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59화 (59/240)

# 59

권왕(拳王) 휴즈 (2)

네스킨 산맥은 눈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1년 내내 눈으로 뒤덮인 곳은 아니고, 사계절이 존재하는 곳이다 보니 겨울이 왔을 때에만 설산이 된다고 한다.

그나저나 온도가 장난이 아니다.

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가 나를 엄습했다.

‘용신단의 힘을 지니고 있는데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라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네.’

반대로 에나는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엄청 기뻐하겠군.

그녀는 추위를 사랑하니까.

휴즈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거의 도착했다.

집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인가?’

딱 봐도 저곳밖에 없었다.

집이라고 부를 만한 건 저거 하나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계십니까?”

목소리를 높여 봤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폐가인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사람이 머문 흔적이 보였다. 폐가는 아닌가 보다.

그런데 정작 사람은 없다.

“여기는 맞는 거 같고. 어디로 가셨으려나……?”

이곳에 남아 휴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좀 그렇고, 주변을 둘러볼 겸 휴즈도 찾아볼 겸 해서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옛날 생각 나네.’

내가 다녔던 출판사 대표님은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매 분기별로 사원들을 데리고 등산 여행을 떠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아하는 사원은 거의 없었다.

솔직히 등산 하나만 놓고 보면 좋다. 건강해지고, 체력도 기를 수 있고, 그리고 맑은 산소를 마시면서 좋은 경관을 볼 수 있고.

하지만…….

‘업무에 치여서 바빠 죽겠는데 주말에 등산 여행 가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겠다!’

여하튼 등산에 대해서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눈 덮인 산을 계속해서 올랐다.

정상까지 가 볼까 하다가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내려오던 도중에 내 눈을 휘어잡는 게 있었다.

넓은 호수였다.

그러나 호수는 겨울의 냉기로 인해 빙판이 되어 있었다.

얼음 두께가 꽤 두껍다.

빙판 위를 걷던 도중에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꽤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상의는 반팔이다.

팔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생긴 걸로 봐서는 40대 후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팔뚝은 20대 못지않은 탄탄함을 자랑했다.

보자마자 깨달았다.

‘저 남자가 휴즈구나.’

-휴즈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SS

-권왕이라 불리는 남자. 라바인 전투에서 대활약했던 영웅 중 한 명. 그러나 전투의 후유증으로 인해 인간 불신에 걸리게 되었다. 현재는 사람들을 피해 은거 중.

단역인데도 능력치가 SSS랭크다.

저렇게 보니까 확실히 권왕으로서의 포스가 느껴진다.

그 포스를 낚시에 투자하고 있어서 보기 좀 그렇지만.

게다가 낚싯대는 굉장히 초라하다.

빙판에 구멍 하나 뚫어 놓고 빙어 낚시를 하는 중인데, 나무에 대충 낚싯줄만 달아 놓은 낚싯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흠!”

휴즈에게 일부러 들리게끔 헛기침 소리를 크게 냈다.

그러나 반응이 없다.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있었다.

못 들은 건가?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려던 순간.

“있다고 티낼 필요 없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중후한 목소리가 내 행동을 막았다.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휴즈.

‘아니, 그러면 이쪽 좀 봐 주시지.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어쨌든 휴즈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제 친밀도를 올리는 일만 남았다.

수첩을 꺼내 빠르게 펜을 움직였다.

-휴즈 님이시죠?

이미 나는 이 남자가 휴즈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을 때 ‘인물 정보 창 보고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할 순 없지 않은가?

휴즈는 그제야 내 쪽을 돌아봤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나를 왜 찾아온 거냐?”

-새파랗게 젊기에 휴즈 님을 찾아온 겁니다. 휴즈 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요.

“무슨 가르침?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주먹질밖에 없어.”

-그 주먹질을 배우기 위해 온 겁니다.

“나에게 주먹질 배울 시간에 차라리 공부해서 출세할 생각을 해.”

-주먹질로도 충분히 출세할 수 있는 시대 아닙니까?

“…….”

휴즈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잠시 후. 내게 물었다.

“근데 너, 벙어리냐? 왜 말을 못 해?”

이제야 묻는 건가. 참 빨리도 묻는다.

나는 수첩에 글씨를 적는 대신, 가져온 물건을 건넸다.

기다란 가방이었다.

“이게 뭐야?”

-제 마음을 담은 선물입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선물을 준다고? 왜?”

-친해지기 위한 성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단 내용물부터 확인해 보세요.

“흐음…….”

그래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꽤 궁금했나 보다.

군말 없이 내 말에 따라 행동하는 휴즈.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낚싯대잖아?”

-맞습니다. 이스턴이라는 명인이 만든 낚싯대입니다.

“이스턴! 세상에……. 이 귀한 물건을 어떻게……!”

휴즈는 낚시를 굉장히 좋아한다.

12살 때 아버지로부터 처음 낚시를 배운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낚시와 한평생을 살아온 남자다.

사람들은 휴즈를 주먹만 쓸 줄 아는 남자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명한 강태공이기도 하다.

낚시 실력이 정말 좋다.

그의 옆에 놓여 있는 양동이만 봐도 안다.

허름한 낚싯대만으로 수백 마리의 빙어들을 건져 올렸다.

-휴즈 님께 드리겠습니다.

“이걸 정말로 내게 준다고?”

-물론입니다. 휴즈 님에게 선물로 드리기 위해 제가 어렵게 구한 낚싯대입니다. 써 주신다면 큰 보람을 느낄 거 같습니다.

낚싯대를 주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원하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즈와의 친밀도가 대량 상승합니다.

-개연성이 충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휴즈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아아.”

음, 좋다. 목소리가 이제야 나오는군.

내 목소리를 들은 휴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데 이제야 말하는 거냐? 아까는 말 한마디 못하더니만.”

“휴즈 님의 용안을 뵙게 되니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제가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런 놈이 주먹질을 배워서 어따 써먹으려고?”

“칠흑을 없애려고 합니다.”

휴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칠흑은 인류의 적이다.

《델리피나 전기》를 통째로 삼키려는 만악의 근원.

그리고 대륙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라바인 전투를 만들어 낸 원인이기도 하다.

휴즈는 칠흑의 존재를 알고 있을 터.

왜냐하면 최전선에서 벨라시오닉의 폭주를 지켜봤을 테니까.

휴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모셔. 나는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기회는 개뿔! 생각 없다니까.”

“예전에 휴즈 님은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 면접을 통해서 제자를 선정했다고 들었습니다. 하다못해 저에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면접을 치른 다음에 휴즈 님이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낚싯대는?”

이 와중에 낚싯대를 신경 쓰다니.

어지간히 낚시를 좋아하나 보다.

“휴즈 님이 안 된다고 말씀하셔도 낚싯대는 그대로 놓고 갈 생각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선물이라고?”

“그 말 물리기 없기다?”

“물론이죠.”

나는 휴즈의 면접을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나의 대답에 휴즈는 마지못해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빙판 위에서 면접을 볼 수는 없겠지. 근처에 내가 머무르는 집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차나 한잔하면서 하자.”

“예, 휴즈 님. 아니, 스승님!”

“아직 스승 아니다. 벌써부터 멋대로 단정 짓지 마.”

퉁명스럽게 답하는 휴즈였다.

* * *

집 안은 예상대로 좁았다.

두 명이 앉기에는 넉넉했지만, 생활하기에는 글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주무시고 생활하시는 겁니까?”

“아니. 여기는 내가 명상할 때만 사용하는 방이다.”

그래서 좁았군.

그보다 명상 전용 방에서 면접이라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휴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라바인 전투에서 얻은 부상 때문일까?

휴즈의 눈은 서로 색깔이 달랐다.

붉은 눈, 그리고 초록색의 눈.

둘 중 어느 것이 휴즈의 진짜 눈 색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소설 속에선 휴즈의 눈 색깔 이야기까진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면접은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너한테 먼저 세 가지 질문을 할 거다.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단, 하나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뭔가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부류가 있다. 그게 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

그렇군. 결국 진실된 대답만 하라……. 이 뜻인가?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었다.

휴즈는 가장 처음 기본적인 것을 물었다.

“이름은?”

“로인입니다.”

사실 대답은 2개가 될 수 있다.

강시언, 그리고 로인.

둘 다 정답이다.

굳이 강시언이라는 이름까지 들려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지금 사용하는 로인이라는 이름 하나만 휴즈에게 들려줬다.

휴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말을 하고 난 뒤. 휴즈는 이렇게 잠시 뜸을 들이면서 내 쪽을 응시했다.

그냥 쳐다본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분석당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 두 번째 질문이다.

“내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짜 이유가 뭐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칠흑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는 있나?”

“…….”

이유야 있지. 이 세계를 올바른 엔딩으로 이끌고, 본래의 내 세계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칠흑을 쓰러뜨린다는 건 이 과정에 불과하다.

입을 다문 나에게 휴즈는 마지막 질문을 들려줬다.

“세 번째 질문. 그 이유가 뭔지 말해 보도록.”

난 휴즈가 왜 이런 형태의 면접을 진행하는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휴즈가 인간 불신에 걸린 이유도, 라바인 전투 이후에 그가 사람들을 피해 산골 깊숙한 곳에 은거하게 된 이유도 전부 다 안다.

휴즈의 눈 색깔이 다른 것과 연결된다.

오드 아이.

두 눈 중 한쪽 눈동자에 벨라시오닉의 보물, 진실의 돌의 파편이 박혀 있다.

진실의 돌은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다.

벨라시오닉이 그간 삼켰던 보물들을 토해 내는 과정에서 진실의 돌이 파괴되었고, 그 파편이 휴즈의 눈에 박혔다.

휴즈는 자신의 눈에 진실의 돌의 힘이 깃들어 있음을 전투가 끝난 다음에 알았다.

진실의 돌로 인해 휴즈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믿었던 동료들도, 심복도, 그리고 제자들도 거짓을 일삼을 때가 있었다.

여기에 환멸을 느낀 휴즈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인간 불신증을 얻게 되었다.

휴즈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지 마라.’만 지키면 된다.

나는 그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비밀을 그에게만 들려줬다.

“사실 저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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