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76화 (76/240)

# 76

음유 시인 세이라 (1)

새롭게 합류하게 된 2기 용병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나는 나울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는 술집으로 2기 멤버들을 초대했다.

2기뿐만 아니라 1기 멤버들도 다 불렀다.

한마디로 R팀 전체 회식의 장이 벌어졌다.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나울의 영주인 바우너가 직접 회식 자리를 방문했다.

“어이쿠, 영주님 오셨습니까!”

“여, 영주님께서 여기를……?”

2기 단원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일개 용병들의 회식 자리에 영주가 친히 오다니?

영주는 한 도시를 책임지는 귀족이다.

보기 힘든 존재가 술집에 들어오니 2기 단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1기 단원들은 이젠 바우너가 너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오늘 바우너의 방문은 예정되어 있지 않은 거였다.

바우너는 나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분이 생각보다 괜찮은 분이니까 다들 안심하시고 따라오시면 될 겁니다.”

나를 띄워 주기 위해 일부러 바쁜 일정을 내팽개치고 여기까지 온 건가?

“아, 그리고 여기 회식은 제가 쏠 테니, 술값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드세요.”

“정말입니까?”

“영주님, 최고!”

“사랑합니다, 영주님!”

한턱내겠다는 말에 바우너를 향한 용병들의 충성심이 올라갔다.

뭐야. 나 띄워 주려고 온 거 아니었어?

잠시 후 바우너는 나와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다.

“인원 많이 뽑았네요. 형.”

“뭐, 그렇지. 앞으로 더 많은 용병들을 뽑을 예정이야.”

“블루로즈단은 원래 소수 정예 아니었나요?”

“입단 테스트가 어려워서 합격자가 적어 가지고 소수정예처럼 보이는 거지. 지내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

“그랬군요. 아무튼 축하드려요. 용병단 운영하시면서 필요하시거나 아니면 불편한 점 있으시다면 언제든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고맙다.”

“천만에요. 제가 오히려 형한테 고마워해야죠.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바우너는 이제 한 도시의 어엿한 영주가 되었다.

예전부터 싹수가 보이긴 했는데, 이제는 내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하는 정도까지 오게 되었다.

종합 능력도 올랐다.

원래 바우너의 능력 랭크는 D였다.

그러다가 오늘을 기점으로 C랭크로 상승했다.

인물 등급은 여전히 엑스트라였다.

‘능력 랭크가 오르는 건 자주 봤는데 인물 등급이 오르는 건 여태껏 한 번도 못 봤네.’

애초에 인물 등급이 오르는 게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뭐, 이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복잡한 일은 다음으로 미뤄 두자.

지금은 술에 취할 시간이니까.

* * *

다음 날 오전, 오랜만에 숙취와 함께 기상했다.

‘편집자 노릇 할 때에는 이런 게 다반사였는데.’

내가 담당하는 작가들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90퍼센트 이상 되다 보니 매번 미팅 끝나고 술자리를 가져야 했다.

원래 처음에는 술을 잘 못 했는데 술자리 미팅이 많아지다 보니 소주 3병까지 주량이 확 늘었다.

그러다가 소설 속에 들어오고 나서 술을 잘 안 마셨는데.

‘오랜만에 만취할 때까지 마셨네.’

대충 씻고 R팀 본부로 출근했다.

사무원인 라비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대장님.”

“혼자야? 다른 사람들은?”

“숙취 때문에 한창 괴로워하고 있겠죠. 그리고 혼자는 아니에요.”

“누구 있어?”

“그 하이 엘프 아가씨 분이요. 이름이…… 베라 맞죠? 저기 앉아 있어요.”

진짜다.

의자에 혼자서 덩그러니 앉아 있는 베라.

심지어 무표정이다.

베라는 어제 회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직 인간 사회에 어울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라비.”

“네, 대장님.”

“시간 날 때마다 네가 가끔 말 걸어 주고 그래.”

“제가요? 베라 씨는 좀 무서운데요.”

“그래도 남자인 내가 말 거는 것보다 동성이 말 거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친구가 되어 줘.”

“친구…… 힘든 숙제를 주시네요.”

베라가 기왕 우리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으니, 잘 어울려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때마침 베라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뭐죠?”

“없어. 넌 당분간 견습이니까 의뢰를 받기보다는 용병 생활에 적응하는 것부터 먼저 훈련받아야 해.”

“…….”

베라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견습 제도는 블루로즈단 공통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이니까.

그리고 베라는 이제 막 인간계에 나온 하이 엘프다.

아직 그녀가 모르는 인간 문화가 많을 것이다.

마치 소설 속에 처음 들어온 나처럼.

이럴 때 필요한 건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다.

“나울 광장에 큰 도서관이 있어.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 들러서 책 좀 읽어 둬. 인간계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대장으로서 내리는 명령인가요?”

“아니, 권유야.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니까 알아서 판단하도록.”

의뢰 이외의 사생활엔 웬만하면 잘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나의 철칙이다.

개인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지.

* * *

크라켄 토벌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그 전에 확실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드레인, 그리고 반드와 함께 찾은 항구도시 텐츠.

나는 이곳을 처음 와 본다.

그러나 드레인은 꽤 자주 와 봤던 모양인지 길안내를 자처했다.

“여기로 가면 바로 항구가 나와.”

“선배는 여기 자주 와 봤나 보네요.”

“예전에 여기에 살았거든. 한 5년 정도 살았나? 꽤 예전 일이지만.”

그래서 길이 익숙했던 건가?

드레인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다.

그나저나…….

“사람이 엄청 많네.”

여길 봐도 사람, 저길 봐도 사람. 온통 사람 천지다.

드레인도 텐츠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모양이다.

“그러게. 왜 이렇게 많지? 원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방문하는 도시가 아닌데. 축제라도 하나?”

우리랑 크게 상관없는 일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코너를 돌기 전에 반드가 코를 매만졌다.

“바다 냄새가 나는군.”

반드의 예상대로였다.

길을 빠져나오자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대박이네!’

경치가 너무 좋았다.

텐츠는 항구도시지만,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근처에 붉은 등대도 보였다.

그러나 접근 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반드도 등대에 관심을 보였다.

“저 등대는 사용하지 않는 건가?”

“그러나 본데?”

“아쉽군, 붉고 크고 두꺼운 기둥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후후.”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반드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박되어 있는 배들 중에 크라켄 토벌에 이용될 배가 있을 터.

반드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배를 발견했다.

“저거 아닌가?”

배에 새겨진 웨일 상단의 표식.

정확히 찾았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큰 배는 난생처음 봤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는 사이 웨일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제때 찾아왔군. 어떤가, 배를 본 소감이?”

“굉장하군요. 이거 웨일 상단의 배입니까?”

“크라켄을 토벌하기 위해서 특별히 주문 제작해 만든 걸세. 돈이 꽤 들어갔지.”

역시. 대상인 웨일은 별칭에 맞게 돈 씀씀이도 매우 컸다.

크라켄 하나 잡기 위해 이런 범선을 제조하다니.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라스 일행은 어디 있지?’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다.

“라스도 여기 텐츠에 있습니까?”

“아니, 잠시 다른 일이 있다고 일행들이랑 같이 팔레트는 곳에 가 있네. 거기서 칠흑의 조각이 나왔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야. 그 친구도 참 고생이 많더군.”

칠흑 전문 담당, 그가 바로 라스다.

팔레트면 나울과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도시다.

나울에는 베라가 있다.

엘라시아와 베라가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웨일은 범선을 가리켰다.

“안에 들어가서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어떤가?”

“그러는 게 좋겠군요. 저희끼리 다녀오겠습니다. 웨일 님은 여기 계세요. 몸도 불편하시니까요.”

“배려해 줘서 고맙군.”

웨일을 대신해 그의 첫째 아들이 우리를 안내하기로 했다.

어디.

범선 구경하러 떠나 볼까?

* * *

원없이 배 구경을 하고 다시 나온 우리들.

식량이라든지 이런 건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뭐 특별히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지만, 딱히 별도로 부탁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애초에 나는 해상전이 처음이다.

뭐가 필요한지 몰랐다.

나를 대신해 드레인이 이것저것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것처럼 보였지만…….

“별거 없었어. 그냥 영양가 없는 대화였으니까 대장은 신경 안 써도 돼.”

드레인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아무튼 준비는 착실하게 잘되어 가고 있다.

이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듯하다.

이제 다시 나울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웨일이 우리에게 선물을 줬다.

“이거 받게.”

“이게 무엇입니까?”

“여기 텐츠에 세이라라고 하는 유명한 음유 시인의 단독 콘서트가 열린다고 하더군. 시간이 허락한다면 보고 가도록 해.”

세이라라는 말을 들은 순간, 드레인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저, 정말로 세이라가 이곳에서 콘서트를 하는 겁니까?”

“티켓을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나.”

음유 시인 세이라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이 여자가 그렇게 유명한가?’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얼마나 유명한지는 잘 몰랐다.

반드도 나처럼 세이라에 대해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세이라 광팬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웨일 님! 제 소원 중에 하나가 세이라 콘서트를 직관하는 거였는데! 이렇게 귀한 티켓을 주셔서 뭐라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황송하기 그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드레인이었다.

“선배, 유명한 음유 시인이에요?”

“당연하지! 델리피나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음유 시인인데. 설마 너, 세이라를 모르냐?”

“모르니까 물어본 거죠.”

“어휴, 대장! 문화생활 좀 하고 살아! 맨날 싸움박질만 하지 말고.”

용병이면 싸움박질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드레인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니 유명하긴 한가 보다.

사실은 나울로 바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드레인이 세이라의 열성팬임을 알게 되었으니 이대로 그냥 돌아가자고 말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시간은 많이 남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드레인이 ‘강추’한 문화생활이라는 걸 해 보기로 결정했다.

* * *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세이라의 단독 콘서트.

이미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텐츠에 왜 사람들이 많았는지 이제야 알겠네.’

다 세이라라는 음유 시인 때문이었다.

우리는 티켓을 제시하고 지정된 좌석을 향해 걸어갔다.

웨일이 우리에게 준 티켓은 VVIP 전용이었다.

가장 앞쪽에서 관람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좌석으로 다가갔을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의 우리 옆에 앉아 있었다.

이들 역시 나를 보자마자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네, 로인 아닌가?”

익숙한 남자였다.

나는 남자에게 예를 표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라크스 공작님.”

설마 이곳에서 라크스 공작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예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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