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광물을 먹는 괴물, 첼리 (1)
라그너와 상단 인력 몇몇을 데리고 우리는 바로 탄커프로 향했다.
상황 설명은 이동하는 도중에 라그너에게 전달했다.
“그러니까…… 베르투 회원권을 얻기 위해 로인 님께서 아껴 두고 아껴 뒀던 정보를 하나 강제로 공개하게 되었다, 이 말씀이시죠?”
“맞아.”
“그리고 그게 라켈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에 관한 정보였고요.”
“정확해.”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라그너.
라그너는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전부터 이미 베르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가 베르투를 알고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타 상단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자본력도 중요하지만 정보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름 있는 상단의 대표들은 죄다 베르투에 가입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베르투를 통해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돈으로 환산한다.
가진 자가 더 가지는, 딱 그런 구조였다.
한때는 라그너도 베르투의 회원이었으나, 사업을 말아먹고 난 이후에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현자들과 정보 거래를 하지 않으면 회원 자격이 사라진다.
그때 이후 라그너는 베르투와 접점을 가질 일이 없었다.
“설마 제가 다시 베르투라는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내가 거기 회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애초에 나는 베르투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나저나 이런 걸 알고 있었다면 진작 이야기 좀 해 주지, 라그너 이 녀석.’
여하튼 나는 베르투가 다른 상인들에게 탄커프 광산 정보를 넘기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결심했다.
탄커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거의 촌락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외지인들이 다수 마을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오?”
노인의 물음에 나는 바로 답했다.
“나알이라는 자를 찾아왔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나알을 찾아왔소? 설마 그 양반, 또 도박했나? 돈 찾으러 온 거요?”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온 겁니다.”
탄거프에서 잘나갔던 상인, 나알은 주민들에게조차 신뢰를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날라리 중에서도 날라리였으니까.
날려 먹은 돈만 해도 수억 제피다.
주민들에게 여기저기 빌린 돈도 날려 먹었으니, 지금 당장 이곳에서 강제로 쫓겨나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나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작은 저택.
외관도 그리 깔끔하진 않았다.
잡초가 잔뜩 난 마당을 지나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무런 반응이 없네.’
설마 빈집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끼릭.
문이 열렸다.
“뉘시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한 40대 초반의 남자가 퀭한 눈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술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라그너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물론 악취로 따지면 라그너의 압승이지만 말이다.
“로그 상단 대표인 로인입니다. 나알 님을 찾아뵙고자 왔습니다. 실례지만 어디 계십니까?”
이 사람이 나알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마을을 대표하는 상인 아닌가?
아무리 빚을 많이 졌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람 사는 행색 정도는 하고 있겠지.
나알의 행방을 묻자,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댁들, 사채업자요?”
“로그 상단의 로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거짓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양반이 이런 시골까지 뭐 하러 오겠어.”
의심이 참 많은 양반이다.
나는 잠시 뒤로 물러섰다.
그런 뒤에 라그너에게 손짓했다.
로그 상단을 대표하는 얼굴은 역시 나보다 라그너다.
라그너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가만, 당신……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오랜만입니다, 나알 님. 예전에 하르민의 카지노장에서 한번 보지 않았습니까? 그때 저한테 돈도 빌리셨는데…….”
“아……!”
남자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 그보다 이 남자가 나알이라고?’
라그너는 나알과 면식이 있는 모양인지 대화를 주도해 갔다.
“그때 빌리셨던 금액이 3천 제피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돈은 빠른 시일 내에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말미를 주심이…….”
“하하, 그 돈을 갚으라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저의 주인께서 나알 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방금 만나셨죠?”
“설마 그 꼬맹이…… 아, 아니! 로인 님!”
나알은 그래도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내가 라그너보다 서열이 높다는 걸 바로 파악하고 나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대화가 길어질 거 같아서요.”
“무, 물론이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진작 라그너를 먼저 앞세울걸.
일이 이렇게 편해지잖아.
* * *
나알을 찾아온 이유를 최대한 간단하게 들려줬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거다.
“광산을 저희에게 팔아 주시면 고맙겠네요.”
탄커프 광산을 우리에게 넘겨라, 이 뜻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라그너는 과연 나알이 광산을 우리에게 팔지,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나알은 너무나도 쉽게 답을 들려줬다.
“팔아야죠! 암! 물론이고요! 안 그래도 조만간 경매에 부치려고 했습니다!”
내 예상대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나알은 결국 탄커프 광산을 경매로 내놓게 된다.
광산은 매우 싼 가격에 팔린다.
싸게 팔린 이유가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도 그 광산에 라켈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까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나는 먼저 나알의 생각을 물었다.
선제시를 하라고 먼저 제안했다.
나알은 고민보다 내 눈치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
팔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구체적인 금액은 생각 하지 않았던 듯했다.
내가 먼저 질러 볼까?
“75억 제피 어떻습니까.”
“75억…….”
“상당히 외진 곳이기도 하고, 관광자원으로 쓸 만한 여지도 안 보이는 광산 아닙니까? 이 정도면 굉장히 후하게 줬다고 생각하는데요.”
“…….”
나알은 역시 눈치가 빠르다.
그래도 상인은 상인인가 보다.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쓸모없는 광산을 뭐 하러 75억이나 주고 사려고 하는 걸까?
분명 뭔가가 있을 터.
그러니까 사려고 하겠지.
‘아아, 들린다, 들려! 나알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끙끙 앓는 침음을 내던 나알은 슬쩍 나에게 간 보기를 시전했다.
“75억은 너무 싼 거 같지 않습니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자기주장은 확실하게 펼쳤다.
“그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5억 더 올려서 딱 80억은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쬐금, 아주 쬐에금 드네요. 하,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80억에 드리죠.”
“예? 저, 정말로요?”
나알은 내가 80억을 맞춰 줄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인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파, 팔겠습니다! 80억! 당장 팔아야죠!”
대만족하는 나알.
아마 그는 잘 팔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75억에 팔 것을 5억 더 받고 넘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미안해서 어쩌나, 소설 속에서 표현된 탄커프 광산의 매매가는 80억이 아니다.
‘아마 120억이었지?’
40억 이득 봤다! 아싸!
* * *
우리는 직접 눈으로 광산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나알과 함께 산을 올랐다.
높이는 얼마 안 된다.
그냥 뒷동산 수준의 고도밖에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알은 벌써부터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라그너는 과거 본인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 모양인지 그에게 좋은 말을 흘렸다.
“술은 줄이고 도박은 끊으세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언제든 재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생각보다 제 뜻대로 안 풀리더라고요. 새로 시도하려고 하면 매번 누군가가 먼저 가로채 가거나 아니면 뒤통수 맞고 망하든가. 세상일이라는 게 참 부질없는 거 같습니다.”
보면 볼수록 점점 라그너와 닮아 보였다.
라그너도 나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나알처럼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알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작은 광산.
라그너는 나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이곳에 정말로 라켈이 매장되어 있습니까?”
“광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나올 거야.”
우리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본 뒤, 나알에게 물었다.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만.”
“예? 그, 그건 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나알.
뭐랄까…….
‘마치 우리한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태도인데?’
척 보면 안다.
라그너도 눈치챈 모양인지 나알에게 닦달했다.
“숨기는 게 있나 보군요. 뭔지 말해 보세요.”
“그게 말입니다…….”
나알은 말끝을 흐렸다.
대답하기 곤란한 심정과 동시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묻어났다.
그때였다.
갑자기 광산이 가볍게 진동했다.
우리를 따라온 상단 인원들은 놀라며 자세를 낮췄다.
“지, 지진인가?”
아니, 이건 지진이 아니다.
무언가가 광산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생명체.
산만 한 덩치를 가진 갈색 도마뱀 같은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보자마자 라그너는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저건 설마…… ‘첼리’?”
“그게 뭔데?”
나는 저 몬스터가 뭔지 모른다.
광산에 저런 몬스터가 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소설 속에서 첼리라는 몬스터가 언급된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탄커프 광산에 많은 라켈이 매장되어 있고, 그걸로 돈을 많이 번 상인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라그너는 몬스터에 대해 꽤나 상세히 알고 있는 듯했다.
“광물을 먹는 괴물이라 불리는 녀석입니다. 주로 광산에 서식하긴 하는데……. 설마 이런 작은 광산에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군. 나알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는 걸 꺼렸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구나.’
이건 예상 못 한 변수였다.
라그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로인 님? 첼리가 저길 지키고 있으면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라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여기는 그냥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니 없던 일로 하시는 게…….”
그러나 나는 라그너의 말을 도중에 잘라 버렸다.
“나알.”
“예, 예! 로인 님!”
“저 안에 살고 있는 첼리는 총 몇 마리인지 알고 있나?”
“제가 알기론…… 두 마리로 알고 있습니다.”
라그너는 입을 쩍 벌렸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로인 님, 역시 여기는 포기하시죠! 위험합니다!”
라그너를 비롯해 다른 상단 인원들도 나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몸을 풀고 있었다.
‘두 마리라…….’
일단 한 마리는 바깥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와 있는 놈을 빠르게 쓰러뜨린 다음에 안쪽에 있는 녀석을 처리하면 되겠군.
‘좋아.’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려 뒀다.
“물러서 있어. 골칫덩어리들은 내가 직접 해결하고 올 테니까.”
라그너가 말리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첼리를 향해 튀어 나갔다.
어디, 몸 좀 풀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