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77화 (77/240)

# 77

음유 시인 세이라 (2)

라크스 공작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각각 좌우측에 레미와 리오나가 있었다.

‘레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리오나는 왜?’

리오나도 여기서 나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가 여긴 어떻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임무 수행 중 아니었어?”

“그건 진작 끝났고. 오늘은…….”

말끝을 흐리는 리오나.

대답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를 대신해 레미가 답을 들려줬다.

“세이라 양에게 초청을 받아서요. 우리 가문하고 세이라 양이 친분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님이 건강한 모습을 다시 되찾은 걸 기념으로 해서 가족 여행 중이기도 하고요. 언니는 도중에 강제로 불려 왔어요.”

라크스 공작은 헛기침을 했다.

“어음! 레미, 강제라는 말은 쓰지 말거라. 리오나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온 거다. 자발적으로.”

“호호, 알았어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누가 봐도 강제로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내 앞에서는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소망이 느껴졌다.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어울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여긴 어쩐 일인가?”

“웨일 씨와 이것저것 의논할 일이 있어서 잠시 텐츠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웨일? 아, 설마 자네! 라스, 그 친구와 함께 크라켄 토벌 작전에 임하기로 한 건가?”

“알고 계시는군요.”

이 시점부터 라크스 공작과 라스는 이미 서로 아는 사이가 된 건가?

내가 아는 소설 속 내용과 조금 달랐다.

원래 두 사람은 한 달 뒤에 같은 던전을 공략하던 도중에 마주치게 된다.

그때가 첫 만남이다.

‘작중 시기보다 최소 한 달 이상은 빠르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

소설 속 내용 그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곤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중간에 한 게 몇 개나 되는데.

오히려 이런 와중에 이야기 전개가 그대로 재연되는 게 이상하다.

라크스 공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든 토벌이 될 텐데…….”

“괜찮습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래, 자네라면 잘해 낼 수 있을 게야. 그리고 라스도 뛰어난 실력자니까. 하지만 자신의 실력에 너무 자만하지 말게. 방심은 가장 큰 적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공작님.”

괜히 라스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네.

* * *

드레인과 나, 그리고 반드는 라크스 공작 가족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콘서트를 관람하게 되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1시간 전.

라크스 공작은 레미, 그리고 리오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려는 걸까?’

관심을 가질 무렵, 라크스 공작이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로인, 자네 일행 중에 세이라의 광팬이 있던 거 같은데.”

“예, 접니다!”

드레인이 번쩍 손을 들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평소 의뢰를 수행할 때에도 저런 적극적이고 생기 감도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라크스 공작은 드레인에게 구미가 당길 법한 제안을 해 왔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잠깐 세이라 양이랑 인사를 나눌까 하는데 자네들도 같이 갈 텐가?”

결정권은 내게 있다.

무언의 압박을 넣는 드레인.

세이라라고 하는 음유 시인이 인기가 많다고 하니까 인맥을 다져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같이 가고 싶습니다.”

뒤에서 드레인이 말없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반드는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라크스 공작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진행 요원들은 라크스 공작을 바로 알아보고 곧장 머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라크스 공작도 세이라 못지않은 유명 인사다.

전장의 영웅과 두 딸들.

그리고 아무런 관계없는 블루로즈단 R팀 멤버 세 명.

이렇게 기묘한 파티는 세이라의 대기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레미가 먼저 노크를 했다.

똑똑.

“세이라 양, 저희 왔어요.”

대답은 없었다.

다시 한번 노크하는 레미.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리오나는 문 가까이 다가갔다.

“대기실에 없는 거 같은데? 인기척이 안 느껴져.”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호, 혹시 세이라 양 못 보셨습니까? 라, 라크스 공작님 아니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남자는 곧장 머리를 조아리면서 라크스 공작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라크스 공작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자네, 세이라 양이랑 같이 다니던 자 아닌가?”

“예, 맞습니다. 세이라 양의 일정을 도맡아 관리하는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그, 그보다 혹시…… 세이라 양 못 보셨나요?”

“아까와 같은 말을 하는군. 우리도 세이라 양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걸세.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나?”

“그, 그게…….”

데이비드는 말끝을 흐렸다.

딱 봐도 뭔지 알 수 있었다.

‘사건이군!’

* * *

데이비드는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줬다.

대기실에 있어야 할 세이라가 갑자기 실종되었다고 했다.

혹시 누가 세이라를 납치한 건 아닐까?

데이비드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명한 음유 시인이니만큼, 세이라를 노리는 스토커들이 많다.

혹시 그들 중 하나가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세이라를 강제로 데려갔을 가능성도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자, 잠깐만요! 당신, 용병 아니에요?”

데이비드는 내 팔에 감겨진 팔목 보호대를 가리켰다.

“예, 맞습니다만.”

“그 마크, 블루로즈단 맞죠?”

“잘 아시는군요.”

“혹시 지금 의뢰 받나요?”

“예?”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뜬금없이 의뢰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비드는 자신이 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공연 시간 전까지 세이라 양을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 이 아저씨 봐라? 우리가 돈 준다고 아무 의뢰나 받는 사람들인 줄로만 아나!

“정식 의뢰서를 작성하고 접수를 받은 다음에 의뢰를 분배해야 하는 것이 블루로즈단의 정식 절차입니다. 갑작스러운 의뢰는…….”

“5천? 1억? 10억?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콜!”

나는 바로 의뢰를 받아들였다.

이런 내 모습을 보던 리오나는 눈을 흘겼다.

“……방금 절차가 어쩌니 뭐니 했으면서.”

“상대가 원하는 만큼 돈을 주겠다고 하는데 이럴 때 뽑아 먹어야지. 안 그래?”

“어휴, 너란 녀석은 정말…….”

돈에 미친 녀석이라 불러도 좋다.

나는 열렬한 물질 만능 주의 신봉자니까.

단, 데이비드가 말했듯이 이번 의뢰는 제한시간이 걸려 있다.

공연 시작 전까지 세이라라는 여자를 찾아야 한다.

일단 세이라가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알 필요가 있다.

드레인은 나에게 그것도 모르냐면서 핍박을 늘어놓았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잘 들어, 대장. 세이라는 말이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형상한 듯한 존재야. 뒤에 후광이 절로 비치고, 목소리는 아침에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보다도 활기차고 예쁘지. 그리고 또…….”

“아니, 그런 추상적인 요소들 말고요. 생김새를 말해 주세요, 생김새!”

“쳇. 세이라 양의 매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녀를 찾겠다는 거야?”

몰라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니까.

때마침 데이비드는 나와 반드에게 포스터를 하나 건네줬다.

“이번 공연 포스터입니다. 이걸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세이라라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스트레이트 머리 스타일.

머리카락에는 약간 붉은색이 감돈다.

전반적으로 붉은색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립스틱하며 드레스, 네일 색깔까지 전부 다 붉은색으로 통일했다.

‘단색을 좋아하는 건 에나와 마찬가지군.’

굳이 정도를 따지자면 에나가 한 수 위라고 할까.

그녀는 피부나 속눈썹 눈동자 색깔까지 백색증에 걸려서 흰색에 가까우니까.

여하튼 찾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나가서 수색만 하면 된다.

우리가 건물 밖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리오나가 내게 다가왔다.

“포스터, 나한테도 줘. 나도 도울게.”

“괜찮아. 너는 라크스 공작님이랑 같이 있어.”

“아버님…… 아니, 공작님도 세이라 양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어. 레미도 마찬가지고. 나 혼자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

나는 군말 없이 여분의 포스터를 넘겼다.

“세이라 양이랑 친해?”

내 질문에 리오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본 적도 없어. 레미도 똑같고. 친분이 있는 건 라크스 공작님뿐이야.”

“그렇군. 혹시 세이라 양에 관한 정보를 알면 수색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감하네.”

“그건 공연 주최 측도 마찬가지일걸?”

가장 난감해하는 쪽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최 측이다.

공연 시작 1시간 전.

갑자기 사라진 톱스타.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 세계에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추리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사라진 건 여배우였다.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깊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배우는 자신의 신분을 모두 버리고 두 사람만의 세상을 찾아 떠나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솔직히 그걸 보면서 이해가 잘 안 갔다.

‘사랑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사랑할 시간에 일이나 더 하겠다.

아무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세이라는 다를 거다.

그녀를 찾기 위해 텐츠 곳곳을 누리기 시작했다.

몰려다니면 의미가 없다.

한 명씩 흩어져서 최대한 수색망을 넓히는 편이 좋다.

반드와 드레인, 리오나, 그리고 나는 각각 동서남북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찾아봐도 세이라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 넓은 도시에서 그녀를 어떻게 찾겠다는 건가. 게다가 시간제한까지 있다.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30분 남짓.

‘생각을 해 보자. 무작정 찾으러 다녀 봤자 헛수고에 지나지 않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추리 드라마, 영화에 항상 보면 수사의 1단계가 존재한다.

바로…….

‘현장 검증!’

세이라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바로 대기실이다.

나는 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어머, 로인 님!”

레미였다.

“너도 현장 검증하러 온 거야?”

“로인 님도요?”

“뭐, 그렇지. 알아낸 건 있어?”

“아니요. 저도 지금 막 왔어요.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대기실은 출입문 하나, 그리고 사람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창문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것은 화장대와 소파, 의자, 그리고 옷걸이와 세이라가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대 의상.

그리고 그녀가 마셨던 물이 전부다.

“창문은 원래 닫혀 있었지?”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문을 통해 납치한 건가?

그런데 납치했다는 것치고는 주변 사물들이 너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건 뭐랄까.

‘마치 스스로 나간 거 같은…… 아!’

순간 내 머리가 번뜩였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레미는 내 표정 변화를 알아차린 모양인지 내게 물었다.

“알아낸 거 있나요?”

“어. 이 사건의 전말이 뭔지 알 거 같아.”

그래, 알아냈다.

세이라를 납치한 자의 정체를!

범인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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