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61화 (61/240)

# 61

권왕(拳王) 휴즈 (4)

절벽 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휴즈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빙판 호수가 있었다.

내가 위에서 바위를 부숴 버린 덕분에 돌덩이의 잔해들이 아래로 떨어져 빙판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호수 밑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나도 몰라. 들어가 본 적도 없으니까. 그래도 바다보다는 수심이 얕겠지.”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휴즈.

예전에는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이 있어서 이런 말투를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냥 휴즈라는 인물 자체가 이렇다.

“이제부터 2단계 테스트를 시행하겠다.”

그렇게 말하고서 대뜸 호수를 가리키는 휴즈.

무엇을 뜻하는지 1도 모르겠다.

“호수 속에 들어가면 됩니까?”

설마 잠수가 2단계 테스트인가?

권법이랑 전혀 관련 없는 테스트잖아.

그러나 휴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곧 올라올 거다.”

“올라오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곧 알게 될 거다.”

아까부터 이상한 말만 들려주는 휴즈.

소설 속에선 휴즈의 1, 2단계 테스트 내용까지 상세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머지않아 빙판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흔들림에도 휴즈는 당황하지 않고 구멍 뚫린 호수 쪽을 바라봤다.

“놈이 온다.”

휴즈의 말은 곧 신호탄이 되었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물줄기가 위로 솟아올랐다.

거대한 물기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몬스터.

악어처럼 생긴 몬스터가 푸른 눈을 번뜩이면서 우리를 내려다봤다.

“저건 무슨 몬스터입니까?”

“타우르라고 하는 녀석이다. 네스킨 산맥에 살고 있는 녀석이지. 성격은 매우 포악하니까 조심하도록.”

“저 녀석을 쓰러뜨리는 게 2단계 테스트 내용입니까?”

“정답.”

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휴즈.

나에게 잘해 보라는 말만 남긴 채 전장을 이탈했다.

타우르는 나라는 이름의 먹잇감을 보고 흥분한 모양인지 벌써부터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누가 곱게 먹혀 줄 거라고 생각했나.

큰 덩치답게 움직임은 굉장히 느리다.

이 정도면 여유지!

측면으로 돌아들어 가 타우르의 옆구리에 강한 펀치를 먹였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어라?”

타우르는 멀쩡했다.

타격을 전혀 받지 않은 듯했다.

나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혹시 몰라 녀석의 등 뒤에 올라타 다시 한번 주먹질을 퍼부었다.

퍽퍽퍽퍽퍽!

혼신의 일격을 다했다.

그럼에도 타우르는 여전히 멀쩡했다.

“뭐야, 이 녀석?”

믿을 수가 없었다.

여태껏 내 주먹을 맞고 멀쩡했던 놈은 없었다.

타우르가 유일했다.

일단 타우르에게서 멀어졌다.

아무리 때려도 상처 하나 안 생기는 놈이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때, 휴즈가 작게 웃었다.

“큭큭, 내 그럴 줄 알았다.”

“휴즈 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타우르의 철갑 가죽은 드래곤조차 질색으로 만들 정도로 질기고 강하다. 타우르는 현존하는 몬스터 중에서 톱급 방어력을 지닌 몬스터 중 하나다. 드래곤들조차 이 녀석을 씹어 먹으려고 하다가 도중에 뱉어 버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야. 그만큼 대단한 녀석이지.”

이런 몬스터가 네스킨 산맥에 살고 있을 줄이야!

내가 읽었던 소설 속 분량에는 타우르의 존재가 언급되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몬스터인 데다가 내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깨달으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이 전해졌다.

“그러면 어떻게 놈을 쓰러뜨려야 합니까?”

“그걸 알려 주면 테스트라고 할 수가 없지. 방법은 너 스스로 찾아내라.”

어쩐지……. 1단계 돌덩이 박살 내기는 타우르를 불러오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나치게 쉬웠던 것이다.

‘큰 그림 잘 그리시네, 내 스승님.’

하지만 갑자기 이런 커다란 숙제를 내주니, 어떤 답안지를 내놓아야 좋을지 혼란스럽다.

* * *

반나절 가까이 타우르와 싸웠다.

결과는 무승부다.

타우르는 내게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호수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승부욕이 들어서 물속까지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휴즈가 나를 만류했다.

“됐다, 지상에서 싸워도 녀석을 못 쓰러뜨렸는데 물속에 들어간다고 특별한 방법이 있겠나? 어차피 녀석은 어디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이곳에 쪽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내일 다시 도전해 봐라.”

“……알겠습니다.”

아직 나와 타우르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왠지 모를 패배감이 밀려왔다.

어떤 몬스터가 와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는데.

타우르는 처음으로 내게 절망감이라는 것을 안겨 줬다.

동시에 아직 나는 성장하려면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해 줬다.

간만에 느껴 보는 이 감정들.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모양인지 휴즈가 말을 걸어왔다.

“묘한 기분일 거다. 하지만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은 넓고, 네가 만나 보지 못한 강적들 또한 많다. 자기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건 물론 좋지. 하지만 자신감이 너무 과하면 그건 자만이 된다. 자만은 그 어떠한 적들보다도 위험한 존재야. 결코 자만에 빠져들지 마라. 항상 겸손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해.”

걸음을 멈춘 휴즈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이것이 2단계 테스트의 본래 정체다.”

“저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테스트였군요.”

“그래.”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 휴즈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단계 테스트는 통과다. 너는 충분히 강해졌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산해도 좋다.”

“아니요, 아직입니다.”

“응? 뭐라고?”

“테스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멋대로 테스트를 끝내면 안 되지.

“타우르를 잡을 때까지가 테스트 아닙니까?”

“아서라. 지금의 너론 절대로 못 잡아. 아까 그걸 보고도 감이 안 오냐?”

“감이 왔습니다.”

“거봐, 내 말이 맞…….”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감이요.”

“…….”

휴즈는 할 말을 잃은 모양인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 알아서 해라. 단, 딱 3일 시간을 주마. 그 안에 타우르를 잡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오늘을 제외하고 3일이다. 내일부터 바로 카운트할 거니까 그리 알아 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이제 남은 건 타우르 녀석을 어떻게 사냥해야 좋을지 연구하는 일뿐이다.

* * *

첫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빙판 호수로 향했다.

시도해 보고 싶은 첫 번째 방법.

바로 체력전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 하더라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이상, 분명 체력에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누가 먼저 지치느냐, 지치는 쪽이 지는 거다.

이 생각을 하고 나왔다.

타우르를 불러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미리 사냥한 사슴 한 마리를 뻥 뚫린 호수 근처에 놓아두었다.

피 냄새를 맡은 타우르는 다시 빙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슴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킨 타우르.

놈을 향해 외쳤다.

“야! 둔팅이!”

타우르는 ‘크릉!’ 소리를 내며 콧김을 뿜어냈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 같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작정하고 녀석에게 덤벼들었다.

동이 트고 다시 질 때까지.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안 마시면서 계속 타우르와 전투를 이어 나갔다.

나도 나지만, 타우르도 대단한 녀석이다.

저렇게 큰 몸집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체력이 남아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보름달이 뜨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헛수고했네.’

타우르와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내게 전의가 없음을 깨달은 모양인지 타우르도 나를 공격해 오지 않았다.

풍덩! 다시 호수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시간만 날려 먹었네.’

배고파 죽겠다.

일단 밥부터 좀 먹자.

* * *

이튿날도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계속 때려 봤지만, 타우르는 멀쩡했다.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 3일째 아침이 밝아 왔다.

몸에 피로가 가득했다.

그러나 머리는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인 만큼 어떻게 해서든 타우르를 쓰러뜨려야 한다.

길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거,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즈의 말에 반응했다.

휴즈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죽을 들이켰다.

“속으로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타우르 저 녀석은 쓰러뜨리는 게 가능한 몬스터이긴 할까? 하고 말이지. 어때, 내 예상이? 정확하지?”

“죄송하지만 틀렸습니다.”

“……그래?”

괜히 머쓱해진 모양인지 휴즈는 볼을 긁적였다.

“여하튼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내 특별히 너한테 좋은 말을 들려주마.”

“힌트입니까?”

“힌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애매한 대답이네.

어떤 말인지 들어나 보기로 했다.

“내가 너에게 알려 준 요점들이 있을 거다.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 그걸 머릿속에 항상 떠올려라.”

휴즈가 내게 알려 준 싸움의 기술.

아니,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태도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살아 있는 생명체인 이상 분명 약점은 존재한다.

동시에 적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감추려 한다.

무턱대고 그냥 싸우려 하지 말고, 이 약점이 어디인지를 미리 분석해 두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약점을 공략하면 된다.

이것이 휴즈가 알려 준 마음가짐이었다.

약점, 혹은 빈틈을 노려라.

그리고 그것을 집중 공략해라.

여기에 타우르를 쓰러뜨릴 힌트가 담겨 있을 터.

휴즈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에 나는 다시 빙판 호수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 트라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 * *

빙판 호수에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타우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하루라도 안 보면 섭섭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설마 내가 몬스터와 이렇게 사이가 좋아질 줄이야……!’

“오늘은 결판을 내자고.”

자세를 낮췄다.

3일 내내 붙으니까 타우르가 어떤 공격을 해 올지 이제는 안 봐도 뻔히 예상되었다.

첫 번째는 무조건 꼬리 치기 공격이다.

뒤로 몸을 빼며 가볍게 회피했다.

이다음은…… 여태까지의 나였다면 안으로 파고들어서 타우르의 옆구리를 공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약점이 있다면 적은 그 약점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렇다면……!’

타우르가 여태껏 내게 단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신체 부위가 있다.

바로 배다.

타우르가 깔고 있는 빙판 조각을 그대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겁나 무겁네!’

손이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빙판을 뒤집었다.

첨벙!

타우르의 거대한 몸이 뒤집어졌다.

흰색의 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그 위에 올라탔다.

‘역시 배가 약점이었어!’

배의 가죽은 다른 가죽에 비해 굉장히 얇았다.

주먹으로 놈의 배를 가격했다.

뻐어어억!

타우르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공격이 먹혀 들어간다는 증거였다.

‘옳거니!’

드디어 왔구나, 총공격 찬스!

마나를 끌어모아 양 주먹에 집중시켰다.

이후에 주먹으로 타우르의 배를 난타했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내가 주먹질을 할 때마다 타우르의 큰 덩치는 크게 움찔거렸다.

마지막 일격을 날렸을 때, 그제야 타우르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해냈다!”

3일이 넘는 사투 끝에 드디어 녀석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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