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추종자들 (2)
경매가 열리는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경매장으로 변한다.
1년에 딱 두 번 있는 거대한 이벤트.
파리마에서만 볼 수 있는 대규모 경매장은 오늘로 2일째를 맞이했다.
오늘은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 트리올의 사체가 경매장 단상에 올라올 예정이었다.
희귀 몬스터라 그런지 부르는 게 값이다.
트리올의 사체를 노리고 온 귀족과 상인의 숫자는 꽤 많아 보였다.
라그너는 팸플릿을 펼쳤다.
“D-2로 가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트리올의 사체를 두고 경매가 진행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시간은 예정대로 오후 2시?”
“예, 그래도 미리 가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해 둬야 낙찰가를 부를 때 편하거든요.”
라그너는 상인으로 오래 굴렀던 경력을 지닌 남자다.
경매에 한두 번은 참가해 봤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완전 처음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오기 이전에도 경매장에 가 본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인터넷 경매 같은 것만 몇 번 해 봤을 뿐,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경매장은 처음이었다.
‘신기한 게 많네.’
듣도 보도 못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중간에 익숙한 물품이 보였다.
‘가만, 저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라그너와 드레인도 자연스레 내 뒤를 따랐다.
거의 손바닥만 한 크기를 지닌 어금니였다.
라그너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물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타우르의 어금니군요.”
어쩐지,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휴즈한테 받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만 크기는 내 것이 더 크다.
이 어금니의 주인이었던 타우르는 내가 상대했던 녀석보다 덩치가 작은 놈인가 보다.
“얼마에 팔렸어? 팔리기 전의 물건인가?”
“낙찰되었군요. 잠시만요,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내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라그너는 바로 행동에 임했다.
잠시 후 라그너가 다시 돌아와 보고했다.
“5억 제피라고 합니다.”
“이게 그렇게 비싸?”
어금니 하나만으로도 5억이라니…… 엄청난데?
“예, 타우르도 트리올만큼 희귀한 몬스터니까요. 특히 온전한 상태의 어금니는 구하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타우르의 어금니가 얼마나 희귀한 물건인지 세삼 깨달을 수 있었다.
비싼 물건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예상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경매 물품으로 등록시켜 둘 걸 그랬나?
아니지,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처럼 언제 또 쓸 곳이 있을지 모르니 당분간은 내가 가지고 있기로 하자.
어차피 난 돈 많으니까.
* * *
D-2에 도착하자,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다 트리올의 사체를 노리고 온 자들이란 말이지?’
중간에 유독 눈에 띄는 일행이 있었다.
검은 로브로 얼굴까지 가린 세 명의 일행.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이 잘 안 간다.
드레인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저렇게 입으면 안 덥나? 쪄 죽을 거 같은데.”
파리마의 오늘 날씨는 꽤 더운 편이었다.
체감온도로 따지면 31도 정도 될 거 같았다.
그럼에도 저들은 피부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끝까지 로브를 벗지 않았다.
‘낯이 익은데.’
검은 로브. 검은 로브라…….
연상되는 게 두루뭉술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정확히 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소설 속에서 검은 로브에 관한 내용을 얼핏 본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집중해 보면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경매는 바로 시작됐다.
“이번 경매 물품은 바로 여러분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시던 바로 그 물품입니다!”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 사회자의 멘트가 참가자들의 이목을 단상으로 집중시켰다.
진행 요원이 붉은 천을 걷어 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트리올의 사체……!”
“상태가 꽤 좋아 보이는데?”
의외로 보존이 잘되어 있어서 놀란 듯했다.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겉에 상처 하나 안 보였다.
값어치로 따지면 최상급은 될 것 같았다.
난 트리올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
생긴 건 마치 호랑이 같았다.
무늬 없고 송곳니가 날카롭게 서 있는 호랑이랄까?
단, 일반 호랑이에 비해 덩치가 상당하다.
듣자 하니 트리올의 송곳니와 발톱은 강철조차 찢어발길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고 했다.
제련하면 최고급 무기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대장장이들이 특히 트리올의 송곳니와 발톱을 많이 찾는다.
가죽 역시 최고급으로 분류된다.
특히 귀족들이 장식품으로 많이 탐을 낸다.
고기 맛도 일품이라고 하고……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하긴 그러니까 비싼 거겠지.’
얼마까지 올라갈까? 이게 제일 궁금했다.
“자, 그럼 경매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트리올의 사체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고 가격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미친 듯이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5천만!”
“6천 5백!”
“8천!”
“1억 3천!”
순식간에 1억을 돌파했다.
역시 억 단위까지는 금방 갈 줄 알았다.
‘타우르의 송곳니가 5억에 낙찰되었으니 온전한 트리올의 사체는 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겠지.’
일단 두 자릿수까지는 갈 것 같았다.
드레인은 나와 라그너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손 안 들어도 돼?”
“초반부터 달려 봤자 의미 없어요. 우리는 최고가 싸움을 노릴 겁니다.”
어차피 가격은 다른 참가자들이 계속 높여 줄 거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지만, 8억에 도달하니 슬슬 경쟁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0억!”
드디어 두 자릿수에 도달했다.
10억 선을 돌파함과 동시에 경쟁자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때, 검은 로브 일당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15억.”
10억에서 순식간에 15억으로 펄쩍 뛰었다.
참가자들은 입을 쩍 벌렸다.
사회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5억…… 맞습니까?”
“…….”
사회자의 반복된 질문에 검은 로브 일당은 대답 대신 고개를 한번 끄덕여 줬다.
“15억! 15억 나왔습니다! 이 이상 부르실 분 안 계십니까?”
라그너는 내 쪽을 돌아봤다.
“슬슬 시동을 거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는 게 좋겠어.”
내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라그너는 손을 들었다.
“16억.”
가볍게, 아주 가볍게 1억만 올려봤다.
여유 넘치는 우리와 달리, 참가자들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우리와 검은 로브 일행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사람들, 대체 뭐야?”
“가만, 저 사람…… 로그 상단 쪽 사람 아니야?”
“맞네, 맞아! 라그너! 그 사람이야!”
라그너는 이미 얼굴이 잘 알려져 있다.
말단 용병인 게럴조차 라그너를 알아볼 정도니 말 다했지.
반면 나는 못 알아보는 듯했다.
내 일화는 많이 들었을 테지만, 나를 실물로 만나 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R팀 대장을 나타내는 전용 보호구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니 모를 수밖에.
검은 로브 일당은 우리 쪽을 매섭게 노려봤다.
정면을 보니까 얼굴도 마스크로 가려 눈만 딱 나와 있었다.
‘대단하다. 이 더위에 저런 차림이라니.’
저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들었다.
“17억.”
질 수 없지.
우리도 간다!
“18억.”
“19억.”
“20억.”
“…….”
20억까지 올라간 금액.
아직 우리는 여유가 있다.
‘저쪽은 어떨까?’
또 한 번 우리 쪽을 노려보는 것으로 보아선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돈 없으면 조용히 물러서야지.
물질만능주의 몰라? 엉?
사회자는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20억 나왔습니다! 20억 이상 부르실 분 계십니까? 없다면 이대로 저분께 낙찰을…….”
남자는 고민을 한 끝에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22억.”
남자의 22억 발언에 그의 동료들조차 놀란 듯했다.
어깨를 움찔거린 뒤, 남자에게 뭔가 다급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는 대쪽 같았다.
“22억.”
재차 자신이 부른 금액을 강조했다.
그런 뒤에 우리를 또 한 번 째려봤다.
‘그만 째려보시지. 우리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경매잖아, 경매.’
라그너는 마지막으로 내게 의견을 구했다.
“슬슬 끝내는 게 어떨까요, 로인 님.”
“저 녀석들, 편하게 보내 줘.”
“알겠습니다.”
본래 돈은 쓰라고 있는 거다.
아껴 봤자 똥 된다.
손을 든 라그너.
쓸데없이 길었던 경매장에서의 혈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이렇게 외쳤다.
“25억!”
* * *
내 손에 들린 종이 한 장.
트리올의 사체 소유권을 증명하는 증명서다.
결국 트리올의 사체는 25억을 부른 우리들에게 낙찰되었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계속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경매장을 벗어날 무렵, 검은 로브 일당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난 너희랑 이야기 나눌 게 없는데. 그럴 생각도 없고.”
“목숨이 아깝다면 좋은 말로 할 때 내 말에 따르는 게 좋을 거야.”
남자의 협박에 드레인은 바로 무기를 꺼내 들려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뻗어 드레인을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이야기나 들어 보고 올게요.”
“딱 봐도 위험한 녀석들 같은데, 혼자서 괜찮겠어? 반드하고 가르시아도 없는데.”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는 눈도 많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수작은 못 부리겠죠.”
아직 우리는 경매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근처에 병사와 용병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고 있다.
아무리 담이 크다 하더라도 경매장 한복판에서 난리를 피우진 못할 터.
검은 로브의 남자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소유권을 포기해라.”
“무슨 소유권?”
“모른 척하지 마라. 트리올의 사체에 관한 소유권일 게 뻔하잖아.”
“내가 25억이나 주고 샀는데 왜 그걸 포기하라는 건데?”
“트리올의 사체를 넘기지 않으면, 너는 살아서 파리마를 떠나지 못할 거다.”
“살인 예고인가?”
“그렇다고 보면 되겠군.”
갑자기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장직을 포기하라고 협박을 해 왔던 남자, 데브.
그때 나는 데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싫은데.”
“…….”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어이가 없는 쪽은 오히려 나라고.
“트리올의 사체가 정 필요하다면 25억 이상을 지불하고 사 가면 되잖아. 돈 없으면 너네들이 포기하든가.”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군.”
남자는 마지막으로 내게 경고했다.
“후회할 거다.”
그 말을 남기고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후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대화는 다 끝났어?”
반드였다.
암살자답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나와 남자가 주고받은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끝내 버렸어. 그보다 내가 시킨 일은?”
“대장이 예상했던 그대로였어.”
“찾았나?”
“덩치가 지금 감시 중이야. 보니까 저 남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더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나?
트리올의 사체를 이용해 검은 괴물을 만든 조직이 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추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