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67화 (67/240)

# 67

제물을 바쳐라 (3)

나는 네이의 인물 정보 상태 창을 확인했을 때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네이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F

영주 벤제머의 아내. 칠흑의 조각에 잠식당해 지금은 영혼 없는 껍데기로 남아 있다.

마지막 줄이 핵심이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칠흑의 조각 때문이다.

‘아니지, 영혼은 없고 몸만 남게 되었으니 살았다고 보기에 힘들지도.’

네이의 인물 정보를 접하자마자 나는 며칠 전에 있었던 파리마 경매장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 추종자들은 몬스터의 사체에 칠흑의 조각을 넣어 검은 괴물로 재탄생시키려 했다.

비록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 네이라는 여자의 몸에 칠흑의 조각이 들어 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네이란 여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

죽은 육체를 칠흑의 조각이 차지하게 되면, 잠식 1, 2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3단계로 돌입한다.

3단계에 들어서면 자신의 의지대로 외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언제든 검은 괴물이 될 수 있고, 언제든 숙주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잠식 3단계의 무서움이다.

도중에 난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벤제머는 네이가 칠흑의 조각에 잠식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일단 지금 상황에서 봤을 때에는 모르는 듯했다.

하늘을 감동시켰다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을 내뱉는 걸 보면 틀림없다.

검은 괴물의 정체가 네이임을 벤제머에게 알려 줘야 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내가 그냥 말로 주저리주저리 주장해 봤자 벤제머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는 사실은 잘 안다.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괴물이라고 주장하면 화가 나겠나, 안 나겠나.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인간인 이상, 화부터 먼저 내는 게 당연하다.

‘작전을 짜야겠네.’

그래서 나는 드레인과 에나를 내 방으로 몰래 불렀다.

한편 내게서 네이가 검은 괴물임을 전해 들은 드레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에나는 달랐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요.”

“알고 있었어?”

“아니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추측만 했어요. 네이라는 여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한기는 죽은 자의 것이거든요. 산 자의 온기가 아니었어요. 산 자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가웠으니까요. 그걸 느끼고 깨달은 거죠. ‘아, 저 여자. 이미 죽었구나.’ 하고요.”

냉기 감별사 에나다운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 와중에 드레인은 복잡해진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려 노력했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네이 그 여자가 죽었다고 치자. 근데 그 여자가 검은 괴물이다, 아니다는 아직 모르는 거잖아. 검증된 게 없는데?”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그걸 해야죠.”

“……하긴.”

칠흑의 조각의 정체를 밝히고 제거하는 것, 그게 우리의 임무니까.

그러나 드레인은 영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듯했다.

“그런데 영주가 본인의 아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없애야 합니다.”

칠흑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에 나는 첸버와 함께 벤제머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이들에게는 내일 저녁에 펼칠 나의 작전을 미리 설명해 줄 것이다.

아직 첸버조차 듣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벤제머와 함께 나란히 듣기로 했다.

첸버에겐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첸버와 벤제머는 절친한 사이니까.

혹여나 내 계획을 듣고 첸버가 벤제머에게 정보를 흘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첸버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만약’이라는 변수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유인책으로 검은 괴물을 끌어내기로 했습니다.”

유인책이라는 단어에 첸버와 벤제머의 관심도가 올랐다.

검은 괴물은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산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에 특이한 조건이 하나 곁들여져 있었다.

젊은 여자여야 할 것.

“내일 에나를 산 제물 역할로 보낼 겁니다.”

“에나를?”

“부하를 사지로 몰아세워도 괜찮은가?”

“예, 이미 에나도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유인작전으로 에나를 투입시키는 것뿐입니다. 그녀가 정말로 제물이 되는 결말은 없을 겁니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내 작전에 협력해 준 에나다.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해 줘야 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에나를 지켜 줄 것이다.

벤제머는 첸버 쪽을 바라봤다.

“자네 동료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한 자들뿐이군.”

“나도 가끔 놀라곤 해.”

첸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 작전 설명을 들은 벤제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좋네! 자네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 싸워 준다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만 해 주게. 아낌없이 도울 테니까.”

“지원이라는 개념이랑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만……. 영주님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뭐지?”

“혹시 어제 이 마을에 외지인들이 왔었습니까?”

난 이게 너무 궁금했다.

외지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 추종자들일지도 모르니까.

정말로 그들이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나는 작전을 전면 수정할 생각이다.

벤제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보고는 받은 적 없네. 외지인이 우리 마을에 왔다면 금방 나에게 보고가 왔을 걸세. 하지만 그런 보고도 없었고 목격담조차 들은 적이 없네.”

“그렇군요. 쓸데없는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람을 풀어서 외지인이 들어온 흔적이 있는지 다시 한번 조사해 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리고 질문이 1개 더 있습니다만…….”

“하하, 궁금한 게 정말 많은 청년이로군. 이번에는 또 뭐지?”

벤제머는 네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직접 물어볼까 하다가 이내 관두기로 했다.

“아닙니다. 의미 없는 질문이 될 거 같군요. 못 들은 걸로 해 주시길.”

“이 친구가 괜히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망설이지 말고 해 보도록.”

“정말로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일 저녁에 모든 것이 밝혀질 테니 오늘 하루만 참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만 기다리면 된다.

내일 밤, 숨겨진 진실이 밝혀질 테니까.

* * *

다음 날 저녁,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었다.

타람 주민들은 해가 저물자마자, 문이며 창문이며 외부로 통하는 것들을 전부 걸어 잠갔다.

마을에 검은 괴물이 돌아다닌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이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절대로 바깥에 나가지 않는다.

단, 예외가 있었다.

우리들 말이다.

벤제머의 저택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들.

나와 에나 그리고 드레인이 순차적으로 입구에 모여들었다.

마지막에 합류한 사람은 바로 첸버였다.

첸버는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잠깐만, 뭔가 많이 이상한데?”

눈을 흘기며 나와 에나를 번갈아 응시하는 첸버.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

첸버는 차마 견디지 못하고 우리에게 물었다.

“지금 에나가 둘 있는 거 맞지?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

“굳이 말씀드리자면 전자가 맞습니다.”

나는 에나로 똑같이 변장을 했다.

레벨 업을 통해 최근에 개방한 스킬, 이미테이션.

변신에 능한 드래곤의 능력을 그대로 따온 스킬이다.

나는 그 스킬을 이용해 에나의 외형과 목소리를 전부 카피해 내게 적용시켰다.

뒤늦게 내가 변장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첸버는 혀를 내둘렀다.

“목소리까지 똑같이 바뀔 줄이야……. 굉장하군! 이거 마법인가?”

“예.”

“자네,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았나?”

“능통한 건 아니고요. 특정 마법만 몇 개 배워 뒀습니다. 용병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해서요.”

“굉장하군. 자네 같은 용병은 정말 듣도 보도 못했어. 우리 팀에 이런 인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지는군!”

“앞으로도 계속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에나를 산 제물로 내보내 검은 괴물을 유인하겠다는 작전은 맞다.

그러나 진짜 에나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짜 에나, 그러니까 이미테이션 마법을 건 내가 나가겠다는 것이 이 작전의 본질이었다.

어떻게 영입한 인재인데 에나를 사지로 몰아넣을 순 없다.

‘차라리 내가 나가고 말지.’

드레인과 첸버, 에나는 내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근처에서 잠복해 있기로 했다.

산 제물로 바쳐지게 된 자는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탑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곳에서 검은 괴물을 기다린다.

“…….”

주변을 훑었다.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하다.

집 안에 사람들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마치 나 혼자 다른 세계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이런 콘셉트의 공포 영화가 있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는 가짜고 지금 상황은 현실이라는 점일까.

독수리 조각상이 위에 장식되어 있는 작은 탑 앞에 섰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만월이 달빛을 뿜어 대고 있었다.

밤의 태양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잠시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검은 괴물이 근처에 있음을 직감했다.

애초에 나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에 몰래 무기를 감춰 두지 않았다.

주먹으로 죽을 때까지 패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다.

검은 괴물을 충분히 유인한 다음에 공격해야 한다.

성급하게 행동했다가 검은 괴물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이다.

‘놈이 다가올 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검은 괴물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여성.

네이였다.

“…….”

네이는 말이 없었다.

어제부터 나는 그녀가 움직이는 모습을 단 한차례도 보질 못했다.

네이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휠체어를 끌어 주는 하녀가 꼭 한 명은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하녀의 부재에도 휠체어는 알아서 움직였다.

‘진짜 공포 영화 같네.’

분위기 자체가 싸했다.

나는 네이와 시선을 마주쳤다.

“부인, 혼자서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에나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네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휠체어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두 다리로 우뚝 섰다.

무표정이었던 네이의 입꼬리가 기이한 모양으로 올라갔다.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목소리조차 섬뜩했다.

여성의 것도, 남성의 것도 아니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중성의 목소리를 내며 갑자기 자세를 낮추는 네이.

그러더니…….

내게 빠르게 달려왔다.

눈으로 좇기 힘든 스피드였다.

만약 내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분명 네이의 접근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난 일반인이 아니거든!’

몸을 옆으로 살짝 빼면서 네이의 돌진을 흘려 버렸다.

라크스 공작이 보여 준 회피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곧바로 네이와 마주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생각보다 몸놀림이 빨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칠흑의 조각들의 힘은 일정하지 않다.

강한 녀석이 있고 약한 녀석이 있다.

한눈에 봐도 네이의 몸을 차지한 칠흑의 조각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여태껏 내가 상대했던 칠흑의 조각 중에서 가장 강한 녀석일지도!

‘피곤한 밤이 되겠어.’

편하게 잠자기는 글러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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