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너, 내 동료가 되어라 (3)
양손으로 들어도 무거운 양날 도끼를 한 손으로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가르시아.
근력이 어마어마했다.
소설 속에서 가르시아는 장사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 인물로 나온다.
타렌이라는 나라를 버리고 부하들을 택한 장수.
그러나 그는 정확히 3개월 뒤 마을을 습격해 온, 칠흑에 잠식당한 몬스터 무리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곳에 계속 가르시아를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내가 데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유용하게 써먹어야지!’
그냥 죽게끔 놔두기엔 아까운 캐릭터라고 줄곧 생각했다.
부웅!
가르시아의 양날 도끼가 내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살짝 긁힌 상처가 났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였다.
움직임 또한 날렵했다.
보통 힘이 센 인물은 움직임이 느리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는 가르시아를 보면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간다.
‘여태껏 맞상대해 본 놈들 중에선 그래도 가장 쓸 만하네!’
점점 녀석이 탐났다.
공격을 회피하자마자 바로 반격을 가했다.
어설픈 나의 주먹질.
그러나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골로 간다.
뻐어어억!
가르시아의 복부에 내 주먹이 꽂혔다.
그러나 놀라운 상황이 발생했다.
“흐읍!”
기합 소리를 내는 가르시아.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내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하게 버틴 사람은 없었다.
가르시아가 유일했다.
가르시아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프긴 할 거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티를 내지 않았다.
이런 말을 흘렸다.
“꼬맹이 주제에…… 주먹은 꽤나 맵군.”
-가르시아가 로인 님의 전투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가르시아와의 친밀도가 소량 상승합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치를 충족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가르시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역시 남자는 주먹으로 대화하는 법인가?
어쨌든 친밀도가 올랐으니 나쁘지 않다.
가르시아의 말에 나는 드레인이 아닌 내 입으로 직접 대답했다.
“내 주먹은 보통 매운 수준이 아닐 텐데? 그쪽은 매운 거 꽤 잘 먹나 봐? 내 주먹을 맞고도 멀쩡히 버티는 걸 보면 말이지.”
내상은 분명 있을 거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통증을 기합으로 극복해 냈다.
무시무시한 남자다.
심지어 그 상태에서 공격까지 해 왔다.
가르시아의 공격이 나에게 닿을 일은 절대 없었다.
다시 한번 회피한 이후에 공격.
이번에도 같은 곳을 가격했다.
가르시아의 몸은 크게 휘청거렸다.
하나 가르시아는 쓰러지지 않았다.
두 다리로 꼿꼿하게 버텨 냈다.
의지가 대단하다.
부하들을, 그리고 부하의 가족들을 지켜 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르시아를 계속 싸우게 만드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슬슬 한계가 보였다.
“커헉……!”
가르시아는 피를 토했다.
뒤에서 가르시아의 부하들이 그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다.
“물러서라!”
부하들에게 오지 말라며 외친 가르시아가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훔쳤다.
그는 시선을 끝까지 나에게 고정시켰다.
아직 눈빛은 죽지 않았다.
녀석은 아마도 계속 싸우려 들 것이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만 빼고.
“계속 싸울 거야?”
“……물론!”
“그러다가 너 죽을지도 몰라.”
“네놈 따위에게 무릎 꿇을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하지만 난 싸움을 더 이상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가르시아를 패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부하들하고 부하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 마을에 숨어들었다는 거 잘 안다. 그래서 너한테…… 아니, 너희한테 이런 제안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다.”
가르시아와 패잔병들이 혹할 만한 제안을 가지고 왔다.
난 그것을 이들에게 들려줬다.
“너희에게 살 곳을 제공해 주겠다. 여기보다는 안전한 곳이지. 타렌의 추격을 받을 일도, 갑자기 몬스터의 기습을 받을 일도 없는 외진 장소다. 내가 장담하지.”
패잔병들의 얼굴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내 말을 끝까지 믿지 않았다.
“감언이설로 우리를 속이려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의해라.”
“판단은 알아서 해라. 대신 이것만은 기억해 뒀으면 좋겠군. 난 너희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타렌에 이 정보를 넘기지 않았다. 왜냐고? 너희를 우리 용병단으로 데려오고 싶으니까.”
“…….”
가르시아를 비롯해 용병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 쪽에는 첸버라는 유능한 남자가 있다. 신분 위조 같은 일도 해 주지. 만약 너희가 블루로즈단에 들어온다면, 더 이상 타렌이라는 속박에 묶여 살지 않게끔 도와주도록 하겠다.”
이건 이미 첸버에게 양해를 구한 부분이었다.
내가 타렌 출신 병사들을 우리 용병단으로 데려온다면, 신원 위증을 해 줄 수 있겠냐고.
첸버는 흔쾌히 허락했다.
블루로즈단 입장에선 오히려 땡큐다.
타렌 출신 병사는 일당백이라 불릴 만큼 개개인의 전투력이 상당한 자들이다.
그들을 블루로즈단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막강한 전력을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패잔병들은 크게 술렁였다.
내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가르시아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 이유가 뭐지? 공짜로 이런 선행을 베풀진 않을 터. 조건이 있을 텐데.”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
그리고 가장 큰 목적.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 * *
갈 곳 없는 패잔병의 가족들을 어디에 살게 만드느냐, 처음에는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타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진 곳으로 골라야 했다.
이 조건들에 딱 부합되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바로 아스툰이다.
오랜만에 들른 아스툰은 평화 그 자체였다.
마침 용무를 마친 아르헨이 나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간만에 오셨군요, 로인 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블루로즈단에 입단해서 R팀 대장이 되셨다고 하던데…… 정말이었군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로인 님이야말로 제게 은인이나 다름없으신 분인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친밀도가 높으니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준다.
아르헨 덕분에 패잔병의 가족들이 머물 곳을 확보했다.
내가 한 말은 지킨다.
가르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르헨과 대화를 마친 후에 나는 가르시아에게 다가갔다.
가르시아는 내가 고마움을 드러냈다.
“고맙소. 덕분에 이제는 안심하며 살 수 있겠군.”
“이 정도 가지고 뭘. 이제 너희가 약속을 이행할 차례야.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아니, 알겠습니다, 로인 대장. 앞으로 대장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겠습니다.”
가르시아는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혔다.
가르시아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타렌을 탈출한 가르시아의 부하들 역시 내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것으로 나는 나머지 부하들을 얻는 데 성공했다.
* * *
반드와 에나, 그리고 가르시아와 스물다섯 명의 패잔병…… 아니, 내 예비 부하들까지.
새로워진 블루로즈단 R팀의 모습은 얼추 완성되었다.
이들의 합류는 3일 뒤, 내가 있는 베랑이라는 마을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 전에 나는 미리 첸버를 만났다.
첸버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타렌의 병사들을 정말로 데려올 줄이야……. 게다가 한 명도 아니고 스물다섯 명이나…….”
“제가 말했잖아요. 신분 증명 위조 준비나 잘해 두라고요.”
“그건 문제없이 다 끝내 뒀지.”
역시 첸버다.
스물여섯 명의 신분을 동시에 위조하려면 그래도 꽤 힘들었을 텐데 첸버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가볍게 해 냈다.
도대체 뭐 하는 작자야?
“어디 보자……. 반드하고 에나라는 자들은 또 어떻게 찾아낸 건가?”
“저만의 인재 탐지 센서가 있거든요.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뭐지?”
“벨레너의 난제에 대해서인데요.”
《델리피나 전기》에는 과거의 영웅 중에 벨레너라는 남자가 나온다.
용병왕이라 불렀던 벨레너.
그런 벨레너조차도 클리어해 내지 못한 의뢰가 존재한다.
용병왕 벨레너조차도 해결 못한 의뢰는 총 열세 가지.
세간에는 이것을 ‘벨레너의 13난제’라 부르고 있었다.
첸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벨레너의 난제에 도전하려는 건 아니겠지?”
“잘 아시네요.”
“포기해. 그건 너무 위험해. 게다가 100년도 더 된 의뢰야. 차라리 안전한 의뢰 몇 개 골라 줄 테니까 천천히 성과를 내면서 인지도를 높여 가도록 해. 새로 팀을 창설하자마자 벨레너의 난제에 도전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괜찮습니다. 할 수 있어요.”
“…….”
첸버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블루로즈단에서도 벨레너의 13난제 클리어를 목표로 몇 번 도전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차례도 클리어하지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의뢰임을 뜻했다.
하나 어려운 만큼 보상 하나는 어마어마하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어렵기로 손꼽히는 일곱 번째 난제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거, 저희 R팀이 의뢰 맡을 테니까 다른 팀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말 전해 주세요.”
“요즘 같은 시대에 벨레너의 난제에 누가 도전한다고. 말을 흘려도 누구 하나 끼어들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도전하는 놈이 있다는 것에 엄청 놀라겠지.”
“그리고 계약 관계 좀 확인해 봐도 될까요?”
“어떤 거?”
“벨레너의 난제는 블루로즈단에 정식으로 의뢰가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자처해서 하려는 거니까 벨레너의 난제를 클리어해도 보상은 저희 R팀이 독식하는 걸로. 아셨죠?”
첸버는 피식 웃었다.
“마음대로 해라. 대신 피해 보상은 우리도 안 해 준다. 너희 팀이 자력으로 알아서 해.”
“알았어요.”
오케이.
깔끔하게 선을 그어 뒀다.
그럼 떼돈 벌러 가 보실까!
* * *
드레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살다 살다 이제는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하는 날이 다 올 줄이야. 내 용병 인생도 참 기구하구나.”
“왜 그러세요, 선배? 첸버한테 듣자 하니, 선배도 예전에 13난제에 도전했었다면서요.”
“그때는 젊은 패기에 뭣도 모르고 그냥 도전해 본 거지. 그런데 하고 나서 ‘아, 이건 인간이 할 짓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설마 또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우리는 지금 벨레너의 13난제 중 일곱 번째 난제인 칼바의 용암 동굴에 도전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벨레너의 일곱 번째 난제, 칼바의 용암 동굴
-보수 금액 : 측정 불가
-내용 : 칼바의 용암 동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보물들을 가져오시오.
예전에 칼바라는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훔친 보물들을 아무도 훔쳐 가지 못하게 용암 지역 깊숙한 곳에 보관해 뒀다고 한다.
문제는 이 용암 지역에 갑자기 몬스터들이 모여들면서 발생했다.
칼바조차 용암 동굴에 접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칼바는 자신이 훔친 보물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물건만 주야장천 훔치고 고스란히 몬스터들에게 헌납하게 된 셈이었다.
불쌍한 남자다.
‘아니지, 도둑질한 남자에게 불쌍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좀 웃기네.’
결국 칼바의 용암 동굴 의뢰는 벨레너의 난제로 등극되었다.
100년도 더 된 의뢰다.
누가 먼저 칼바의 용암 동굴 안에 있는 보물을 찾아낼까?
뻔하지 않은가. 바로 나, 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