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3화 (33/240)

# 33

수사관 테일 (2)

지식을 탐구하는 드래곤, 페나트. 아니, 레이샤르.

뭐 이런 미친 상황이 다 있나 싶었다.

설마 저 어리바리한 남자의 정체가 사실은 드래곤이라니!

심지어 조연이다.

드래곤이 맞나 황당할 지경이다.

소설 속에서는 ‘지식을 탐구하는 존재’로 나왔다.

특별히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었다.

등장하는 장면은 2권 후반부에 나온다.

그것도 극후반부.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샤르가 등장을 해 주인공 일행에게 그동안 그가 모은 칠흑의 정보를 알려 준다.

그리고 주인공 일행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말은 즉…….

‘3권부터 대활약할 중요한 캐릭터잖아?’

난 아직 3권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레이샤르가 향후 어떤 활약을 보여 주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나 2권 후반에 보여 준 모습만 보더라도 레이샤르는 후속 권에서 충분히 비중 있게 다뤄지는 캐릭터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애초에 조연이라고 떡하니 박혀 있다.

설령 내가 뒤의 시나리오를 모른다 하더라도 조연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

‘어쩐다?’

막상 이런 거물급을 만나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렸다.

페나트는 이런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지신 거 같은데요.”

“아, 아닙니다. 어흠!”

괜히 헛기침을 해 봤다.

테일이 돌아오기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그냥 확 질러 버려?’

둘만 남은 틈을 노려 나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레이샤르는 후에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만약 내가 여기서 레이샤르와 친분을 미리 다져 둔다면, 주인공 일행과 자연스럽게 엮이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놈의 개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전 작업은 미리 해 두는 편이 좋아 보였다.

페나트에게 내가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페나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순간 페나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되돌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위대한 존재라니요? 누구를 보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신입니다, 페나트. 아니, 레이샤르.”

페나트는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둔 외통수 때문이었다.

레이샤르라는 본명까지 언급했다.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한번 지켜보도록 할까?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지?”

페나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살기가 뚝뚝 묻어 나왔다.

은연중에 드래곤 피어를 발동시켜 나를 압박했다.

그러나 용신단을 삼킨 난 드래곤 피어 효과에 면역이다.

드래곤 피어가 통하지 않음을 확인한 레이샤르는 눈을 흘겼다.

“평범한 인간은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정체가 뭐지? 인간이되 드래곤의 힘을 지닌 자여.”

“사실 전 라바인 전투에서 벨라시오닉의 최후를 지켜본 소년병입니다. 벨라시오닉이 살아생전 삼켰던 보물을 토해 냈을 때, 그곳에 떨어진 용신단을 삼켜 지금은 드래곤의 능력을 손에 얻게 되었습니다.”

“용신단? 과연. 그래서 내 기술이 통하지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레이샤르는 혀를 찼다.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반응이었다.

“그 많고 많은 보물 중에 용신단을 손에 얻다니……. 운이 굉장히 좋은 인간이로군.”

용신단의 가치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설마 용신단을 얻었다고 나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내 존재를 알은척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오히려 레이샤르 님에게 좋은 정보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보?”

“칠흑에 관한 정보입니다.”

레이샤르가 모은 정보보다 내가 아는 정보가 훨씬 더 많다.

왜냐?

난 소설 내용을 이미 본 사람이니까.

칠흑의 존재는 1, 2권에서 대부분 다 나온다.

아마 내가 여기 델리피나 대륙에서 칠흑의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존재일 것이다.

한편, 칠흑이라는 단어를 거론하자 레이샤르의 표정이 달라졌다.

“역시 넌 알고 있었군.”

“예, 그렇습니다.”

“그럼 테일에겐 왜 처음에 비밀로 하려고 했었지?”

“반대로 제가 레이샤르 님에게 묻겠습니다. 레이샤르 님은 어째서 테일과 칠흑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겁니까?”

“…….”

레이샤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칠흑의 존재를 어림잡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테일에게 아무런 정보를 넘겨주지 않은 듯했다.

만약 테일이 칠흑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이런 수사 과정은 애초에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난 레이샤르가 테일에게 정보를 알려 주지 않은 이유를 대신 설명했다.

“레이샤르 님이 가지고 있는 칠흑의 정보가 아직 부정확해서 그런 거겠지요.”

“잘 아는군. 마치 카인, 그 예언가를 보는 기분이 드는데.”

설마 여기서 카인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카인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설마 넌 모르는 건가? 인간들 중에서 카인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텐데.”

“아니요, 잘 압니다.”

“그래? 여하튼 그 작자도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잘난 척 떠들어 댔지. 더 짜증 나는 건 그 녀석이 말한 게 전부 다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지만 말이야.”

예언가는 예언가네. 뭐, 《델리피나 전기》의 저자니까.

작가가 작품 내용을 아는 건 당연하다.

카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칠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제가 아는 칠흑에 관한 정보를 레이샤르 님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테일에게 알려 주지 않은 정보가 더 있다는 뜻인가?”

“예, 그걸 특별히 레이샤르 님에게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말해 보도록.”

칠흑이 벨라시오닉을 타락시킨 존재라는 것.

그리고 벨라시오닉이 죽음으로 인해 칠흑은 자신의 조각을 뿌려서 인간, 혹은 지적인 생명체에게 기생하게 만들어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을 되찾아오게끔 명령을 내려 둔 것까지.

내가 아는 정보는 대부분 레이샤르에게 공유해 줬다.

레이샤르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혀를 찼다.

“벨라시오닉이 칠흑에게? 어쩐지…… 폭주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

레이샤르는 벨라시오닉과 연이 있었다.

그렇다고 친구 사이까진 아니었다.

그냥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벨라시오닉의 폭주는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크게 회자되었다.

불가사의한 폭주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레이샤르는 페나트라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해 테일을 따라 칠흑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레이샤르는 오늘 운이 좋은 거다.

왜냐하면 칠흑에 대해 잘 아는 나를 만났으니까.

고급 정보를 얻은 레이샤르.

그러나 나는 공짜로 레이샤르에게 이런 친절을 베푼 게 아니다.

레이샤르는 눈치 빠른 드래곤이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레이샤르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간단합니다. 저를 우호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우호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호감을 가져 달라, 이 말씀이지요.”

“요즘 그게 인간계에서 새로 유행하는 유머 코드인가?”

“아니요, 웃자고 한 소리가 아닙니다.”

이 도마뱀 녀석, 사람 말을 이해 못 하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싫어하지 말고, 좋은 녀석이라는 인식을 항상 가져 주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조건을 들어 왔지만, 너처럼 이렇게 특이한 조건을 내거는 녀석은 처음 봤다.”

나도 처음이다, 이 녀석아!

레이샤르가 어이없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만약 내가 레이샤르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아직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레이샤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알았다. 아무튼 넌 좋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거지?”

“예, 맞습니다.”

“어렵지 않지.”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이샤르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드래곤의 친구’ 칭호를 얻습니다.

-칭호의 효과로 드래곤류 스킬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드래곤류’라고 하면 드래곤 피어나 드래곤 클로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오, 완전 개꿀이네!’

근데 이런 칭호를 노리고 일부러 레이샤르와 친분을 두텁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다.

나의 진짜 목적은 바로 주인공과의 연줄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니까.

단역만 하더라도 그놈의 개연성을 높이는 데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한다.

즉 비중이 적은 인물들에게도 말 한번 붙이기 쉽지 않은데, 주인공은 얼마나 커트라인이 높을까?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를 앓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과 엮이기 위해 사전에 이런 작업을 해 두기로 했다.

레이샤르와 친해지기는 이 작업의 일환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욕심을 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됩니까?”

“부탁을 많이 하는 인간이군. 뭐지?”

“이번에도 어렵지 않습니다. 훗날 라스라는 인간을 만나게 되면, 저에 대한 칭찬을 마구 해 주시면 됩니다.”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이유는 묻지 마시고, 그냥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인간은 참으로 당돌하군.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고……. 아무튼 알겠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내 특별히 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거래가 마무리되어 갈 시점에서 다시 문이 열리며 테일이 돌아왔다.

“자, 그럼 다시 심문을 시작해 볼…….”

“선배님!”

레이샤르가 테일의 말을 중간에 끊어 버렸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까지 하죠.”

“벌써? 아직 더 들어야 할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아.”

“제가 대신 얻었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요.”

“……?”

테일은 나와 레이샤르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나머지는 수사관님 보좌관한테 물어보세요. 다 말해 줬으니까요.”

“잠깐만, 아까는 그렇게 완고하게 굴더니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그냥 다 말해 줬습니다.”

테일은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말해 줄 거면 진작 말했으면 좋잖아!’라는 의미를 담아 나를 원망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라고, 아저씨.

* * *

테일과 페나트…… 아니, 레이샤르는 이른 아침 해가 뜨자마자 바로 마법사 길드로 되돌아갔다.

조사도 끝났으니 우리도 더 이상 메를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레임스는 아직 깁스를 풀지 못했다.

뼈가 온전히 붙으려면 몇 주는 더 있어야 한다.

말에 먼저 오른 드레인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난 그럼 진짜로 3개월 동안 푹 쉬다 올 거니까 그때 보자고. 나 없는 동안 후배님은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내가 사고를 왜 치겠어요?’

그래도 착한 후배를 연기해야 했기에 온순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예, 선배님,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3개월 후에 뵙죠.”

드레인은 휴가를 즐기러, 그리고 레임스는 치료를 위해 먼저 메를을 떠났다.

이제 나와 리오나만 남았다.

리오나는 내게 물었다.

“바로 갈 거지?”

“물론.”

“조금 쉬었다 가도 상관없는데.”

“중대한 일은 질질 끌면 안 좋아. 이런 일은 빠르게 결정하는 편이 좋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난 말리진 않을게.”

이제부터 우리는 블루로즈단의 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S팀이 있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으로 가서 첸버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R팀 대장직 후보 등록.

이것이 우리의 주목적이다.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등록 기간이 끝난 이후에 후보로 거론된 용병들끼리 대장직을 두고 경합을 벌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R팀 대장직을 거머쥘 수 있다.

대장직은 내가 차지할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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