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머리가 안되면 힘으로 (3)
네피 족장을 향해 뛰어갔다.
나뿐만 아니라 얀도 마찬가지였다.
“내 먹잇감이야! 먼저 가로챌 생각 하지 말라고!”
망치의 크기를 다시 한번 크게 늘리는 얀.
먼저 선공을 가했다.
아니, 가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거대한 지네 괴물이 튀어나왔다.
‘네피 족장이 소환한 건가?’
지네 괴물은 우리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나와 얀은 각각 좌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지네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도합 세 마리가 우리를 노렸다.
망치의 크기를 키운 얀은 지네 괴물 한 마리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빠아아아악!
지네 괴물의 몸이 크게 흔들거렸다.
“나이스 샷! 어떠냐, 내 힘이!”
얀은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나도 주먹을 날려 지네 괴물의 머리를 박살 내 버렸다.
하나 문제는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지네 괴물이 소환된다는 점이었다.
그때 에나가 내게 귀중한 정보를 들려줬다.
“대장님, 지네 괴물을 현실로 인식하려고 하지 마세요. 저거 환각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마나 덩어리를 뭉쳐서 지네 괴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실제로 지네 괴물 같은 건 없어요. 저건 더미에 불과해요.”
“하지만 진짜 괴물인데? 봐 봐. 촉감도 느껴진다고.”
“그렇게 느껴지게끔 대장님의 감촉을 속이는 거예요. 절 보세요.”
에나는 일부러 지네 괴물의 표적이 되었다.
턱을 벌린 채 에나를 향해 몸을 날리는 지네 괴물.
그녀를 구하려 했으나, 에나는 다가오지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지네 괴물이 그녀를 삼켰다.
그러나 에나는 멀쩡했다.
“보세요. 제 말이 맞죠?”
방금 전까지 에나를 삼켰던 지네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나가 지네 괴물을 실제가 아닌 가짜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것은 환상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믿어 버리면 저 환상은 대장님에게 한해서 진짜로 존재하는 괴물이 되어 버려요. ‘지네 괴물은 가짜다, 환상이다.’ 하는 생각을 계속 품고 계세요.”
말이 쉽지.
저렇게 리얼하게 생겼는데, 어찌 환각이라고 믿겠나?
그래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지네 괴물 두 마리가 나를 노렸다. 모래사장을 헤치면서 나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저놈들은 환상이다, 저놈들은 환상이다, 저놈들은 환상이다! ……라고 수십 번을 되뇌었지만.
“못 참겠다!”
주먹을 휘둘러 지네 괴물 두 마리의 머리를 연달아 터트려 버렸다.
내 반응을 본 에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장님도 참…….”
“아니, 너무 리얼하잖아…….”
나도 스스로 환각에 안 넘어가게끔 노력은 했는데.
도무지 안될 거 같다.
그리고 나만 실패한 게 아니었다.
반드를 비롯해서 우리 R팀 용병들, 그리고 얀과 스트레이트 용병들도 환상이라고 인식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괴물과 싸우기를 택했다.
에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이래서 남자들이란…….”
저 괴물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건 상관없다.
어쨌든 저 네피 족장한테 일루전 스태프만 빼앗으면 되는 거 아닌가!
던전 클리어가 목적이 아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아오는 것이 이번 의뢰의 목적이다.
물론 그 목적은 달성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지네 괴물들을 제치고 다시 한번 네피 족장에게 접근했다.
네피 족장은 일루전 스태프를 모랫바닥에 내려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래로 구성된 골렘들이 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네피 족장의 관심은 내게 쏠려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내가 시선을 끌어 주는 동안, 반드는 네피 족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거의 다 왔다!
허리띠에서 단검을 꺼내 든 반드.
네피 족장의 목을 따려고 하는 중요한 순간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저놈은 내 것이니까 건드리지 마시지!”
하늘에서 거대한 망치가 내려왔다.
콰아아아아앙!
망치질 한 방으로 인해 사막의 모래가 크게 들렸다.
그로 인해 다량의 모래 구름이 형성되었다.
얀의 짓이었다.
‘저 빌어먹을 녀석!’
같이 오질 말았어야 했다.
‘경쟁자인 줄 알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판을 냈을 텐데!’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미로 때 말고는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녀석이었다.
자욱하게 깔린 모래 구름 사이로 산 같은 거 하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공룡같이 생긴 생물체를 타고 등장한 네피 족장.
일루전 스태프를 든 채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네 괴물에 이어서 이제는 공룡이냐?’
하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많이 벌어져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에나가 다시 내게 충고했다.
“대장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괴물이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잘 안된다니까!”
내가 그렇게 쉽게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이었더라면,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따위는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룡 괴물은 발을 들어 올려 내 쪽으로 내려찍기를 시도했다.
이번에야말로 에나의 말을 시험해 볼까.
저 녀석은 괴물이 아니다. 환상이다, 환상!
……일 리가 없잖아!
“에라, 이!”
결국 두 손을 들고 공룡의 발을 버텨 냈다.
엄청난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에나! 이거 진짜 환상 맞지?”
“맞다니까요? 대장님은 왜 제 말을 안 믿어 주시나요? 은근히 상처받네요.”
믿어 주고 싶어도, 생존 본능이 진짜라고 소리치고 있으니까 그렇지!
본의 아니가 공룡 괴물과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트러블 메이커, 얀이 나섰다.
“잘 붙잡고 있어, 로인! 이 몸께서 해결해 주실 테니까!”
해결은 개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나 마! 이 망할 녀석아!”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
얀은 다시 한번 망치를 크게 키웠다.
이윽고 그것을 공룡 괴물에게 휘둘렀다.
퍼어억!
망치로 공룡 괴물의 배를 정확히 가격했다.
그러자 공룡 괴물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피 족장은 공룡 괴물의 몸에서 뛰어내렸다.
그런 뒤 2개의 문 중 하나를 열고 사라졌다.
오른쪽 문이었다.
네피 족장의 뒤를 쫓으려 했으나, 갑자기 문이 서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섞였다.
움직임이 멈춘 후에 문은 각각 파란색, 붉은색을 띠었다.
파란 문, 빨강 문.
둘 중 한 곳만이 네피 족장이 도망친 곳으로 이어진다.
혹시 네피 족장이 만든 환상은 아닐까 해서 에나에게 물었다.
에나는 바로 답변을 들려줬다.
“환상은 아니에요. 수수께끼 던전의 퍼즐 중 하나인 거 같아요.”
“이것도?”
주티라는 양반, 정말 대단하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우리를 이렇게 물먹일 줄은 몰랐다.
확률은 2분의 1. 둘 중에 하나는 정답이다.
나는 거리낌 없이 붉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얀이 기겁을 했다.
“아니, 상의도 없이 멋대로 열려고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그럼 넌 어느 문이 정답인지 알아?”
“……모르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잔말 말고 있어.”
“뭔데? 어떻게 아는 거야?”
이미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수께끼 던전은 우리에게 충분한 힌트를 줬다.
“붉은색만 전부 정답이었으니까.”
첫 번째 관문인 다리부터 시작해서 모든 관문이 다 붉은색이 정답이었다.
드레인은 붉은색은 불길하니까 피하자고 했지만, 수수께끼 던전의 설계자 주티는 붉은색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문고리를 돌렸다.
딸칵!
내 추측은 정확했다.
문을 엶과 동시에 우리는 수수께끼 던전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저 멀리 네피 족장이 네피들과 함께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감히!”
얀은 거대 망치를 휘둘러 네피 족장을 그대로 내려쳤다.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얀에게 쓴소리를 들려줬다.
“너, 바보냐?”
“왜.”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들고 있었잖아. 박살이라도 났으면 네가 책임질 거냐?”
“헉, 맞다!”
역시 이 녀석…… 바보다.
한숨을 쉬며 네피족이 압사당한 곳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얀은 다시 망치 크기를 줄였다.
“……어때. 보물은 무사히 있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묻는 얀.
다행히도 흠집 하나 안 났다.
역시 벨라시오닉의 보물이군.
내구도가 장난이 아니다.
반면 네피 족장과 네피들은 ‘납작쿵’이 되어 버렸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들어 올……리려고 하던 도중이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자. 나는 데르킨 백작에게 보물을 가져다주기 전에 이것을 몰래 빼돌릴 심산으로 의뢰를 받아들였다.
이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얀이 불안한 듯 계속 내게 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보물은 멀쩡하냐고.”
“네가 와서 확인해 봐.”
“뭔데 그래?”
“와서 보면 알게 될 거다.”
얀과 용병들이 다가오는 타이밍에 맞춰 나는 트릭을 걸기로 했다.
-흡수 가능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나는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얀과 스트레이트에 소속된 용병들이 거의 다 다가왔다 싶을 때.
‘흡수할게. 형태를 바꿔 줘. 아주 천천히.’
일루전 스태프는 가루가 되었다.
“자, 잠깐! 이게 뭐야?”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박살 났어!”
얀과 용병들은 방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일루전 스태프가 산산조각이 난 줄 알고 있었다.
조각난 일루전 스태프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나는 반드와 에나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이놈들의 시선을 끌어 줘!’
에나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아휴, 그나저나 여기는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네요.”
겉옷을 벗는 에나.
타이트한 상의 위로 그녀의 글래머 라인이 드러났다.
얀과 용병들은 자연스럽게 에나의 몸을 힐끗 쳐다봤다.
그 틈을 노려 나는 가루를 회수했다.
가루는 내 손에 모여 작은 환약으로 변했다.
다시 에나에게서 시선을 뗀 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만, 일루전 스태프는 어디 갔어?”
“바람에 날려갔나 보지. 가루가 되어 버렸잖아. 네놈 덕분에.”
“하, 빌어먹을! 의뢰인한테 가서 뭐라고 말하지?”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얀은 정말로 본인 때문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 줄 알고 있었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걸까? 속이기 참 쉽다.
* * *
얀의 실수로 인해 벨라시오닉의 보물, 일루전 스태프는 산산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나는 데르킨 백작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데르킨 백작은 처음엔 나를 의심했다.
혹시 내가 아이템을 빼돌린 걸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모든 책임을 얀에게 돌렸다.
데르킨 백작은 본인이 직접 조사대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얀과 스트레이트 용병들까지 불러서 조사했다.
그 결과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다.
데르킨 백작은 더 이상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에 보수 금액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반절이 어디인가?
줄어들었어도 억은 억이었다.
다시 본거지로 돌아온 우리들.
드레인은 고생했다면서 나와 용병들을 격려했다.
“나 없이도 잘들 해 줬어. 역시 내 후배들이라니까! 하하하!”
참고로 드레인이 속한 B팀은 1단계 관문에서 쩔쩔매다가 결국 이번 의뢰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용병들이 술 파티를 벌일 때, 나는 몰래 주머니 속에서 작은 환약을 꺼내 들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일루전 스태프로 만들어진 환약.
이것을 몰래 삼켰다.
-일루전 스태프를 삼켰습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1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이미테이션’ 스킬이 개방됩니다.
-이제부터 이미테이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변신 기술인가? 하긴, 드래곤은 본인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까.’
레이샤르만 봐도 알 수 있다.
용신단 레벨 올릴 수 있어서 좋고, 데르킨에게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넘기지 않아서 좋고.
개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