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45화 (45/240)

# 45

범인은 바로 너야! (1)

대상인 웨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 제일의 갑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남자로, 로그 상단이 델리피나 대륙 상권을 전부 씹어 먹기 전까지 무역계 부동의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라스의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하다.

라스의 신분 상승은 웨일이 든든하게 후원을 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 그 에피소드가 나오진 않았지만, 조만간 웨일과 라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관계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 웨일은 가급적이면 살아 있어 줘야 한다.

주인공의 든든한 협력자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면 곤란하다.

나한테도 마찬가지다.

라스는 계속해서 활약을 해 줘야 한다.

칠흑을 없애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등장인물이니까.

첸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25번을 고른 이유는?”

“그냥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끈질긴 남자다.

하기야, 저번에 의뢰 선택을 할 때 나 혼자만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으니까.

모두가 다 기피하는 의뢰를 당당히 고르고, 무사히 살아와서 엄청난 보상액까지 두둑이 챙겼다.

이런 모습을 봤으니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적당히 핑계를 대기로 했다.

“부업으로 상단을 꾸리는 입장에서, 대상인이라 불리는 남자의 곁에 붙어 있으면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거 같아서요. 그런 이유에서 웨일의 호위 임무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핑곗거리였다.

첸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는 눈치였지만, 아무리 물어도 내가 솔직하게 대답해 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걸 잘 알기에 첸버는 빠르게 포기했다.

현명한 남자다.

* * *

25번 의뢰를 비롯해서 우리는 총 8개의 임무를 받게 되었다.

전부 다 호위 임무다.

가서 귀족, 혹은 돈 많은 상인이 이쯤이면 됐다고 안심할 때까지 곁에 붙어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기간이 긴 건 3개월까지, 짧은 건 1개월만 있으면 될 듯싶었다.

나울로 돌아와 R팀 용병들을 소집했다.

용병단 소속은 아니지만 R팀과 많은 교류를 주고받았던 라그너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다들 주목.”

“주목!”

내 말에 모두가 복명복창을 하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렇게 보니 군 복무할 때 느낌이 새록새록 난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미 대충 들어서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에게 8개의 의뢰가 떨어졌다. 개수가 너무 많으니까 각각 조를 짜서 의뢰를 수행할까 하는데.”

도중에 반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대장은 어디로 갈 건가?”

“나는 25번으로. 근데 난 혼자 갈 거니까 나머지는 너희끼리 알아서 짜.”

“후훗, 고독한 늑대로군……. 역시 대장이야, 마음에 들어.”

딱히 고독한 늑대를 연기하고 싶어서 혼자 가려는 건 아닌데.

그냥 혼자가 편해서다.

그리고 25번 의뢰는 나 혼자서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원래 블루로즈단은 혼자가 아닌 최소 2인 이상이 모여 함께 행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 한해선 혼자서 행동하는 것도 허용된다.

의뢰가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는 것도 특수한 상황에 적용된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리고 애초에 대장은 이런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장이 이런 건 참 편하단 말이야.’

나를 제외한 용병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조를 짜 의뢰를 선정했다.

라그너는 용병이 아니었기에 제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그너는 의욕을 드러냈다.

“로인 님!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같이 간다고? 네가?”

“웨일은 제 목표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부터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어떻게 안될는지…….”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안 돼. 대신에 내가 다음에 어떻게든 자리 한번 마련해 볼게. 아쉬워도 참아.”

이번 의뢰는 겉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위험하다.

괜히 라그너를 데려갔다가 그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네가 죽으면 상단은 누가 운영하겠어?’

첸버가 제시한 35개의 의뢰 중에서 어쩌면 내가 가겠다고 선언한 25번 의뢰가 실은 가장 위험한 임무가 될지도 모른다.

* * *

소설 속에서 초반에 언급되는 웨일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델리피나 전 대륙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의 손에 한 국가의 경제가 좌지우지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칠흑의 존재에 많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커지는 계기가 최근, 웨일의 주변에서 발생했다.

웨일의 저택으로 향하는 나.

도중에 오지랖 넓은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봐요, 형씨! 저 저택 근처로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왜요?”

“저기서 뭐시다냐…… 칠흑인지 찰흙인지 하는 놈이 나왔다고 그랬거든.”

역시 예상대로다.

웨일의 주변에 칠흑의 조각에 잠식된 괴물이 나타난다.

어찌어찌 운 좋게 그 괴물을 겨우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은가?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도, 현실은 다를지 모르니까.

그래서 내가 왔다, 웨일을 구하기 위해!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웨일의 저택으로 향했다.

문지기가 나를 막아섰다.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어디서 오신 누구입니까?”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로인입니다. 웨일 님의 호위 임무를 받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내 신분을 상징하는 보호구를 보여 줬다.

마크를 확인한 문지기는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안에는 이미 나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 용병들이 가득했다.

그중에 아는 얼굴도 보였다.

“어? 로인이잖아! 또 만났네?”

트윈소드 소속 용병, 게럴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옆을 보니 딸꾹질 마법사, 바슬라도 있었다.

‘저 녀석들도 나랑 인연이 상당하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세 번이나 같은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드라마틱한 만남이다.

‘누가 보면 소설이나 만화인 줄 알겠네.’

……아, 여기 소설 속이지.

“잠깐만. 너, 그거 뭐냐?”

게럴은 내 손목 보호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긴. 방어구잖아.”

“아니, 문양 말이야. 이거, 블루로즈단 대장 마크인데?”

“R팀 대장 됐다.”

“이야! 너, 출세했구나! 들어가기 그렇게 어렵다고 소문이 난 엘리트 용병 조직에 들어가더니, 이제는 대장까지 꿰찼군!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자랑스러워! 하하하!”

……난 너랑 친구가 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용병들 세계에서 블루로즈단은 선망의 대상이다.

초엘리트 용병 조직이라 불리고 있는 곳이니까.

그만큼 받는 취급 또한 일반 용병들과 달랐다.

일단 받는 돈이 상당하다.

엘리트 용병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한 활약을 보여 줘야 하지만.

나의 등장에 주변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나를 견제하는 시선도 더러 보였다.

정확히는 나를 견제한다기보다는 블루로즈단을 견제한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았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로인 님이십니까?”

“예.”

“당신이 마지막이군요. 모든 용병들이 다 모였으니 저를 따라오시지요.”

남자는 우리들을 안내했다.

웨일은 나를 포함해서 도합 열다섯 명의 용병들을 고용했다.

소속 조직 또한 제각각이었다.

넓은 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오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구려.”

인물 정보 창을 주시했다.

-웨일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SS

세계 제일의 갑부라 불리는 남자. 돈의 왕이라 불린다.

웨일의 종합 능력이 SSS랭크로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재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재력이라는 분야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SSS랭크를 받을 만하다.

웨일이 소설 속에서 직접 등장하는 건 라스와 만났을 때, 정확히 세 번이다.

그 만남에서 웨일은 라스의 가치를 알아본다.

젊은 영웅에게 과감하게 투자하는 웨일.

그의 도박은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투자한 사람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니까.

‘실패할 리가 없지, 암!’

웨일은 우리를 불러 모은 뒤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면서 소문은 들었겠지만, 이 저택에 칠흑의 조각이 숨어 있다네. 자네들이 할 일은 칠흑의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거야. 그리고 찾아내자마자 바로 제거해 줬으면 좋겠군.”

그때 게럴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여기에 있다면, 이 저택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 저택은, 아니 이 저택이 세워진 곳은 웨일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의 가난이 묻힌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웨일 자신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판자로 된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기억은 웨일의 원동력이자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저택을 떠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웨일의 어릴 적 추억을 버린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그래서 웨일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하나 웨일은 속사정을 용병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용병들은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돈만 받으면 된다.

돈만 주면 고용주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든 다 한다.

그것이 용병이란 존재다.

‘칠흑의 조각을 찾아서 제거하라.’

용병들이 할 일은 그것뿐이다.

의뢰인에게 더 이상 간섭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기한은 딱히 없다. 찾아서 가장 먼저 칠흑을 제거하는 순간, 그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주도록 하지.”

용병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웨일은 사람을 쉽게 부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돈.

돈을 주겠다고 하니 용병들의 의욕은 배가되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 * *

열다섯 명의 용병들이 숨은 칠흑의 조각을 찾을 때까지, 영지 내에 있는 모든 시설들은 용병들에게 개방되었다.

용병들은 칠흑의 조각이 있을 법한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창고라든지 지하실 같은 곳들 말이다.

반면 나는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느끼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좋네.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던 게럴과 바슬라 콤비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어이, 친구.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쉬는 거잖아.”

“그러다가 다른 용병한테 사냥감 빼앗기면 어쩌려고 그래? 들어 보니까 웨일 그 양반은 너한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고 하던데. 블루로즈단이잖아? 좀 더 의욕적으로 움직이는 게 어때?”

“무턱대고 움직여 봤자 아무런 소용 없어. 중요한 건 어느 타이밍에 움직이느냐다. 그걸 생각해야지. 그래야 효율적이니까.”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저택 주변 시설물에는 칠흑의 조각이 없다.

백날 찾아봐라.

녀석은 절대 안 나온다.

난 이미 칠흑의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슬라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친구들, 목소리 볼륨 좀 줄여. 저기에 우리 고용주 아드님들 지나가고 있으니까.”

웨일은 슬하에 세 명의 아들을 뒀다.

첫째가 샤인, 둘째가 조르, 그리고 셋째가 이븐이다.

셋 다 기품이 좔좔 흐른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그러나, 저 셋 중 한 명이 이 사태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웨일은 모를 것이다.

어디 보자, 셋 중 둘째인 조르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조르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D

-웨일의 둘째 아들. 어린 나이 때부터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지금은 훌륭한 상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는 칠흑의 조각에 의해 잠식당한 상태다.

‘찾았다.’

이번 사태의 원흉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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