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대장이라 불러 다오 (2)
무력 대결은 위플 게임에 비해서 룰이 굉장히 간단했다.
그냥 서로 싸워서 누가 강한지 겨루면 된다.
아무런 규칙이 없다.
심지어 첸버는 이런 말까지 했다.
“싸우다가 사망자가 나와도 상관없다. 항복만 받아 내면 된다. 그 순간 무력 대결은 종료된다.”
그야말로 용병계의 와일드함이 가득 묻어나는 대결이었다.
게임 방식은 나쁘지 않다.
데브도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계속해서 이죽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저 녀석을 상대하며 느낀 건데, 웃는 모습이 진짜 토악질 나오게 생겼다.
게다가 후보 자리에서 안 물러나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니.
진정한 인격 파탄자를 영접한 기분이 들었다.
내 별칭을 저놈에게 물려줘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무력 대결이 펼쳐질 장소는 특별한 게 없었다.
그냥 싸우기 딱 적당한 사이즈의 공터였다.
“무기는 각자 알아서 고르도록.”
첸버의 말에 나는 싸구려 가죽 장갑을 손에 꼈다.
무기를 다루는 법은 베워 본 적도 없다.
그냥 주먹질이 가장 편했다.
반면, 데브는 단검을 골랐다.
그는 날카로운 단검의 날을 혀로 핥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할짝.
‘보면 볼수록 어떻게 비호감이냐?’
신기한 녀석이다.
자세를 잡은 데브는 지금 당장에라도 나에게 달려들 기세를 뽐냈다.
“이봐, 애송이.”
“왜.”
“한 가지 경고해 두지. 나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거다.”
“그래?”
“그리고 네놈이 항복한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혀를 잘라서 항복 의사를 표현 못 하도록 만들어 버릴 거다. 그다음에 힘줄을 다 끊어 두고 천천히 고통을 느끼게끔 이 단검으로 유린하다가 죽일 예정이다. 기억해 둬라.”
기억은 개뿔…….
듣자마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기억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말이었다.
몸을 푼 뒤에 자세를 잡았다.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첸버는 바로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데브는 기세 좋게 먼저 내게 달려들었다.
단검으로 정확히 내 목을 노렸다.
슬쩍 옆으로 몸을 비틀어 놈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런 뒤에 다리를 뻗어 놈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콰당!
꼴사납게 넘어진 데브의 모습에 몇몇 용병들이 웃음을 토해 냈다.
“푸흡……!”
“……크큭!”
“엄청 쪽팔리겠네.”
용병들은 데브가 무서워서 차마 크게 조롱은 못 했다.
한편, 입에 들어간 흙을 퉤퉤 뱉으며 일어선 데브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너, 이놈! 내년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라!”
이것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은 귀담아들을 게 하나도 없었다.
계속해서 나를 향해 단검을 찔러 댔다.
그러나 유효타는 하나도 없었다.
질질 끄는 것도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내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단검의 날을 잡아 버렸다.
살짝 힘을 주자 단검의 날이 ‘콰직!’ 소리와 함께 조각이 나 부서졌다.
“마, 말도 안 돼……!”
데브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기를 잃은 데브였으나, 허리춤에서 단검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아니, 꺼내 들려고 했다.
놈이 무기를 들기 전에 내가 먼저 녀석에게 접근해 복부를 후려쳤다.
퍼억!
놈의 상반신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컥!”
여러 방 때릴 필요 있나? 이런 놈 제압하는 데엔 단 한 방이면 충분하지.
호흡곤란을 일으키던 데브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말로는, 뭐? 내 혀를 자르고 힘줄을 끊고 주저리주저리 허세만 늘어놓더니, 꼴좋네.’
데브가 쓰러지자, 그를 응원하던 열다섯 명의 응원단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데, 데브 님!”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미 기절한 사람한테 정신 차리라고 해 봤자…….
아무튼 대결은 이것으로 끝났다.
첸버가 내게 다가왔다.
“축하하네. 자네를 오늘부터 R팀 대장으로 임명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대장 자리가 비어 있는데. 생각해 둔 사람은 있나?”
“물론이죠.”
손을 들어 한 남자를 지목했다.
지목당한 남자, 드레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에이, 거짓말…….”
“진짜인데요.”
“……농담 아니었어? 웃자고 한 거 아니야?”
“뭐 하러 그런 농담을 해요?”
“왜 난데?”
그야 뭐,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제 말을 귀담아들을 용병이 선배밖에 없으니까요.”
“…….”
내 좁은 인맥 덕분에 드레인은 강제로 R팀 부대장으로 승격할 수 있게 되었다.
* * *
내가 먼저 2점을 얻은 탓에 무난하게 R팀 대장직에 오르게 되었다.
R팀은 거의 와해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용병들이 열다섯 명 정도 있긴 했지만, 이들은 전부 다 데브가 데려온, 혹은 데브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내가 대장을 맡자마자 바로 블루로즈단을 탈퇴한다고 성명을 냈다.
괜히 나 때문에 열다섯 명이라는 전력을 잃게 된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지만, 첸버는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패배자는 필요 없다. 하물며 그 패배자를 따르는 자들이라면 더더욱 필요가 없겠지.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역시 용병다운, 굉장히 쿨한 대답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R팀은 나하고 드레인, 이렇게 단둘만 남게 되었다.
이제부터 새로운 용병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해야 한다.
목표 인원은…….
어디 보자……. B팀이 지금 서른다섯 명이고, S팀이 마흔여덟 명이니까…….
‘일단 1차로 스무 명 정도 모으고, 2차로 열 명 더 추가해서 서른 명은 맞추는 게 좋겠지?’
딱 적당할 것 같다.
‘내가 군대에서 분대장으로 있을 때 책임졌던 후임병들의 숫자가 최고로 많을 때가 딱 열 명이었는데……. 그때에 비해서 많긴 하지만, 그래도 뭐, 잘할 수 있겠지!’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혼자서 앞으로 어떻게 R팀을 이끌어 갈지 고민을 할 때였다.
“앉아도 돼?”
리오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미 앉아 있으면서 굳이 나한테 물어볼 필요 있어?”
“그냥 예의상 물어본 것뿐이야.”
“그러냐. 근데 왜? 무슨 용무로 왔어? 첸버가 뭐 전달해 달래?”
“아니. 네가 걱정돼서 온 거야.”
뜬금없이 이건 무슨 말이래?
팀 구성 때문에 그런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데브가 너를 노리고 있어.”
“그래?”
“별로 관심 없다는 반응이네. 이건 네 목숨이 달린 중요한 문제야. 알고 있어?”
“응, 알아.”
“모르는 거 같은데.”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리오나는 눈을 흘겼다.
“넌 잘 모르겠지만, 데브는 스윙나이프에서도 한가락 하던 암살자야. 이제 더 이상 블루로즈단 소속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거침없이 너를 죽이려고 들 거야. 그 남자, 뒤끝이 굉장히 심한 편이거든. 오죽하면 열세 명의 후보자들이 줄줄이 사퇴를 선언했겠어?”
“그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사퇴를 안 하고 살아남았다, 이거지.”
“그래서 더더욱 너를 죽이려고 하는 거고.”
“괜찮네. 오히려 잘됐어. 후환은 남겨 두면 골치 아픈 법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나를 찾아온다고 하니까 반가이 맞이해 줘야지.”
“…….”
리오나는 어이가 없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 * *
그날 저녁.
자정쯤 되었을까?
자고 있는데 근처에서 자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눈이 절로 뜨였다.
‘어디 보자……. 창문 벽에 붙은 녀석이 다섯, 위층에 넷, 복도에 여섯인가?’
나 하나 죽이겠다고 이렇게 많은 놈들이 올 줄은 몰랐다.
정체는 뻔하다.
‘데브와 아이들이겠지.’
안 봐도 비디오, 아니 블루레이다.
베개를 들어 올렸다.
그 후 문 앞에 서서 발로 문을 차 버렸다.
문이 거칠게 열리자, 복면의 사내들은 놀라서 미처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설마 내 쪽에서 먼저 공격을 감행해 올 줄은 예상 못 한 듯했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친절하게 베개 어택을 선사해 줬다.
퍽퍽퍽!
‘그립네. 수학여행 갔을 때, 애들끼리 이렇게 베개 싸움 하고 그랬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맞는 역할이었다.
하나 소설 속에서의 나는 달랐다.
일방적으로 패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용신단의 힘을 실은 베개는 우리가 아는 일반 베개 휘두르기의 파워가 아니었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복면의 사내들은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켰다.
복도에 대기 중이던 여섯 명을 쓰러뜨리자, 나머지 녀석들이 나를 순식간에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중 유일하게 얼굴을 가리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바로 데브였다.
나는 그런 데브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날렸다.
“깡다구 하나는 좋네. 얼굴을 다 까고 오다니.”
“너를 죽일 남자의 얼굴을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켜 두라는 뜻으로 얼굴을 까고 온 거다.”
“그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난 지금 죽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걸 결정하는 건 네놈이 아니라 나다! 얘들아! 덮쳐!”
사방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복면의 사내들이 줄줄이 달려들었다.
떼로 덤벼들면 나를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이들의 생각이 터무니없는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줬다.
날아드는 녀석들 족족 안면에 베개 어택을 날려 줬다.
베개에 맞고 나가떨어지는 녀석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했다.
한번 나가떨어진 녀석들은 다시 일어서질 못했다.
기절해 버린 것이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데브 한 명만 남아 있었다.
데브는 널브러진 부하들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 이제 너 혼자 남았는데, 어쩔래?”
“…….”
데브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좋아. 그렇게 나오기로 했단 말이지?’
그럼 나도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짜잔!
나는 베개를 꺼내 들었다.
단검 VS 베개.
누가 보면 코믹 영화 찍는 줄 알 것이다.
하나 나는 진심이다, 그것도 매우.
“베개로 딱 죽기 직전까지 때려 줄게.”
놈은 이제 죽은 목숨이다.
* * *
데브의 얼굴에는 잔뜩 멍이 들어 있었다.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놈의 멱살을 강하게 잡았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반드’라는 남자를 알고 있나?”
데브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은 못 할 거다.
입안이 잔뜩 부어 버렸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반드라는 남자를 알아, 몰라?”
“모하혀…….”
‘몰라요.’라고 말한 거다.
정보 좀 얻으려고 했더니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남자였구먼?
반드라는 남자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단역이다.
R팀을 새로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탐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반드는 스윙나이프 출신 암살자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같은 조직 출신인 데브에게 물어봤지만, 이 녀석은 아는 게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데브에게 물어볼 건 없다.
“너에게 딱 한 번 자비를 베풀어 주마. 대신 한 번이라도 더 이딴 습격을 감행해 온다면…… 그날 네놈의 혀를 자르고 힘줄을 다 끊어 버린 다음에 고통 속에서 죽게끔 만들어 줄 거다. 알겠지?”
데브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귀찮은 일 하나를 해결했다.
다만 반드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 건 조금 아쉽다.
정보를 얻어 보려고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하게끔 만든 건데.
대장직 시험 보는 도중에 데브를 쥐어 패고 반드의 정보를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난 일부러 데브가 나에게 사적으로 복수를 해 오게끔 만들었다.
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나서서 직접 반드를 찾아내야 할 판국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반드란 인물은 이 정도 공을 들여도 될 만한 가치를 지닌 등장인물이다.
녀석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내 일은 편해질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