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벨레너의 13난제 (1)
용암 지역에 점점 가까워질 무렵, 나와 함께 온 R팀 멤버들은 몬스터와 싸우기 전에 더위와 먼저 싸워야 했다.
그나마 가르시아를 비롯한 타렌 출신 병사들은 좀 나아 보였다.
애초에 타렌은 매우 더운 날씨로 유명한 국가다.
그들은 이미 더위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반드와 드레인은 그냥저냥 버티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문제는 에나였다.
“어휴, 더워라……!”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바람을 만들어 내려 애쓰는 에나.
그녀는 더위에 꽤 약하다.
이렇다 보니 더위를 물리치고자 복장의 노출도가 올라갔다.
탄력적인 허벅지, 풍만한 가슴 계곡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우리 일행 중에서 유일한 홍일점이 에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자들의 시선은 절로 에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유부남인 드레인조차 에나를 힐긋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물론 나도 남자긴 하지만 말이다.
에나에게 절로 눈이 가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임무 수행 중에 여자에 정신이 팔렸다가 작전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나중에 사내 연애 금지 조항이라도 추가시켜 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걸어갔다.
너무 더워서 말을 타고 와도 금방 지친다.
그래서 우리는 도보로 이곳 용암 지역까지 오게 되었다.
앞서가던 정찰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용암 동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
좀 더 속도를 냈다.
정찰병과 함께 용암 동굴로 넘어가기 직전의 언덕으로 올라섰다.
아래에 플레임 골렘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소설 속에서 접했던 장면 그대로였다.
아이템 헌터인 카이딘은 라스와 잠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용암 동굴 안에 보관 중인 아이템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일행과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다.
그 아이템이 뭔지 나는 안다.
불을 부르는 반지, 켈트링.
그것 때문에 사실 이 사달이 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켈트링의 스킬 옵션에 플레임 골렘 소환 스킬이 붙어 있으니까.’
켈트링이 폭주해 버린 탓에 이곳은 플레임 골렘의 서식지가 되어 버렸다.
가급적이면 주인공 일행의 먹잇감은 건드리지 않고 싶었는데.
하지만 어차피 주인공이니 굳이 켈트링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템들을 많이 차지할 것이다.
‘불쌍한 엑스트라를 위해서 조금은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크흠!’
가르시아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대장, 이제부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에게 작전을 물어 오는 가르시아.
‘무슨 생각이 있으니 벨레너의 일곱 번째 난제에 도전한 게 아닐까?’
내 부하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거 참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그런 거 없거든.
“가서 플레임 골렘들을 때려눕히고 보물을 가져온다. 이상 작전 끝.”
“…….”
일동 침묵.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나 보다.
드레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배님, 내가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해 봤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벨레너의 13난제는 다른 의뢰들과는 차원이 달라. 무턱대고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클리어할 수 있는 의뢰가 아니라고. 적어도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해. 마침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개인적으로 잘 아는 아이템 헌터 친구한테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 친구가 이런 조언을 했는데…….”
‘또, 또, 또!’
시작했다, 드레인의 수다 타임.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플레임 골렘들을 유인하고 그사이에 용암 동굴 침투조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서 값비싼 보물만 몇 개 골라서 후딱 가져오는 작전으로 가자는 뜻이었다.
이 이야기를 장장 10분 동안 듣고 있어야 했다.
R팀 멤버들은 이미 흥미를 잃은 모양인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15분이라는 프리 토킹 타임이 지나고 나서야 드레인의 장황한 설명이 끝났다.
“……대략 이런 작전인데, 어때? 후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돌진하는 것보다 내 말대로 하는 게 더 좋아 보이지 않아?”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요.”
“그렇지?”
“네. 하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렇게 말을 남긴 뒤, 나는 혼자서 용암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쿠웅!
내 등장에 플레임 골렘들의 시선은 절로 나에게 집중되었다.
위에서 드레인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몬스터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끌고 그사이에 보물을 몰래 가져온다?
괜찮은 작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목적은 여기에 있는 플레임 골렘들을 싹 쓸어버리고 용암 지역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물은 덤이다.
칼바의 용암 동굴 공략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가면서 모셔 온 분이 있다.
“에나! 네 차례야!”
“드디어 제가 나설 차례인가요?”
에나는 곧장 캐스팅에 들어갔다.
후딱 일을 끝내고 이놈의 용암 지역을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강력한 빙결 마법인 아이스 필드가 펼쳐졌다.
촤라라락!
플레임 골램들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후끈거렸던 용암 지역 밑바닥도 얼어 버렸다.
엄청나다.
이런 능력자를 소설 속에선 제대로 써먹지 못하다니…….
오랜만에 《델리피나 전기》의 저자, 카인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담당 편집자였으면 에나를 조연급으로 격상시키자고 했었을 텐데…….’
뭐, 지금이라도 그렇게 활용하면 되겠지.
한편, 에나의 대활약 덕분에 용병들은 손쉽게 플레임 골렘들을 제압해 나갈 수 있었다.
본인 작전을 무시했다고 엄청난 불평을 토로했던 드레인도 어느새 군말 않고 합류했다.
봐서 알겠지만, 우리는 플레임 골렘들과 싸워도 지지 않을 전력을 갖춘 최고의 용병 팀이다.
그런데 굳이 플레임 골렘들이 무서워서 전투를 피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나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했다.
우르르르르…….
갑자기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났나?”
가르시아의 물음.
그러나 반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2병의 대사를 읊었다.
“아니, 이건 평범한 지진이 아니야. 어둠의 파동, 아니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죽음의 불꽃이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고동이지!”
‘죽음의 데스, 바람의 윈드, 운명의 데스티니 같은 건가?’
반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얼어붙은 용암대지 한가운데에 균열이 형성되었다.
지면 아래에서 거대한 손이 올라왔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플레임 골렘이었다.
여태껏 우리가 때려잡은 플레임 골램들이 3미터 정도 된다면, 지금 나타난 거대 플레임 골렘은 10미터에 육박했다.
‘그러고 보니 사일런트 포레스트에서도 거인과 싸운 적이 있는데…….’
나는 유독 거인족 몬스터와 연이 많나 보다.
드레인의 절규가 들렸다.
“어쩔 거야, 후배!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자고 했잖아!”
뭐 그리 걱정이 많으신가?
우리에게는 빙결 마법 끝판왕, 마녀 에나가 있다.
때마침 에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강력한 빙결 마법을 캐스팅해 뒀다.
거대한 얼음 창을 소환해 낸 에나는 플레임 골렘에게 일격을 가했다.
후우우웅!
매섭게 날아든 얼음 창은 플레임 골램의 가슴팍에 꽂혔다.
콰직! 소리와 함께 얼음 창은 플레임 골램의 몸을 얼려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중에 반드가 불길한 소리를 내뱉었다.
“죽음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아.”
반드의 말대로였다.
플레임 골렘의 몸은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첫 등장 때보다도 더 강력한 화기를 뿜어 댔다.
에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머, 왜 마법이 안 통하는 거지?”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하기야 이러니까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에 들어가 있는 거겠지.
세상사, 결코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 * *
강력한 화염을 뿜어 대면서 주변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하는 거대 플레임 골렘.
가르시아가 내게 다가왔다.
“화염 때문에 플레임 골렘에게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에나의 마법도 안 통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난 플레임 골렘들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놈들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게 아니다.
켈트링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곳에 소환되었다.
즉, 켈트링을 없애면, 플레임 골렘도 사라진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좋아, 계획을 수정하자.
“다들 주목! 지금부터 전원 용암 동굴로 들어가서 켈트링이라는 보물을 찾아라! 그리고 반드, 에나! 너희는 남아서 나와 같이 시간을 끈다. 선배님은 가르시아랑 같이 용암 동굴로 가세요.”
“아, 알았어!”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대장!”
드레인과 가르시아는 용병들과 함께 빠르게 용암 동굴 안으로 향했다.
에나는 후방에서 계속해서 마법을 난사했다.
빙결 마법 스페셜리스트조차 쩔쩔맬 정도면, 확실히 이번 의뢰가 쉬운 편은 아닌 듯했다.
델리피나 대륙에서 가장 빠른 움직임을 자랑하는 암살자 반드는 플레임 골렘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었다.
“받아랏! 어둠의 불꽃!”
……이라고 말하고 그냥 단검 던지기다.
팅!
소리와 함께 반드가 던진 단검이 튕겨 나왔다.
그는 혀를 차더니 이내 자세를 바꿨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라드리치 1레벨, 봉인 해제!”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아까보다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반드가 플레임 골렘의 시선을 묶어 두는 동안, 나는 에나가 공격을 날린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다른 곳은 뜨거워서 건드리질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차갑게 식은 부위만 공략했다.
쩌저적!
플레임 골렘의 몸에 금이 형성되었다.
‘조금만 더 때리면 될 거 같은데.’
에나에게 내가 때린 곳에 빙결 마법을 더 날려 달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아이스 볼트 수십 개가 플레임 골렘에게로 날아들었다.
뒤이어 내가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플레임 골렘의 왼팔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팔이 절단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절단된 부위를 중심으로 바위들이 모여들더니, 플레임 골렘의 팔이 재생되었다.
뜨거운 화염을 온몸에 둘둘 두르고 있는 데다가 빠른 재생 능력까지 겸비했다.
적으로 상대하기에 최악의 몬스터와 조우한 셈이었다.
“짜증 나게 만드는 녀석이네.”
재생이 저렇게 빠르면 드래곤 클로 스킬을 사용해도 의미가 없어진다.
어차피 금방 재생할 테니까.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때마침 용암 동굴 쪽에서 드레인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후배! 이거, 켈트링 맞지?”
눈을 가늘게 떠 아이템 정보 창을 확인했다.
-불을 부르는 반지, 켈트링
-등급 : 레전드
-마력 +132
-화염 저항력 +250
-화염 마법 전체 스킬 공격력 2배 상승
대마법사 켈트의 마력이 담긴 반지. 단,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자가 착용할 경우에는 아이템이 폭주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특수 옵션 : 플레임 골램 소환 스킬 사용 가능
“그겁니다! 던지세요!”
“잘 받아!”
있는 힘껏 켈트링을 던지는 드레인.
반지를 낚아채는 순간, 플레임 골렘은 위기를 직감하고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켈트링을 파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흡수 가능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용신단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당근 빠따’지!’
이럴 때에는 벨라시오닉의 탐욕이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