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46화 (46/240)

# 46

범인은 바로 너야! (2)

웨일의 둘째 아들, 조르.

첫째 아들인 샤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며 동시에 야망까지 두루 갖춘 인재다.

웨일의 상단을 물려받을 후보 1순위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르는 칠흑의 조각에 잠식당한 상태다.

소설 속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웨일은 칠흑의 조각에 잠식당한 자신의 둘째 아들, 조르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했다.

하나 운이 좋게도 습격을 당하기 전에 웨일은 조르가 평소에 비해 뭔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의심은 불신이 되고, 불신은 확신이 되었다.

웨일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다.

그것이 웨일 가문에 벌어진 참극이다.

잠식은 단계가 존재한다.

1단계는 초기 단계라 불리며, 잠식당한 자의 성격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2단계는 외형이 변화한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에는 칠흑의 조각에 완전히 잠식당해 존재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즉, 칠흑의 조각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는 뜻이다.

2단계인 외형 변화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의지가 약한 경우에는 외형 변화를 컨트롤하기 어렵지만, 칠흑의 조각과 거의 동일화된 경우에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인간 형태와 괴물 형태로 자유자재로 번갈아 바꿀 수 있다.

조르의 경우에는 잠식 2단계에 속한다.

잡아먹히지는 않았으되, 외형 변화는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그런 단계다.

잠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본인은 잠식당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조르도 마찬가지일 터.

조르는 우리를 보고서 노골적으로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네놈들! 누가 멋대로 거기에 놀고 있으라고 했나!”

셋째인 이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혀, 형님? 저들은 아버지께서 고용한 용병입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저들의 영내 출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버지는 왜 이딴 소란을 자초하셨는지 모르겠어!”

버럭 화를 내는 조르였다.

샤인과 이븐은 그런 조르를 말없이 응시했다.

할 말이 없을 거다.

원래 조르는 저런 성격이 아니다.

누구보다 착하고 얌전했던 청년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니, 형제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칠흑의 존재는 이제 막 세간에 발표되었다.

사람들은 잠식 단계에 대한 정보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웨일과 그의 가족들은 조르의 성격 변화가 잠식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뒤늦은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

오로지 나만이 조르가 잠식 2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무턱대고 조르가 범인임을 주장할 수는 없어. 증거가 없으니까.’

조르가 잠식되었음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함부로 조르에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웨일과의 친밀도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질 것이다.

한번 떨어진 친밀도는 회복하기 어렵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 * *

내 예상대로 용병들은 칠흑의 흔적조차 발견해 내지 못했다.

이렇게 하루가 아무런 성과 없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2일째 날이 밝았다.

용병들은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칠흑의 조각 수색에 나섰다.

누가 먼저 찾느냐에 따라 보상 금액이 달라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웨일이 주는 포상이다.

상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의뢰 한 번으로 인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러니 열심히 안 할 수가 있겠어?’

나만 빼고 모두가 다 사방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나는 로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에 마침 웨일이 가만히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네는 어제부터 가만히 있더군. 뭔가 알아차린 거라도 있나?”

대답을 하려는 순간, 익숙한 경고 메시지가 떴다.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친밀도를 올려 개연성을 충족시키세요.

깜빡 잊고 있었다. 친밀도를 올려놓지 않으면 단역 등급의 인물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당장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펜과 종이를 들었다.

-칠흑의 조각이 어디 숨어 있을지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음? 자네, 말을 못 하나?”

-목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컨디션 관리 좀 잘할 것이지, 쯧쯧.”

나를 바라보는 웨일의 눈빛에는 한심함이 가득했다.

친밀도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딱히 상관없다.

어차피 웨일의 친밀도는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 단번에 올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했건만, 예상외의 부분에서 웨일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자네, 손목에 차고 있는 그 아이템 말일세.”

손으로 내가 차고 있는 팔찌를 가리켰다.

“그래, 그거.”

레이샤르에게 선물로 받았던 아이템, 붉은 비늘 팔찌다.

원래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삼켜서 용신단의 경험치를 올리는 데 사용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여태껏 아이템을 얻는 족족 삼켜 왔다.

아이템을 사용해 볼 시간조차 없이.

모처럼 얻은 레전드 등급 아이템이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사용이라도 해 보고 삼키자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아껴 두고 있었다.

역시 대상인이라 그런 걸까? 돈 냄새, 보물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웨일은 내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내가 봐도 될까.”

“…….”

“걱정 말게. 훔쳐 가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그런 의심을 한 적은 없었다.

웨일은 거래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하다.

아무리 탐나는 아이템이 있다 하더라도 무단으로 그걸 훔쳐 갈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팔찌를 벗어 웨일에게 건네줬다.

웨일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이동하던 세 아들도 붉은 비늘 팔찌를 유심히 바라봤다.

나는 수첩에 아이템의 정체를 적어 줬다.

-벨라시오닉이 삼켰다고 알려진 보물입니다. 붉은 비늘 팔찌라고 합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라고?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굉장히 귀한 아이템이다.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웨일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거, 나한테 팔 수 있나?”

역시 이런 제안을 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에도 웨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돈은 달라는 대로 주도록 하지. 어떤가?”

-죄송합니다, 웨일 님. 고등급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용병의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목숨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고등급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수록 전투에서 생존할 확률이 늘어난다.

소위 템발이다.

능력치가 아무리 낮아도 템발만 좋으면 장땡이다.

웨일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이템 소유자가 팔기 싫다는데 어쩌겠나.

그래도 웨일은 마지막 여지를 남겨 뒀다.

“혹여나 아이템을 팔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언제든 나를 찾아 주게. 기다리고 있겠네.”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

* * *

당연한 말이지만 2일째도 허탕을 쳤다.

용병들은 차츰 지쳐 갔다.

“정말로 저택에 칠흑의 조각이 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거 같은데.”

“목격자가 헛것을 본 것일지도 몰라.”

“쉿! 말조심해. 목격자가 웨일 님이라고 했잖아. 목격자를 욕하는 건 웨일 님을 욕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어.”

“그리고 듣자 하니 웨일 님뿐만 아니라 도련님들도 봤다던데.”

“도련님들 말고도 저택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한 번씩 봤대. 단체 환각이 아닌 이상, 정말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칠흑의 조각은 분명 이 저택 안에 있다.

단, 그 정체가 조르라는 걸 아무도 모를 뿐.

조르는 태연하게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본인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를 거다.

잠식당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데 알 리가 없지.

이렇게 보면 참 불쌍하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소설을 1, 2권까지 본 내가 알기론, 잠식당한 상태에서 칠흑의 조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인들을 희생시키나, 아니면 본인이 희생당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작중에 사용된 단어 표현처럼 정말로 참극이다.

식사를 마친 나는 일찌감치 내 방으로 향했다.

게럴과 바슬라도 마찬가지였다.

“어휴…… 다리 아파 죽겠네.”

“나는 허리. 가구 밑들 살핀다고 너무 허리 숙이고 다녔더니 죽을 거 같아.”

게럴과 바슬라가 각각 앓는 소리를 냈다.

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용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멀쩡했다.

웨일이 나에게 컨디션 조절 좀 잘하라고 쓴소리를 했는데, 정작 나만 멀쩡하니.

희한한 일이다.

숙소는 1인 1실이었다.

그럼에도 방은 남아돌았다.

저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뒤에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 전에 왼팔에 붉은 비늘 팔찌가 제대로 착용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칠흑의 조각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파기로 했다.

‘걸려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봐야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드레인에게 전염이 된 모양인지, 요즘은 나도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드는 버릇이 생겼다.

1시간가량 지났을까?

내 잠을 방해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끼릭.

문이 열리는 소리다.

잠갔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다니.

‘재주도 좋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계속 잠에 빠져든 연기를 펼쳤다.

낯선 침입자는 갑자기 내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는 물건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내 침입자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내 왼쪽 팔에 감겨 있는 붉은 비늘 팔찌를 바라보는 듯했다.

“…….”

터벅터벅.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잡았다, 이 녀석!”

나는 손을 뻗어 놈의 손목을 잡……을 뻔했다가 놓쳤다.

녀석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다.

누군지는 안다.

웨일의 둘째 아들, 조르다.

놈의 팔은 칠흑의 조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팔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전신이 이미 잠식 상태에 접어들었다.

저래서 움직임이 빨랐던 건가.

인간 형태일 줄 알고 뜸을 들였다가 낚아챈 건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움직일 걸 그랬다.

조르는 인간이 보여 주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녀석을 뒤쫓기 시작했다.

놓쳐서는 안 된다!

마침 복도 끝에서 아는 얼굴이 튀어나왔다.

“후아암……!”

눈이 반쯤 감긴 게,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을 나선 모양인 게럴이었다.

난 게럴을 향해 외쳤다.

“게럴! 거기 도망치는 검은 녀석 좀 어떻게든 붙잡아 봐!”

“검은 녀석이라니…… 우왓? 저게 뭐야!”

게럴은 잠식당한 조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허리에 매 두었던 단검을 뽑아 들더니 조르에게 휘둘렀다.

어딜 가든 무기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게 바로 용병의 습관이자 철칙이다.

그러나 조르는 게럴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 버렸다.

몸놀림이 상당하다.

‘저 정도면 잠식 3단계 직전까지 도달했을지도!’

잠식 단계가 높을수록 능력치가 상승한다.

한마디로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게럴은 내게 외쳤다.

“로인! 저 괴물은 대체 뭐야?”

“보면 알잖아!”

일일이 다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나는 간결하게 답해 줬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검은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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