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추종자들 (3)
칠흑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델리피나 전기》는 다시 한번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칠흑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이 생겨남과 동시에 칠흑의 존재를 받아들이려 하는 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이 바로 ‘추종자’들이다.
혼돈을 통한 질서의 재정립.
칠흑은 그들에게 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상인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칠흑이라는 존재에 매료되고 푹 빠진 자들, 추종자들은 칠흑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인다.
그들이 트리올의 사체를 검은 괴물로 만들고, 라스의 든든한 동료인 엔드라를 죽이도록 한 주범이다.
트리올의 사체는 파리마 경매장에서 사들여 구한다.
그리고 그 사체에 칠흑의 조각을 심어 놓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강력한 검은 괴물을 만들어 낸다.
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트리올의 사체를 차지하려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하나 반절에 불과한 성공이다.
‘아직 추종자들이 남았어.’
나에게 협박을 가해 왔던 검은 로브 일당, 그들이 바로 추종자였다.
나는 이들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일부러 반드와 가르시아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추종자들을 찾아라.’
그리고 반드와 가르시아는 내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 줬다.
“반드, 놈들이 이 도시에 몇이나 있어?”
“열 명 정도. 지금 당장 쓸어버릴 수도 있는데.”
“아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
놈들은 칠흑의 조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위급한 순간에 칠흑의 조각을 사용해 버린다면 곤란하다.
제2의 파리마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선 놈들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원래 나의 계획은 오늘 하루 정도 여기에 머물고 내일 이른 아침에 파리마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너는 가르시아와 같이 놈들을 계속 감시해.”
고개를 크게 끄덕인 반드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라그너와 드레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라그너는 나의 안전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놈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하신 건 아니죠?”
“멀쩡해. 그보다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분부만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로인 님의 명령이라면 목숨 걸고 수행하겠습니다.”
“트리올의 사체를 지금 당장 인계받아. 그리고 마차에 실어서 떠날 준비를 서둘러. 오늘 저녁에 이 도시를 뜰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라그너랑 같이 움직여요. 놈들이 훼방을 놓을지도 모르니까요.”
“결국 이렇게 되는구먼. 오케이, 맡겨 둬.”
나는 일부러 내 용병단을 데리고 왔다.
파리마에서 싸움이 벌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그너는 이제야 내가 왜 드레인과 반드, 가르시아를 데려왔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위험한 밤을 보낼 것 같은 기분이다.
* * *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나는 짐을 챙기고 바로 이동 준비를 서둘렀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앞에서 라그너와 드레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이좋게 마차를 타고 등장한 라그너와 드레인.
뒤에는 트리올의 사체가 담겨 있었다.
냉동 마법이 걸려 있는 탓에 사체가 부패할 걱정은 없었다.
“선배, 여기 짐 받으세요.”
다른 사람들이 내 지시를 받고 외부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일행의 짐을 전부 챙겨 뒀다.
마차 위에서 짐들을 전부 받아 실은 드레인은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그나저나 놈들이 정말로 우리를 습격해 올까?”
“100퍼센트입니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몬스터 사체 따위를 노리는 거야?”
“사이코 종교 집단에 속한 놈들이라 그래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떠나죠.”
“응? 반드하고 가르시아가 아직 안 왔는데?”
“따로 말을 전해 뒀습니다. 우리가 도시를 떠나면, 그 두 사람은 알아서 합류할 거예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선배. 도시를 나가자마자 바로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각오 단단히 해야겠네.”
추종자들이 얼마나 강할지 예상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드레인과 라그너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마차를 끄는 역할은 라그너가 담당하기로 했다.
나는 라그너에게 말을 붙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마차 몰기가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걱정하지 마시길. 소싯적에 제가 마차를 기가 막히게 몰았습니다. 낭떠러지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마차를 몰았던 실력자가 바로 저입니다. 저만 믿으세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잔뜩 겁먹은 모습보다 그래도 허세를 떠는 편이 그나마 보기 좋았다.
도시 밖으로 나서는 순간, 드레인은 롱 소드를 꺼내 들었다.
“친구들, 슬슬 파티를 벌일 준비를 해야겠어.”
우리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기 시작하는 검은 로브 일당.
숫자는 아까 경매장에서 봤던 셋이었다.
그러나 반드는 열 명 정도가 있다고 내게 보고했다.
놈들은 우리를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뒤쫓기만 할 뿐.
라그너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인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공격을 안 하지?”
뻔했다.
놈들은 우리를 유인하는 거다, 남은 일곱 명이 잠복해 있는 곳으로.
그래서 공격하지 않고 추격만 해 오는 것이다.
드레인은 불안한 듯 나를 바라봤다.
“이봐, 후배. 저쪽은 아무래도 우리를 계곡 쪽으로 유인하려는 거 같은데? 이대로 계속 놈들한테 끌려다녀도 되는 거야?”
“습격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조치를 취해 뒀으니까요.”
놈들의 바람대로 우리가 탄 마차는 계곡 안으로 향했다.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을 때, 추격해 오던 검은 로브 3인방은 말에서 내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와 드레인 역시 마차에서 내렸다.
라그너는 그대로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라그너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에게 협박을 가해 왔던 남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동시에 녀석의 인물 정보가 갱신되었다.
-이름을 버린 추종자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D
-칠흑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이름과 함께 과거를 버린 자. 칠흑의 조각에 잠식되어 있는 상태다.
녀석들 중 최소 한 명 이상은 잠식 단계에 접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문제는 녀석의 잠식 단계가 몇인지 모르겠다는 건데.’
정상적으로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선 3단계까진 도달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다.
‘데르킨 백작 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으니까.’
칠흑과 연관되어 있는 존재와 상대할 때에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라스가 소중한 동료, 엔드라를 잃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방심’해서다.
한 번의 방심이 소중한 동료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절대로 그 절차를 밟고 싶지 않다.
이름을 버린 추종자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 얌전히 몬스터를 넘길 생각이 들었나?”
“아니, 전혀.”
나는 단호했다.
‘여기까지 개고생을 하며 왔는데, 이제 와서 얌전히 넘겨줄 거 같냐? 어림도 없지.’
추종자는 피식 웃음을 토해 냈다.
“멍청한 것. 그대로 죽어라.”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남자는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튀겼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난 추종자가 당황하는 이유가 뭔지 잘 안다.
녀석이 신호를 주면 미리 대기 중인 다른 추종자들이 나와서 나를 없애기 위해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추종자가 모르는 두 남자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의 오른팔, 왼팔인 가르시아와 반드였다.
추종자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희는 누구냐?”
가르시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네 부하들을 작살낸 자들이다.”
“뭐라고……?”
남자의 심기는 굉장히 불편해졌다.
나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몰래 계곡까지 따라온 반드와 가르시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잠복한 추종자들을 없애라고.
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소화했다.
이제 남은 건 저 셋뿐이다.
“자, 어떻게 할 거냐?”
남자를 도발했다.
남자의 상반신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쿨럭!”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 냈다.
본능적으로 상황이 위험하게 돌아감을 감지했다.
남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그것은 점점 남자의 육신을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잠식 3단계로 돌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두 추종자에게 외쳤다.
“거기! 얼른 놈에게서 떨어져! 붙어 있으면 위험해!”
그러나 추종자들은 내 말을 무시했다.
오히려 ‘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검은 연기에 감싸인 남자는 점점 괴물이 되어 갔다.
푸욱!
남은 추종자들의 심장을 뽑아낸 검은 괴물은 그대로 심장을 우걱우걱 삼켰다.
녀석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놈은 괴물이다.
“다들 바짝 긴장해라!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놈이니까!”
내 말에 용병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검은 괴물은 나에게 가장 먼저 덤벼들었다.
비대해진 팔을 내게 휘둘렀다.
나는 침착하게 검은 괴물의 공격을 그대로 튕겨 냈다.
투우웅!
묵직한 감각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내가 빈틈을 만든 동안, 가르시아와 드레인이 각각 좌우측에서 협공을 가했다.
푸욱!
양쪽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사이에 반드가 뒤로 돌아가 단검으로 검은 괴물의 등을 유린했다.
그럼에도 검은 괴물은 멀쩡히 움직였다.
놈을 쓰러뜨리려면 저런 공격으론 부족하다.
“괴물을 끝장낸다는 생각은 버리고 시선을 빼앗는다는 느낌으로 덤벼들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세 남자.
셋의 협공으로 인해 검은 괴물의 관심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검은 괴물의 심장을 뽑아냈다.
검은 괴물은 괴성을 질러 댔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손에 힘을 줘 검게 오염된 심장을 터트렸다.
그제야 괴물은 조용해졌다.
힘없이 쓰러지는 검은 괴물을 보며 가르시아는 혀를 내둘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검은 괴물입니까?”
“맞아. 어때, 싸워 본 소감이?”
“한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은 싸우고 싶지 않군요.”
그러나 가르시아의 이 소망은 헛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칠흑의 조각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델리피나 대륙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 * *
검은 괴물을 없앤 후, 나는 트리올의 사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라그너는 내 행동에 의문을 표명했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로인 님?”
“내가 이 몬스터 사체를 사들인 목적을 실행하려고.”
“목적이라 하심은…….”
“이거야.”
파이어 스톤 하나를 꺼내 트리올의 사체에 던졌다.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라그너는 입을 쩍 벌렸다.
“사, 사체를 왜……?”
“아까 말했잖아, 태우려고 샀다고.”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돈 아깝다고 남겨 두면, 또 다른 추종자들이 사체를 노릴 것이다.
‘기가 막히게 잘 타네.’
트리올의 사체, 아니 25억짜리 장작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불에 잘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