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권왕(拳王) 휴즈 (1)
데르킨 백작에게 받은 의뢰 한 방 덕분에 우리 R팀은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호위 임무를 맡았던 용병들도 무사히 본거지로 돌아왔다.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익숙한 남자가 우리를 찾아왔다.
“다들 수고 많았네.”
첸버였다.
그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설마 또 의뢰 넘기려는 건 아니겠죠?”
“이 친구가 나를 무슨 의뢰 가져오는 기계로 아나? 오늘은 자네들 R팀에 좋은 소식을 들려주려고 직접 여기까지 온 거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첸버를 2층으로 데려갔다.
첸버는 부대장급 두 사람을 따로 부르지 않았다.
오로지 나와 말을 주고받고 싶어 했다.
자리를 잡은 첸버는 곧장 본론을 들려줬다.
“단장이 자네들 고생이 많았다고 특별히 2달 동안 휴가를 주라고 하더군.”
“2달이나요? 그렇게 길게 휴가를 받아도 됩니까?”
휴가를 받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2달이나 받으면 용병단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첸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파리마 사건의 여파로 인해서 당분간 호위 임무만 계속 들어올 테니까. 칠흑의 조각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설령 칠흑의 조각과 연관되어 있다 하더라도 라스라는 젊은 영웅이 나서서 사건을 해결해 준다던데?”
라스의 명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었다.
라스의 목적은 칠흑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용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칠흑의 조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덕분에 라스를 찬양하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
“당분간 어려운 의뢰도 없을 거고. 그리고 요즘 들어 자네들을 너무 많이 굴린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2달의 휴가를 주기로 결정했어. 어떤가?”
“저희야 나쁘지 않죠.”
안 그래도 가르시아와 용병들은 아스툰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가족들과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끔 배려해 주고 싶었다.
드레인도 마찬가지로 가족들 보러 갈 테고.
반드나 에나는 알아서 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애도 아니니 말이다.
나는 흔쾌히 첸버의 2달 포상 휴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소식 들었네.”
“어떤 소식요?”
“라크스 공작이 자네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하던데.”
“가서 점수 좀 많이 따 왔죠.”
“나중에 리오나랑 결혼하는 건가? 블루로즈단은 사내 연애도 적극 권장하고 있으니 우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네.”
“아니, 왜 자꾸 저하고 리오나를 연결시키려고 그러는 겁니까? 드레인도 그렇고……. 리오나에게 민폐니까 그런 소문은 함부로 퍼트리고 다니지 마세요.”
“난 또 진심으로 리오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리오나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라크스 공작에게 점수를 딴 건 맞다.
하지만 리오나에게 연애 감정이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물론 리오나는 매력적인 여인이다.
예쁘고, 강하고, 그리고 집안도 빵빵하고. 성격도 나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한가히 연애 따위를 할 때가 아니다.
내겐 중요한 숙제가 있다.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이 세계를 무사히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내고, 나는 내가 있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이번 2달의 휴가 기간 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마침 첸버가 물었다.
“자네는 2달 동안 무엇을 할 예정인가?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블루로즈단 이름으로 경비를 다 대 줄 테니 언제든 말만 해.”
사내 복지가 굉장히 좋은 용병 조직이다.
하지만 난 여행을 떠날 생각은 없다.
“수련하러 갈 겁니다.”
“혼자서?”
“아니요.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이 계셔서요. 그분에게 가서 무술을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내가 들으면 바로 알 만한 그런 사람인가?”
“네, 아마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겁니다.”
나는 한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휴즈입니다.”
“…….”
첸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첸버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나도 예상했다.
이유가 있었다.
“휴즈를 찾아간다고?”
“네.”
“진심으로?”
“네.”
“그자는 제자를 절대로 받지 않는 남자야. 심지어 있던 제자들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다 내쫓을 정도지. 라바인 전투 때였을 거야. 거기서 머리를 다쳤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했지.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첸버는 휴즈를 정확히 묘사했다.
권왕(拳王)이라 불리며 최강의 싸움꾼으로 불렸던 남자, 휴즈.
그러나 그는 라바인 전투 이후 인간 불신에 걸렸다.
특별히 뭔가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벨라시오닉과 그의 몬스터 군대와 싸우다가 도중에 한쪽 눈을 다쳤을 뿐이다.
그것 말고 큰 부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눈을 다친 그 부상이 휴즈라는 남자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튼 로인, 자네를 위해서 해 주는 말이지만, 그 남자의 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배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어 두는 게 좋아. 휴즈는 절대로 제자를 받지 않아. 시간 낭비만 할 뿐이야. 기왕 2달간의 휴가를 받았는데 무의미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휴즈가 사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텐데.”
“일단 한번 해 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깔끔하게 포기할게요. 휴가는 그 이후에 즐겨도 되니까요.”
“고집이 세군.”
“원래 제가 한 고집 하니까요.”
첸버는 힘없이 웃었다.
“자네 뜻이 그렇다면야…… 알겠네. 더 이상 왈가왈부는 안 하겠네. 행운을 빌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걱정이다.
나는 휴즈 공략법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 * *
예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더 강해지고 싶다고.
물론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강함과 내가 추구하는 강함은 의미가 다르다.
용신단의 능력 덕분에 대충 주먹만 휘둘러도 알아서 적들이 픽픽 쓰러진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적과 마주하게 될 경우, 내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먹은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라크스 공작과의 대련, 그리고 칠흑의 조각에 잠식되었던 조르를 제압할 때의 상황이었다.
난 솔직히 라크스 공작 정도는 그래도 이길 줄 알았다.
비록 붉은 귀신이라 불리며 검술의 정점에 이른 자라고 하지만, 나는 탈인간의 능력을 지녔다.
자그마치 드래곤의 능력을 지닌 남자인데, 설마 내가 못 이길까 싶었다.
하나 승부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라크스 공작이 부상에서 막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혹은 목검이 아닌 진짜 검을 들고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항복 선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르도 이와 비슷했다.
만약 내가 확실하게 조르를 제압했다면, 웨일이 조르에게 습격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럭키 매직의 달인 바슬라 덕분에 위기를 간신히 넘겼지만, 만약 그때 바슬라가 활약해 주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거다.
‘싸움의 기술을 배워야 해!’
이것이 2달간의 내 목표다.
물론 2달이라는 시간 내에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지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할지, 어떤 수련을 하면 좋을지 방향만 잡으면 된다.
휴즈가 있다고 알려진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말을 타고 3일, 배를 타고 하루에 걸려 도착한 그곳.
네스킨 산맥.
이곳에 휴즈가 머물고 있다.
휴즈에 관한 내용은 소설 속에서 정말 짧게 언급된다.
-라바인 전투에서 뛰어난 공적을 남겼던 권왕(拳王), 휴즈.
그는 최전방에 서서 몰려오는 벨라시오닉의 몬스터 군단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리고 벨라시오닉을 쓰러뜨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나 라바인 전투 이후.
휴즈는 부상을 입었다.
그 이후 휴즈는 달라졌다.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휴즈와 함께 싸웠던 그의 동료들은 라바인 전투의 후유증으로 휴즈가 힘들어하고 있으니 당분간 그를 건드리지 말자고 합의를 봤다.
그리고 휴즈는 홀로 네스킨 산맥으로 들어가 은거하게 되었다.
휴즈는 후에 한 번 더 언급된다.
그때 휴즈가 왜 인간 불신에 걸렸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휴즈는 SSS랭크를 찍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역 이하의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였다.
난 그 이유를 잘 안다.
‘능력이 좋으면 뭐 해? 칠흑이 판을 치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면서 산속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를 않는데.’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활약상을 보여 주지 않으면 단역, 엑스트라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읽은 2권까지 휴즈의 활약은 나오지 않는다.
휴즈의 성격을 보면, 3권 이후부터도 특별히 큰 활약을 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안 나오겠다면, 내가 직접 쳐들어가는 수밖에!’
네스킨 산맥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말을 구하는 과정에서 마부는 내게 행선지를 물었다.
“용병 양반은 어디로 가는 거요?”
“네스킨 산맥으로 갑니다.”
“저 산으로? 저긴 사람도 거의 안 사는데 뭐 하러?”
“휴즈 님을 만나려고요.”
“아아, 권왕 휴즈?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그자는 사람을 안 믿거든. 아주 가끔 이곳에 내려와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 가곤 하는데, 가게 상인들이랑 일절 말을 안 섞는다니까. 행색을 보면 비렁뱅이처럼 생겼는데, 정말로 그 권왕 휴즈가 맞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더라고.”
“그런가요? 혹시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위치는 알고 계시나요?”
“대충은 아는데……. 어디 보자, 아마 이쯤에 있을 거야. 저번에 산에 오를 일이 있어서 가다가 우연히 목격했거든.”
마부는 내 지도 위에 휴즈의 집이 있는 곳의 위치를 표기해 줬다.
좋은 정보를 얻었다.
휴즈가 네스킨 산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위치 정보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운이 좋네.’
말을 타고 가는 나를 향해 마부는 행운을 빌어 줬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바라오.”
“감사합니다.”
마부의 친절한 마음 씀씀이를 뒤로하고 나는 네스킨 산맥을 향해 나아갔다.
말안장에는 내가 챙겨 온 짐들이 잔뜩 꾸려져 있었다.
내 개인 짐도 있지만, 휴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리 구입한 물건들도 꽤 있었다.
휴즈의 인물 등급은 단역이다.
친밀도를 올리지 않으면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게다가 단역들의 대화 커트라인은 제각각이다.
어쩌면 휴즈는 일반 기준치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엑스트라였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보다 내 인물 등급이 문제라서 이러는 거 아닐까?”
내가 휴즈와 같은 단역이라면, 그때도 과연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경고 메시지가 뜰까?
“아니, 그보다 인물 등급이라는 걸 올릴 수는 있어?”
혼자 오랫동안 여행해서 그런 걸까?
점점 나만의 세계에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