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제2차 용병 모집 (3)
자신을 파이스라 소개한 양아치…… 아니, 노란 머리 남자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힐러 포지션을 희망하고 있는 파이스라고 합니다.”
“진짜 힐러 맞아요?”
“예.”
생긴 거랑 정말 안 어울린다.
아니지.
외형에 편견을 가지지 말자고 다짐했잖아.
‘정신 차려라, 나야!’
파이스의 지원서를 살폈다.
‘가랑 출신에다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알고 특기는 버프, 힐 계열 마법이라…….’
도중에 가르시아가 물었다.
“공격 마법은 사용할 줄 모르나?”
“제가 사용하는 마법이 주로 신성 마법이다 보니 공격 마법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습니다.”
“신성 마법?”
“사실 저, 라피엘 교단 출신이거든요. 헤헤.”
들은 적이 있다.
라피엘 교단.
델리피나 대륙에 존재하는 12개의 종교 중에서 세력 규모로 따지면 톱3 안에 들 만큼 큰 교단으로 기억한다.
어느 종교 출신인지. 그건 둘째 치고 파이스가 전(前) 성직자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이번에는 드레인이 질문했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용병 생활을 해도 돼요? 제가 알기론 라피엘 교단은 겸임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 그건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저, 며칠 전에 파문당했거든요.”
이거, 이거…… 파면 팔수록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정보들이 나오네.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였다.
“파문당한 이유는?”
“교주님과 아주 사소한 트러블이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파문당했지요. 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를 받아들인다고 라피엘 교단과 블루로즈단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파문당할 때 깔끔하게 뒤처리를 하고 나왔으니까 뒤끝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요.”
마지막에 ‘아마도요.’는 뭔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잖아.
그래도 실력은 출중하다.
에나랑 거의 동급 수준처럼 보이니 종합 능력은 최소 S 정도가 아닐까.
혹시 몰라 인물 정보창을 살펴보기로 했다.
-파이스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S
-라피엘 교단의 일원이었던 남자. 촉망받는 성직자였지만 교단 내에서 발생한 권력 다툼으로 인해 본인이 스스로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건가?’
본인은 사소한 트러블이라고 했는데 꽤 무게감이 있는 트러블이었다.
‘깊은 사정이 있나 보군. 아니면 리오나 같은 케이스일지도.’
파이스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더 물어볼 거 있으신 분?”
“…….”
가르시아와 드레인은 나를 바라봤다.
같은 면접관으로 참석했지만,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과 두 남자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급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하고 끝낼게.”
“네, 무엇이든 물어봐 주세요.”
“다른 곳도 아닌 우리 블루로즈단에 특별히 지원서를 내게 된 이유는?”
파이스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대답을 들려줬다.
“요즘 잘나가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돈도 많이 준다면서요?”
“그렇지.”
“이거면 지원 동기가 충분하지 않나요?
솔직하네.
이 녀석, 마음에 들었다.
* * *
계속해서 면접실로 지원자들이 들어섰다.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설 무렵, 가르시아와 드레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하는 여인, 하이 엘프 베라.
그녀가 가장 마지막에 면접을 보게 된 최종 지원자로 선정되었다.
베라는 의자를 가리켰다.
“여기에 앉으면 되나요?”
“물론.”
고개를 끄덕여 준 나.
베라는 이런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당신……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하이 엘프들은 대체적으로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 보다.
엘라시아도 나를 스쳐 지나가듯 봤을 뿐인데 알은체를 하더니만.
베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숨길 이유는 없지.’
베라는 주인공 일행도 아니고 말이다.
“나울 근처에서 레플러 퀸을 잡을 때. 기억하고 있어?”
“역시. 그때 그 남자가 당신이었군요.”
“정답.”
나와 베라의 대화를 얌전히 듣던 드레인이 작게 속삭였다.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아니, 그것보다 레플러 퀸이라니? 무슨 소리야?”
“깊게 아는 건 아니고요. 아무튼 자초지종은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은 면접에 집중하죠.”
베라를 우리 용병단으로 받아들인다면 분명 크나큰 전력이 될 거다.
하이 엘프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탁월한 싸움 실력을 지닌 데다가 몇몇 하이 엘프들은 정령술을 다룰 줄 안다.
게다가 경험 또한 풍부하다.
인간보다 오랜 삶을 사는 하이 엘프들이기에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대장님.”
가르시아는 내게 목소리를 낮춘 채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하이 엘프가 유능한 존재라는 건 알지만, 저 여자는 그냥 패스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애초에 하이 엘프가 인간 용병 조직에 지원하다니, 저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후배. 아니, 대장.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노림수가 있어서 들어오려는 거 같은데. 위험한 냄새가 난단 말이야. 그냥 거르는 게 좋지 않겠어? 우리 용병단에 엘프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잖아.”
드레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이 엘프를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유능한 건 알지만, 우리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면 뽑을 이유가 없다.
나는 베라가 왜 우리 팀에 지원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지원 동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인간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예요.”
“그게 다야?”
“…….”
이유가 하나 더 있어 보인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불안 요소가 너무 많으니까.”
“그럼 제가 여기에 들어오려는 진짜 목적을 말해 준다면, 저를 단원으로 받아들여 줄 건가요?”
“동기가 불순하지 않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지.”
능력 면으로 따지면 베라는 매우 출중한 인재다.
반드, 에나, 가르시아의 능력을 하나로 합치면 베라의 능력과 동급이 될 거다.
그 정도로 베라는 탐이 나는 존재다.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지원 동기가 불순하면 나는 가차 없이 베라의 지원을 없던 걸로 할 생각이었다.
베라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엘라시아 님을 찾기 위해서예요.”
음? 이건 조금 예상외인데?
* * *
안 그래도 나는 불과 며칠 전에 엘라시아와 만났다.
블루로즈단과 라스 일행, 이렇게 두 팀은 크라켄 토벌을 같이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서로 팀끼리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가르시아는 그때의 일이 떠오른 모양인지 바로 반응했다.
“그 하이 엘프라면 얼마 전에 만…… 컥!”
나는 가르시아의 정강이를 발로 차 버렸다.
가르시아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왜 때리냐며 나를 원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르시아.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빠르게 글자를 적어 가르시아와 드레인에게 돌렸다.
-말하지 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한마디면 족했다.
가르시아와 드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모를 거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거니까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말에 따르기를 택해야 했다.
한편, 베라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저 인간들이 왜 저래?’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화두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엘라시아라면, 저번에 봤던 그 아가씨 맞지?”
“맞아요. 혹시 보셨나요?”
“아니, 나도 그때 이후로 본 적은 없어. 애초에 내가 엘라시아와 만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하긴, 그렇죠. 당신과 엘라시아 님이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안, 사실 무진장 많아. 며칠 전까지도 직접 만났어.
양심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엘라시아가 인간계로 나오려고 할 때 하이 엘프들의 크나큰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엘라시아는 하이 엘프의 차기 족장이 되려면 다른 종족들의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해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엘라시아는 하이 엘프 중에서 굉장히 개방적인 마인드를 지닌 여성이다.
꽉 막힌 하이 엘프들을 상대로 엘라시아가 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가출……이었지, 아마?’
그 탓에 하이 엘프 마을은 난리가 났다.
지금 당장 엘라시아를 찾아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래서 베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소설을 2권까지밖에 못 읽어서 나중에 베라가 엘라시아와 만나게 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 당장은 만나게 하고 싶지 않군.’
라스에게 엘라시아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녀가 없으면 라스의 여정에 많은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베라와 엘라시아를 절대로 만나게 해선 안 된다.
‘그리고 베라를 데리고 있으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한 장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고.’
라스 일행을 방해하지 않고, R팀의 전력도 늘리고…….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나!
베라는 나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합격인가요? 아니면 불합격? 빨리 말씀해 주세요.”
거참, 하이 엘프 아가씨가 성격이 왜 이리도 급해?
“최종 합격 결과는 우리들끼리 상의한 다음에 한꺼번에 발표할 거니까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래 안 걸릴 거야. 가서 차나 한잔하면 돼. 여기 나울의 특산품이 미실 차거든. 네 입맛에 딱 맞을 거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게요.”
아무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지.
왜냐하면 난 이미 마음속으로 합격을 외치고 있거든.
* * *
사무원이자 내 비서인 라비는 합격 명단을 가지고 1층 로비로 향했다.
지금쯤 합격자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합격시킨 총 인원은 아홉 명.
그중에 면접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파이스, 베라의 이름도 명단에 포함시켰다.
파이스와 베라는 내가 직접 이끄는 대장 직속 부대에 배치시켰다.
내 쪽 부대원은 이로써 반드, 에나, 파이스, 베라까지.
총 네 명이 되었다.
가르시아와 드레인이 이끄는 부대원들은 딱 절반씩 나눠서 각각 열다섯 명씩 배치를 시켰다.
이로써 R팀도 번듯한 하나의 조직 구조가 완성되었다.
‘추가 용병도 다 모집했으니, 다음 할 일은…… 아, 맞다!’
용병 테스트를 진행하던 와중에 파랑새가 내게 편지를 한 통 가져다줬다.
웨일로부터 온 편지였다.
‘읽는다는 걸 깜빡했네.’
봉투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심각한 내용은 없었다.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혹시 블루로즈단 측에서 필요한 게 있나 와서 직접 확인해 보면 어떤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장소가 어디였더라?’
‘텐츠’라는 이름의 항구도시다.
편도로 2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크라켄과의 전투는 꽤나 격렬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주인공 라스와 같은 파티를 꾸렸다 하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가서 확인해야지. 그나저나 누구를 데려갈까?’
이런 일은 드레인이 딱 제격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반드를 데려가기로 했다.
‘베라는 절대 데려가면 안 되겠지.’
행여나 데리고 갔다가 라스 일행이랑 마주치기라도 해 봐라.
엘라시아를 보자마자 엄청난 소란이 발생할 것이다.
당분간은 라스 일행과 만날 때는 베라를 동반하지 않기로 했다.
“가만?”
그렇게 되면 크라켄과 싸울 때, 베라라는 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굉장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원 낭비를 한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니, 미련 갖지 말자. 한번 편해지겠다고 앞으로 자주 써먹을 필승 카드를 날려 먹으면 큰일이니까.’
인재 활용도 적절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대장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