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43화 (43/240)

# 43

주둔지 (1)

나는 바우너에게 미우리와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미우리와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와 대면한 그녀의 태도는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바우너, 이 냄새나는 자들은 누구지?”

“…….”

나는 드레인과 가르시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런 뒤, 두 사람에게 충고를 날렸다.

“좀 씻고들 다녀요. 부인이 냄새난다고 하잖아요.”

드레인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삼켰다.

“이봐, 대장, 마치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 나울까지 오는데 샤워 한번 못 하고 계속 말 타고 달려왔잖아. 너도 땀 냄새 나는 건 마찬가지라고.”

드레인의 주장에 가르시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이 대장 체면을 안 살려 주네, 쳇.’

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바우너에게 들었습니다. 그랑트 자작님의 숨겨진 첩이었다고요?”

“처업?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 뼈다귀인지 모르겠지만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첩이 아니라 자작의 정실부인이라고!”

자존심 하나는 더럽게 센 여편네다.

‘바우너가 애를 먹을 만도 했구나.’

애초에 말이 안 통하는 상대인데,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흠! 서면상으로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니, 정실부인이라 보기에는 좀 그렇군요.”

“뭣이 어쩌고 어째? 바우너! 저놈들, 당장 내 저택에서 끌어내!”

“어머니, 일단 형의…… 아니, 용병들의 말을 들어 보세요. 헨리가 정말로 아버님의 핏줄인지 아닌지 감정해 준다고 하니까요.”

“뭐라고……?”

헨리는 미우리가 데려온 소년의 이름이다.

헨리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본인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태연한 꼬맹이 녀석이다.

똑 부러지는 바우너와 형제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미우리는 내게 대뜸 물었다.

“그게 뭔데?”

“트러스트 스톤이라는 아이템입니다.”

“아이템이라고? 그냥 돌멩이처럼 생겼는데?”

“듣고 기절하지 마시길. 이 돌에는…… 아니, 이 아이템에는 놀라운 효과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밝혀낼 수 있지요.”

순간 미우리의 어깨가 작게 움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돌을 움켜쥐고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합니다. 만약 대답이 진실이라면 돌은 파란색으로 변할 겁니다. 반면, 대답이 거짓일 경우에는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그, 그런 아이템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럼 실험해 볼까요? 거기 청년.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저 말입니까?”

“그래, 당신.”

그랑트 저택에서 일하는 젊은 하인 하나를 불렀다.

“돌을 손에 꽉 쥐어.”

“비싼 물건은 아니죠? 괜히 저 때문에 고장 나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마. 비싼 물건은 맞지만, 꽉 쥔다고 그걸로 고장 날 정도로 약한 아이템은 아니니까. 어디 보자……. 테스트를 해 볼 겸 내가 질문 하나 해 볼 텐데, 기왕이면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오늘 소변을 봤나, 안 봤나?”

“그거야 당연히 봤죠.”

뻔한 질문이었다.

일부러 그렇다는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뻔한 질문을 던졌다.

젊은 하인의 손에 들려 있던 돌이 번쩍 빛을 내기 시작했다.

빛의 색깔은 파랑이었다.

“정답이군.”

“와, 이거 신기한데요?”

하인은 트러스트 스톤을 처음 보는 모양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미우리는 아직 트러스트 스톤의 효과에 대해 믿지 못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파란색 빛만 뿜어 대는 아이템일 수도 있잖아!”

“그럼 부인께서 직접 테스트해 보시겠습니까?”

“내, 내가?”

“예. 간단한 걸로 해 보죠.”

“…….”

미우리는 선뜻 트러스트 스톤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이 낌새만으로도 나는 미우리가 거짓말로 이 저택에 눌러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시점부터 대충 예상했을 것이다.

미우리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미우리는 마지못해 트러스트 스톤을 손에 움켜쥐었다.

나는 이번엔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어제 먹은 세 끼 식사 중에 고기가 있었나요?”

“……없었어.”

미우리는 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트러스트 스톤은 붉은 빛을 뿜어 댔다.

“거짓말이군요.”

내 말에 미우리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이내 미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야! 분명 안 나왔다고! 먹은 적 없어!”

“식사는 밖에서 했습니까, 여기 안에서 해결했습니까?”

“……안에서.”

“그러면 저택 요리사를 불러서 물어보면 되겠군요. 바우너, 미안한데 요리사를 불러 줄 수 있을까?”

“알았어요.”

바우너는 집사에게 명했다.

머지않아 저택 내 모든 음식을 책임지고 조리하는 메인 셰프가 등장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제 어머니께 제공된 식사 중에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있었나?”

“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저녁 자체가 등심 스테이크였습니다. 당연히 고기죠. 설마 등심 스테이크를 고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미안하게도 그 바보는 우리 눈앞에 존재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미우리에게 고정되었다.

그녀의 거짓말이 들통 난 순간이었다.

트러스트 스톤은 미우리가 거짓말을 했음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다.

“트러스트 스톤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확인했습니다. 부인께서도 확인하셨겠지요?”

“그, 그건……!”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는 미우리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헨리가 정말로 그랑트 자작님의 아들이 맞습니까?”

“…….”

“대답하시죠. 모두가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우리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나조차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결국 미우리는 참다못해 트러스트 스톤을 내게 던졌다.

그런 뒤, 헨리의 손을 잡고 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가려 했다.

“별꼴이야, 정말! 내가 이딴 저택, 다시 찾아오나 봐라!”

마지막까지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발악을 하는구나.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잡아라!”

바우너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미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이거 놔! 놓으라고!”

“귀족을 사칭한 죄는 굉장히 무겁습니다, 어머니, 아니 미우리. 합당한 처벌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 바우너! 네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들을 필요도 없다. 끌고 가라.”

“예!”

병사들은 미우리 모자를 끌고 저택을 나섰다.

나는 트러스트 스톤을 내려다봤다.

트러스트 스톤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그랑트 저택에 눌러앉은 거짓말쟁이는 이로써 무사히 퇴치되었다.

* * *

“감사합니다. 형 덕분에 큰 문제를 해결했어요.”

바우너는 안심했다.

만약 헨리가 정말로 그랑트 자작의 아들이라면, 바우너는 어떻게 해서든 미우리와 헨리를 책임지려 했을 것이다.

비록 바우너가 저지른 기행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가 저지른 실수이니 어떻게든 바우너가 뒤처리를 하려고 나섰을 터.

실제로 바우너는 미우리와 헨리를 내쫓지 못했다.

나는 바우너에게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사실 트러스트 스톤이 진실, 거짓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말, 거짓이다.”

“예?”

바우너는 입을 쩍 벌렸다.

트러스트 스톤이라는 별칭도 내가 임시로 지은 가칭이었다.

“아이템의 본래 명칭은 헬스 스톤이야. 사람의 심장박동 수, 혈압, 땀 분비 등을 측정해서 신체에 급격하게 변화가 생기면 붉은 빛을 띠고, 아니면 파란 빛을 띠는 그런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지.”

거짓말탐지기와 같은 원리였다.

신체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밝혀내는 것처럼 말을 꾸몄다.

참고로 이 아이템은 칼바의 용암 동굴에서 얻은 보물 중 하나다.

혹시나 해서 챙기고 다녔는데, 설마 이럴 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바우너는 허탈한 웃음을 토해 냈다.

“대단하네요. 저도 깜빡 속았어요.”

“거짓말은 거짓말로 제압하면 되는 거야. 잘 기억해 둬.”

“명심할게요.”

“그리고 도시가 예전에 비해서…… 뭐랄까? 생기가 많이 없어졌는데. 아무래도 그랑트 자작님의 죽음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데,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에도 징조는 보였어요.”

“징조라니, 뭔데?”

“나울을 대표하는 상단들이 대거 빠져나갔거든요. 그래서 일자리도 줄어들고, 도시 전체 매출도 하락세예요. 형이 느낀 ‘생기가 없다.’라는 건 도시 경기 침체 때문이에요.”

“흠, 그랬군.”

아까운 도시다.

나울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입지 조건은 나쁘지 않다.

교역로로 활용하기에 딱 좋은 도시를 놔두고 상단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니.

다른 도시에서 자기들 쪽으로 본사를 옮기라는 거래가 있었나?

가만, 오히려 이건 기회 아닌가.

“내가 일자리 만들어 줄까?”

“형이요? 어떻게요?”

“형이 마침 괜찮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거든. 3개월 전에 상단을 꾸렸는데, 생각보다 잘나가고 있어, 파이어 스톤 대량으로 유통한 곳, 어딘지 알지?”

“네, 알고는 있어요.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파이어 스톤을 보급하는 데 크나큰 일조를 했다더군요. 덕분에 서민들은 이제 비싼 돈 안 들이고도 파이어 스톤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엄청 기뻐했죠.”

“로그 상단이라고, 이번에 상단명을 바꿨는데, 거기 공동대표가 나야.”

“네?”

오늘 바우너는 많은 충격을 받는 것 같네.

“형, 장사에도 소질이 있었네요!”

“뭐, 내가 다재다능한 인재긴 하지. 아무튼 상단명도 본격적으로 확정 지었고 해서 슬슬 본사 위치를 정할까 하는데, 기왕이면 나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영주가 있는 곳으로 본사를 옮기고 싶거든. 때마침 여기가 떠올라서 말이야. 어때, 괜찮아?”

“저야 대환영이죠!”

바우너는 쌍수를 들고 기쁨을 표했다.

‘짜식, 그렇게까지 기뻐할 필요는 없는데.’

본사가 위치한 도시의 영주와 친하게 지내 두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제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나는 영주와 친분이 두터운 도시를 1순위로 삼았다.

아스툰, 아니면 나울이다.

원래 나울은 후보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바우너 그랑트가 영주 자리를 꿰차게 됨으로써 나울도 후보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나울을 선택했다.

“조만간 내 동업자한테 이야기해서 이곳에 사업부를 차리라고 할게.”

“네, 알았어요.”

“그리고 R팀 본거지도 이쪽에 둘 거야. 괜찮지?”

“물론이죠! 그나저나 형, 못 본 사이에 엄청난 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잘나가는 상단의 공동대표에 블루로즈단 R팀 용병대장이라니. 저, 형이 존경스러워지려고 해요.”

“마음껏 존경해도 돼.”

“그건 고민 좀 해 보고요.”

고민은 무슨!

여하튼 이곳에 로그 상단 본사와 더불어 R팀 본거지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용병들이 이곳에 머무르면 도시의 전력이 강화된다.

몬스터나 산적의 습격에도 안심할 수 있게 된다.

행실이 불량한 용병들의 경우에는 도심의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블루로즈단은 전체적으로 그런 용병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R팀의 경우에는 군인 출신들이 많아서, 부랑배처럼 도시를 휩쓸고 다닐 만한 멤버는 없었다.

불안한 게 하나 있다면…….

‘에나가 덥다고 하진 않을까.’

에나는 더위를 많이 탄다.

일반인 기준에서 봤을 때 따스한 봄날 날씨처럼 느껴지는 날씨조차도 에나는 덥다고 난리를 쳤다.

‘뭐, 그건 본인이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살게 될 집 안에 마법진을 그려서 온도를 내린다든지…… 뭐, 역량이 뛰어난 마법사니까 본인이 살길은 본인이 알아서 잘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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