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7화 (37/240)

# 37

너, 내 동료가 되어라 (2)

똑똑똑.

“계십니까?”

불은 켜져 있으니 누군가 있는 건 확실하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드레인이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안다.

눈앞에 있는 여자 때문이었다.

“어머, 누구세요?”

여성은 우리에게 정체를 물었다.

나는 여자를 보자마자 이 사람이 마녀라 불리는 에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제로 인물 정보에도 에나라고 나와 있었다.

-에나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

-한때 마법사 길드에서 촉망받던 젊은 마법사였으나, 크나큰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금은 초야에 묻혀 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 에나라고 불리고 있다.

에나는 피부를 비롯해서 머리카락, 눈썹, 입술, 심지어 눈동자까지 전부 새하얗다.

그녀는 백색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작중에 그렇게 묘사된 걸 본 적이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나에게 경고 메시지가 떴다.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에나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친밀도를 올려 개연성을 확보하세요.

‘……그럴 줄 알았다.’

하나 이런 경우를 워낙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단역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친밀도 기준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100점 만점에 10~20 정도를 왔다 갔다 한다.

친밀도 10 올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짜잔!

에나에게 블루로즈단의 상징인 파란 장미 한 송이를 건넸다.

“어머나!”

에나는 내게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에나와의 친밀도가 소량 상승합니다.

-친밀도가 +10 올랐습니다.

-에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역들은 대개 처음에 이렇게 좋은 인상만 남기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트라인까지 친밀도가 오른다.

“어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로인이라고 합니다.”

“블루로즈단? 용병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나 씨, 당신을 저희 용병 조직으로 스카우트하려고 왔습니다.”

“저를 용병으로 데려가겠다고요?”

“네.”

“지금까지 살면서 들어 본 농담 중에 가장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혹시 저에 대해서 알고 오신 거 맞나요?”

“빙결 마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우수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 에나 양 아닙니까?”

“반만 알고 있네요. 빙결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사예요.”

맞는 말이었다.

에나는 마법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 그녀는 빙결 마법 말고 다른 마법은 일절 사용할 수 없었다.

왜 그런지 본인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에나는 훗날, 대륙 최고의 빙결사로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된다.

주인공 일행이 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주인공의 동료가 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왜냐, 내가 2권까지밖에 안 읽었으니까.

그래도 좋은 인재가 있으면 미리 낚아채 가는 것이 인지상정!

하나 에나는 나의 제안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돌아가세요. 저는 용병 생활 같은 건 절대로 안…….”

“여기, 약소하지만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에나에게 건넨 건 작은 상자였다.

“이게 뭐죠?”

“아까 제가 드렸던 파란 장미 기억하시죠? 그 밑에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달려 있습니다. 직접 열어 보시죠.”

“…….”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에나.

그러나 이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열쇠를 꺼내 든 에나는 내가 들고 있는 작은 상자의 열쇠구멍에 맞춰 열쇠를 넣었다.

딸깍!

자물쇠가 열렸다.

안에 든 내용물을 보자마자 에나는 입을 쩍 벌렸다.

미처 반응을 못 하는 에나에게 나는 짧게 말했다.

“3천만 제피입니다.”

“세상에……!”

3천만 제피면 일반 평민의 1년 치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나는 에나의 약점이 뭔지 안다.

그녀는 속물이다.

돈을 굉장히 좋아하는 마법사, 그녀가 바로 에나다.

그 증거로…….

-에나와의 친밀도가 대량 상승합니다.

-‘돈이 최고야!’ 칭호를 얻었습니다.

-칭호의 효과로 재물 운이 소량 상승합니다.

‘거봐라, 내가 뭐랬나?’

돈을 보자마자 에나와 나의 친밀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어흠!”

헛기침을 한 에나는 애써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도, 돈으로 저를 현혹하려는 건가요?”

“현혹이 아닙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만약 저와 함께 R팀 용병단으로 활약하게 된다면, 더 많은 돈을 제공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3천만 제피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에나의 동공은 크게 흔들렸다.

에나보다 더 놀라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봐, 후배! 미쳤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겠다는 거야!”

“걱정 마세요. 조만간 이것보다 훨씬 더 큰돈이 우리 수중에 떨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에나는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마법사다.

후에 그녀는 나를 위해 많은 활약을 해 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3천만 제피 따위는 우습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에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추웠는데 잘됐군요. 조금만 늦었어도 동상에 걸릴 뻔했습니다, 하하하!”

그래, 오늘 밤은 아주 길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이미 결과는 정해진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 * *

다음으로 들른 곳은 도시도 마을도 아닌 깊은 산골짜기였다.

반드와 에나라는 든든한 동료를 손에 얻게 된 덕분에 내 어깨에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닌 드레인은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다.

“후배, 도대체 얼마나 돌아다녀야 하는 거야?”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진짜로?”

“네, 진짜입니다.”

원래 한 군데 더 들를 예정이었다.

내가 탐을 내는 인재가 한 명 더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시기가 맞물리지 않아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산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나와 드레인.

야영하기 위해 불을 피운 드레인은 후에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번 목적지는 어디야?”

“저기 저 산 언저리입니다.”

“저기는 왜?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숨겨진 마을이라도 있어?”

“오! 눈치가 빠르네요, 선배!”

웬일이래? 내가 아는 드레인답지 않았다.

드레인은 맞힌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런 곳에 마을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일부러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잡은 거예요.”

“왜?”

“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내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 이만 잘까요.”

“그냥 자도 돼? 불침번은?”

“여기서부턴 몬스터도 없고 산적도 없으니까 마음 편히 자도 됩니다.”

“…….”

드레인은 끝까지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했지만, 이내 자리에 눕자마자 나보다 더 빠르게 잠들었다.

저 잠드는 속도는 정말 볼수록 경이롭다.

‘본받고 싶을 지경이야.’

하지만 곧 드레인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해 줘야 한다.

근처 수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수풀 안쪽에서 다섯 명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다.

남자들은 나와 드레인을 포박하기 위해 밧줄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엣취!”

갑자기 드레인이 기침을 크게 해 버렸다.

덕분에 남자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이러면 내 계획이 틀어지는데!’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수정하는 수밖에!

침낭에서 바로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남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손날로 두 번째 남자를 기절시켰다.

남은 세 남자가 나에게 반격을 가했다.

하나 내게 뒷덜미를 한 대씩 맞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발에 걸려 넘어졌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진정 좀 해. 너희 해치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겁에 질린 남자에게 내가 들려줄 말은 이것뿐이었다.

“너희 보스한테 날 안내해라.”

* * *

남자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도중에 잠이 깬 드레인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에 산적 없다며?”

“이들은 산적이 아니라 패잔병이에요.”

“패잔병?”

“타렌과 베디아가 붙은 소규모 전투가 있어요. 거기서 살아남은 타렌 병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따로 모여서 마을을 만들었죠.”

“왜?”

“타렌은 전투에서 패배한 병사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거든요. 많든 적든 패배를 경험한 자들은 사기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전부 다 목을 베어 버려요.”

“뭐 그딴 나라가 다 있어?”

“놀랍게도 있습니다.”

살기 위해 도망친 자들이 만든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백오십여 명의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패잔병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불상사가 생길까 봐 그들을 데리고 타렌에서 도망쳤다.

병사들의 숫자는 정확히 스물다섯 명.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들이다.

타렌은 비록 소국 중에서도 소국이지만,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을 놓고 봤을 때에는 가히 델리피나 대륙 전체를 통틀어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들은 전투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그리고 엄격하다.

그래서 패잔병의 생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난 이들의 전투력이 필요하다.

마을 입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드레인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그러는 도중에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2미터에 육박하는 장신의 남자가 우리를 매섭게 노려봤다.

손에는 양날 도끼가 들려 있었다.

남자의 인물 정보를 보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가르시아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

-타렌 출신의 장군.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명예로운 죽음 대신 부하들의 목숨을 택한 남자로, 현재는 패잔병들의 리더가 되어 산골짜기 안에 숨어 살고 있다.

“네놈이 우리 전우들을 때려눕힌 녀석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르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비실비실하게 생긴 주제에 싸움은 제법 하는가 보군.”

대답 대신 드레인을 불렀다.

“선배, 제 말 좀 대신 전해 주세요.”

“네가 직접 말하면 되잖아?”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단역한테 곧장 말을 붙이긴 어렵다.

드레인은 마지못해 내 말을 대신 전달해 주기로 했다.

“내가 한 싸움 하지……라고 전해 달라네요.”

“설마 타렌에서 온 건 아니겠지?”

“아니다……라고 전해 달랍니다.”

아니라고 대답해 주면서 동시에 내 보호구에 새겨져 있는 블루로즈단 마크를 가리켰다.

가르시아는 내가 블루로즈단 소속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엘리트 용병님께서 여긴 어인 일로 오셨나?”

“너희에게 좋은 거래를 제안하려고 왔다……라고 합니다.”

“거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러면 너희가 안전하게 머물 곳을 마련해 주겠다……. 자, 잠깐! 제가 말한 거 아니에요! 후배가 말한 거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

가르시아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딜이 통했나?’

낌새를 보아하니 아닌 듯했다.

양날 도끼를 힘 있게 쥔 가르시아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난 외지인 말을 함부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자세를 잡았다.

말이 안 통한다면…….

주먹은 통하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