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6화 (26/240)

# 26

아시브 방어전 (2)

성벽 쪽으로 급하게 향했다.

이동하면서 소설 속에서 봤던 문구를 떠올렸다.

-아시브의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친 마법사, 아스웰은 언데드 몬스터를 생체 폭탄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붉은 피부를 지닌 몬스터들이 성벽에 달라붙자, 폭음과 함께 성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성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아시브를 침공했다.

만약 아스웰의 성벽 파괴 작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아무리 나라 해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몬스터들이 밀물처럼 이곳을 덮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자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 하더라도 내 몸은 하나고, 몬스터는 수백, 아니 수천 마리니까.

저들을 일일이 다 나 혼자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성벽 위에 올라섰다.

먼발치에서 붉게 묽든 피부를 지닌 몬스터 몇몇이 성벽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 가 볼까!”

수십 미터 아래로 뛰어내렸다.

쿠우웅!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빠르게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잔챙이는 필요 없다.

붉은 피부를 지닌 몬스터, 네놈들만 노린다!

“우선 한 놈 잡았고!”

붉은 피부를 가진 몬스터를 발견하자마자 머리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머리가 터지면서 놈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주변에 자욱한 흙먼지가 형성되었다.

폭발 속에서도 내 몸은 무사했다.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의 육신인데, 고작 이런 하급 몬스터들의 공격에 생채기라도 나면 안 되지.

‘다음 녀석은 어디 있지?’

두 번째 타깃을 향해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성벽 위에서 확인한 붉은 피부를 지닌 몬스터의 숫자는 총 다섯.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한 놈씩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곧이어 두 번째 녀석을 포착했다.

놈에게 다가가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퍼어엉!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알아서 자폭하게끔 만들었다.

세 번째 녀석을 찾으려고 하니 갑자기 주변 몬스터들의 행동 방식이 달라졌다.

아시브를 향해 달려가던 녀석들이 타깃을 나로 변경했다.

하나 놈들은 나에게 어떠한 방해도 되지 못했다.

세 번째 녀석을 빠르게 자폭시킨 뒤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언데드 몬스터 중에서 공중에 떠 있는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녀석은 없었다.

“저기 있군.”

네 번째, 다섯 번째 녀석은 같이 뭉쳐 있었다.

‘그래, 사이가 좋네. 고맙다. 덕분에 수고를 덜하게 됐어.’

놈들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반동으로 두 녀석은 알아서 자폭했다.

이것으로 다섯 마리 다 제거했다.

‘슬슬 아시브로 돌아갈까?’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 순간, 검은 구체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법이다.

“큭!”

양손을 X 자로 교차시켰다.

팔등 위에 검은 구체가 정확히 명중했다.

몸이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한 10미터 정도 흙바닥을 구른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공격처럼 생겼는데.

생각보다 파괴력이 좀 있다.

겨우 무게중심을 잡은 뒤에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일격을 가한 녀석의 정체를 확인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딱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네놈이구나!”

미친 마법사, 아스웰의 등장이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아스웰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창백한 피부, 거의 뼈만 남은 것 같은 앙상한 몸.

그러나 녀석의 마법 실력은 수준급이다.

아스웰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넌 누구냐?”

“누구긴, 이거 안 보여?”

블루로즈단 문양이 새겨진 보호대를 가리켰다.

아스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블루로즈? 용병 따위가 감히 나를 방해하려 들다니.”

“어허, 말조심해. 용병 따위한테 처맞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입이 험하군. 능력은 좋아 보이니 너를 죽이고 언데드로 되살려서, 네 시체는 특별히 유용하게 사용해 주도록 하지.”

저 대사를 진짜로 들으니까 조금 섬뜩하긴 하네.

어느새 나는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아, 작전 변경이다. 원래 주인공 버스 타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침 나에겐 아스웰을 쓰러뜨려야 할 이유가 있었다.

놈을 쓰러뜨리면 유니크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용병 일을 하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 이후 이렇다 할 아이템을 손에 얻지 못했다.

그 때문에 용신단의 레벨을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올리지 못했다.

유니크 아이템 하나 구해서 삼키면 용신단 레벨을 빠르게 올릴 수 있을 터.

공중에 떠 있는 아스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는 아스웰은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바닥에서 뼈다귀로 이루어진 벽이 형성되었다.

본월(Bone wall).

흑마법의 방어 스킬 중 하나다.

벽이 꽤 두꺼워 보였다.

게다가 기분 나쁘게 생겼다.

“이런 걸로 날 막을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내 주먹에 닿는 순간 본월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다.

그걸 본 미친 마법사 아스웰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본 월이 깨질 듯하자 아스웰은 주문을 시전했다.

사방에서 매직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어지간한 마법으론 나에게 대미지를 입힐 수 없다.

드래곤의 몸은 마법 저항력이 높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마법을 맞고도 멀쩡한 나를 보고 아스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너, 인간 맞아?”

“일단은?”

그래도 태생은 인간이다.

기연을 만난 덕분에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아스웰은 계속해서 내게 마법을 퍼부었다.

언데드 몬스터들도 합심해서 나를 제압하려 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귀찮아서 일단 언데드 몬스터 녀석들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흐읍!”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이후 드래곤 피어를 발동시켰다.

쩌렁쩌렁 울리는 드래곤의 외침에, 언데드 몬스터들은 일순간 모든 행동을 정지했다.

물론 죽은 사체를 되살려 만든 언데드 몬스터였기에 공포 효과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경직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아스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드래곤 피어……! 설마 네 녀석은?”

드래곤 피어는 오로지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마법이다.

아스웰은 나와 계속 싸워 봤자 본인에게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꽁무니를 빼고 성 안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서다.

드래곤 피어가 제대로 먹혀들어 간 모양이다.

이대로 아스웰의 뒤를 쫓을까?

‘아니, 이쯤하면 됐어.’

녀석을 이제 와서 뒤쫓아 봐야 소용없다.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몬스터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 두는 편이 좋다.

어차피 아스웰은 죽은 목숨이다.

왜냐하면…….

‘성 안쪽에는 나보다 더 강한 녀석이 있으니까.’

주인공 라스가 버티고 있다.

아스웰이 아무리 날고뛴다 하더라도 주인공 보정을 받는 라스는 절대로 못 이긴다.

‘명복을 빌어 주마.’

잘 죽어라, 미친 마법사야.

* * *

아시브 쪽에서 거대한 화염 폭풍이 몰아쳤다.

화염 폭풍은 내가 있는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드래곤 피어 효과로 인해 경직되어 있던 언데드 몬스터는 화염 폭풍에 죄다 휩쓸려 불타 버렸다.

사체 썩은 냄새는 고약했지만, 사체가 타는 냄새는 더 고약했다.

아시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언데드 몬스터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는 익숙한 녀석의 얼굴도 보였다.

아스웰이었다.

“드, 드래곤의 힘을 지닌 녀석이…… 또 있을 줄이야…….”

아스웰의 시선은 라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화염 폭풍을 일으킨 자가 바로 라스였다.

단, 라스는 군인과 용병이 화염 폭풍에 휩쓸리지 않도록 컨트롤을 잘 해냈다.

라스는 아스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언은 그것으로 끝이냐?”

“자, 잠깐! 거래를 하자.”

“거래?”

“그, 그래! 나와 손을 잡자! 그러면 이 세계의 절반을 네게 주…….”

“필요 없어.”

퍼엉!

작은 화염 구체가 아스웰의 상체를 터트렸다.

아스웰의 머리가 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나는 놈의 머리를 내려다봤다.

한편 라스 일행은 군인들과 용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자리를 이동했다.

라스는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아시브를 구한 영웅’이라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델리피나 대륙 전역에 널리 알리기 시작한다.

앞으로 라스의 명성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공이니까.

자리에 남은 나는 아스웰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왜 이런 기분 나쁜 짓을 하느냐 하면…….

사실 이게 내가 찾던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아스웰의 머리

-등급 : 유니크

-마력 +130

-흑마술 스킬 공격력 2배 상승

-지력 +250

-미친 마법사 아스웰의 머리. 아스웰이 지난 100년간 쌓아 올린 지식이 담긴 아이템이다.

-특수 옵션 : 언데드 몬스터 소환 가능

하필이면 죽기 직전의 표정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보기 싫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주 놀랍게도 이걸…… 삼켜야 한다.

내 손등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흡수 가능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용신단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잠깐만.”

진짜로 이거, 삼켜야 하는 거지?

‘하, 돌아 버리겠네, 정말…….’

레플러 퀸의 붉은 더듬이나 디울프의 푸른 송곳니는 이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래도 안 삼킬 순 없었다.

유니크 아이템은 정말 보기 드물다.

반년을 돌아다녔는데 구경도 못 했다.

유니크 이상 가는 등급의 아이템은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스웰의 머리를 구하기 위해 나는 이곳까지 왔다.

목적을 달성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망설이게 될 줄이야.

“후우.”

일단 심호흡을 했다.

눈을 질끈 감고서 읊조렸다.

“흡수할게.”

아스웰의 머리는 가루로 변했다.

가루들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작은 환약으로 변했다.

색깔은 흰색.

아스웰의 피부색과 동일했다.

“…….”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보기에는 그냥 흰색 약 같지만, 이것이 아스웰의 머리라는 정체를 알아서인지 차마 입으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에라, 이! 모르겠다!’

꿀꺽!

-아스웰의 머리를 삼켰습니다. 삼킨 아이템의 효과로 지력이 +250 상승합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7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스텟이 오릅니다.

-‘드래곤 클로’ 스킬이 개방됩니다.

-이제부터 드래곤 클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스킬이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상세 설명을 살펴봤다.

-드래곤 클로

-물리 공격력 +567

-지속 시간 : 2분

-벨라시오닉의 발톱을 일시적으로 소환해 강력한 물리 공격을 가하는 액티브 스킬. 지속 시간은 용신단의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증가한다.

‘공격 스킬인가?’

나쁘지 않다.

이런 스킬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편이 좋지.

아스웰의 머리를 삼킨 보람이 있다.

‘그래, 지독한 아이템을 삼켰는데 이 정도 보상은 줘야 아이템 삼키는 맛이 있지 않겠냐?’

원하는 목적도 달성했고, 슬슬 드레인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까 하려던 찰나였다.

“저기요.”

여자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느낌이 싸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당신, 저랑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누군가 했더니 레플러 사건 때 만났던 엘라시아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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