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40화 (40/240)

# 40

벨레너의 13난제 (2)

가루로 변하기 시작하는 켈트링.

플레임 골렘의 주먹이 바로 내 머리 위에까지 도달했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 무시무시한 일격에 내 몸이 제대로 버텨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후배!”

“대장님!”

나를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내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었다.

위기의 순간, 나는 작은 환약으로 변한 켈트링을 그대로 삼켰다.

꿀꺽!

화염 속성을 지닌 반지라 그런 걸까?

감촉이 굉장히 뜨거웠다.

내가 켈트링을 삼킴과 동시에 플레임 골렘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불을 부르는 반지, 켈트링을 삼켰습니다. 삼킨 아이템의 효과로 추가 화염 저항력 +23을 얻습니다.

-용신단의 경험치가 오릅니다.

아쉽게도 레벨까지는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플레임 골렘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황천길로 떠날 뻔했다.

어휴, 정말 이 세계는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모자라겠네.

* * *

켈트링이 사라짐과 동시에 플레임 골렘들 역시 자취를 감춰 버렸다.

폭주하기 쉬운 아이템이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는 켈트링.

아마도 칼바라는 도적은 켈트링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을 발생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찌 되었든 간에 일은 무사히 해결되었으니, 만사 오케이다.’

용암 지역 점령에 성공한 우리들은 용암 동굴에 보관되어 있던 보물들을 들고 나왔다.

지금 당장 팔아서 제피로 교환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참아야 했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잠시 쉬고 있으라는 대기 명령을 전달해 뒀다.

이후 나는 혼자서 데슬라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지금쯤이면 그 녀석이 여기에 있을 텐데.”

사람 찾기가 제일 어렵다.

일단 도시 안에 있는 술집이란 술집은 전부 다 돌아다니기로 했다.

총 열 군데였다.

그중에 정확히 다섯 번째 술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찾았다!’

내가 찾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라그너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

-사업가. 젊은 나이에 외식, 의료, 무역 등 안 건드려 본 사업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라그너는 술에 잔뜩 전 채였다.

자리가 빽빽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라그너의 주변 테이블은 한산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왜 유독 라그너 주변만 한산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냄새가 고약하다.

우유 썩은 냄새랑 비슷했다.

‘아니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지독하군!’

맡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라그너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라그너는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잉? 뭐냐, 넌?”

“…….”

단역인 라그너에게 초면부터 말을 붙일 수는 없었다.

개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그너와 친밀도를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말없이 술병을 슬쩍 내밀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라그너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나한테 주는 거냐?”

“…….”

말은 못 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대신 의사를 표현했다.

라그너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바로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꽤 독한 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그너는 순식간에 술병의 반을 비워 버렸다.

엄청난 술고래였다.

-라그너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준치를 넘겼습니다. 이제부터 라그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술을 좋아한다는 설정 덕분에 편하게 친밀도를 올릴 수 있었다.

“아아, 하나, 둘, 셋.”

오랜만의 마이크 테스트.

좋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군.

“라그너 맞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냐? 가만, 내가 이름을 말해 줬나? 헷갈리네, 케케.”

정신이 반쯤 나간 녀석 같다.

그래도 겉모습만 보고 라그너를 멋대로 판단하면 금물이다.

이 녀석은 차후에 델리피나 대륙에서 제일가는 상인이 된다.

내가 라그너를 찾아온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랑 상단 하나 차려 봅시다.”

“……방금 상단이라고 했어?”

“어. 당신 주특기잖아? 일 벌이는 거. 그리고 돈 버는 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나는 일만 잘 벌이고, 돈은 못 벌어. 벌써 사업만 여섯 번을 말아먹었는데 돈을 잘 벌긴 개뿔!”

여섯 번의 재산 탕진.

소설 속에서 나왔던 내용 그대로였다.

내가 제대로 된 타이밍에 찾아왔다.

라그너는 여섯 번의 실패를 겪은 끝에 일곱 번째 시도에서 대성(大成)하게 된다.

만약 라그너가 여태껏 실패한 사업이 다섯 번이었다는 말을 했다면, 나는 바로 이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앞서 여섯 번 말아먹었다고 분명 말을 했으니, 나와 같이 상단을 차리는 건 정확히 일곱 번째 시도가 된다는 뜻 아닌가!

지금이 라그너의 성공 운에 업혀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러나 라그너는 이미 여섯 번의 실패로 인해 크게 마음이 꺾인 모양인지 내 말을 칼같이 거절했다.

“난 이제 다신 상단 안 차려! 사업 안 해! 그냥 이대로 술이나 마시다가 죽을 거야!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살다가 뒈지는 거지!”

“그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자고.”

“돈 없다니까?”

“내가 지원해 줄게.”

“……?”

라그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신이 뭔데?”

“뭐긴, 너와 동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 초기 자금은 내가 대 줄게. 그리고 상단 꾸리는 데 있어서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줄 거고. 운영은 네 마음대로 해. 난 특별한 경우 없으면 일절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대신, 수익의 20퍼센트를 나에게 줘. 그게 조건이야.”

“그러다가 내가 네 돈 다 날려 먹기라도 한다면?”

“일절 탓하지 않으마. 계약서를 써도 좋아. 그래도 불안하다면,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도록 하지.”

“…….”

라그너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말로는 두 번 다시 사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라그너의 본성을 잘 안다.

이 남자는 타고난 상인, 장사의 맛을 아는 남자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여섯 번이나 상단을 꾸렸던 자가 어찌 쉽게 손을 털 수 있을까?

게다가 때마침 초기 자금을 대 주겠다는 남자가 불쑥 찾아왔다.

심지어 남자는 돈을 날려 먹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까지 해 온다.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라그너는 재차 내게 물었다.

“방금 그 말, 뒤로 물리기 없기다?”

“물론.”

라그너는 아마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돈은 많은데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 어설프게 상단 하나 만들어 보려고 자신을 찾아온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괜찮은 건수를 가져왔는데.”

“뭐지?”

나는 라그너에게 있어서 투자자, 절대적인 위치다.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딱 상인으로서의 자세가 나온다.

“파이어 스톤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관심 있어?”

“……!”

라그너의 표정이 굳어졌다.

파이어 스톤.

내가 견습 용병일 때 드레인이 야영을 할 당시 시범 삼아 보여 줬던 아이템이다.

화기를 보관해 둔 작은 돌덩어리로, 불이 필요하거나 혹은 체온을 따스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보통은 마법사들이 마법석에 화염 기운을 불어 넣어 만드는데, 그래서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파이어 스톤 하나가 15만 제피에 거래되고 있었다.

워낙 비쌌기에 서민들은 꿈도 못 꾼다.

하나 나는 최근에 파이어 스톤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이 정보를 활용한다면, 파이어 스톤을 대량으로 유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단가를 낮추고 수량으로 밀어붙여도 된다.

파이어 스톤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우리의 공급량을 따라잡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품질 또한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라서 그런지 마법사가 만든 것보다 화기가 더 오래 지속된다.

경쟁 자체가 안 될 것이다.

“거기가 어디지?”

라그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장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우선 계약서부터 쓰자고, 친구.”

나 또한 보통내기는 아니다.

쉽게 정보를 흘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라그너에게 손해 볼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내밀자, 라그너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사인을 했다.

“좋아, 서로 잘해 보자고.”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라그너는 악수를 대충 빠르게 마무리 지은 후에 나를 닦달했다.

“파이어 스톤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부터 말해. 만약 네 정보가 사실이라면, 내일부터 당장 인력 모아서 확보하러 갈 테니까.”

사업은 속도가 생명이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칼바의 용암 동굴이 있는 용암 지역.”

“젠장, 믿었던 내가 바보지.”

라그너는 혀를 찼다.

“이봐, 도련님, 나를 바보로 아나 본데, 거기는 플레임 골렘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쉽게 점령 못하는 위험지역이야. 고클래스 마법사들하고 중대 단위급 병력을 동원해야 겨우 제압할까 말까 한 곳을 어떻게 가자는 거야?”

“일단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걸 하나 정정해 주지. 난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야.”

천으로 감쌌던 왼팔의 보호구를 드러냈다.

보호구에 새겨진 문장을 보자 라그너는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다.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너, 용병이었냐?”

“그래, 돈 많은 용병이지. 참고로 최근에 벨레너의 난제 일곱 번째를 클리어했다.”

“잠깐, 일곱 번째라고? 그럼 설마……!”

“그래, 네가 말한 그 용암 지역이야. 이미 우리가 차지했어.”

“말도 안 돼!”

용병이 아니더라도 벨레너의 13난제가 얼마나 어려운 의뢰인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100년 넘게 아무도 해결 못한 의뢰를 어떻게……!”

“못 믿겠다면 내일 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든가. 아무튼 그곳에 다량의 파이어 스톤이 매장되어 있더군. 그래서 상단을 만들어서 파이어 스톤 장사로 떼돈 좀 벌려고 하는데. 뭐, 당신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수밖에.”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라그너는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어허! 이거 왜 이러시나, 친구! 나 계약서까지 쓴 몸이야! 나만큼 물건 잘 팔아 주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걸!”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물론! 내일 당장 움직이자고!”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하여튼 그놈의 의심병은.

* * *

라그너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상단 등록을 마쳤다.

명의는 나와 라그너 공동 명의로 진행했다.

블루로즈단에는 소속 용병이 따로 상단을 운영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혹시 몰라 첸버에게 따로 확인을 받았다.

첸버는 상관없다고 대답해 줬다.

라그너는 인력을 구한 다음에 나와 함께 용암 지역으로 향했다.

호위병으로 내가 데리고 다니는 용병들을 붙였다.

라그너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와 용병들을 바라봤다.

“어이, 친구, 이렇게 보니까 진짜로 용병대장처럼 보이네.”

“‘처럼’이 아니라 진짜야. 그보다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라그너는 플레임 골렘이 사라진 용암 지역을 내려다봤다.

“진짜네?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보이잖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

나는 먼저 용암 지역에 발을 들였다.

그런 뒤, 라그너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회의 땅으로 어서 오시게나!”

여기에 매장되어 있는 파이어 스톤들이 우리를 돈방석에 앉혀 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