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2화 (32/240)

# 32

수사관 테일 (1)

마법사 길드에서 파견한 두 명의 수사관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메를에 남기로 했다.

원정대에 참가했던 다른 용병들도 강제로 메를에 남게 되었다.

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건 강압이 아니었다. 요청이었다.

그런 요청 따위는 사실 그냥 무시해 버려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은 적극적으로 마법사 길드에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친 용병들이 마법사 길드 앞에선 온순하게 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 길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델리피나 전기》에선 마법사라는 존재가 흔한 게 아니었다.

마법사는 굉장히 귀한 직업이다.

마법사가 필요한 의뢰를 수행해야 할 경우, 용병 조직은 간혹 마법사 길드에 마법사를 파견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을 할 때가 있었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온 용병 조직이라면 마법사 길드는 쉽게 마법사를 빌려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거들떠도 안 본다.

‘천하의 블루로즈단도 마법사 길드 앞에선 온순한 양이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용병들은 어쩔 수 없이 메를에 남기로 했다.

솔직히 용병들은 지금 당장 메를을 떠나고 싶을 것이다.

느와르 남작의 변해 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도 그 모습이 트라우마가 되어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벌벌 떠는 용병들이 몇몇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 남아 있는 건 마법사 길드 탓이었다.

“언제쯤 오려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맞은편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리오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오늘 중에 온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

“오긴 와? 곧 해 떨어질 텐데?”

“밤 11시 59분도 오늘은 오늘이니까.”

그래도 우리 수사관님들은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20분가량 흘렀을까?

드레인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왔다.

“마법사 길드 측 사람들이 도착했다고 하네. 다들 모여 달라고 하던데.”

“네, 곧 갈게요.”

그래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와서 다행이다.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 * *

마법사 길드에서 파견한 수사관 테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남성 마법사였다.

-테일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A

-마법사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젊은 마법사. 나이에 비해 뛰어난 마법 능력을 지니고 있다. 칠흑(漆黑)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공표한 마법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역이라…….

‘하긴, 칠흑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존재니까 적어도 단역 타이틀 정도는 달고 있어야지.’

소설 속 초반부에서도 테일의 이름은 주기적으로 언급되었다.

처음에는 주인공 일행의 대화 속에서 테일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했다.

2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테일이 직접 등장해 주인공 일행과 대면하는 장면도 나온다.

테일.

중요한 인물이다. 머릿속에 새겨 두도록 하자.

옆에는 테일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테일의 보좌관인가?’

인물 정보를 살펴보기 위해서 테일의 보좌관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인물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인물 정보를 속이고 있습니다.

-친밀도를 올려서 인물 정보를 갱신하세요.

이런 문구는 처음 봤다.

‘인물 정보는 그냥 내가 원하는 때에 볼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상대방이 작정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 이렇게 나오는 건가? 그렇다면 저 보좌관이라는 녀석은 도대체 누구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반면 보좌관은 무언가 실수를 저지른 모양인지 테일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견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실수 좀 그만하면 안 되겠냐, 페나트!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진짜……. 그 중요한 종이하고 펜을 안 챙겨 오면 어쩌자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지금 사 오겠습니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페나트.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나는 친밀도가 상승할까 싶어 페나트에게 유용한 정보를 흘렸다.

“지금 시간이면 문 닫은 상점이 많을 겁니다. 오른쪽으로 나가서 두 번째 집으로 가세요. 그곳은 여기 마을에서 유일하게 저녁 10시까지 가게 문을 여는 곳이니까요. 종이하고 펜을 파는 곳이니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페나트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인물 정보를 열람하기까지 남은 친밀도는 20입니다.

‘앞으로 친밀도 20을 더 올려야 저 페나트라는 자의 인물 정보를 볼 수 있다 이거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걸까?’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이 좁은 마을에 갇혀 지내느라 갑갑했는데 오랜만에 머리 좀 쓸 만한 일이 생겼구먼.

* * *

수사관 테일은 용병들을 한 명 한 명 불러서 개별 면담을 실시했다.

면담이라기보다는 심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막 테일과 대화를 마치고 나온 용병은 기분이 팍 상한 모양인지 테일 욕을 바가지로 내뱉었다.

“뭐 저딴 녀석이 다 있어? 아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잘못인가? 거참. 저 마법사 양반, 사람을 의심해도 너무 의심하네!”

실제로 느와르 남작과 함께 던전으로 향했던 일반 용병들은 남작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남작이 갑자기 괴물로 변한 것만 보았을 뿐.

그리고 내가 남작을 죽였다는 정보까지만 알고 있었다.

순번은 내가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었다.

이 순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를 집중적으로 심문하겠다는 뜻인가?’

용병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은 뒤에 나를 공략하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내 바로 앞에는 리오나가 배치되었다.

테일은 리오나도 중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보고 있었다.

그 이전이 드레인 그리고 레임스다.

두 사람은 칠흑에 대해 전혀 모른다.

앞서 용병들이 말했던 것처럼 같은 증언을 반복할 게 분명하다.

리오나부터가 본게임의 시작이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로인.”

“어. 왜?”

“낮에 우리가 했던 말, 그대로 가는 거지?”

테일에게 칠흑의 존재에 대해 말할지 말지를 물었다.

“넌 그냥 내가 해 준 말은 싹 다 잊어버리고 보고 들은 것만 수사관한테 이야기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나.

말해 줄지 말지는 일단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 결정권을 굳이 리오나에게 떠넘길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면 되니까.’

심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점점 가속이 붙는다고 해야 할까?

하긴. 같은 증언만 계속 반복되니 나머지는 들을 가치도 없을 것이다.

드레인과 레임스까지 조사가 끝났다.

다음은 리오나의 차례다.

“거기 아가씨, 들어오세요.”

테일의 보좌관, 페나트가 리오나를 불렀다.

리오나는 굳은 표정으로 테일이 대기 중인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소리 차단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안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은 바깥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들을 수 없었다.

리오나라면 잘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기로 했다.

* * *

리오나는 다른 용병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다소 지친 기색이 보였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페나트가 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마지막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의 구조는 굉장히 심플했다.

내가 앉을 의자 하나가 중간에 놓여 있었다.

앞에는 테일과 보좌관 페나트가 앉을 의자와 테이블이 위치한 상태였다.

테일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어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살아 있었다.

테일은 우선 내 신원을 확인했다.

“블루로즈단 B팀 소속 용병, 로인 맞죠?”

상대는 단역이다.

‘아직 친밀도를 올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말을 할 수 있을까?’

“예.”

‘응? 목소리가 나오잖아?’

내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패턴과 다르다.

테일의 친밀도는 이미 25였다.

‘테일이 나에게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가?’

내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 알아서 친밀도가 올라가 있는 경우가 더러 존재한다.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테일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블루로즈단 예비 멤버로 계속 훈련을 받으면서 자라 왔다고 알고 있는데. 꽤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것 같군요.”

첸버가 내 신분을 제대로 위조해 줬다.

원래 나는 라바인 전투의 생존자다.

그러나 첸버는 이런 내 과거를 덮어 줬다.

음, 고생해서 블루로즈단에 입단한 보람은 있군.

“인생이라는 게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평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는 법이죠. 가끔은 오르막길도 만나고, 내리막길도 만나고……. 그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생각이 깊군요.”

“고생을 많이 해 와서 그런가 봐요.”

철이 일찍 들었다.

이 점을 어필했다.

서두는 여기까지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검은 존재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이쪽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정황을 보아하니 당신은 검은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만. 제압하는 방법도 미리 꿰뚫고 있었던 듯하고요.”

수사관 양반, 제대로 조사했구먼.

용병들은 내가 느와르 남작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칠흑에 잠식된 존재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오염된 심장을 부수는 것밖에 없다.

내 행동은 이미 다른 용병들에게 수차례 들었을 것이다.

테일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봤다.

숨기고 있는 거 맞다.

다만, 이야기를 안 해 줄 뿐.

테일은 펜을 돌리며 혼잣말을 흘렸다.

“느와르 남작 사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검은 존재에게 잠식당해서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최근 들어 갑자기 발생하게 되었는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이미 테일은 검은 존재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본인이 혼자서 열심히 조사하다 보면 언젠간 칠흑의 존재에 대해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반년 후다.

‘어차피 나중에 밝혀질 일이기도 하고……. 그냥 슬쩍 흘리듯 말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테일의 보좌관의 정체가 궁금했다.

내가 수사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면 보좌관에게 호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아, 보좌관. 네놈의 정체를 확인해 주마!

“그러고 보니…….”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테일과 페나트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수사관님은 혹시 ‘칠흑’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습니까?”

델리피나 전체를 뒤흔들 만한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 이루어지게 된다.

* * *

나는 칠흑의 존재에 대해 내가 아는 것 전부……를 이야기해 주진 않았다.

딱 리오나에게 설명한 만큼만 알려 줬다.

그것만으로도 테일에겐 어마어마한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테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터질 거 같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시는 게 어때요?”

“그럴까?”

페나트의 말에 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페나트는 내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저희 수사관님에게 좋은 정보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초반에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기에 ‘아, 오늘도 글렀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인데, 그래도 이야기는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원래는 말을 아끼려고 했었습니다. 하하하!”

“친절하신 분이군요.”

-페나트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인물 정보 열람을 위한 최소 기준치를 달성했습니다.

-페나트 인물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역시 말해 준 보람이 있었다.

열람하기를 선택하자마자 페나트의 인물 정보가 펼쳐졌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페나트

-인물 등급 : 조연

-종합 능력 : SSS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 때의 이름은 페나트. 하나 그의 정체는 지식을 탐구하는 드래곤 레이샤르. 주인공 일행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맡는다.

드래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기절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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