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제2차 용병 모집 (2)
오백이십삼 명의 지원서들을 모두 훑은 결과.
“라비, 여기 있는 지원자들에게 연락 돌려. 5일 안으로 나울까지 오라고 통보해 두고.”
“총 몇 명인가요?”
“백구십팔 명.”
“네? 생각보다 많이 줄었네요.”
“거를 녀석들이 너무 많았어.”
1차적으로 범죄 이력이 있는 자들은 전부 내쳤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범죄자 출신을 받고 싶진 않으니까.
그리고 2차적으로 나이를 봤다.
아무래도 50~60세 분들을 받기는 좀 그랬다.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용병이 필요한데, 그분들에게 나를 향한 충성심을 강요하긴 그렇지 않은가?
이밖에도 나머지 자잘한 요소들이 있었다.
거르고 걸러서 총 백구십팔 명을 추스르는 데에 성공했다.
라비는 백구십팔 장의 지원서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 5일이 지난 뒤,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차 테스트, 필기를 진행할 것이다.
필기가 끝난 이후에는 바로 실기를, 그리고 실기를 마친 다음에 면접까지 다이렉트로 볼 심산이었다.
먼 곳에서 온 용병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오라 가라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하나둘씩 모여든 용병들을 바라보며 드레인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굉장하네, 굉장해! 원래 블루로즈단 모집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하긴 한데. 이렇게까지 많이 모인 건 처음 보네.”
“그런가요? 전 오히려 적게 모인 줄 알았는데.”
“우리 용병단이 들어오기가 빡세기로 굉장히 유명하잖아. 테스트도 힘들고. 너 입단할 때 생각해 봐. 사일런트 포레스트에서 30일 살아남기. 그거, 평범한 용병이라면 절대로 못하는 거야. 30일 동안 소리 안 내고 어떻게 버텨? 잠잘 때 코 고는 습관이라도 있다면, 그 자리에서 사운드 헌터들에게 바로 잡아먹히는 거야.”
“하긴, 그렇죠.”
“이렇게 보면 그 테스트를 통과한 네가 대단하긴 하다. 역시 후배야. 아니, 대장이라고 불러야지. 미안.”
처음에는 후배라는 단어가 입에 너무 달라붙어서 고치느라 애를 먹었던 드레인이었다.
지금도 간혹 나를 보고 후배라고 지칭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드레인은 자책을 했다.
이제 나는 어엿한 R팀의 대장이 되었다.
언제까지 후배, 후배 하며 나를 부를 순 없었다.
백구십팔 명의 지원자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필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미리 마련해 둔 의자와 책상에 이들을 앉혔다.
이들 중에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이가 있었다.
서류 전형 때 눈여겨봤던 독특한 지원자.
지원자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저 여자, 하이 엘프 아니야?”
“그러게. 하이 엘프가 인간 용병 시험을 보기 위해 온 건가?”
“신기하네. 엘프는 봤어도 하이 엘프는 처음 봤어.”
“콧대 높은 고귀하신 종족께서 뭐 하러 인간계까지 왔대?”
하이 엘프 여성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아주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이종족이 용병 지원서를 낼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아니, 아는 엘프였다.
‘통역가가 여길 어쩐 일로……?’
레플러 퀸을 사냥할 당시 엘라시아에게 말을 못 붙이던 나를 대신해 내 말을 통역해 전달해 준 여성 하이 엘프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하이 엘프의 정체다.
지원서를 봤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베라가 설마 내 팀에 지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 같은데.’
하이 엘프들은 인간을 싫어한다.
인간 사회에 호감을 가진 엘라시아가 특이한 케이스에 속할 뿐.
베라도 다른 하이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만나 봤기에 잘 안다.
‘그런 그녀가 인간 용병 조직에 지원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드레인도 수상함을 느꼈는지 내게 의사를 물었다.
“그냥 탈락시킬까?”
“아니요. 그냥 놔두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원했는지는 면접에서 물어보면 된다.
적어도 테스트는 공정성 있게 받도록 해 주자.
* * *
말이 필기 테스트지, 사실 인성 쓰레기를 가려내는 기본적인 테스트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백구십팔 명 중 탈락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드레인은 내 쪽으로 눈을 흘겼다.
“너 같은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있었네.”
“선배, 저 인성 쓰레기 아니라니까요.”
이놈의 인성 쓰레기 떡밥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필기가 끝난 다음에 바로 실기 테스트가 거행되었다.
체력 단련을 비롯해 근력 시험, 그리고 모의 전투까지.
마법 분야로 지원한 이들도 몇몇 있었다.
딱 세 명이지만.
마법사들은 바로 합격시키자는 드레인의 주장이 있었지만, 나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왜냐.
“바슬라 같은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바슬라? 그게 누구인데?”
“있습니다. 긴장하면 딸꾹질하는 럭키 매직 마법사요.”
마법사도 예외는 없다.
무조건 테스트를 봐야 한다.
나는 베라가 마법 테스트를 볼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녀도 엘라시아와 마찬가지로 정령수를 다룰 줄 아니까.
그런데 마법 쪽이 아니라 체력 쪽 테스트로 보겠다고 말했다.
의외네.
난 세 명의 마법사들에게 거대한 돌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에 손을 대고 마력을 불어넣어 보도록. 이걸로 너희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걸로 시험을 치를 테니 잘 알아 둬.”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사실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마력 측정기다.
제2의 바슬라를 단원으로 들이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마력 측정기를 구입한 것이다.
높은 마력을 보유한 마법사는 그래도 제 역할을 한다.
마법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중 노란 머리의 남자가 물었다.
“혹시 기준치가 있습니까?”
“있다. 마력 측정기를 주목하도록.”
나는 손을 뻗어 마력 측정기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회색이었던 돌덩이는 점점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파랗게 되었을 때 나는 손을 뗐다.
그러자 돌은 다시 회색으로 돌아왔다.
“내가 방금 보여 준 것처럼 이 마력 측정기 색을 새파랗게 만들면 된다.”
내 말을 듣자 오히려 마법사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단, 노란 머리를 제외하고.
마법사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크기나 되는 마력 측정기를 새파랗게 만드는 건 30년 이상 수련한 상급 마법사가 와도 힘든 일입니다!”
“힘든 일이니까 시키는 거잖아. 블루로즈단에 들어오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자신 없으면 여기서 그냥 포기하는 게 좋아.”
“…….”
두 마법사는 그래도 오기는 있는지 시도는 했다.
하지만 둘은 마력 측정기를 새파랗게 만들기는커녕, 옅은 파란색조차 만들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사람은 노란 머리 한 명뿐.
태도가 뭐랄까, 굉장히 가볍고 껄렁껄렁했다.
‘집 주변에 가끔 보이는 양아치 같이 생겼네.’
생긴 것도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귀에 피어싱까지 했다.
저것으로 불량도가 한층 더 상승했다.
노란 머리는 가볍게 손을 풀었다.
솔직히 기대는 별로 안 된다.
한눈에 봐도 마법 잘 못 쓸 거 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그냥 이번 2기 멤버에선 마법사는 없는 것으로 치려고 했다.
그러나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우웅!
마력 측정기가 크게 진동했다.
이미 색깔은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마법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
“저게 말이 돼?”
“도, 도대체 누구야, 저 노란 머리!”
“아무리 봐도 마법사처럼 보이진 않는데.”
내 말이…….
생긴 건 주인공한테 시비 걸었다가 무참히 털릴 양아치처럼 생겨 가지고 생각보다 꽤나 방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노란 머리는 손을 떼고 내게 물었다.
“합격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사람은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 * *
모든 실기 테스트가 종료되었다.
최종 합격한 인원은 쉰 명.
이중에 베라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체력 테스트 진행을 총괄했던 가르시아는 내게 살짝 귀띔했다.
“베라라는 하이 엘프, 능력이 굉장합니다. 움직임뿐만 아니라 속도, 민첩, 결단력, 그리고 무술 솜씨까지 완벽하더군요.”
“근력은?”
저들은 실전으로 다져 온 실력이니까 기본은 하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다.
내가 예상한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봤을 때에는 기본 이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 기대되네.”
하지만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면 블루로즈 단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마지막 4단계, 면접을 치르기 위해 지원자들을 R팀 본부로 이동시켰다.
지원자들은 본부 내부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동안 굵직한 의뢰들을 통해 많은 보수 금액을 착실하게 쌓아 온 우리 R팀.
축적한 자금으로 R팀 본부 건물을 확장하는 데 투자했다.
그 덕분에 예전에 비해 훨씬 보기가 좋아졌다.
자고로 직원을 받아들이려면 사내 복지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 R팀은 집이 없는 용병들에게는 숙소를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울 도시 내부에 있는 모든 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먹고 자고 하는 것들을 전부 해결해 주는 블루로즈 R팀.
이만한 직장이 또 어디 있겠나.
물론 가끔, 아주 가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을 뿐.
그것 빼고 나머지는 다 괜찮다.
내가 보장한다.
라비가 지원자들을 복도에 정렬시키는 동안, 나는 드레인과 가르시아를 양옆에 앉힌 채 면접 준비를 서둘렀다.
반드와 에나를 놔두고 두 사람을 앉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앞으로 선배하고 가르시아, 두 사람이 각각 1, 2소대를 책임질 부대장 노릇을 해야 하니까 면접에 심혈을 기울여 주세요. 어쩌면 두 사람의 부하가 될지도 모르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케이.”
“명심하겠습니다, 로인 대장님.”
나는 R팀을 세 부대로 나눠 운영할 예정이었다.
내가 리더를 맡을 대장 직속 소대, 부대장인 드레인이 이끌 1소대, 마지막으로 가르시아가 책임질 2소대.
이렇게 3개 소대 체재를 만들 것이다.
인원이 많기에 분대 편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리고 이렇게 인력을 분배해 둬야 나중에 내가 부재중일 때 나의 빈자리를 다른 팀들이 알아서 채워 줄 수 있다.
‘나는 혼자 움직여야 할 일이 앞으로 많을 테니까.’
상단 문제도 있고, 그리고 칠흑과 벨라시오닉의 보물에 관련된 일도 해결해야 하니까.
‘이렇게 보니 나란 남자, 바쁜 남자구나.’
모든 준비가 끝났다.
“라비, 준비 다 마쳤으니까 슬슬 들여보내.”
“몇 명씩 들여보낼까요?”
“한 명씩.”
내가 택한 면접 방식은 압박 면접이다.
참고로 내가 출판사에 취직할 때 받은 면접이 이런 형태다.
다수의 면접관이 있고, 나 혼자 면접을 보고.
얼마나 떨렸는지 그때의 감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면접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면접관의 자리에 앉게 되다니.
그것도 소설 속에서.
세상일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번째 지원자.
나는 그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양아치잖아?’
노란 머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블루로즈단의 든든한 힐러가 되고 싶은 남자, 파이스입니다.”
뭐라고? 힐러?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