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81화 (81/240)

# 81

크라켄 토벌 (2)

뱃멀미에 고통받고 있는 가르시아는 곧장 의무실로 후송되었다.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아무도 안 걸리는 뱃멀미에 쓰러지다니.

“가르시아, 너, 뱃멀미 안 한다며.”

“……죄송합니다, 대장님. 저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배는 수준이 다릅니다. 이건 뭐라고 해야 좋을지…… 우읍!”

“야야야! 의무실에서 오바이트하지 마. 할 거면 갑판에 올라가서 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대장님……!”

이럴 줄 알았으면 2소대 말고 1소대를 데려올 걸 그랬나?

아니지, 드레인은 뱃멀미를 한다고 했으니까 데려와 봤자 결과는 같았을지도.

아무튼 2소대를 책임져야 할 가르시아가 앓아누운 탓에 나는 임시 2소대장을 뽑아야 했다.

다행이도 2소대에는 제법 똑 부러지는 인재들이 많았다.

의무실을 나온 나는 부소대장 후보로 생각해 둔 자를 호출했다.

“데미안.”

“예, 대장님.”

“너를 이 시간부로 2소대 부소대장으로 임명한다. 가르시아가 앓아누웠으니, 네가 2소대를 잘 이끌어 줘.”

“네,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블루로즈단에 들어오기 전에 가르시아의 부관으로 활동했던 남자다.

가르시아의 밑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리라 생각해서 일부러 데미안에게 중책을 맡겼다.

사실 내가 2소대를 직접 이끌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나는 크라켄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2소대까지 이끌 여력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임시 부소대장을 정해 뒀다.

가르시아 뱃멀미 사건을 건너 건너 들은 걸까.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라스가 내게 걱정을 표했다.

“아까 들으니까 그쪽 부하 한 명이 뱃멀미로 앓아누웠다고 하던데……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

대답을 해 주고 싶어도 대답을 못하는 나를 원망하시오, 주인공느님이시여.

나는 말 대신 필담으로 답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잠시 혼전이 벌어졌지만, 이 정도 일은 내 선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라스는 갑자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몰래 듣는 귀가 있나 없나를 살펴보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이후에 라스는 가르시아 문제 말고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레이샤르 님에게 들었습니다. 로인 씨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랬겠지.

라스는 이미 레이샤르와 만난 사이다.

원래 본편에서는 2권 후반부에 등장하는 레이샤르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소설 속 흐름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두 존재는 서로 대면하게 되었다.

레이샤르가 내 칭찬을 열심히 해 준 덕분에 라스와 친밀도가 올라가긴 했지만, 대화를 나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레이샤르 님이 저를 좋게 보셨나 보군요.

“칠흑에 대해 레이샤르 님에게 많이 알려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것까지 이야기한 건가?

“이미 로인 씨도 알고 있겠지만, 저는 칠흑을 쫓고 있습니다. 칠흑을 찾아 제거하는 것. 그것이 저의 사명이죠.”

알고 있다. 왜냐하면 라스는 주인공이니까.

당신이 칠흑을 없애러 다니지 않으면 이 세상은 멸망한다고요.

“혹시 칠흑이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쓰러뜨릴 수 있는지……. 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나는 이에 대한 답을 들려 줄 수 없었다.

왜냐.

‘나도 모르니까.’

소설 1, 2권에선 칠흑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야기 초반부터 최종 보스의 존재, 태생, 그리고 약점까지 전부 다 공개되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없는 법이다.

만약 내가 마지막 권까지 소설을 정독했다면 칠흑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군요.”

라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에게는 나와의 만남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칠흑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그러나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세상 일이 마음 먹은 대로만 풀리란 법은 없다.

“나중에 칠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거든, 부디 저에게 꼭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전달해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웨일 님이나 라크스 공작님을 통해서 저에게 연락을 취하시면 됩니다. 그분들이라면 믿을 만하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괜히 주인공이 아닌가 보다.

당대 최고의 대상인, 웨일과 붉은 귀신이라 불리는 영웅, 라크스 공작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다니.

나는 두 사람과 친분을 다지기 위해 개고생을 했는데.

‘이런 걸 주인공 보정이라고 하는 건가? 이거, 서러워서 엑스트라 하겠나.’

라스에게 칠흑 건에 대해 협력하겠다고 확답을 준 순간.

-라스와의 친밀도가 소량 상승합니다.

친밀도가 올랐다.

그러나 아직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준치를 넘지 못했다.

나 언제 마스크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요, 주인공 양반!

좀 친해져 봅시다.

* * *

크라켄이 주로 출몰되는 지역에 드디어 도달했다.

닻을 내린 뒤에 배를 고정시켰다.

‘이제 여기서 크라켄이 나올 때까지 무한 대기하면 된다 이거지?’

그러나 1일이 지나고 2일이 지나고…… 5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주인공 일행 중 한 명인 카이딘이 카를에게 물었다.

“선장 양반, 정말로 여기서 크라켄이 나오는 거 맞아요?”

“이상한데? 분명 여기라고 들었는데.”

카를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아무리 강력한 토벌대를 구성하면 무엇하랴?

몬스터가 안 나타나는데.

아무런 의미 없다.

결국 배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선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카를을 찾았다.

“서, 선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뭔데? 크라켄이라도 나왔어?”

“네!”

“정말?”

나를 비롯해 토벌대 인원들의 귀가 번뜩였다.

그러나 주변은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갈매기 하나 날아다니지 않았다.

‘뭐야?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뻥친 거야?’

때마침 선장 카를이 선원을 나무랐다.

“이 녀석이 정신 나갔나! 없잖아!”

“그게 아니고요. 크라켄이 다른 곳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른 곳? 여기가 아니라?”

“네, 웨일 상단에 연락이 왔는데, 무역품을 싣고 가던 배가 또 습격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위치가 어디인데?”

선원은 지도를 펼쳐 카를에게 습격당한 위치를 표시해 줬다.

카를은 침음을 흘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인데? 일단 그곳으로 가 봐야겠군. 이보쇼, 원정대 여러분! 장소를 이동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소?”

나와 라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산이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그곳에 있다면, 우리가 가는 수밖에.

* * *

일주일을 더해 추가로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크라켄에게 농락을 당했다.

농락.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크라켄이 최근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장소를 골라 이동했다.

그러나 크라켄은 정작 우리 배는 가만히 놔두고 다른 선박들만 습격했다.

우리가 한 곳에 가장 오래 있었는데 먹기 좋은 먹잇감을 놔두고 왜 구태여 다른 먹잇감들에게 한눈이 팔리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탄 범선만 쏙 빼놓고 나머지 배들은 죄다 습격하는 크라켄.

편식이 심한 크라켄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텐츠 항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작전상 후퇴였다.

모두가 토벌 작전에 시무룩해할 때. 유일하게 하늘을 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었다.

바로 가르시아였다.

“육지를 밟을 수 있다는 게 이리도 소중한 경험일 줄이야!”

얼씨구. 잘 논다, 잘 놀아.

지금 임무에 실패해서 분위기 굉장히 안 좋은데 가르시아는 눈치도 없게 대지의 소중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크라켄과 마주치는 것조차 못하게 된 우리는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육지에서 크라켄 토벌 성공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웨일도 회의에 참가했다.

“이상한 일이군. 자네들이 탄 선박만 쏙 빼놓고 다른 배들만 골라서 습격하다니. 흐음.”

웨일도 이해가 안 되는가 보다.

솔직히 여기 있는 모두가 다 크라켄이 벌이는 기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에선 크라켄 토벌에 대한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라스는 웨일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항로 개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신항로 개척과 동시에 다시 한번 돈방석에 앉게 된 대상인, 웨일.

크라켄 토벌로 인해 두 사람의 신뢰 관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이게 끝이다.

라스가 어떻게 크라켄 사냥에 성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다.

‘혹시 라스가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지만 라스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크라켄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군요.”

어이, 주인공이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

네가 나서 줘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포기하면 안 되잖아.

회의 시간은 길어지기만 하고,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저녁.

밖으로 나온 나는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돌아 버리겠네.”

크라켄 토벌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까지 질질 끌 사건이 아니다.

“이러다가 다음 달도 바다에서 생활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크라켄이 우리 선박은 거들떠도 안 보고 다른 선박만 노리는 이유를.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크라켄은 지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우리가 탄 배를 보자마자 ‘아, 저 배는 위험하겠구나. 용병들이 잔뜩 타고 있으니 다른 배를 노려야지!’라고 생각할 만한 놈이 결코 아니다.

‘혹시 우리 배에 크라켄이 싫어할 만한 게 있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기껏해야 화약 냄새인데.

그러나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화약은 다른 선박들도 충분히 싣고 있었다.

좀 더 생각해 보자. 분명 답이 나올 거다.

머리도 쐴 겸해서 잠시 항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번에 봤던 그 외지인 청년 아니여?”

나에게 메리안을 다량으로 팔아넘기려 했던 그 과일 장수 아저씨다.

이번에도 한몫 단단히 챙긴 모양인지 돈주머니가 두둑해 보였다.

“많이 파셨어요?”

“물론이지! 보면 몰라?”

잘 압니다, 잘 알아요.

“뭐가 주로 많이 팔려요?”

“메리안이지.”

“그 냄새나는 과일이요?”

“메리안이 선원들에게 인기가 많거든. 자네도 맛 봐서 알잖아? 달콤하면서 상큼하고, 시원하고, 그리고 살짝 매콤하기까지 하고.”

맛을 묘사하는 솜씨가 글러먹었구먼, 이 아저씨.

결론은 맛있다는 소리다.

직접 먹어 본 내가 보장한다.

“선원들이 메리안을 그렇게 좋아해요?”

“그러엄! 보관이 용이하기도 하고 잘 썩지도 않아서 선원들이 많이 좋아하지. 생각해 봐. 배에서 과일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래서 인기가 많은 거지. 메리안을 안 사 가는 건 자네가 탄 뱃사람들밖에 없어. 다른 배들은 출항할 때 꼭 사 간다니까.”

……잠깐만.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응? 선원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아니요. 마지막에 한 말이요.”

“메리안을 안 사 가는 건 자네가 탄 뱃사람들밖에 없다고, 다른 배들은 출항할 때 꼭 사 간다고…….”

올커니! 드디어 찾았다!

다른 배들에겐 있고, 우리 배엔 없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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