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55화 (55/240)

# 55

머리가 안되면 힘으로 (1)

수수께끼 던전 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마자 우리들을 가로막는 거대한 난관이 존재했다.

함정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파란색 문이 하나, 붉은색 문이 하나.

이렇게 두 가지의 갈림길이 등장했다.

‘첫판부터 장난질이네.’

에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둘 중에 한 곳을 고르는 거 같은데.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가장 빠른 대답을 들려준 이가 있었다.

드레인이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들려줬다.

“파란색으로 가야지.”

“이유가 뭐죠?”

“붉은색은 불길하니까.”

“정말 단순한 이유네요.”

나도 에나의 말에 공감한다.

붉은색이 불길하다고 파란색으로 가자는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수께끼 던전의 존재는 소설 속에서도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여기서는 순수하게 내 능력만으로 풀어 가야 했다.

나는 이미 답을 정했다.

“한쪽에 올인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는 인원수도 많으니까. 두 팀으로 갈라져서 간다.”

이들에게 조 편성을 해 줬다.

A팀은 나와 에나, 반드를 비롯한 다섯 명의 용병들을.

B팀은 가르시아, 드레인, 그리고 나머지 용병들을 배치했다.

드레인은 강한 불만을 어필했다.

“B팀에 머리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잖아!”

“간단한 퍼즐 수준이니까 쉽게 풀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희가 붉은색 문을 선택할 테니, 선배님 조는 파란색으로 가세요. 선배님, 붉은색이 불길하다고 하셨으니까요.”

후배로서 나름의 배려였다.

붉은 문을 열고 안으로 향했다.

안은 깜깜했다.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실내가 환하게 밝아졌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큰일 날 뻔했네.”

발밑에 있는 초록색의 용액.

한눈에 봐도 독극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발로 찼다.

돌멩이는 독극물에 닿자마자 피시식 하는 소리를 내며 녹아 버렸다.

한 걸음만 더 내디뎠으면 나도 돌멩이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이런 게임을 누가 즐긴다는 거야. 귀족들의 취향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장, 저기에 뭐가 있어.”

반드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독극물 너머로 문이 보였다.

저쪽이 다음 단계로 나가는 문인가?

다리는 총 3개가 있었다.

노란색, 초록색 그리고 붉은색.

에나는 구조물을 보더니 바로 요점을 요약했다.

“셋 중 하나가 진짜 다리인가 보네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겠지.”

다리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건너 보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은 없어 보였다.

다리 길이도 긴 탓에, 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빨리 건너자는 작전 같은 건 애초에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드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면 라드리치 6레벨 정도는 개방해야 할 텐데…….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생명력을 소모해야 해. 강력한 적과의 전투가 아닌 이상이라면 사용하고 싶지 않아.”

‘네, 다음 중2병 설정.’

여하튼 본인은 안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초음속의 암살자라 불리는 반드가 안된다고 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안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나도 빠르긴 하지만 반드에 비해선 느린 편이다.

그렇다고 직접 저 독극물에 입수해서 내 몸이 독극물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가 녹아 버리기라도 하면 죽는 거 아닌가?

‘방법이 있을 텐데…….’

곰곰이 고민을 해 봤다.

벽 쪽에 여러 가지 상형문자와 그림이 즐비하다.

저게 퍼즐 같은데?

…….

‘아니, 저걸 언제 맞추고 있어!’

귀찮다. 그냥 꼼수를 발휘하기로 했다.

“에나, 저 독극물, 얼릴 수 있어?”

“음, 어떤 성분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시도는 한번 해 볼게요.”

양손을 독극물 쪽으로 뻗은 에나.

그녀의 손에서 엄청난 한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독극물을 그대로 얼려 버렸다.

“어머, 되네요?”

에나는 본인도 예상 못 한 모양인지 살짝 놀랐다.

얼어붙은 독극물 위로 살짝 발을 올려놓았다.

조심스럽게 나머지 한 발도 올려놨다.

빙판은 멀쩡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대로 그냥 걸어가면 되겠네.”

수수께끼 던전이라고 했나?

별거 아니네!

* * *

다음 난관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에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왜? 잊은 거라도 있어?”

“아니요.”

에나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시선은 3개의 다리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다리가 진짜 다리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별로.”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들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에나는 기다란 고드름을 몇 개 만들었다.

그런 뒤, 다리들 위로 하나씩 툭툭 던졌다.

고드름의 크기는 제법 컸다.

1개가 쌓이고, 2개가 쌓이고. 5개가 쌓일 무렵이었다.

빨간색 다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다리는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빨강이 정답이었네요.”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저런 방식으로 다리를 골랐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뭐, 어차피 해결했으니까 미련 가지지 말도록 하자.

문을 통과해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독극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밑에 발판이 수두룩하게 있었다.

자그마한 모자이크 같은 네모 판들이 쫙 깔렸다.

색깔은 무지개 색깔처럼 빨주노초파남보.

7개 색깔별로 타일이 나뉘어 있었다.

보자마자 바로 직감이 왔다.

“이거 밟으면 함정 발동하는 거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함정 장치다.

설마 소설 속에서 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벽면에 다수의 구멍들이 보였다.

발만 슬쩍 내밀어 봤다.

가장 먼저 주황색 타일을 밟았다.

그러자 내 머리 높이에서 화살이 하나 날아와 반대 벽에 박혔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갔다면, 화살은 내 관자놀이에 박혔을 것이다.

용병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에서는 제 능력이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네요. 미안해요, 대장님.”

“괜찮아. 이것도 1차 관문처럼 어렵진 않을 거야. 일단 주변을 살펴보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벽에 각종 상형문자와 그림 그리고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숫자를 입력하면 함정이 해제되는 구조인 것 같았다.

맞은편에 레버가 하나 보인다.

누구든 한 명만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레버를 잡아당기면 함정이 발동되지 않을 터.

나는 반드를 바라봤다.

“어이, 초음속의 암살자. 여기는 할 만할 거 같아?”

반드는 신발 끈을 꽉 조여 맸다.

“내 전공이야.”

반드는 곧장 행동에 임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반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타일의 퍼즐을 푼다?

천만에!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시간 들여 가며 머리 쓰면서 수수께끼 풀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리고 굳이 수수께끼에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실력이 된다.

반드는 파란색의 타일에 발을 들이밀었다.

피융! 화살이 날아왔다.

하나 반드는 화살이 자신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타일을 향해 발을 내디딘 상태였다.

이번에는 보라색.

피융! 역시 꽝이다.

그 앞의 타일을 밟았다.

빨강이었다.

하나 화살은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초록색 타일을 밟자, 화살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순식간에 레버 앞에 도달한 반드.

레버 아래에는 타일이 없었다.

“당긴다.”

힘 있게 레버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모든 타일들이 색을 잃었다.

괜찮은가 싶어서 내가 먼저 다시 발을 들이밀었다.

타일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반드에게 엄지를 추켜올렸다.

“고생했어.”

“이런 거 가지고 뭘. 라드리치를 개방할 것도 없었어, 후후후.”

끝까지 폼 잡기는…….

그래도 한 건 했으니까 아무 말 않기로 했다.

문을 넘어가니 또 다른 방이 나왔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

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었는데.

함정 대신 다수의 네피들이 우리 쪽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이번에는 함정 대신 몬스터와의 대결인가?

‘차라리 이게 훨씬 마음 편하겠어!’

수수께끼 던전의 방들 중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 *

네피들의 숫자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입구에서 우리를 습격했던 네피들보다 더 적었던 것 같다.

네피들을 쓰러뜨린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우리는 바로 다음 방을 향해 나아갔다.

다음 방에도 B팀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건가?’

중간에 가다가 합류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나.

그러나 내 생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계속 B팀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진행할 수 있는 만큼 진행하는 편이 좋았다.

방으로 들어간 순간, 용병들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가장 처음 맞이한 건 시체 썩는 냄새였다.

그래도 전쟁터에서 많이 굴러 본 용병들이다 보니 냄새는 끝까지 참아 냈다.

반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에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이런 냄새가 다 있어요? 토 나올 거 같아요!”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인데.

그래도 정신력으로 꾹 참아 냈다.

내가 이들의 대장인데, 몬스터 사체 보고 오바이트를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네피들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네피는 인간만큼 뛰어난 지능을 지닌 그런 몬스터가 아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 수수께끼 던전의 함정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함정일까 싶어서 여기저기 조사를 하고 다녔지만, 함정은 발동되지 않았다.

용병 중 한 명이 내게 보고했다.

“고장 난 거 같습니다.”

“그렇게 보이네.”

“문은 잠겨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뻔한 걸 묻네.”

문 앞으로 다가간 나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이윽고 주먹으로 문을 박살 내 버렸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냄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팀원들의 발걸음은 유독 빨랐다.

특히 에나의 몸놀림이 가장 빨라 보였다.

평소에는 더위에 지쳐서 축 늘어진 모습만 보이던 에나였는데 말이다.

다음 방에 진입한 우리들.

단체로 입에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일부러 짠 줄 알겠다.

한숨이 나올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에나가 대신 그 이유를 들려줬다.

“이거…… 미로 아닌가요?”

맞다.

그것도 굉장히 복잡하게 구성된 미로였다.

‘미로라……. 그래, 정석 퍼즐이긴 하지.’

미로는 벽 높이 또한 굉장히 높았다.

5미터는 되는 거 같았다.

그래도 내게 5미터는 우습다.

“위로 갈 수 있는지 잠깐 보고 올게.”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크게 도약했다.

그 순간, 갑자기 벽에서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이런 미친!”

화살이 튀어나올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용병 둘이 나에게 소리치며 방패를 던졌다.

2개의 방패를 각각 왼손, 오른손으로 받아 든 나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팅! 티딩! 텅!

무슨 사물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리드미컬한 충격음이 가신 뒤에 나는 무사히 지면에 착지할 수 있었다.

“위로는 못 가겠네.”

던전을 설계한 사람이 주티라고 했나?

이 사람, 설마 귀족들에게 앙금을 품고 일부러 이런 장치를 만들어 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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