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70화 (70/240)

# 70

정보 조직 베르투 (2)

똑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하고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그는 얼굴을 흰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정확한 연령대를 추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얼굴을 가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하는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계속 그를 응시했다.

가면의 남자는 옅은 웃음소리를 낸 뒤, 스스로 가면을 벗었다.

“초면에 실례했군요. 죄송합니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게 저희 베르투의 원칙인지라.”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은 굉장히 젊은 남자의 것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나는 또…… 현자라고 해서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젊다.

검은 양복과 붉은색 리본으로 멋을 낸 남자가 내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인 님. 저는 베르투에서 온 현자, 마일이라고 합니다.”

남자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마일의 인물 정보 창을 눈여겨봤다.

-마일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SS

-비밀 정보 조직 베르투에 소속되어 있는 48인의 현자 중 한 명.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취미는 자신이 모르는 지식을 수집하는 것. 호기심이 굉장히 깊은 남자.

인물 등급이 엑스트라라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로인이라고 합니다.”

‘다행이군. 단역 이상이었다면 쉽게 말을 못 붙였을 텐데.’

나는 마일을 소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맞은편에 앉은 마일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흰 장갑을 낀 채 커피를 마시려는 마일.

그 모습을 나도 모르게 빤히 바라본 모양인지 마일이 내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장갑을 계속 끼고 있었군요. 하지만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로 보여 드리고 싶지 않거든요.”

“손을요?”

“예.”

그러니까 괜히 더 궁금해지네.

“흉터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요. 음…… 좋습니다. 특별히 서비스해 드리죠.”

마일은 장갑을 벗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화상이라도 심하게 입어서 일부러 장갑을 끼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그런 흉터는 보이지 않았다.

마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유지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때, 파랑새가 했던 말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현자와 접선을 가지는 순간, 그때부터 테스트는 시작된다고.

나는 다시 한번 마일의 손을 유심히 바라봤다.

남들과 다른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알 거 같네.’

나는 마일이 손을 감추고 싶어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지문이 없다는 걸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가 보군요.”

“예, 그렇습니다. 로인 님이 보시기에는 별거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희 현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죠. 현자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가 다 지문이 없습니다. 일부러 시술을 받은 건 아니고요. 하도 고서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지문이 닳고 닳아서 없어졌습니다. 지문이 없다는 정보는 곧 ‘이 사람이 현자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정보를 흘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현자들의 공통점이니까요. 이 정보를 흘리지 않기 위해 저희는 장갑을 기본으로 착용하고 다닙니다.”

파랑새에게 들었던 현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떠올랐다.

그들은 정보를 함부로 흘리지 않는다, 특히 본인들에 관한 정보는 더더욱.

‘그래서 장갑에 가면까지 쓰고 다니는 건가?’

48인의 현자와 이들을 이끄는 수장인 대현자의 정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조차도 용병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베르투와 현자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지 않았고.’

물론 이건 내가 1, 2권밖에 안 읽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후속 권에는 아마 등장했겠지.’

다시 장갑을 착용한 마일은 나를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용병이라고 하셔서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두뇌 회전이 빠르시군요.”

“칭찬입니까?”

“물론이죠.”

‘머리 나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머리가 좋네.’라고 말하는 게 과연 칭찬일까?

깊게 생각하지 말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파랑새한테 듣자 하니 테스트를 거친 이후에 회원으로 받아 준다고 하던데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 추천인이 그분이었죠? 이제는 파랑새라고 불리나 보군요.”

“아는 사이입니까?”

“저의 사수였거든요.”

그 말은 곧 파랑새는 전(前) 현자였다는 뜻 아닌가?

이건 예상외였다.

‘어쩐지…… 평범한 소식통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진실이 감춰져 있을 줄은 몰랐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려는 사이에 마일은 내게 물었다.

“파랑새가 알려 주지 않았나 보군요.”

“굳이 말해 줄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는 또. 추천인이라고 해서 로인 님에게는 정체를 공개한 줄 알았습니다. 선배에게 괜히 미안해지네요.”

그러나 말과 다르게 마일은 파랑새에게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겉과 속이 다른 남자군. 조심해야겠어.

“테스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내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마일은 검지를 세웠다.

“저에게 정보를 딱 하나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값어치가 높은 정보라고 판단이 들면, 이 자리에서 로인 님에게 바로 회원 자격증을 드리겠습니다.”

값어치 높은 정보.

이 말이 키워드였다.

정보의 가치를 판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는 사람이 적을 것.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수록, 그리고 보다 적은 사람들이 아는 정보일수록 그 가치는 높아진다.

공교롭게도 나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왜냐.

‘이미 소설 속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비록 1, 2권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것만으로도 제대로 뽕을 뽑고 있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꿀 정보.

그중 하나를 들려주……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제가 당신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치죠. 그러면 그 정보를 이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당신과 베르투에 있는 겁니까?”

“아니요. 이건 어디까지나 로인 님이 저희 회원이 될 자격이 충분한지를 알기 위한 테스트에 불과합니다. 저희가 로인 님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사들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저에게 알려 주고 난 이후에 로인 님이 바로 그 정보를 이용해 득을 취하려 해도 관계없습니다. 단.”

마일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정보를 저희가 사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그렇군.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나저나 로인 님이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 걸 보아하니, 꽤 가치 있는 정보인가 보군요.”

‘눈치는 빠르네.’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내 목적이었기에 강력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기로 했다.

“탄커프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그 근처에 광산이 하나 있죠. 혹시 알고 있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 광산 깊은 곳에 라켈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이죠.”

“……그건 저도 모르는 정보군요.”

모를 수밖에.

왜냐하면 탄커프의 광산에 라켈이 매장되어 있다는 정보는 오늘 날짜를 기점으로 정확히 3개월 뒤에 배포되는 정보다.

라켈은 활력 포션을 만드는 데 주요한 재료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라켈은 아직까지 시장에 많이 풀리지 않았다.

공급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탄커프 광산을 확보하면, 포선 메이커들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와 거래를 맺으려 할 것이다.

누가 먼저 그곳을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일은 내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알기론 그 광산의 소유주가 나알이라는 상인일 텐데, 그가 그 광산을 팔겠습니까? 예전에 비싼 돈을 들여 산 땅인데 말입니다. 혹여나 라켈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이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했다간 절대로 안 팔 텐데요.”

“그러니까 알기 전에 팔게끔 만들어야죠.”

간단한 방법 아닌가?

그리고 내 기억에 따르면, 나알은 도벽이 있어 알게 모르게 빚을 많이 진 상황이다.

조만간 광산까지 팔려고 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 싼 가격에 보물이 잔뜩 묻혀 있는 광산을 사들이면 된다.

마일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라켈이 매장되어 있지 않다면요? 테스트 합격 때문에 저에게 거짓 정보를 주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되는군요.”

“만약 정보가 거짓이라면 제 자격증을 다시 박탈해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거짓이 아닌 진짜배기 정보니까요. 이 정도면 가치 있는 정보 아닙니까?”

“그렇군요.”

마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만큼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줬는가에 따라 테스트 합격 여부가 갈린다.

결과는?

보나 마나 뻔했다.

“로인 님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로인 님을 베르투의 소중한 고객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드는 마일.

하나는 반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첩이었다.

“반지와 수첩은 베르투의 회원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될 겁니다. 수첩에는 베르투를 이용할 때 필요한 수칙 같은 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반지의 경우에는 베르투를 호출할 때 이용하시면 됩니다.”

“호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델리피나 대륙 전체의 도시와 마을에 베르투를 상징하는 표식이 있습니다. 반지의 문양과 같은 문양이죠. 그 문양 위에 반지를 가져다 대면, 순간 이동 마법진이 발동해 로인 님의 전담 현자가 그곳으로 소환될 겁니다. 참고로 제가 앞으로 로인 님을 담당할 겁니다.”

“문양은 어디서 찾으면 됩니까?”

“반지가 문양이 있는 곳으로 알아서 인도해 줄 겁니다.”

모든 도시, 마을에서 현자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베르투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한 조직인 거 같다.

* * *

베르투에서 온 현자인 마일은 테스트를 마친 뒤, 바로 모습을 감췄다.

마일이 준 수첩을 확인했다.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정보로 살 수 있다. 정보의 가치는 전담 현자가 알아서 판단한다.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살 순 없다. 오로지 정보 교환뿐……이란 말이지.”

귀찮은 녀석들. 그냥 돈 주고 정보를 팔면 안 되나?

아무튼 테스트는 통과했으니, 앞으로 정보가 필요하다면 베르투를 잘 이용하면 되겠지.

“맞다, 카인의 위치 정보를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마일을 부를까?

아니, 관두자. 그보다 먼저 실행해야 할 일이 생겨 버렸다.

나는 R팀 본거지를 나와 바로 로그 상단으로 향했다.

라그너는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로인 님.”

“급한 일이 생겼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서둘러 준비하도록.”

“예? 또 파리마에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 이번에는 다른 곳이야.”

원래는 좀 더 나중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손을 쓸 수밖에 없다.

“탄커프로 간다.”

라켈 광산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미 우리 상단의 것으로 점찍어 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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