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음유 시인 세이라 (4)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싫다고 할 때의 그 느낌과 비슷했다.
세이라는 잘나가는 음유 시인이다.
델리피나 대륙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음유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콘서트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노래 부르기 싫어서 도망쳤다?
솔직히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원래부터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나?
“아니요. 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지금도 좋아해요. 어머니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노래 부르는 것 자체를. 하지만…….”
세이라는 잠시 말을 끊었다.
말하기 곤란한 무언가라도 있는 건가.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던 세이라.
머지않아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는 이유를, 그리고 공연을 앞두고 도망친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전…… 제 능력을 잘 조절할 수 없어요.”
-목소리에 마력이 묻어나오는 거 말인가?
“네, 아까 당신도 봐서 알죠? 제 목소리는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전 제 노래가 무기로 이용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부르는 노래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불안감은 예전부터 쭉 지속되었죠. 그래도 어찌어찌 잘 버텨 왔어요.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쥔 세이라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이번 공연은 제가 음유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규모가 큰 공연이에요. 그런데 만약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다가 제 힘이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의 노랫소리가 듣고 싶어서 찾아온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세이라는 이 ‘만약에’라는 사태를 참고 견뎌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망쳤다.
자신을 위해서.
아니,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을 위해서.
“솔직히…… 자신 없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 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힘을 컨트롤할 자신도 없어진 거예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공감은 한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든 점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없다면, 왜 이런 공연을 기획한 거지?
“제가 아니라 저와 함께 움직이는 악단이 기획한 거예요.”
-그들은 네 힘을 모르나?
“네, 몰라요. 제 힘을 아는 이는……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뿐이니까요.”
고아인가?
차마 두 사람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까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약해진 상태인데, 안 좋은 기억까지 꺼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골치 아프네.
그래도 의뢰를 받은 이상, 어떻게든 세이라를 데려가야만 했다.
사실 데려가기만 해도 된다.
그다음에 그녀가 무대에 서는 것까지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받은 의뢰는 세이라를 공연장으로 제시간 안에 데려와 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냉혈한이 아니다.
가슴 아픈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그냥 모른 척 지나가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이거 받아.
나는 세이라에게 초커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뭔가요?”
-아이템. 네가 지금 착용하고 있는 팔찌와 같은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야. 오히려 효과는 더 강력하지. 네 마력을 억제시켜 줄 수 있을 테니까 그걸 착용하고 있는 상태에선 마음껏 노래를 불러도 돼.
“네? 이런 아이템을 도대체 어디서…….”
-칼바의 용암 동굴에 있던 아이템 중 하나야.
“칼바?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설마 당신, 로인이라는 사람인가요?”
뭐야, 나 꽤 유명하잖아?
잘나가는 음유 시인 아가씨조차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이야.
나는 그제야 내 팔목 보호대를 보여 줬다.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마크와 내 이름이 밑에 적혀 있었다.
“어쩐지……. 보통 사람치고는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데이비드가 이 짧은 시간에 대단한 분에게 의뢰를 했네요. 그보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어떻게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실례를 저질렀어요.”
-괜찮아. 아무튼 그 초커만 있으면 네 힘이 폭주할 일도 없을 테고. 그러면 안심이겠지.
“네, 고마워요.”
-공연장으로 갈 거지?
“물론이죠!”
세이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대화가 필요하다니까.’
힘보다는 대화가 문제를 해결할 때 용이할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닐까?
* * *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온 세이라는 당당하게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녀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엄청난 환호성으로 세이라를 반겼다.
문제를 해결한 나도 일행들과 나란히 앞줄에 앉아 그녀의 무대를 구경했다.
노래를 부를 때의 세이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있었다.
‘괜히 잘나가는 음유 시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만약 세이라가 내가 살고 있던 현실 세계에 똑같이 가수로 데뷔했다면 분명 떼돈을 벌었을 거다.
‘시대를…… 아니, 차원을 잘못 타고났다는 게 좀 아쉽네.’
공연이 끝난 후 세이라는 내게 다가와 고마움을 표현했다.
“로인 님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세이라와의 친밀도가 대량 상승합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소 기준치를 넘었습니다. 이제부터 세이라와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은혜는 무슨, 이미 충분히 갚았구만.
“아아아.”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세이라는 놀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로인 님, 말 못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원래 낯선 사람을 보면 말을 잘 못해. 좀 친해지고 나서야 말문이 트이는 특이 체질이라서 말이야.”
“그, 그렇군요. 확실히 특이하네요. 여태껏 이런 분은 본 적이 없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나도 세이라 같은 여자는 본 적이 없다.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서 공격하다니.
심지어 세이라는 마법을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
마력 컨트롤이 안 되니까 목소리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중에 마법 교육 같은 거 받아 봐. 그러면 마력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래도 이 아이템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초커를 가리키는 세이라.
여기서 세이라에게 숨겨 왔던 비밀 하나를 밝히기로 했다.
“사실 그거 그냥 일반 초커야. 마력 제어 같은 효능은 없어.”
“네? 하지만 그때는 분명…….”
“너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야. 봐 봐. 스스로 충분히 마력을 제어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아이템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노래할 수 있을 거야.”
세이라에게 용기를 심어 주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세이라는 일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나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못됐어요, 로인 님.”
“놀리려고 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건 선물로 줄게. 부적으로 가지고 있어.”
“알았어요. 로인 님이 모처럼 주신 거니까, 공연할 때마다 차고 노래할게요. 왠지 이거 착용하고 나면 노래를 부를 때 편안해지더라고요. 안심이 된다고 할까요? 좋은 선물 고마워요.”
“천만에. 그럼 나중에 기회 되면 또 보자.”
“네!”
세이라는 악단 인원과 함께 무대를 뒷정리하기 위해 바쁘게 자리를 떴다.
사실 세이라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있었다.
저 초커는 정말로 마력 억제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세이라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이템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마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기 위해서.
‘나중에 세이라가 마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다면, 저 아이템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겠지.’
그때가지는 그냥 비밀로 하기로 했다.
모처럼 얻은 용기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 * *
세이라의 공연이 끝난 후 나는 라크스 공작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라크스 공작은 레미와 함께 이미 마차에 올라 타 있었다.
“리오나, 너는 같이 안 가?”
“나는 이대로 단원들과 함께 다른 의뢰를 수행하러 갈 거야.”
“그래? 피곤하겠네.”
“용병이니까.”
라크스 공작은 리오나가 같이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리오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첫째도 네 목숨이 우선이고, 둘째도 네 목숨이 우선이다. 항상 너 자신을 우선으로 삼아라. 알겠나.”
“명심할게요. 공작님.”
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리오나에게 이렇게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모양인지 라크스 공작은 내게 따로 부탁을 했다.
“아무쪼록 리오나를 잘 보살펴 주게. 자네만 믿겠네.”
“걱정하지 마세요, 공작님. 리오나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낯 뜨거운 대사를 잘도 내뱉는구나, 나란 녀석은.
그래도 라크스 공작은 내 말에 크게 안심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밥이나 같이 먹지. 저번보다 더 좋은 음식들로 마련해 둘 테니.”
“예, 공작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라크스 공작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최대 친밀도까지 20 남았습니다.
오, 생각보다 조금 남았네?
안 그래도 히든 칭호 퀘스트 때문에 나는 조연급들 등장인물과 친밀도를 쌓아 둬야 한다.
이런 와중에 라크스로부터 많은 호감을 사게 되었다.
좋은 현상이군.
* * *
나울로 돌아오고 난 뒤부터 드레인의 상태가 이상했다.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너무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업무를 보고 있던 와중에 사무원 라비가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장님.”
“어, 왜, 무슨 일 있어?”
“드레인 씨가 1층 로비 벽에 세이라 씨의 포스터를 붙여도 되냐고 물어봐 달라고 하던데요.”
“그거, 벌써 열일곱 번째 문의 아니야?”
심지어 내용도 똑같다.
“드레인 씨의 말로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던데요.”
아니, 이미 10번을 훨씬 넘겼다고.
“안 된다고 해.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찾아와서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선배가 같은 문의를 계속 넣으면 그 자리에서 붙이지 말라고 대답해. 내가 허락할게.”
“네, 대장님.”
이상한 쪽으로 텐션이 높아져서 큰일이네.
세이라를 보고 온 게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삼촌팬’이라는 게 왜 생겨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대장님,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아직 볼일이 다 안 끝난 거야?
“3일 후에 크라켄 토벌 나가시잖아요. 데리고 나갈 R팀 용병들 최종 명단을 제가 아직 못 받아서요.”
“아, 그랬지. 잠깐만 기다려 봐.”
머릿속으로는 이미 명단을 다 짜 뒀다.
반드, 에나, 파이스, 그리고 가르시아를 포함해 그가 맡고 있는 2소대 인원을 전부 다 데려갈 예정이었다.
“드레인 씨하고 1소대는 여기에 남겨 두는 거죠?”
“어, 그리고 내 직속 소대 중에서는 베라를 남겨 둘 거야.”
“베라 씨가 엄청 따지고 들 텐데. 괜찮겠어요?”
“상관없어.”
안 그래도 베라는 왜 나한테 의뢰를 안 주냐며 강한 불만을 어필해 오고 있는 단계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베라를 데리고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십중팔구 엘라시아와 만나게 될 게 뻔하니까.
그리고 잠시 후.
“대장, 왜 저만 안 데려가는 겁니까?”
씩씩거리며 내 사무실까지 한 걸음에 달려온 베라.
예상대로 문제아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