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4화 (34/240)

# 34

대장이라 불러 다오 (1)

R팀 대장과 부대장의 부재 때문에 블루로즈단은 새로이 대장과 부대장을 뽑기 위해 후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후보에 등록된 후보자 숫자만 하더라도 열다섯 명!

……으로 알고 있었는데.

“뭐야, 왜 둘뿐이야?”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분명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열다섯 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와 보니 나하고 데브라는 녀석, 이렇게 딱 둘뿐이었다.

첸버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나같이 다 기권을 하더군. 그래서 자네하고 데브밖에 안 남았어.”

뭔가 수상하다.

대장직을 탐내는 이는 굉장히 많다.

블루로즈단에 소속되어 있는 용병들은 모두가 다 대장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조금이라도 승진에 대한 야망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대장직을 굉장히 탐냈으니까.

대장직을 가지면 많은 혜택을 거머쥘 수 있다.

본인만의 부대를 구성할 수 있다든지, 아니면 대장직에 오른 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의뢰가 주어진다든지, 또 임무를 완료할 때마다 받는 보수 금액이 더 올라간다든지…….

적지 않은 득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장직이다.

물론 그만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지만, 주어지는 혜택이 만만치 않았기에 대다수는 대장이 되고 싶어 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래도 뭐, 열다섯 명이랑 경쟁하는 것보다 한 명이랑 경쟁하는 게 편하긴 하니까.

첸버가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로 시작할까?”

“잠시만 이 친구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습니까?”

데브가 대뜸 나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내 쪽을 바라보는 첸버.

나는 데브라는 녀석과 딱히 나눌 말이 없었다.

“그냥 바로 진행하죠. 시간 아까우니까요.”

“어허! 잠깐 이야기 좀 하자니까.”

이것 보소?

뭐, 좋다.

어떤 말을 꺼낼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데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구석 쪽으로 나를 데려간 데브.

그러더니 상의 옷소매를 살짝 걷어 보였다.

팔에는 낙인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너, 이거 안 보이냐? 좋은 말로 할 때 나한테 대장직 양보해라.”

아하. 그랬군.

이제야 열세 명의 후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단체로 후보 자리에서 물러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데브.

이 녀석 때문이었다.

놈의 팔에 새겨진 단검 낙인은 유명한 암살자 조직, 스윙나이프를 상징한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걸 본 기억이 있다.

굉장히 악명이 높은 곳이다.

한번 정한 타깃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놈이 블루로즈단으로 이적해 올 줄이야.

《델리피나 전기》 내에서 스윙나이프의 존재는 생각보다 자주 언급된다.

주인공 라스를 암살하기 위해 두세 번 시도를 했지만, 오히려 역으로 당한다.

나중에 가서는 라스에게 조직 자체가 통째로 궤멸당하는 비운의 조직으로 나온다.

아니지, 비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그런가?

어차피 놈들이 자초한 일이니까.

데브는 내게 경고했다.

“네까짓 녀석은 사고사로 위장시켜서 금방 모가지를 따 버릴 수 있으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후보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들려줄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싫은데.”

“……뭐?”

“귀가 먹었냐? 싫다고.”

“…….”

순간 녀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 줄은 몰랐나 보다.

미안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사고사든 오고사든 육고사든, 내 알 바 아니니까 한번 해 보자고.”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데브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여기에 쫄아 버릴 내가 아니다.

오히려 해 보라는 식으로 배짱 플레이를 펼쳤다.

데브는 뒤를 돌아 첸버에게 외쳤다.

“당장 시작합시다!”

“할 이야기는 다 끝났나?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같이 보였는데.”

“이 녀석, 말이 안 통하는 놈이라서 해 봤자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사람이 여기 있는데 대놓고 내 흉을 보다니.

내가 당한 모욕은 제대로 갚아 주마!

* * *

블루로즈단 대장직을 얻어 내기 위해선 총 세 가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무력, 전술, 마지막으로 인품.

이 세 가지의 능력치를 종합해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인 후보자에게 대장직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장 후보가 두 명밖에 없어서 나와 데브, 이렇게 둘만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대결에서 이기는 사람이 승리한다.

3전 2선승제.

어느 파트를 먼저 진행할지, 그건 첸버의 공정한 심사로 인해서 결정된다.

바로 제비뽑기였다.

정말 너무 공정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한편, 대장직 시험을 구경하기 위해 할 일 없는 블루로즈 용병단원들이 시험장을 가득 채웠다.

그중에는 리오나의 모습도 보였다.

맞은편에는 데브를 추천한 열다섯 명의 응원단이 목소리를 높였다.

“데브 님! 꼭 우승하세요!”

“당신만 믿습니다!”

“사랑해요, 데브! 우유 빛깔 데브!”

걸 그룹 응원도 저렇게 열정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데브의 충실한 부하들은 그가 R팀 대장을 맡기를 격렬하게 바라고 있었다.

반면,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힘내라, 후배. 다 필요 없고, 그냥 죽지만 말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

휴가를 냈던 드레인이 유일하게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드레인은 내가 데브에게 질 거라고 예상하는 듯했다.

시험장 분위기 자체도 이와 같았다.

대부분은 데브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스윙나이프에서 뛰어난 암살자로 활약했던 데브.

능력치 또한 대단했다.

-데브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A

-암살조직 스윙나이프에서 악명 높은 암살자로 활약했던 인물. 암살 성공률은 자그마치 99.5%. 그의 손에 한번 걸리면 죽은 목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엑스트라 주제에 종합 능력치가 A다.

리오나가 B랭크인 걸 감안한다면, 데브의 능력치는 낮은 편이 아님을 뜻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더러워.’

이게 마음에 안 들었다.

만약 성격이 랭크에 적용된다면 놈은 분명 F다, F!

‘뭐? 나한테 죽기 싫으면 후보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저런 녀석을 놔두고 왜 내가 인격 파탄자라 불리는지 모르겠다.’

나와 데브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앞에서 첸버가 공평한 제비뽑기를 통해 선정된 과목 순서를 발표했다.

“전술, 무력, 인품 순으로 진행하겠다. 3전 2선승제로, 각 경기당 1점이 걸려 있다. 먼저 2점을 따내면 그자에게 대장직을 주겠다.”

인품이 마지막에 배치되었다.

그러자 드레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후배 녀석, 인격 파탄자인데……. 첫 번째나 두 번째 순서에 인품 테스트가 걸렸다면, 후배가 분명 1패를 안고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야.”

‘이보쇼, 선배 양반. 후배를 그렇게 폄하해도 되는 겁니까? 그보다 당신, 휴가도 반납하고 나 응원하러 왔다며. 그런 말을 막 해도 되는 거야?’

하여튼 이놈의 용병단은 정이 안 간다.

빨리 나만의 부대를 만들든가 해야지, 원.

그 전에 저 데브라는 놈부터 참교육을 시켜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첫 번째 대결, 전술.

테스트 내용은 간단했다.

“위플 게임으로 진행하도록 하지.”

첸버가 손짓하자 용병 두 명이 나와 데브 사이에 테이블을 하나 세팅했다.

그 위로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체크무늬 보드 판이 등장했다.

위플 게임은 체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군대를 상징하는 말을 가지고, 상대 말을 전멸시키거나 혹은 킹을 제압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주어진 말은 총 10개.

그중 1개가 킹이다.

나는 흑을 맡았다.

데브는 백을 차지했다.

색깔 구분은 딱히 의미 없다.

바둑처럼 덤을 주고 뭐고 이런 것 없이, 그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소설 속에서나 보던 보드게임을 설마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이야…….

참고로 위플은 라스도 즐겨 하는 게임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나는 직접 위플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해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룰을 다 꿰고 있었다.

데브도 룰은 다 아는 모양인지 굳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럼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게.”

첸버의 말에 따라 먼저 데브가 말을 움직였다.

병사 말을 전진시켰다.

나도 똑같이 앞쪽으로 말을 이동시켰다.

초반은 특이할 건 없었다.

말을 움직여 나만의 진영을 만드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10턴부터 움직임이 달라진다.

탁!

데브가 먼저 말을 내 진영 쪽으로 들이밀었다.

“자, 덤벼 보시지.”

도발은 덤이었다.

저런 허접한 도발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나는 측면 쪽에 있는 말을 옮겼다.

데브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자라면 정면에서 받아쳐야지, 뭐 하는 짓이냐?”

“이기려고 하는 짓이다.”

“흥, 보아하니 초짜 중에서도 초짜인 거 같군.”

데브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플에는 정석적인 싸움 방식이 존재한다.

정면 싸움을 하다가 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싶으면 킹을 이용해서 남은 말들을 하나둘씩 잡아먹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모두 전멸시킨다.

이게 델리피나 대륙 내에서는 정석이라 알려진 전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먼저 말들을 이동시켜 상대 진영의 우측으로 파고들었다.

그곳으로 계속해서 병력을 집중시켰다.

정석이라 알려진 정면 전략의 약점은 바로 측면이다.

나는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상대방이 정면으로 말을 이동시켰지만, 나는 싸워 주는 척만 했다.

이렇다 보니 데브는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측면에서 말 2개를 잡아먹었다.

반면 나는 데브에게 단 하나의 말도 허용하지 않았다.

측면에서 파고드는 내 병력.

하지만 상대는 정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측면을 수비하지 못했다.

지켜보던 용병들은 입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데브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훈수를 두고 싶을 텐데.

하나 훈수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나는 말을 잡고서 거칠게 ‘탁!’ 하고 내려놓았다.

바로 앞에…….

백 진영의 킹이 있다.

“왕을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다음 턴에 게임 끝나기 싫다면 말이지.”

“……!”

내 말에 데브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내가 데브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 체스 게임 초고수다.

데브는 왕을 움직여 도망쳤지만, 나는 그 뒤를 바로 따랐다.

또다시 체크.

이렇게 되면 데브는 계속 왕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는 다른 말들을 움직였다.

데브의 말은 정면으로 다 나가 있는 상태다.

왕을 지킬 호위병이 없다.

내게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었다.

결국 백 진영의 왕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다.

상하좌우 어느 곳으로 왕을 움직여도 내 말의 공격 범위에 닿는다.

“체크메이트.”

“크흠…….”

주변에서 옅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차마 말을 못 해 주고 있을 뿐, 모두가 다 데브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외통수다.

저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데브는 시간을 끌었다.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플 게임에는 1턴마다 1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존재했다.

어디, 도발 한번 해 볼까?

“10초 남았는데 후딱 선택해. 스스로 포기하든지, 아니면 내 말에 먹히든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데브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콰앙!

말이 사정없이 무너졌다.

이를 악문 데브는 내게 경고했다.

“무력 대결에서 네놈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 주마!”

“마음대로 하셔.”

하여튼 허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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