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6화 (36/240)

# 36

너, 내 동료가 되어라 (1)

이른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옷을 갖춰 입었다.

블루로즈단 문장이 찍혀 있는 보호구를 착용하려던 찰나였다.

“아, 맞다.”

새로 받은 보호구가 있다.

문장 옆에 ‘R’이라는 마크가 새겨져 있는 보호구였다.

R팀 대장에게만 지급되는 전용 방어구였다.

‘때깔도 좋다! 고생……은 안 했지만.’

그래도 이 보호구를 보니 대장직을 차지한 보람은 느껴진다.

“이렇게 보니까 나름 괜찮네. 대장직을 노린 보람이 있어.”

설마 보호구에서 이런 보람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나만의 전용 보호구는 앞으로 어딜 가든 간에 내 신분을 증명하는 역할을 소화할 것이다.

‘상대가 정체가 뭐냐고 물으면 이 보호구에 새겨진 문양을 보여 주면 된다.’라고 첸버에게 들었다.

진짜인지 어떤지는 아직 실험해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관 로비로 향했다.

드레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자고 있는 건가? 기껏 부대장으로 임명시켜 줬는데, 자각이 없군.’

드레인 대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찍 일어났네?”

리오나가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네 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네가 멀쩡히 살아 있나, 아니면 데브에게 죽었나 확인하려고 남아 있었어.”

나에게 가장 먼저 데브의 암살 시도를 경고했던 사람이 바로 리오나였다.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리오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아 보이니까 다행이네. 그럼 난 이만 갈게.”

“첸버한테 들었어. 1달 정도는 쉴 거라며?”

“쉰다기보다는 재정비지. 어차피 레임스도 부상이 커서 당분간 움직이진 못할 거 같고. 그리고 우리 B팀은 느와르 남작 사건 때문에 타격이 컸으니까. 인력 보충 겸 재정비, 그렇게 생각하면 돼.”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하고.”

“…….”

리오나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 우려와 달리 반대되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너한테 못 한 말이 있었어.”

“뭔데?”

“……느와르 남작 사건 때 우릴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우린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라.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그렇게 말하고서 황급히 자리를 뜨는 리오나였다.

도중에 리오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보였던 건 내 착각이겠지.

-리오나와의 친밀도가 대량 상승합니다.

-‘B팀의 믿음직한 동료’ 칭호를 얻었습니다.

-칭호의 효과로 리오나를 비롯해 블루로즈단 B팀 용병 전원의 친밀도가 +10 가산됩니다.

으음, 착각은 아닌 걸로.

* * *

초췌한 얼굴을 한 드레인은 나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아니, 후배 씨, 나 휴가 중이라고. 내가 왜 일하러 가야 하는 건데?”

“부대장이잖아요. 앞으로 동료가 될 사람들 얼굴 보러 가는데, 부대장은 휴가 중이고 대장 혼자 불쑥 찾아왔다고 하면 없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어휴, 모르겠다!”

머리를 벅벅 긁어 대는 드레인.

사실 드레인한테 미안하긴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R팀은 나하고 드레인밖에 안 남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향할 곳은 ‘케이즈’라는 도시다.

이곳을 찾아가는 목적이 있다.

반드라는 인물을 내 용병 팀으로 데려오기 위함이다.

반드는 스윙나이프에서 암살자로 활약했던 용병이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된다.

스윙나이프가 라스를 죽이기 위해 파견한 암살자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을 죽음의 위기까지 몰아세웠던 남자.

그가 바로 반드다.

반드는 칠흑에 잠식당한 악역, 데르킨 백작의 의뢰를 받아 라스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등장인물로 나온다.

한마디로 그도 악역이다.

그러나 반드는 라스에게 악의는 없었다.

그저 의뢰를 받았으니까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 뿐.

반드가 데르킨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반드를 데려갈 심산이었다.

반드는 능력치가 좋은 등장인물이다.

라스에게 죽임을 당하긴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반드라는 등장인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다.

‘차라리 라스와 오해를 풀고 주인공의 동료가 되었더라면 더 많은 활약을 했을 텐데…….’

그 아쉬움은 내가 직접 달래기로 했다.

케이즈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반드를 찾아 헤맸다.

사실 이곳에 반드가 있을 거란 확신은 없다.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녀석이다 보니 금세 케이즈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광장에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한 남자.

보자마자 저자가 반드임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정보 창이 보이니까.

-반드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

-스윙나이프에 소속되어 있는 암살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에 빠져 있는 캐릭터로, 소위 중2병에 걸려 있다. 본인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에게 많은 호감을 느낀다.

내가 주목한 정보는 바로 마지막 줄이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실제로 반드는 작중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본인의 이야기에 잘 어울려 주는 사람을 주로 따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반드를 꼬시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반드의 근처를 서성였다.

나는 반드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아직 친밀도가 낮아서다.

대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근처에 라드리치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

순간 반드는 내 쪽을 노려봤다.

“어이, 거기!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지?”

-반드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좋아, 반응 나쁘지 않고! 이대로 가 볼까?’

나는 말없이 내 오른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감겨 있는 검은 붕대.

이것을 보더니 반드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설마…… 흑염룡 리트미스를 그 손에 봉인하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라드리치라든지 흑염룡 리트미스라든지, 이런 건 소설 속에서 나오지도 않는 내용이다.

반드의 머릿속에서 설정된 요소들이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반드.

속칭 중2병 기질을 가진 암살자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반드의 설정 속 세계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된다.

-반드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친밀도 10을 달성했습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소 기준치를 넘었습니다.

-말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봐라, 내 말이 맞지?’

한편, 반드는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내 오른팔에 감긴 검은 붕대를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리트미스를 봉인한 거지?”

“다 방법이 있지. 하지만 많은 일행이 희생당했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나는 흑염룡 리트미스를 내 오른손에 봉인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하긴, 흑염룡 리트미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니까. 괜히 7대 마신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러는 너야말로 1대 마신인 라드리치의 능력을 품고 있지 않은가?”

“후후훗, 눈치챘나?”

“물론.”

누가 와서 내 손발 좀 펴 줬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드레인은 작은 목소리로 일침을 날렸다.

“이 무슨 개소리인지 소소리인지, 분간이 안 가네.”

선배,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요.

그래도 반드를 영입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계속해서 반드의 세계관에 어울려 주는 수밖에.

그게 답이다.

“아직 내 오른팔의 봉인은 많이 불안전하다. 그래서 네게 부탁을 하러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같은 마신의 힘을 봉인한 자들끼리 뭉치는 게 어떤가?”

“좋지. 하지만 괜찮겠나? 네 봉인은 아직 불안정할 텐데.”

“……세계를 구할 수만 있다면야. 나 정도는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 그리고 혹여나 내 오른팔에 봉인된 흑염룡이 풀려날 것 같으면. 그때는 망설임 없이 나를 죽여 줬으면 좋겠군.”

“친구여! 네 각오, 나 반드의 가슴속에 확실히 새겨 두도록 하지! 여신 메리엘의 가호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크투가 포에거!”

“…….”

크투가 뭐시기?

이거, 같이 외쳐 줘야 하는 각인가?

“크, 크투가 포에거!”

-반드와의 친밀도가 대량으로 상승합니다.

-친밀도가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답이었을 줄이야…….

반드를 부하로 영입한 것까지는 좋다만, 쪽팔림까지 덤으로 얻은 기분이 들었다.

* * *

차후에 반드는 우리 블루로즈단 R팀으로 합류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원래는 새로운 단원을 받을 때 테스트와 면접을 봐야 하지만, 팀 대장이 원한다면 이런 거 없이 그냥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대장의 권한 중 하나였다.

어쨌든 영입 1순위로 탐냈던 반드를 영입했으니 되었다.

“이제 2순위를 영입하러 가 볼까?”

말을 타고 쉼 없이 달렸다.

도중에 드레인은 반드라는 자를 받아도 괜찮은지에 대한 불안감을 주저리주저리 언급했다.

심각한 중2병에 걸린 녀석이지만, 그래도 능력치 하나는 좋으니까 믿어도 된다고 드레인을 안심시켰다.

문제는 이다음이다.

북쪽에 위치한 외진 마을.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심지어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어흐, 추워라!”

드레인은 추운 모양인지 옷을 한 겹 더 껴입었다.

저걸로 다섯 겹이 되었다.

나는 특별히 큰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원래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은 아니다.

아마도 용신단의 효과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혹독한 추위를 뚫고 도착한 작은 마을.

이곳에 내가 드래프트 2순위로 점찍어 둔 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와 드레인의 방문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얼굴에 약간 취기가 감도는 털보가 나와 드레인에게 다가왔다.

“아니, 외지인이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누굴 찾아오셨나? 말만 하시게. 여기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 이름만 들어도 내가 누군지 바로 알아맞힐 수 있으니까. 원한다면 안내까지 해 주지!”

엄청난 친절을 베풀어 주는 털보.

술 덕분에 친절과 봉사 정신이 과도하게 넘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친절, 한번 이용해 볼까?

“에나라는 여자를 찾아왔습니다만.”

“……!”

털보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마구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털보는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그 마녀를 왜 찾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게 좋을 거요. 이건 당신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듣는 게…….”

“어디 있는지 알려만 주세요.”

“진짜로 갈 거요?”

“네.”

그러려고 여기까지 개고생을 하면서 온 거니까.

털보는 하는 수 없이 마녀, 에나가 사는 장소를 알려 줬다.

그녀는 마을 외곽 멀지 않은 곳에 혼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에나가 사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드레인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아까 그 털보 아저씨가 하는 말, 못 들은 거 아니지? 가급적이면 그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했잖아.”

“들었어요.”

“근데 왜 가려는 거야?”

“우리 R팀으로 데려오려고요.”

“……오 마이 갓!”

드레인은 혀를 찼다.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기가 막힌 모양인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중2병 청년에 마녀까지? R팀, 아주 난리도 아니구먼, 난리도 아니야!”

“어떤 용병 팀이 탄생할지 기대되시죠?”

“아니, 기대는커녕 오히려 걱정된다, 야.”

그 걱정은 머지않은 시일 내에 환호로 바뀔 것이다.

난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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