일을 매달고 낚시를 하는 건 나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래도 확실하게 크라켄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선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낚싯대를 던진 지 근 1시간이 지났다.

“어엇?”

선원 한 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 물었습니다! 물었어요!”

“끌어올려, 어서!”

“선장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크라켄을 제가 어떻게 끌어올립니까?”

하긴, 말 된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지닌 크라켄을 일반 선원이 완력으로 끌어올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낚싯대, 저한테 넘겨요!”

“여, 여기 있습니다.”

선원에게 낚싯대를 건네받은 나.

받자마자 묵직함에 그대로 낚싯대를 타고 전달되어 왔다.

나조차도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일반인은 절대로 못 끌어올린다.

‘어디,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게감이 사라졌다.

선원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 떨어졌네.”

“이런.”

절호의 찬스였는데.

기회를 날린 것 같아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희망은 봤다.

놈은 메리안의 냄새에 반응한다.

역시 내 추측대로였다.

“자, 자, 자! 멍 때릴 시간 없습니다. 어서 낚싯대 다시 넣으세요!”

입질 왔을 때 계속 놈을 낚기 위한 시도를 이어 가야 한다.

“놈이 물었다 싶으면 바로 저를 불러 주세요.”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언제까지 바다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후딱 끝내고 다시 땅을 밟고 싶었다.

* * *

낚시를 다시 재개한지 2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입질만 2회를 받았다.

두 번 다 내 낚싯대가 아닌 다른 낚싯대에서 온 입질들이었다.

도중에 다시 낚싯대를 건네받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낚싯줄을 끊고 도망가 버렸다.

결국 해가 저물었다.

카를은 나와 라스에게 물었다.

“어쩔 겁니까? 해가 저물었는데 낚시 작전 계속 이어 갈 거요?”

이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해야죠.”

가능성이 보였다.

이 가능성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라질 것이다.

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오늘이 가장 높다.

라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시다.”

“하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크라켄과 전투를 벌이려면 고생 좀 할 텐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역시 주인공이다.

‘사이다 발언, 고마워요!’

참고로 해가 떨어졌을 때가 오히려 낚시가 잘된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다.

낚싯대를 집어넣고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불어오는 밤바람.

넓게 펼쳐진 바다 풍경.

참으로 평화롭다.

바다 밑에 크라켄만 없었더라면 한가로이 풍류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낚시 담당들이 하나둘씩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졸음과의 싸움도 병행해야 했다.

그 와중에 가르시아는 꾸준히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 차라리 집어라도 해 줘라.

“기왕 오바이트 할 거면 내 쪽에서 해.”

나는 가르시아에게 오바이트하기 좋은 포지션(?)을 선정해 줬다.

집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잠시 후.

“응?”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 감촉, 설마……!’

과감하게 챔질을 시도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왔다! 왔어! 히트!”

나도 모르게 모 낚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것처럼 소리 높여 외쳤다.

“놓치면 안 됩니다, 대장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나도 알아, 짜식들아!

크라켄과의 힘겨루기가 펼쳐졌다.

이 녀석, 역시 힘이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질 생각은 없다.

‘힘으로는 절대로 안 밀린다, 문어 대가리 녀석아!’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 냈다.

“으자차차차차차차차차!”

있는 힘을 다해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물기둥이 수면에서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아!

“녀석이다!”

“크라켄이 나타났다! 다들 전투 준비!”

가르시아가 골골대는 사이에 데미안은 용병들에게 전투태세를 명했다.

라스 일행도 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내가 할 역할은 낚싯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려서 크라켄의 대가리를 계속 수면 위로 들어 올리게 고정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팔이 부러질 거 같아!’

용신단 레벨이 12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크라켄은 나를 상대로 엄청난 힘을 뽐냈다.

“얼마 못 버텨! 후딱 없애!”

나는 간절하게 기원하듯 외쳤다.

에나의 빙결 마법과 엘라시아의 정령 마법이 크라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예상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갑자기 바닷물들이 얇게 펼쳐지더니, 장벽을 형성했다.

바다 장벽은 에나와 엘라시아의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카를은 놀라 외쳤다.

“에픽 몬스터라고?”

“시×, 일반 크라켄 상대하기도 힘든데, 거기에다가 에픽이라니!”

진짜 돌아 버리겠네!

소설 속에선 왜 크라켄이 에픽 몬스터라고 묘사가 안 되어 있던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R팀 전력을 전부 다 투입시킬 걸 그랬다.

그러나 우리에겐 에픽 크라켄을 뛰어넘는 엄청난 존재가 있었다.

“로인 씨, 1분만 더 버텨 주세요.”

라스의 부탁이었다.

주인공이 직접 내게 부탁해 오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1분이고 10분이고 버텨 봐야죠.

나는 두 다리를 고정시키고 본격적으로 힘겨루기 자세를 취했다.

적응이 되니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크라켄을 고정시켜 준 덕분에 라스는 어렵지 않게 놈에게 접근했다.

크라켄의 촉수들이 라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라스는 인페르노 하트의 능력으로 촉수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대단하군.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구나.’

크라켄은 수 속성 몬스터다.

불의 약점이 바로 물 아닌가!

그러나 라스는 상성을 초월한 불을 지니고 있었다.

나머지 촉수들은 반드와 카이딘이 알아서 처리해 줬다.

파이스도 큰 활약을 펼쳤다.

날아 들어오는 촉수를 향해 거대 스태프를 휘둘렀다.

“신의 곁으로 꺼져라! 문어 새끼야!”

빠각!

퇴마 공격(물리)을 한 대 얻어맞은 촉수는 정신 못 차리고 그대로 배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저 녀석, 진짜로 성직자 출신 맞나.

여하튼 덕분에 나는 더 수월하게 힘겨루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오른손에 불덩이를 생성시키는 라스.

“엘라시아! 부유 마법!”

“알았어요!”

바람 정령을 이용해 라스에게 부유 마법을 걸어 주는 엘라시아.

라스는 그 힘을 이용해 크라켄의 머리로 점프했다.

“문어 구이로 만들어 주마!”

그거 참 맛있겠네.

라스의 손에 붙어 있던 불덩이는 크라켄을 태워 가기 시작했다.

그때, 엘라시아가 카를과 선원들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크라켄으로부터 빨리 떨어지세요! 불이 옮겨 붙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아, 알았소!”

멍하니 전투를 지켜보던 카를은 그제야 선원들과 함께 바삐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배가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불붙은 크라켄의 촉수 하나가 배를 급습했다.

“이런……!”

미처 라스는 반응하지 못했다.

다른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들.

“저건 내가 해결해 주지!”

오른 주먹을 크게 내질렀다.

주먹질로 인해 형성된 풍압이 크라켄의 거대 촉수를 날려 버렸다.

풍압만으로도 엄청난 ‘넉 백’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휴즈에게 배운 권법 중 하나였다.

이름하야 ‘난 때리지 않았는데 네가 멋대로 넘어진 거니까 내 책임 아니다?’ 라는 이름을 지닌 이름이다.

놀랍게도 진짜로 휴즈가 알려 준 기술이다.

크라켄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을 때, 나는 카를을 찾았다.

“선장. 작살 줘요.”

“작살은 왜요?”

“왜긴요.”

나는 건네받은 작살을 들어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크라켄의 부산물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되지 않습니까? 돈 되는 건 다 챙겨야죠.”

바다에서 오래 고생했으니, 이제 고생한 보람을 챙길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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