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60화 (60/240)

# 60

권왕(拳王) 휴즈 (3)

휴즈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이계에서 넘어왔다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나를 예의 주시했다.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휴즈의 눈동자에 박힌 진실의 돌로 판별이 가능하다.

그동안 나는 계속 말을 이어 가기로 했다.

“예. 저에게 칠흑을 없애려는 다른 이유를 물어보셨죠? 저는 이 세계를 구해야 다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높죠.”

카인은 나에게 ‘이야기의 올바른 수정’을 요구했다.

이걸 해내면 나는 다시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 중이었다.

“결국 제가 있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칠흑을 없애려고 합니다. 칠흑을 없애기 위해선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휴즈 님처럼 라바인 전투에 참가해 최후의 전투에서 생존한 소년 병사입니다. 물론 본명은 로인이 아닙니다. 강시언이라는 이계인이죠. 저는 이 소년의 몸으로 들어와서 라바인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고, 거기서 용신단이라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삼켰습니다.”

“용신단이라……. 그건 뭐 하는 아이템이지?”

“드래곤의 육체 능력을 손에 거머쥘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템입니다. 특이하게 체내에 흡수되는 아이템이더군요.”

“드래곤의 육체를……!”

-휴즈가 당신에게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휴즈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관심을 안 보이려야 안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 불리는 드래곤의 육체 능력을 손에 얻었으니 이거야말로 ‘먼치킨’이 아니고 무엇일까?

물론 더 사기적인 능력을 얻은 주인공, 라스가 있지만 말이다.

휴즈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선 거짓말을 일절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게 되었다.

휴즈는 입이 무거운 남자다.

이런 이야기를 쉽게 떠벌리고 다닐 인물은 아니다.

설령 내가 이계에서 넘어왔다는 소문이 퍼진다 하더라도 그냥 시치미 떼면 그만이다.

‘증거 대라고 해, 증거.’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휴즈는 알 수 있다.

한동안 나를 응시하던 휴즈는 짧게 혀를 찼다.

“사실인가 보군.”

“휴즈 님이라면 제 말을 믿어 주실 줄 알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거냐?”

“휴즈 님이 라바인 전투를 통해 얻게 된 능력이 뭔지,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

휴즈는 본인의 눈에 진실의 돌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극소수에게만 털어놓았다.

그들은 휴즈가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인정한 자들이다.

그들이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을 것이다.

휴즈는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좋다. 네가 중대한 비밀을 하나 털어놓았으니, 나도 내 눈에 대해 알려 주마.”

휴즈는 초록색 눈을 가리켰다.

“네가 말한 대로 내 왼쪽 눈에는 진실의 돌이라는 아이템의 파편이 박혀 있다. 보통 아이템은 파괴되면 제 기능을 상실하지. 하지만 진실의 돌은 달랐다. 파편 덕분에 나는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대신에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 눈 덕분에 네가 진실만을 고하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섞어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지.”

다 아는 내용들뿐이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는 합격한 겁니까?”

나는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남들에게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것들까지 털어놓았다.

휴즈는 다시 한번 무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좋다.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마.”

권왕 휴즈 회유 작전.

결과는 대성공이다.

* * *

가져온 짐들을 창고 안에 넣었다.

“오늘부터 이곳이 네 보금자리다.”

그렇다.

휴즈에게 가르침을 받는 동안, 나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제대로 된 방을 배정받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안 되는 곳이라는 걸 잘 알기에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생 창고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수련이 끝날 때까지만 창고에 사는 거니까 잠깐만 참기로 했다.

짐을 다 풀기도 전에 휴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로 시작할 거니까 준비 다 끝나면 옷 갈아입고 나와라.”

“벌써요?”

“시간 없다며. 난 어중간하게 알려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각오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바라던 바다.

강함은 내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괜히 휴즈가 있는 곳까지 온 게 아니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

용신단만 레벨 업 할 게 아니라 용신단의 능력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도 레벨 업을 시켜 둬야 한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휴즈는 내게 손짓했다.

“우선 실력 좀 보자.”

“대련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보완할지 결정해야 하니까. 왜, 싫으냐?”

“아닙니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권왕이라 불리는 남자, 휴즈와 직접 일대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흔치 않을 것이다.

휴즈를 결코 얕봐선 안 된다.

드래곤과 주먹다짐을 할 정도로 강한 남자다.

라크스 공작과 대련할 때처럼 하면 안 된다.

‘전력을 다해 덤벼 볼까?’

나는 자세랄 게 없었다.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다가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적에게 달려든다.

휴즈는 빈틈투성이였다.

선공을 먼저 가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휴즈는 내 공격을 아주 가볍게 피해 냈다.

“스피드는 제법이군.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빤히 보여.”

팔꿈치로 내 허리를 가격했다.

윽 소리가 절로 났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맷집도 나쁘진 않군. 근데 너, 낙법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거 같은데?”

“알긴 압니다만, 배워 본 적은 없습니다.”

“머릿속의 지식을 몸에 그대로 녹여 내는 과정이 어렵긴 하지. 그래도 알고 있다는 게 다행이군. 모른다고 한다면, 낙법 훈련만 한 3개월은 시키려고 했는데.”

끔찍한 소리였다.

이후에 계속 휴즈에게 공격을 날려 봤지만, 휴즈는 단 한차례도 내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라크스 공작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먼지를 털어 내며 다시 일어섰다.

대련만 벌써 2시간 가까이를 하는 것 같았다.

휴즈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젊은 녀석이라 그런지 체력 하나는 진짜 뛰어나군. 하지만 이대로 계속해 봤자 무의미해. 대련은 이쯤에서 멈추도록 하지.”

“고생하셨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마라. 그냥 이름으로 불러.”

“알겠습니다, 휴즈 님.”

휴즈는 나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했다.

그중에서 유독 귀에 남는 문제점이 있었다.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거 같은데…… 용신단에 그런 능력은 없나?”

“잠시만요.”

패시브 스킬 중에 ‘마나 컨트롤’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자유자재로 마나를 다룰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스킬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마나 컨트롤 스킬 덕을 크게 본 적은 없었다.

사용해 본 적도 없고 말이다.

“마나는 마법을 쓸 때만 사용하는 거 아닙니까?”

“쯧쯧쯧, 이 녀석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휴즈는 내 말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검사든 궁수든, 그리고 우리같이 주먹을 쓰는 무투가든 마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키고, 그로 인해 강력한 공격을 선보일 수 있는 거니까. 소드 마스터들이 검기 막 날리고 그러잖아. 이와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마나를 잘 다룰 줄 아는 자, 천하를 제패하리라. 이런 말도 못 들어 봤냐?”

들어 봤을 리가 있겠냐?

애초에 나는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 키보드 두드리는 생활만 해 왔던 편집자다.

오히려 그걸 아는 게 이상하다.

고개를 가로젓는 나를 보고, 휴즈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줘야겠군.”

그래도 용신단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A클래스로 갈 줄 알았더니만, 졸지에 F클래스로 떨어지고 말았다.

* * *

내가 휴즈의 제자로 들어간 지 이제 딱 3주째가 되었다.

이때까지 내가 한 거라고는 크게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첫 번째, 기초 체력 단련.

그리고 두 번째, 명상.

집중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내 주변에 흐르는 마나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고 난 뒤, 휴즈는 나에게 기본적인 권법을 알려 줬다.

정말 기초적인 것들만.

그러던 어느 날.

“바보 제자, 일로 와 봐라.”

휴즈는 나를 불렀다.

따라오라고 말한 뒤에 저만치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딜 가나 싶었다.

이동하면서 휴즈는 나에게 질문 하나를 건넸다.

“수련의 성과는 좀 있는 거 같냐?”

“네, 예전에 비해 많이 강해진 거 같습니다.”

“너에게 두 가지 테스트를 내려 주마. 그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다면, 내 가르침을 100퍼센트 다 흡수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테스트라…….

3주간의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나조차도 궁금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어느 절벽이었다.

낭떠러지에 걸려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

나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휴즈는 돌덩이를 가리켰다.

“첫 번째 테스트는 저 돌을 부수는 거다.”

“부수기만 하면 됩니까?”

“물론.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저 돌에는 네스킨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한기가 가득 서려 있다. 강도 또한 만만치 않지. 제대로 수련하지 않은 무투가가 함부로 주먹을 내지르면 팔이 부러지는 수가 있다.”

‘나는 이 돌을 부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주먹을 내질러야 한다.

도중에 겁을 먹어 어중간하게 주먹을 내밀면, 휴즈의 말대로 내 팔이 망가질 것이다.

“도전하겠나.”

“예.”

지금의 나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두려움보다 얼마나 내가 강해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더 강하게 들었다.

기본자세를 취한 후에 마나 운용에 들어갔다.

마나를 온몸으로 느꼈다.

동시에 주변에 있는 마나를 끌어모아 내 오른 주먹에 실었다.

드래곤 클로를 사용하면 이까짓 돌은 우습게 조각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킬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순수한 강함. 이것을 배우기 위해 나는 휴즈의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후우.”

천천히 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내쉬었다.

이윽고 오른 주먹을 크게 내질렀다.

쩌적!

단 한 방의 일격으로 네스킨 산맥의 한기를 머금은 돌덩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균열을 따라 돌덩이가 조각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휴즈는 소감을 짧게 들려줬다.

“나쁘지 않군.”

이로써 1단계는 통과했다.

그러나 첫 번째 테스트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영 기쁘지가 않았다.

‘이게 정말로 1단계 테스트라고? 그러면 앞으로 하나밖에 안 남았잖아?’

솔직히 말해서 잔뜩 겁준 것치곤 쉬웠다.

가만히 있는 돌덩이 하나 부수는 게 뭐가 힘든 일이란 말인가?

확실히 다른 돌덩이에 비해 단단하긴 했다.

그러나 이건 수련 전의 내가 해도 충분히 부술 만한 돌덩이였다.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본 휴즈는 다시 내게 손짓했다.

“바로 2단계 테스트에 들어가도록 하지. 따라와라.”

“네, 알겠습니다.”

너무 쉬운 테스트 내용에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2단계도 이럴까? 흠, 곤란한데.’

설마 휴즈가 나를 빨리 내보내고 싶어서 일부러 쉬운 테스트를 골라서 시행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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