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48화 (48/240)

# 48

범인은 바로 너야! (4)

말을 타고 나 홀로 벤토로 향했다.

도중에 파랑새에게, 우리 부대원들에게 내 소식을 대신 전해 달라고 말을 남겼다.

임무는 금방 해결했는데, 리오나가 상담 요청을 해 와서 1~2일 정도 늦게 본거지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파랑새는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나울로 향했다.

전담 소식통이 있으니 마음은 편하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더 편했겠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벤토에 도착하자마자 리오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숙소로 향했다.

리오나는 이곳에서 호위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리오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여기야.”

최근에 리오나를 봤을 때와는 다르게 그래도 얼굴 표정은 좀 나아져 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리오나에게 안부 인사를 겸해서 먼저 이렇게 물었다.

“임무는 잘되어 가고 있어?”

“그럭저럭. 칠흑 때문에 불안에 떠는 귀족을 안심시켜 주기만 하면 되는 임무니까. 어려울 건 없지.”

“그렇다면 다행이고.”

“소식은 들었어. 네 쪽은 칠흑의 조각이 진짜로 나타났었다며?”

“뭐, 그렇지.”

“운이 안 좋네. 기세 좋게 25번을 골랐었잖아.”

“그러게나 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리오나는 내가 칠흑의 조각과 싸울 걸 알면서도 일부러 25번 임무를 가져갔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야, 다들 지금의 리오나처럼 편한 임무를 하고 싶어 하지, 누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구태여 자처하겠나.

나 같은 경우는 많이 특수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

안부 인사는 여기까지.

이제부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파랑새한테 들었어. 나와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어, 맞아.”

리오나는 딱히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러니까 네가 견습 용병 때, 나울에서 임무 수행했던 거 기억나?”

“레플러 퇴치?”

“그래, 그거. 레플러 퀸을 찾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나 해서. 혹시 나울에 아직도 남아 있어?”

“아니. 하이 엘프들이 레플러 퀸을 없애 줬어. 그 한 마리 말고 다른 레플러 퀸은 본 적 없고.”

“……그렇구나.”

레플러 퀸을 쓰러뜨린 건 나다.

하나 레플러 퀸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을 다른 용병들에게 밝힌 적이 없었기에 일부러 하이 엘프들의 공적으로 돌려 버렸다.

“레플러 퀸은 갑자기 왜?”

문득 궁금해졌다.

리오나가 레플러 퀸을 구태여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졌다.

“…….”

리오나는 잠시 침묵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아도 돼.”

“아니, 괜찮아. 괜히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데 이야기해 줘야지.”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이야기는 아닐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첫마디를 듣는 순간, 내 예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라크스 공작님 때문에 물어본 거야.”

레임스뿐만 아니라 드레인 그리고 첸버까지.

모두가 다 입을 모아 나에게 리오나의 가정사를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단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리오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라크스 공작님이 파리마 사건에서 큰 상처를 입고 목숨이 위험한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건 너도 아마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얼마 전에 의사가 그러더라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약을 제조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가 없다고.”

“그 재료가 뭔데?”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 그래서 너에게 상담 요청을 한 거야.”

“…….”

가만있어 보자…… 분명 여기 있었는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찾았다.

난 주머니에서 붉은 환약을 하나 꺼내 들었다.

리오나는 환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뭔데?”

듣고 놀라지 말도록.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야.”

설마 이런 우연이 발생할 줄이야.

나조차도 몰랐다.

리오나는 처음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외형부터가 의심쩍었기 때문이다.

“붉은 더듬이라며.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더듬이가 아닌데?”

“가루로 만들어서 환약으로 압축해 둔 거야.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이걸 왜 가지고 다니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얻은 거야?”

왜냐하면 내가 레플러 퀸을 없앴으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하이 엘프 순찰대가 레플러 퀸을 없앴다는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핑계를 둘러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이 엘프 순찰대가 나에게 고생했다면서 선물로 줬어.”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엘프들이네. 하이 엘프는 인간을 매우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그러게. 내가 만난 엘프들은 유독 친절하더라고.”

친절하긴 개뿔…….

솔직히 말해서 친절과는 거리가 먼 녀석들이었다.

나는 리오나에게 환약을 건넸다.

“이게 있으면 약을 제조할 수 있을 거야.”

“괜찮겠어, 이렇게 귀한 걸 나한테 줘도?”

원래는 내가 삼키려고 했으나, 어차피 용신단의 경험치가 엄청 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리오나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쳐야지.

“너한테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았었으니까. 가져가도 돼.”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게.”

그래, 잊지 말라고. 나중에 내가 또 어떤 부탁을 할지 모르니 말이야.

* * *

다시 나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R팀 본거지를 찾았다.

그러나 본거지에는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의뢰를 완료한 듯했다.

‘하기야, 최소 1달 내지 2달을 바라보고 갔는데, 나만 10일 이내로 의뢰를 완수해 버렸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졸지에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혼자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할 것도 없고 해서 오랜만에 상단에 들르기로 했다.

로그 상단 본사는 R팀 본거지와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인들은 내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로인 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로인 님!”

“임무 수행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 그래, 다들 수고가 많아.”

회사 사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직원들한테 인사받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소설 속으로 들어오기 전의 나는 인사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인사하는 입장이었는데…….’

인생이라는 건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라그너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로인 님, 일찍 오셨군요!”

“어쩌다 보니……. 그나저나 요즘 상단 분위기는 어때? 잘되어 가?”

“좀 고민 중입니다.”

“응? 왜? 매출이 떨어진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크게 올랐다.

우리가 유통 중인 파이어 스톤은 아직까지도 잘 팔리는 중이었다.

칼바의 용암 동굴에 매장되어 있는 파이어 스톤의 양도 아직은 풍부하다.

다 고갈되려면 향후 20년은 더 걸릴 거다.

‘당분간 상단에 걱정거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라그너는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유통 품목을 늘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언제까지 파이어 스톤 하나만 믿고 버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무역 위주로 커 가는 상단인 만큼, 품목의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사업 분야를 넓힐 수 있게 된다.

“눈독 들이는 건 있어?”

“그게…… 잘 안 보입니다. 웬만한 건 다 이름 있는 상단들이 확보해 둔 상태라서 끼어들기가 영 쉽지가 않네요. 새로운 유통지를 개척하는 게 더 빠를 거 같습니다.”

“새로운 곳이라……. 있긴 한데.”

“정말입니까?”

라그너는 눈을 반짝였다.

마침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있긴 했다.

《델리피나 전기》를 읽다 보면 1권 후반부에 ‘샹그리’라는 농촌이 언급된다.

대상인 웨일이 가장 처음에 발견한 곳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흐름상, 아직 웨일은 샹그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조르 사건 때문에 당분간 상단 업무에 집중을 못 할 것이다.

어차피 웨일은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까짓것 돈줄 하나 빼 간다고 생활고를 겪거나 하진 않겠지.

“샹그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알고 있어?”

“글쎄요, 처음 듣는 곳입니다만…….”

라그너는 웬만한 도시나 마을 정보는 다 꿰차고 있다.

아무래도 무역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정보를 많이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샹그리는 라그너조차 모르는 외진 곳이었다.

“그곳의 사탕수수가 굉장히 유명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보다도 달고 맛있지. 샹그리에서 생산되는 설탕을 유통한다면, 우리에게 큰돈을 가져다줄 거야.”

“샹그리라…… 내일 당장 답사를 가 봐야겠군요.”

“같이 갈까? 어차피 나 지금 할 일도 없는데.”

“로인 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저야 든든합니다! 하하!”

그동안 상단 쪽에 너무 신경을 안 썼다.

대표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밑의 직원들이 본받고 열심히 하지 않겠나?

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이번 여정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결코 심심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거 아니다, 정말로.

* * *

샹그리까지 말을 타고 꼬박 3일을 달렸다.

외진 농촌의 전경에 라그너는 연신 감탄했다.

“엄청나군요.”

그가 보고 놀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때문이었다.

멀리서 봐도 그 면적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양해를 구한 후에 사탕수수밭으로 향했다.

농민 한 명이 우리에게 사탕수수를 건넸다.

“잡숴 보쇼. 먹으면 감탄이 절로 나올 거요.”

아그작!

사탕수수를 그대로 깨물었다.

그냥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맛이 굉장히 달았다.

“오오……!”

라그너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어 내니, 품질이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맛이 정말 일품이다.

“지금까지 제가 먹어 본 설탕 중에서 가장 달고 맛있습니다. 인생 설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라그너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설탕 찬양에 나섰다.

나는 확인 차원에서 라그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이 정도면 상품 가치가 충분하겠지?”

“물론이죠! 지금 당장 계약 맺어야겠습니다! 역시 로인 님과 상담하길 잘한 것 같군요! 매번 저에게 정답을 내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요즘은 상담을 해 줄 때마다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 나쁘지 않은데?

……라고 생각할 무렵.

익숙한 남자가 우리를 찾아왔다.

밀짚모자를 쓴 채 등장한 파랑새가 나에게 작은 불만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왜 이리 먼 곳에 와 있는 거야, 대장! 찾기 힘들었잖아.”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온 겁니까? 그보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예요?”

“내가 괜히 파랑새겠어? 대장들의 위치는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지. 그래야 움직이기 편하니까.”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파랑새의 정보력은 굉장하다.

파랑새는 심심해서 나를 따라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이번에는 또 무슨 볼일입니까?”

“대장한테 초대장이 왔어.”

“무슨 초대장이요? 어디서 온 겁니까?”

“라크스 가문에서 온 거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초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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